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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기도하라!" 2018년 7월 22일 주일예배

작성일 작성자 V-maker

"깨어 기도하라!"         2018년 7월 22일 주일예배
                              마가복음 1 : 35 - 39 ; 시편 46 : 4 - 7


게으른 아들이 매일 늦잠을 자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 밤늦게 돌아다니며 놀지 말고 일찍일찍 들어와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하지만 벌레는 일찍 일어났다가 잡혀 먹혔잖아요."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벌레는 새벽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어." 여러분은 언제쯤 일어나십니까?


이 세상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해가 지면 일찍 잠드는 '아폴로 문화권'과, 늦게 일어나 밤늦게 잠드는 '디오니소스 문화권'으로 대별된다고 합니다. '아폴로'는 로마 신화에서 태양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주신(酒神) 신입니다. 그런데 유럽은 아폴로 문화권에 의해 그동안 문명이 주도되어 왔습니다. 같은 유럽에서도 디오니소스 문화권에 속한 남쪽에서는 아침이 늦고 밤을 즐기는데, 스페인에선 정오쯤 돼야 우리나라 8시 정도의 러시가 이뤄지며, 극장은 밤 10시에나 시작되고, 이탈리아의 "저녁밥을 9시에 먹는 바보"란 속담은 너무 일찍 먹는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독일과 영국은 아폴로문화권에 속하여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에, 아침밥을 잘 먹고, 영국에서 본 대륙인 프랑스 등에서는 저녁은 잘 먹고 아침은 간단히 먹는데, 그래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컨티넨탈'(대륙형)이라 합니다. 인사도, '굿 모닝', '구텐 모르겐'처럼 인사에 '아침'이란 말이 들어간 나라들이 아침이 빠르고, '봉 주르'처럼 아침 대신 '날'을 뜻하는 '주르'란 말을 쓰는 프랑스는 아침이 늦습니다.


우리 한국도 일찍 일어나기로 유명합니다. 수십 년 전 LA 한국 영사관 앞에서 미국인들이 '코리언 고 홈!'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지역 야채와 청과상인들이 한국인의 그들 상권잠식에 대한 생계투쟁이었습니다. 기존 야채상인들은 전날 농장에 가서 야채를 떼어다 아침 7시쯤 가게문을 열었는데, 한국 야채 상인들은 여섯 시에 가게문을 열어 손님들이 한국 가게로 쏠리더랍니다. 그러자 미국 상인들도 여섯 시에 문을 열자, 한국 야채상인들은 밤중에 농장에 달려가서 신선한 야채를 가져다 다섯 시에 가게문을 열더랍니다. 이처럼 부지런한 한국인과의 경쟁을 당해 낼 수 없자 '코리언 고 홈!'의 실력행사로 나왔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의 요인 중에 하나는 새벽기도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길선주 목사에 의해 시작된 새벽기도 운동을 기점으로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였습니다. 영적 운동은 육신의 욕망을 지배하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깨워 주의 전을 찾는 모습은 그 자체가 승리자의 모임입니다. 어떤 이는 주님이 어느 시간에 오실까 생각해보면,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리라'하시며 '깨어 있으라'하신 것을 볼 때, 아마 새벽에 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이 땅에서 하루 일과를 사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기도의 열망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35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은 기도하러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어떤 이는 바쁘고 피곤하여 새벽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이 많고 한가하여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 앞에 21절부터 보면, 그 전날 예수님은 낮에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때 마침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십니다(25절). 오후가 되어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는 모습을 보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30, 31절). 저물어 해질 무렵, 예수님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늦게까지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또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는 일은 모두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밤늦게까지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시달리셨으니, 얼마나 힘들고 지치셨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다음날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잠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오해는 무언가 아쉬운 일이 있을 때나 하나님께 나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습니다. 뱅크웨어 리전트 신학교 제임스 휴스턴 학장은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기도란 뭐냐?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이다." 'friendship with God.'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과 교제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아쉬운 일이 있든 없든,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브레넌 매닝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것은 '우리가 기도의 사람인지,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사는지, 주님이 모든 것 되시는지'이다. 이것이 평화의 기초이다."


돌에 맞으면 아이들은 우는데, 우는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 경우와 부모가 없는 경우 그 소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가 우는 소리는 부모에게 도와달라며 부모를 찾는 울음이라면, 부모가 없는 아이는 아프고 서러워서 우는 고통스러운 울음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찾아와 도와줄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고통을 겪을 때에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셔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주님 앞에 달려나와 기도하고 계십니까?


