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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다!" 2018년 7월 29일 주일예배

작성일 작성자 V-maker

"너는 내 것이다!"          2018년 7월 29일 주일예배
                         이사야 43 : 1 - 7  ;  고린도전서 6 : 19 - 20


독일통일을 주도하여 아데나워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독일수상으로 꼽힌 헬무트 콜도 동네북이 되어 그를 조롱하는 많은 조크가 있다고 합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상 각하, 달에도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요. 밤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소." 콜 수상이 정원을 청소하다 수류탄 세 개를 주워 경찰서로 가져가는데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 "걱정하지마. 경찰에게 두 개만 주웠다고 말하면 되니까." 콜 수상이 대부로 되어 있는 한 어린이에게 선물하려고 서점에서 "안데르센 동화집을 사려는데 저자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조롱도 있습니다. 우리는 안데르센 동화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를지라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1488년 바스코다가마의 희망봉 발견이나, 1492년 칼럼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2002년 말 창간 85주년 기념호에서 1917년부터 2000년까지 근대문명의 의식주패턴을 혁신적으로 바꾼 발명품 및 아이디어 85개를 선정하여 소개했습니다. 1917년 스니커즈(고무창 운동화), 1924 뮤추얼 펀드, 냉동식품, 1926 로켓엔진, 1928 페니실린, 1929 합성고무, 1930 제트엔진, 1933 주파수 변조, 1934 나일론, 1938 복사기, 1939 헬리콥터, 1940 레이더, 1945 원자력, 1947 트랜지스터, 1948 레코드LP판, 1950 신용카드, 1951피임약, 1952 할리데이인, 1955 패스트푸드, 1956컨테이너, 1961 종이기저귀, 1968 달착륙, 1969 인터넷, 1970 콤팩트디스크, 1971 자동응답기, 1991 WWW, 1995, 인터넷비즈니스, 1998 비아그라 등입니다. 이런 발명과 발견으로 인류역사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이런 발명품과 발견들은 인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도 했지만 해를 끼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나는 누구인가?'하고 고민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골똘히 생각하다가 곁에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며 "당신이 도대체 누구기에 길도 보지 않고 다니는 거요?"하고 말하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좋겠소."


'파커 팔머'는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인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냐?'는 문제는, '내가 누구냐?'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며, '나는 누구냐?'는 문제는 '나는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말했습니다. 성 안토니오는 3년 동안이나 산에 올라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이시며, 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시며, 나는 누구이고,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크신 뜻은 무엇입니까?'를 묻고, 여기서부터 우리 믿음을 확실히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근거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사43:1a). 인간은 자존자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은 먼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피조물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구속(救贖)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사43:1b). 여기 '구속하다'는 히브리어 '가알'은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살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마귀의 종이 되었고, 사망의 포로가 되었는데, 주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 지불된 값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죄로 인해 마귀의 자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자식이 된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녀 삼으셨습니다.


