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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 로마서 8 : 26 - 30 ; 시편 91 : 14 - 16 2018년 6월 17일 주일예배

작성일 작성자 V-maker

"은혜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     2018년 6월 17일 주일예배
                               로마서 8 : 26 - 30 ;  시편 91 : 14 - 16


이런 '부부 대화의 법칙'이 있답니다. '결혼 1년차는 남자가 말하고 여자가 듣는다.' '결혼 2년차는 여자가 말하고 남자가 듣는다.' '결혼 3년차는 서로가 말하고 이웃이 듣는다.' '결혼 4년차는 서로가 말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서는 이런 법칙을 지켜야한다고 합니다. [산울림의 법칙] : 한 소년이 엄마에게 울먹이며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고 해요"라고 말하자, 엄마가 "네가 뭐라고 했는데?"라고 물으니, "'야, 이 바보야!'라고 했어요."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이 천재야!'하고 외쳐 보렴." 그렇게 하니 산이 소리칩니다. "야, 이 천재야!" 대접받으려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 부부의 황금률입니다. [수영의 법칙] : 수영을 다 배운 다음에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 없고 누구나 물 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히듯, 사랑의 이치를 다 배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기에, 피차 미숙함을 전제하고 인내해야합니다. [타이어의 법칙] : 차가 모래에 빠지면 타이어 공기를 빼어 타이어가 평평해져 바퀴 표면이 넓어져서 모래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듯이,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맬 때 서로 자존심과 자기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야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세계관에는 '모든 것을 우연이나 요행으로 보는 세계관'이 있고, '모든 것이 일정한 자연법칙'에 따른다고 보는 세계관이 있는가하면, '모든 것을 은혜로 보는 은총중심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인과율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철학이 있지만, '인간의 행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법칙이 있어,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는 은총'을 믿는 은총중심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공도 실패도 은혜이고, 건강이나 질병까지도 하늘의 은혜라고 받아들임으로, 어떤 역경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거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아내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스에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해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이 은행에서 수위를 모집하기에 응시를 했지만 이름밖에 쓸 줄 몰라서 떨어졌습니다. 낙심천만한 그는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공부를 못해 수위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하고 통곡하며 기도하자 "내 계획은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후손에겐 배우지 못한 슬픔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여 큰돈을 벌어 중년이 되자 월가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60회 생일 파티에 참석한 한 기자가 "선생님, 자서전을 내십시오"라고 하자 "나는 내 이름밖에 쓸 줄을 모릅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만일 선생님이 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큰일을 하셨을까요?"하자, "내가 글을 알았더라면 나는 기껏 은행의 수위장이나 됐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첫째,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시97:1). 여러분은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안 계셔서 세상이 어지럽다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라고 여겨 선한 사람이 통치하면 세상이 안하고,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악한 사람이 통치하면 세상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역사는 사람 손으로 움직인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운행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모든 일이 우연히 이뤄지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힘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성경의 주제는 '역사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잠시 악이 난무해도, 역사는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고, 그분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100:5). 우리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그분이 이루시는 역사도 선한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사랑을 보증하시고, 그 능력으로 선하심을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은 종종 약해질 때 생각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내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내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때에, 나를 부르신 그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놓지 않으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a). 하나님은 성도가 연약할 때 그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성령을 칭하는 [보혜사]란 '부름을 받아 내 곁에 와서 서 계신 분'으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돕기 위해 내 곁에 다가오셔서 내 무거운 짐을 덜어주시며, 끝까지 달려갈 길을 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조선조 태종이 모든 정사를 세종에게 넘기고 풍양궁에 살고있는데 우연히 두 아전이 서로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이 말합니다.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에게서 나온다." 그러자 을은 "아니다. 한 계급이 오르거나 한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는 것으로 임금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며 서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태종이 그 말을 엿듣고 "지금 이 글을 가지고 가는 아전을 한 직급 올려 주라"는 글을 써서 갑을 시켜 세종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이 그 쪽지를 가져오다가 갑자기 복통이 나서 그 쪽지를 을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인사발령을 보니 을은 직급이 올랐으나 갑은 그대로였습니다. 태종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알아보았더니, 그 사실을 알고서 경탄하여 마지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첫째, 성령님의 기도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b).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기도할 의욕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낙심될 때,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 널 위해]란 복음성가처럼 말입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어떤 목사님이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무얼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몰라 한참동안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밖에 나가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런데 천만다행히 끔찍한 사고에도 머리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얼 위해 기도할지 몰라 방언으로 기도했는데,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이 좋은 결과로 이뤄지길 바라지만 사람에겐 그럴 능력도 지혜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선하시기에 능히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 성경에는 "선을 이룬다"는 동사에 대한 주어가 빠져 있지만, 원어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신다"고 주어인 '하나님'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로 바꿔주십니다.


