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자료실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4 : 1 - 5 ; 에스겔 3 : 10 - 11 2018년 7월 15일 주일예배

작성일 작성자 V-maker

"말씀을 전파하라"        2018년 7월 15일 주일예배
                           디모데후서 4 : 1 - 5  ;  에스겔 3 : 10 - 11


1960년대 미국에서 히피들에게 전도하던 목사님이 알코올 중독자인 패트롤이란 청년을 불러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패트롤, 난 내가 천국에서 사랑하는 패트롤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늘 걱정이야." 그러자 패트롤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대꾸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토록 염려를 하세요. 그 죄를 가지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세요." 목사에게까지 알코올 중독자도 전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회의를 느끼고, 극도로 절망한 상태에서 '예수나 믿어보자'며 제 발로 교회에 나갔다가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 사람이 감격과 뜨거운 눈물로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 '왜 이렇게 좋은 예수를 진즉 믿으라고 전하지 않고, 저희들만 믿었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엄상익 변호사가 소개한 실화입니다. 서울의 변두리 허름한 지하에 교회를 개척한 박민철 전도사님은 50대 늦깎이 신학생입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정말 열심히 전도지를 들고 집집마다 골목마다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대문은 꽁꽁 잠겨있었고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전도사님은 교회를 개방하고 청소년, 어린이 전도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금새 교회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중에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성추행 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으나 어쨌거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지 못하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그저 모든 게 저의 잘못입니다"하고 '내 탓이오'했던 한 마디가 범죄를 시인한 것으로 오인되어 그는 구속수감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의 목회는 끝났습니다. 성 추행범이 무슨 낯으로 목회를 합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왜 저를 이렇게 처절하게 철저하게 파멸시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옥의 '강도방'에 수감된 그는 갑작스럽게 닥친 이 어이없고 기가 막힌 현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며칠 전에 하나님 앞에서 부지중에 불평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다가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자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차라리 감옥에 가서 전도하는 게 낫겠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 비싼 전도지 만들어 들고 다니며 열리지도 않는 부잣집 문을 두드리기보다, 저 소외되고 가난한 죄인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얼마 후에 박민철 전도사님은 누명이 벗겨져 감옥에서 나왔지만, 다시 감옥으로 찾아갔습니다. 전도사님은 진짜 전도지를 들고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새롭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오스티안 가도(the Ostian Way)에서 참수되기 수주일 전, 아니면 몇 일 전에 기록한 서신으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인 디모데에게 유언과도 같이 간곡하게 전도에 대해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1-2).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먼저 엄한 어조로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을 말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아주 친밀한 사이였음에도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심각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한담이나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임박한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것과 군림하실 것을 믿고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복음은 가장 심각하고 진지하게 전할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전도자로서의 자세를 이렇게 당부합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희생과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한국 땅에 왔던 선교사님들은 오늘 복음을 전하고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몸서리치는 추위와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도에 미쳐 있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안산읍 발안 장터에서 전도하다가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온 몸이 부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를 위해 3일을 금식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여 온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알렌 선교사는 부흥운동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기적적으로 고치는 능력사역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아담스 선교사는 본국에 보낸 편지 중에서 "나는 올해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최근 나는 하루에 한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탁월한 한국어 실력으로 사랑을 받던 젼킨(Junkin) 선교사는 추운 겨울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뛰다가 급성 폐렴에 걸려 죽었습니다. 클랙 선교사와 시릴로스 선교사는 어린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어린 아이들을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급성장하는 교회들을 돌보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의료선교사 월리엄 홀 박사를 먼저 천국에 보낸 29살 로제타 홀 사모님은 젖먹이 어린 아이와 함께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선교사로 파송 받아 한국에 와서, 평양 땅에 여성병원을 세워 밤낮 미친 듯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 이 땅의 구원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로 인해 놀라운 복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말씀을 전하는 자세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여기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의 헬라어 '유카이로스 아카이로스'는 몇 가지로 해석됩니다. 첫째, '네가 말씀을 전하고 싶든지 그렇지 않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군인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반영합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며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전도했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전도는 내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주님의 절대적인 명령이기에 마땅히 실천해야만 합니다.