셋째,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43:1c). 여기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하여 불러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람을 불러내어 복의 근원자로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선택하심으로, 당신의 구원과 천국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떤 소년이 오랫동안 정성껏 나무를 깎아 조그만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소년은 보트를 완성하자 매우 기분이 좋아 강에 띄우고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와우! 내가 만든 보트가 물 위에 뜨다니!" 그런데 물살이 빠른 곳에 이르자, 보트는 소년이 좇아가지 못할 빠른 속도로 눈에서 멀어졌습니다. 소년은 강을 따라가며 보트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는데, 며칠 후 시내에 나갔다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자기 보트를 발견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트를 보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가게로 들어가 저 보트가 내가 만든 것이니 돌려달라고 했는데 가게 주인은 "이게 네 거라는 증거가 없잖니, 이 보트를 갖고 싶으면 돈을 내고 사거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소년은 돈을 모으기 시작하여, 일정한 금액이 되자 돈을 들고 장난감 가게를 다시 찾아가 자기가 만들었지만 잃어버린 그 보트를 돈을 내고 샀습니다. 소년은 보트를 손에 들고 가게를 나오며 흐뭇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두 배나 내 거야! 내가 너를 만들었고, 또 값을 내고 샀으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다시 사셨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넌 두 배나 내 거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첫째,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사43:4a). 값이란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지불한 금액으로, 만원을 주고 샀으면 만 원짜리고, 십만 원을 주고 샀으면 십만 원짜리입니다. 우리를 위해 지불된 값은 바로 주님의 생명입니다. 어떤 물건을 '백만 원 짜리' 혹은 '천만 원 짜리'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생명이 지불하고 구원받았기에, '예수님 짜리'라 할 만큼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벤 패터슨의 [내가 매일 기쁘게]에 실린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내 아들 조엘이 열두 살이었을 때, 우리는 그랜드캐니언으로 하이킹을 갔다. 이 협곡은 내가 지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며, 볼 때마다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 곳이다. 하이킹 마지막 날 밤에 우리는 훈제소시지, 치즈, 크래커를 먹으면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협곡의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협곡에 걸린 석양이 보여주는 웅장한 색채의 변화는 마치 눈으로 보는 푸가(악곡형식) 같았다. 그때 조엘이 협곡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여기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는 곳은 없을 거예요!" 아! 내 가슴에 솟아오르던 감정을 딱 알맞게 표현한 순간이었다. 나는 말했다. "있단다, 조엘. 이곳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이 있지." 조엘은 반박할 태세를 갖추며 눈을 반짝였다. "어딘 데요? 아빠!" 나는 아들을 가리키며 "바로 여기란다. 꼬마야!"라고 말했다. "이 협곡 전부라도 너와 비교할 수 없단다. 어떤 협곡, 강, 산, 바다라도 너나 다른 인간보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단다." 친구여, 당신은 그 장엄한 그랜드캐니언보다 더욱 장엄하다. 당신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놀랍고 은혜로운 존재이다. 이렇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당신을 만드신 하나님께 겸허해지는 방법이다. 거울을 보고 하나님께 크게 말해보라. "저를 대단하고 멋지게 만들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멋진 작품입니다. 주님." - 우리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43:4b).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이 쓸모 있느니, 쓸모 없느니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주께서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사43:4)고 말씀하시는데, 왜 스스로 쓸모 없는 존재라고 비하시킵니까? 온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주님이 나를 필요로 하신다면, 나는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을 함부로 탕진해선 안됩니다. 귀하게 보존하고, 귀하게 지키고, 귀하게 가꾸고, 귀하게 써야하겠습니다. 또 온 세상에 홀로인 냥 외로워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한 가정에서 자녀가 없어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데려다 입양하여 딸을 삼았습니다. 양부모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이 아이는 잘 자랐는데, 이 아이가 커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 자기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기 몸으로 낳지도 않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선이다'며 더 이상 동정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양부모가 찾아가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딸아이가 뛰쳐나가 살고 있는 곳에 가보니 온 방안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고, 방탕하고 무질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해 놓고 이런 편지 한 통을 써놓고는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내가 필요 없을지 몰라도, 내게는 네가 가장 소중하고, 네가 꼭 필요하단다. 꼭 내게로 돌아오렴. 언제까지라도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딸은 이 편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에 닫혀진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시며 어떤 형편에서도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 인생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위험의 골짜기에서도 끝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미국에서 고든과 신디라는 부부의 어린 딸 타냐가 부엌에서 놀다가 펄펄 끓는 냄비가 얼굴로 쏟아져 중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이는 병원응급실에 실려갔는데, 큰 화상을 피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얘기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급해진 엄마 신디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직접 들어가서 봐주세요. 예수님이 만져주세요. 예수님이 직접요." 기도하는데, 목사님과 교인 두 분이 도착해서 "소식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들어가 기도하지요"하더랍니다. 목사의 신분을 밝히고 잠시 허락을 받고 세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가 기도하고 돌아갔는데, 그 이튿날 타냐 부부가 들어가 보니 딸에게 화상의 흔적은 기적적으로 말끔히 사라졌더랍니다. 너무나 감사한 부부는 목사님께 찾아가 감사하며 함께 오셔서 기도해주신 두 분이 누구인지 묻자, 목사님은 의아해하며 "저와 집사님 한 분, 그렇게 둘이 갔었는데요"하더랍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분명 세 사람을 보았기에 한참을 둘인가 셋인가를 논쟁하다가, 목사님이 갑자기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 그렇군요. 또 한 분은 예수님이 직접 오셨거나 그가 보내신 천사이실 것입니다." 그러자 신디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참, 저도 깜빡 잊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오셔달라고 기도했었거든요." -주님은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알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합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43:4). 주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데,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거나 비하시켜선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지불하신 그 사랑을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이제 자신을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는 자신을 보며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며 길렀는데, 그 앞에서 한숨쉬는 것은 불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토록 부어졌기에 우리는 자신을 귀히 여겨야합니다.