여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에서 '모든 것'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먼저, 어려운 역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역경을 스스로 자원할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에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 역경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야만 하는지 우리는 그 뜻을 몰라 마음이 답답하여, 때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던 알렉산드리아호는 심한 풍랑을 만나 파선되었을 때 바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바다에서 구출된 바울이 모닥불을 마련하려다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될 뻔한 사건이 나옵니다. 하필이면 왜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셨을까요? 바울이 뱀에 물려서 그 독에 시달리는 사건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 하지만, 바울이 뱀에 물린 다음 멜리데섬에는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훗날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이 일까지도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은 실패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패배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도 실패라고 이해해선 안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상상치 못한 더 크신 뜻을 이루시고, 그 실패까지도 이용하셔서 우리를 더 큰 축복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많은 경우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께 기회가 됩니다.


1942년 11월 28일 토요일, 미국 보스턴에서 전국 대학축구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그 해의 마지막 경기로서 보스턴대학교와 홀리 크로스 팀과의 경기였는데 그 해 보스턴대학교는 전승을 기록했고, 홀리 크로스 팀은 10전 4승 6패의 기록으로 누구나 보스턴대학의 우승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보스턴대학은 코치나 선수들 모두 자만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마지막 시합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져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승리 후에 축하파티를 열 나이트클럽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경기에서, 보스턴대학은 참패를 당하여 모두 예약된 파티에 참석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나이트클럽 공포의 화재. 잿더미 속에서 시체 491구 발견]이란 기사가 주먹만한 글씨로 실렸습니다. 보스턴대학이 예약했던 코코아넛 글로브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까지도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사람은 지혜가 부족하고, 신중하지 못해 이런저런 실수를 하고, 이 때문에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 입은 자들에겐 이런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기회가 됩니다. 페니실린 발명으로 194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플레밍이 세균실험을 하는데, 같이 연구하던 엘리슨은 연구가 끝나면 자신이 연구하던 접시를 깨끗이 치웠으나 플레밍은 지저분하게 접시를 씻지도 않고 수북히 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레밍이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리다 콧물이 실험접시에 떨어졌는데, 거기에 세균을 죽일 수 있는 푸른곰팡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지저분한 플레밍의 약점과 게을러서 빨리 치우지 않은 접시에 떨어뜨린 콧물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던 세균을 박멸하는 위대한 페니실린을 발명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플레밍은 훗날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발명은 위대한 실수가 가져다 준 축복이었다. 성격의 약점이 오히려 나에게 큰 것을 가져다주었다."


셋째,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30절). 예정하여,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로서, 우리는 이 예정을 알 수 없으나 환난 속에서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은 분명합니다.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며,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시편 말씀에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너를 환난 중에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영광은 환난 중에 얻어집니다. 엄청난 고난 속에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리라'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Moody)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고,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찾기 위해 창세기부터 침을 묻혔습니다. 무디는 "기독교 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고, 친구들로부터도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사용될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며 따돌림 당했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늘 고독했고, 그 고독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미욱하나마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했습니다. 결국 무디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무디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쳐졌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부족한 가운데서도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 은혜의 법칙에 해당되는 자는 누구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롬8:28a). 시편 91편 14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91:14)고 말씀합니다. 자신만의 욕심과 쾌락만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당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합력하여 선한 결과가 이루기를 소원한다면, 먼저 내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확인해야만 할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에 의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이, 내 욕망과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뤄주십니다.