홍장빈, 박현숙 씨의 [기도는 죽지 않는다]는 간증입니다. - 예전에 남편이 해외선교현장에 있는 동안 강의 일정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몸이 많이 아팠다. 배도 고팠다. 그래도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엄마가 해주던 갈치조림이 몹시 생각났다. '예수님, 갈치조림이 먹고 싶어요.'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찾았다. 아무것도 못 먹고 버스를 갈아타며 교회에 도착했다. 2시간 동안 강의하고 오후 4시에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갈 일이 암담했는데 목사님과 사모님이 불렀다. "시간이 이르지만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재빠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저희를 따라오세요." 그들이 안내한 곳은 바로 '갈치조림 전문점'이었다. 이 일로 나는 또다시 말할 수 없는 주님의 그 자상하신 사랑을 경험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기도하기 좋은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절 후반절).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우리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교회에 나오면 경건한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세상에 나가면 세상일에 휩쓸리게 됩니다. 시장에 가면 어떤 물건이 좋은가 물건 살 생각을 하고, 극장에 가면 영화나 연극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환락가에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육체적인 방종과 쾌락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도 다른 일로 방해받지 않을 조용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장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7). 길거리에서 기도하다보면 자연히 지켜보는 사람을 신경 쓰게 되어 하나님께 집중하기 어렵기에 골방에서 은밀하게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일에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에 집중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눅22:39)라고 하여, 일부러 조용한 감람산을 찾아 기도하시는 습관을 가지신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세상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곳이 가정의 골방일 수 있고, 또는 깊은 산 속의 기도원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의 본질을 '기도하는 집'으로 정의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막11:17). 그렇습니다. 성전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성전이 멀리 있어 나가기 어려울 때는 숲 속이나 골방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그런 곳도 자칫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에, 하나님을 만나기 가장 적절한 장소요, 세상 관심사로부터 생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집중적인 기도를 위해선 아무 방해가 없는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래야 일시적인 충동으로 몇 번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QT'(Quiet Time)라고 불렀습니다. 19세기 영국 대학생들 사이에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모닝 워치를 기억하라!"(Remember the Morning Watch!)라는 구호가 생겼습니다. '모닝 워치'란 항해사들이 새벽 4시에서 8시 사이에 당직을 서는 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이른 아침에 기도하자'는 구호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의 전통이 있습니다. 주님은 한적한 장소를 찾아 기도를 실천하셨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빈민가에서 조선인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살면서 나무장수, 고구마장수를 하며 폐병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던 1967년부터 일직교회 문간방에 살면서 종지기가 됐습니다. 그는 "예배당 문간방에 살며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던 귀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그는 한겨울에도 진실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며 장갑 낀 손으로는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 교인 한 분이 장갑을 주자 그는 손사래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벽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 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종을 칠 수가 있어요?" 그는 이런 고백도 남겼습니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중략) 차가운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루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있었다."(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질서 있게 사셨습니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6-37절).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이 찾아와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아뢰자,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하시며 제자들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주님은 "아니야, 오늘은 다른 계획이 있어. 다른 마을에 가서 전도해야해"하시며,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먼저 할 일과 다음에 할 일,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선별하시고서 일하셨습니다.


고든 맥도널드는 현대인들은 '충동에 이끌리는 삶'과, '소명에 의해 이끌리는 삶'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계획하고, 그 소명을 따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별로 의미 없는 일에 바쁘게 끌려 다니고 충동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뚜렷한 가치관이 없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가 없이 기분과 분위기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바쁘지만, 아무 의미도 내용도 없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충동적으로 화를 내고, 이웃들을 심판하고, 상처 내고, 자기도 상처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성숙하고 규모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아니오"라고 말할 때, 그 거절이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대해선 단호하게 "아니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이 좋다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도 거절을 못하고 끌려 다니거나, 상대방의 정당한 거절에 대해서 바르게 수용을 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섭섭함으로 화를 내며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데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라 바른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사람을 만나 따지고 다투기보다, 먼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릇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가장 냉철하고 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어떤 사람이 매일 아침 우유를 집으로 배달시켜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장 위에 놓고 가는 우유를 누군가 집어 가자, 주인은 몹시 화가 나서 골탕먹여 되 갚아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튿날 새벽기도 드리러 나가다 새벽에 배달된 우윳병을 구정물을 넣은 우윳병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교회에 가면서 잠시 후에 있을 모습을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문득, 만삭으로 힘들게 산동네를 오르던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동안 아기를 낳았는데 잘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아 우유를 가져간 것이 아닐까? 그는 벌떡 일어나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구정물을 넣은 우윳병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는 이튿날부터 우유를 두 개 배달시켜 한 개만 들여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되, 그 일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저들을 위하여 수고하시되, 그 일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열심히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전도하는 일이 예수님의 주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의 우선 순위에 따라 분명하게 선택해 나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할까요? 첫째,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바울과 느헤미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순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둘째, 매일 시간을 정하여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행3:1). 다니엘은 하루 세 번, 다윗은 일곱 번 시간을 정해 기도했습니다. 셋째, 특별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 먼저 밤새 철야 기도하신 후에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4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맞으러온다는 그 위기의 소식을 듣고 얍복강 변에서 밤새 철야 기도하였습니다.