둘째, 상대방이 복음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지 전하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말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3:10-11). 이어지는 18절과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겔3:18-19). 전도자는 그 사람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듣고 돌이키면 그 사람이 살 것이고,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인데, 만약 그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죄로 죽지만, 그 사람의 피 값은 전도자에게서 찾겠다고 하십니다.


셋째, 기회와 형편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빌1:13)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 감옥에 갇혀서도 왕실 시위대에 있는 사람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형편이 좋아서 자유로운 몸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죄가 없이 억울하게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끌려와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고백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그토록 어려웠던 형편이 도리어 복음을 전하는 데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다고 고백합니다.


이어령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가 선교하는 것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반대한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2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언제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선교하는 것을 환영했던 적이 있느냐?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갈 때 허락 받고 비자 받아 가지고 가서 선교했느냐? 이런 일에는 언제든지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지성인으로 신앙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가 했더니, 복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또, "오래 참음으로 권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서 오래 참고 기다려야할 이유는, 말씀의 씨앗이 즉각 싹이 트고 열매맺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1년, 또는 10년, 어떤 이는 40년, 50년 후에야 변화되어 주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에 '오래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인도에서 사역하던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아무리 전도를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그만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때 묵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격려해주셨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봐라. 햇볕이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주면 7년이면 열매를 맺는다.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복음도 열심히 심고 때를 기다리면 열매맺습니다. 오늘 묵묵히 씨앗을 심으면 1년 후, 2년 후, 아니 7년 후엔 반듯한 열매를 보게될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전파하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2절). '전파하라'는 헬라어로 [케륔손]으로 '대중 앞에서 선포(proclaim)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외치는 것으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기보다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7)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선포됩니다. 성경 전체의 요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도, 믿으면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기에, 이어진 18절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며,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을 경고하며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형제님, 이제라도 당신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형제에게 용서에 관한 성경구절을 찾아 읽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찾아와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 형제는 놀랍게 회복되었고 한 달 뒤, 퇴원했습니다. 그 후 8년 동안 형제는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하다 다시 발병하여 죽게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을 집례하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저는 이 형제가 8년 전 입원했을 때, 그 옆자리에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그 때 목사님을 통해 저도 예수님을 영접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일단 말씀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뒷일은 성령께서 책임지십니다.


둘째, '가르치는 일'입니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2절b). 가르친다는 것은 지성에 호소하며 알아듣도록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고 하여, 복음을 전파하신 일과, 가르치신 일을 구별하여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가르쳐 지키게 하라"며 가르쳐야 할 사명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교회학교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수행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치는 자유민주주의요,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합니다. 저들은 키부츠농장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일해도 개인소유가 없습니다. 모든 사회주의국가 경제의 실패 이유는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비능률적인 생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선 수상 월급이 운전사보다 적고 대학교수의 월급이 노동자보다 적어도 그토록 헌신적인 정치를 하고 성실한 학문연구가 이뤄지는 것은 저들의 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심각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 청소년 문제가 이스라엘에는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외국의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학교가 없어지는 환난 속에도 교육만은 계속해 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계 석학들이 받는 노벨상의 25%이상을 차지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오늘에 이르도록 만든 위대한 교육은 바로 '쉐마'라고 부르는 신명기 6장 4-9절 말씀입니다. 쉐마 교육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육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교과서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교육은 철저하게 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교육이 하나님 말씀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가 적의 공격을 받아 성이 함락되어 모든 왕족이 포로 되었습니다. 이때 훗날을 위해 핏덩이인 어린 왕자를 걸인에게 맡기고, 종의 어린 자식을 왕자로 삼았습니다. 왕궁에 남은 종의 자식은 비록 갇혀 있었고 종의 핏줄이었지만, 자신을 왕자로 알고 자랐습니다. 반면 걸인에게 간 왕자는 비록 왕자였지만 그가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왕자는 자신이 거지로 알고 자랐습니다. 그 결과 왕의 자식은 커서 비루한 인생을 살다 끝내 걸인으로 죽었으나, 왕궁에 갇혔던 신하의 자식은 자신을 왕자로 여기며 꿈과 능력을 키워 결국 기회를 틈타 왕국을 되찾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셋째, '권하는 것'입니다. "권하라"(2절 끝). 이것은 감정에 호소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권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권하는 것은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고, 어떤 경우는 전도편지나 전화 등을 통한 개인전도로 이뤄집니다. 우리가 전도에 대한 이론과 성경지식만으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기 앞서 먼저 가슴으로 느끼게 하여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따뜻한 관심과 친절로 다가가야 합니다. 전도는 결코 논리적인 토론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이론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과학자로서 다윈의 진화론을 열렬히 주창하고 선전했던 토마스 헉슬리가 죽기 직전 그를 위해 기도하던 할머니가 병상에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할머니는 전도를 시도했지만 아직도 그의 능란한 화술과 토론 능력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여인은 조용히 병상 모서리에서 눈을 감고 헉슬리의 소매에 팔을 걸친 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여인의 기도가 끝났을 때, 헉슬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그의 논리를 파하고 기도가 그의 방어기제를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기도가 그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 것입니다.