다음으로,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그 하나는 구원에로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부러져 입원한 환자가 병원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집니다. 퇴원을 하게 되자, 그 사람은 목사님께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으로 인도하시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워낙 교만해서, 이렇게 다리를 꺾어놓아야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합니다. 이 정도의 상황이나 되어야 비로소 제가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다리를 꺾어서라도 회개시켜 당신의 자녀로 만드십니다.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 나와 구원받도록 만드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명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각기 교사나 찬양대나 집사나 권사나 장로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소명이 있고,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그 일을 감당할 자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사나, 권사나, 장로로, 또 교사나 찬양대로 부르신, 여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고, 또 여기에 우리를 도우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보장해주시는 그 은혜의 법칙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디언 켈트족의 기도문]입니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 당신의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뒤에서 불고 /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 곧 무지개가 뜨기를.. //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 적을 만드는데는 느리고 /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 이웃은 당신을 존중하고 / 불행은 당신을 아는 체도 하지 않기를.. //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 이미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기를.. //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 지금까지 가장 행복한 날보다 / 더 나은 날이기를.. //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길 누구나 소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부름 받은 자에게 허락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쉐릴 월터만 스튜어트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 실린 실화입니다. - 외할아버지는 목수였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중국의 한 고아원에 보낼 옷을 담을 상자를 만들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려고 호주머니를 더듬었지만 안경이 없었다. 그 날 아침 교회에서 안경을 쓰고 있던 것이 생각난 할아버지는 교회로 돌아가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 날 한 일들을 차근차근 마음속에 그려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안경이 할아버지의 윗옷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나와 옷상자 속에 떨어졌고 그것도 모르고 할아버지는 상자 뚜껑에 못질까지 하여 닫았다. 할아버지의 새 안경은 이제 중국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경제 대공황이 한창일 때였는데 할아버지에게는 자녀가 여섯 명이나 있었다. 바로 그 날 아침 20달러나 주고 새로 산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드리며 헌신했는데 이게 뭐예요?" 몇 달 후 그 중국의 고아원원장인 선교사가 휴가차 미국으로 왔다. 그 선교사는 고아원에 원조를 아끼지 않은 모든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했는데, 드디어 할아버지가 다니시던 시카고의 한 작은 교회에서 그 선교사가 주일 저녁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원장은 고아원을 도와준 데 대한 감사로 설교를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선교사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께서 작년에 보내주신 안경에 감사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산당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제 안경을 포함해 고아원의 모든 것이 망가졌고, 저는 정말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돈이 있었다고 해도 중국에서 부서진 제 안경과 같은 도수의 안경을 구하기란 불가능했거든요. 잘 볼 수도 없는 데다 그로 인한 두통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매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보내주신 옷상자가 도착했고, 그 상자 뚜껑을 열자 제일 위에 바로 이 안경이 놓여있지 않았겠습니까?" 이 선교사는 이 말을 마치고 사람들이 충분히 감동을 느낄 때까지 말을 계속 잇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여러분, 안경을 써보니 마치 제 도수에 맞춘 듯이 꼭 맞았습니다. 안경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교인들은 잠자코 기쁜 표정으로 선교사의 안경에 얽힌 간증을 들었지만 속으로는 선교사님이 교회를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중국에 보낸 물품목록에 안경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계시던 외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위대한 대장 목수이신 하나님이 평범한 목수에 불과한 자신의 실수를 완벽하게 사용하셨음을 깨달으며... - 인간의 실수까지도 하나님은 이토록 아름답게 섭리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일들로 인하여 일희일비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우리 주위의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는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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