중보기도의 사람 [리즈 하월즈](Rees Howells)는 한때 영국 웨일즈 성경대학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영국은 독일의 침공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 독일 공군기가 영국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영국은 거의 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1940년 9월 15일 독일공군기들이 영국에 총공세를 퍼붓는데, 그 공격이 10분만 더 계속되면 영국은 손을 들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독일공군기들이 갑자기 전면적인 퇴각을 합니다. 당시 영국공군 총사령관인 다우딩 경은 "이날 독일군의 갑작스런 퇴각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반전이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전날 웨일즈대학 채플에서 리즈 하월즈는 대학 내 모든 신앙공동체 식구들을 모아놓고 기도회를 인도하며 "여러분, 독일군의 공습으로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우리가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은 이 공습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왜 믿지 못하십니까? 이런 때에도 우리가 믿음과 기도로 주님께 나아와 참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나치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체제를 하나님은 결코 오래 용납지 않으실 것이며, 주님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부터 전 공동체가 채플에 나와 기도했고, 바로 그 날 역사를 바꾼 독일군의 퇴각이 일어난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도 그의 '전쟁 회고록'(War memories)에서 이 날 영국군의 승리는 아주 특별하고 결정적인 하늘이 도운 승리의 사건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별다른 어려움이 없고 생활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입시철에는 새벽기도회 자리가 가득한데, 요즘은 입시철도 아니라 선지, 새벽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평안함이고, 마귀가 주는 것은 편안함이다"는 말처럼, 그 편안함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시험일 수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은 말씀으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전화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필라델피아 근처 시골에 살던 폴 빌리아드라는 소년은 엄마가 가끔 교환원에게 무엇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척척 가르쳐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루는 집에 아무도 없는데 망치로 손가락을 때려 피가 나자 어쩔 줄 모르다 갑자기 전화교환수가 생각나 전화를 들고 "안내원!"하고 불렀습니다. "네, 안내원입니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저 손가락을 다쳤어요."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니?" "네"하고 대답하자 "많이 다쳤니"하고 물어서 "조금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혹시 너의 집에 얼음통이 있니?" 그렇다고 하자, 교환수는 "얼음 조각을 손가락에 대고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폴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환수에게 물었고 그때마다 교환수는 친절하게 대답해줬습니다. 심지어 숙제하다 모르는 것도 물었고, 한번은 집에서 기르는 카나리아가 죽어 슬픈 말을 하자, 그녀는 "폴, 하나님은 카나리아가 노래부를 다른 세상을 준비하셨다고 나는 믿는단다. 난 네가 이 세상뿐 아니라 다음 세상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어. 거기서 네가 좋아한 카나리아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라고 말해줬습니다. 이 소년이 성장하자 자기가 전화교환수에게 이런 일까지 물은 것이 업무에 지장을 주었다고 깨닫고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전화를 끊다가, 대학을 진학하여 고향을 떠날 무렵 사과할 마음으로 전화했습니다. 변함 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폴은 "아직도 옛날의 당신이시군요. 제가 어렸을 때 당신은 제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어요. 아무도 없는 집에 자주 혼자 있던 저는 무서웠는데 내 얘기를 들어줄 당신이 제 곁에 있는 것이 정말 기쁨이었지요. 하지만 커서 생각하니 철없이 당신을 괴롭힌 것을 사과합니다"고 말하자, 교환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폴, 내 이름은 샐리란다. 내가 네게 중요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넌 나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단다. 너와 대화하던 것이 그 시절 내게는 얼마나 기쁨이었는지 넌 모를 거야. 내겐 아이가 없었거든. 언젠가부터 난 너를 내 동생처럼, 아들처럼 사랑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네게서 오랫동안 전화가 없어서 얼마나 걱정한지 아니? 넌 나의 기쁨이었어. 넌 나의 기쁨이었지." 우리는 때로 시시콜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쁘신 하나님께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 까요? "아들아, 딸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란다. 내가 너와 대화하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란다. 너는 내게 무엇보다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이거든. 네가 나와 대화하려고 내게 나아오는 것처럼 나에게 큰 기쁨은 없단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다면 누가 기도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에 기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로써 새로운 능력과 지혜를 얻고, 생각과 뜻을 새롭게 가다듬어, 하루 하루를 복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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