지중해 해변에서 수십만 마리의 갓 태어난 새끼 거북이들이 수많은 괭이갈매기들에게 포식 당하자, 보호자가 손으로 그 새끼 거북이들을 잡아 바다로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경비원이 "그깟 수고로 새끼 거북이 몇 마리나 살리겠소"하니, 보호자가 "그러나 저 죽어 가는 수십만의 새끼 거북이와 내가 구해 바다로 보낸 새끼 거북이의 운명은 생과 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전도로 복음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의 운명은 괭이갈매기에게 잡아먹힌 그 새끼 거북이의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는 전혀 다른 운명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모두 배우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유치부와 아동부, 그리고 중, 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등의 교회학교를 운영하면서, 지난주부터 영아부와 유치부의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고, 아동부는 7월 28일부터 성경학교가 열립니다. 그리고 중고등부는 7월 26일부터, 청년부는 8월 9일부터 수련회를 열어 이 뜨거운 여름에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행사를 갖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두 주간 동안 제 28차 티베트 단기선교를 다녀옵니다. 이런 일이 단순한 교회의 연례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명하신 말씀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인 순종으로 행하는 교회의 거룩한 사역입니다. 이런 일은 교회학교 교사들이나, 선교를 떠나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라,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분부에 따라 감당해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인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 지망생이 선교를 떠나기 전에 같은 교회에 다니며 평소 마음속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 사랑을 고백하며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함께 선교사로 떠나지 않겠습니까?"하고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갑작스런 청혼에 당황해 하며, "집에 가서 한번 생각해 보고 말씀을 드리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여인은 집에 돌아가서 많이 기도하며 생각한 끝에 그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청혼과 함께 선교사로 나가자는 뜻을 수락하는 편지를 써서 자기 남동생에게 주면서 그 편지를 선교사 지망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동생은 그 편지를 받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버려 그 편지를 전달하지 않고 말았습니다. 그 선교사 지망생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 여인으로부터 아무 대답이 없자, 실연의 커다란 상처를 안고 그대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그곳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을 하였고, 자녀들까지 낳아, 그곳에서 칠 년 째 되는 해 안식년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청혼을 수락하는 편지를 동생에게 보낸 여인은 자기가 편지를 보냈는데도, 아무런 응답도 없이 그냥 선교사로 떠나버린 남자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기만한 것 같아서, 그 뒤로 남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는데, 그 선교사가 가족까지 데리고 칠 년 만에 나타나자 다시 한번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조용히 그 선교사를 불러내어 항의하였습니다. "당신의 프로포즈를 받고 기도하고 생각한 끝에 그 청혼을 수락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왜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냥 선교사로 떠나버렸습니까?" 그러자 그 선교사는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무슨 말입니까? 그때 나는 당신에게 청혼을 한 뒤에 당신의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나의 청혼을 거절하는 것으로 알고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안고 고향을 떠났는지 아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두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구원의 편지를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고훈 목사의 [당신은 전도가 되라]는 시입니다. "당신도 전도받고 오늘까지 왔는가/하늘 빚진 자다/전도하여 갚고/나쁜 채무자가 되지 마라//그리고 아프라/온 몸 다 몸살로 아프라/잠 못 들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그 사람 거절해도 포기말고/미워해도 끊지 말고/주님이 나 위해/아파서 죽으셨던/사랑병으로 많이 아프라//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다/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그 영혼 오직 사랑하므로/당신은 전도자가 되라" 우리는 모두 빚진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 전파에 동참함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월 4주 이 블로그 인기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