최인호씨의 소설 [사랑의 기쁨]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하고 3년 만에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자,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게 되니 아빠를 너무 좋아하던 딸의 양육권을 아빠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고 3이었을 때 아빠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자, 딸은 엄마에게 아빠를 용서하라고 했지만 결국 엄마는 남편을 외면합니다. 딸은 죽은 아빠를 생각하며 엄마에 대한 분노로 거식증과 자폐증, 우울증으로 인생이 망가집니다. 엄마는 그 딸을 정성껏 보살피는데, 따뜻하게 대할 수록 딸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반항합니다. 병이 회복되자, 아빠를 닮은 유부남과 사귀며 엄마를 고의적으로 괴롭히고, 엄마가 반대하는 남자만 만나 결혼하고 이혼하며, 엄마의 삶을 철저히 파괴시킵니다. 엄마는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딸이 엄마가 살던 집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오래된 수동 타자기에 편지가 하나 걸려있기에 보니 너무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딸은 엄마를 사랑한 남자가 교환교수로 미국에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엄마랑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을 했는데도 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나요?"하고 묻자, 그 교수는 대답 대신 엄마의 편지를 내어놓습니다. 엄마는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번역하다 30대 중반에 40대 초반의 노총각 영문학자를 만나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이 교수가 교환교수로 가기 전 엄마에게 청혼하자, 엄마는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어 그를 위해 여기에 살아야합니다. 당신께 갈 수 없습니다." 딸은 엄마가 그 편지가 자신이 거식증과 자폐증, 우울증으로 삶이 망가질 때 썼음을 압니다. 이 남자를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자기를 더 사랑한 것을 깨닫습니다. "난 엄마에게 보복하고 병들어 죽게 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해 자기 행복을 포기하고 나를 끝까지 돌봤구나"라고 통곡하며,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이 사로잡히는데, 한 줄기 빛이 비쳐옵니다. "그렇지, 나는 그런 소중한 사랑을 받은 존재야. 나를 이토록 사랑한 사람이 이 땅에 있었어. 나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어." 그녀는 어머니의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합니다.


둘째,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알았으면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고전6:13). 우리가 어디에 쓰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땐 아주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잠 못 자고, 그 때문에 몸에 병이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과 방탕에, 어떤 사람은 허영과 인간답지 못한 일에 몸을 탕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거룩한 존재가 육신의 정욕만 위해 살지 말고, 가장 귀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뵈러 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자와 대면하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스랍들도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거룩함의 무한한 신비와 영광이 우리 앞에 막힘 없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고 말씀하신 이래, 거룩함은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모든 신자들과 함께 멸망해 가는 세상의 빛과 복이 될 것입니다."


셋째,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해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고 했습니다. 우리 몸이 목적 없이 허랑 방탕하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비싼 값에 구속된 몸이니 허무한 일에 몸을 탕진할 것이 아니라 귀한 몸값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4:2)고 말했습니다. 소중하게 얻은 생명이기에, 귀히 간직하고, 귀히 사용하며, 값을 지불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값을 치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모나코 국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한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1950년대의 할리우드 여신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국왕의 결혼은 정말 동화 같은 스토리였습니다. 그런데 켈리는 답답한 왕실생활에 지쳐갔습니다. 남편과 갈등도 커갔는데, 때마침 영화계로 복귀할 기회가 생겨 이혼을 고민합니다. 그때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던 터커 신부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켈리는 동화의 환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에게 주어진 모나코 왕비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호시탐탐 모나코를 합병하려는 프랑스의 협박에 맞서 연단에서, 모나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연설합니다. 그녀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움직였고, 프랑스 드골 대통령까지 움직였습니다. 사랑이 환상 같은 동화 속에서는 실체가 없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자기 본분과 책임을 다할 때, 아름답게 꽃피우고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어떠합니까?


남태평양 키니와타 섬에 조니링고라는 부자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관습은 신붓감을 암소 두서너 마리면 반반한 처녀를 살 수 있고, 너덧 마리면 썩 마음에 드는 색시를 얻을 수 있는데, 그는 무려 암소를 여덟 마리나 주고 색시를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녀의 모습은 바짝 마른 데다가 걸을 때는 등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이고 자기 그림자에도 놀랄 정도로 소심한 여자였는데, 이런 여자를 다른 사람보다 무려 네 배나 더 주고 사온 이 청년을 모두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신부를 보니, 꼿꼿한 어깨에 알맞게 치켜든 턱, 반짝이는 눈매, 품위 있는 걸음걸이 등, 그 지역에서 으뜸가는 미녀가 돼있더랍니다. 그 비결은 물으니, 조니링고가 대답합니다. "남편이 신부 값을 가장 싸게 치르고 아내를 맞았다면 그 여자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다른 여자들은 자기 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르고 데려왔다는 말을 들으면, 내 아내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는 내 아내가 가장 가치 있는 여자이길 원해서 제일 비싼 값을 치르고 내 아내를 데려온 것이오." 속이 깊은 신랑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면서까지, 죄인이었던 우리를 당신의 사랑 받는 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현대인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내 자신에 대해 실망스럽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길지라도, 주님은 나를 아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또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속함을 받아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 삼으셨으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니, 우리는 귀하게 살아야하겠습니다.


1847년 이전까지 외과수술은 환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는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 J. Y. 심프슨이 전신마취제인 클로로포름을 개발해 외과수술의 신기원을 이뤘습니다. 이런 공로로 스코틀랜드 의사로는 처음으로 경(卿)의 칭호와, 옥스퍼드대학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에든버러 명예시민이 됐습니다. 그의 생애 말년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생애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그때 심프슨은 뜻밖에도 "내 생에 최고 최대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쌍한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를 값지게 한 것은 연구업적이 아니라, 그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내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내 인생의 주인 되신 그분의 영광을 위해 가장 값지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주님의 일에 힘씀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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