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유대인의 범죄! (롬 2: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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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유대인의 범죄! (롬 2: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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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유대인의 범죄! (롬 2:17-29)

 

롬3: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바울은 1장에서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했고, 다시 2장에서는 유대인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의 범죄를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많은 지식이나 권세, 명예, 재물 등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좋은 환경과 조건을 잘 선용하여 그 가치를 빛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 피조물의 목적입니다만 도리어 그 좋은 것들 때문에 사람과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유대인이라 하는 네가"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굉장히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이방인들은 다 죄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 의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을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의롭고, 선하고, 잘났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우리 주변에 자기 주제파악을 못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빈정댈 때 "그래! 너 잘났다! 그래 너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빈정대듯이 오늘 바울은 유대인들의 허위허식을 낱낱이 고발하고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것은 어떤 것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제목소개!▶

 

▶17절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바울은 유대인들의 자만심을, 유대인들의 우월감,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을 꼬집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유대민족만큼 자만심이 강한 민족도 없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우월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택하시고 그 민족을 통해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 메시야를 통해서 이 땅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축복을 유대인들은 그만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경계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나는 모태 신앙이다. 나는 어느 유명한 교파에,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 나는 유명한 교회에 유명한 목사님이 있는 곳에 적을 두고 있다"는 함정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자신이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리고 어느 교단에 속했다고 한다면 그리고 다른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보다 내 자신이 더 열심히 살고, 더 잘 믿고, 다 본을 보여야 될 이유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만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못된 우월감, 잘못된 선민의식, 잘못된 특권의식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들을 병들게 합니다.

 

▶먼저 유대 민족에 대한 명칭을 생각해 봅시다.
①이스라엘입니다. 창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지방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 그에게 큰 나라와 민족을 이루어 줄 것을 약속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두 형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고, 두 형제 중 하나님은 첫째인 에서는 버리고, 둘째 야곱을 선택하여 선택받은 신앙의 계통을 이어나갈 장자로 삼습니다.
야곱이 장자 권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빼앗은 것이 화근이 되어 하란 땅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20년 간의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더불어 밤새 씨름하여 이기고 축복 받게 될 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창32:28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야곱의 바꿔진 이름이 국호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란 뜻도 됩니다 만은 '하나님이 함께 하면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할/
②히브리인입니다. 출1:15-19절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칭하여 히브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먼데서 온 자, 강 건너에서 온 자'라는 뜻인데, 다른 민족과 구별해 놓은 의미입니다.
이 명칭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 상의 구별로 부르는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③유대인입니다. 왕상12장에서 솔로몬이 죽으면서 이스라엘 나라가 주전 932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집니다. 북은 여로보함이 10지파를 차지하고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정하였고,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남은 두 지파(유다, 베냐민)의 국호를 유다로 칭하였고, 유다는 다윗의 왕권을 계승한 정통지파로써 수도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전 722년에 북 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된 후, 남 왕조 유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북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타민족과 혼혈되어 이스라엘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했으나 남 유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명칭은 그들의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부를 때는 '칭찬 또는 찬송'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혈통을 가진 민족이라는 우월감(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다른 민족, 즉 이방민족을 '지옥 불에 땔감' 정도로 여겼습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어떤 백성입니까?
⑴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요, ⑵소명된 백성이요, ⑶계시 받은 백성이요, ⑷타 민족과 구별의 표시로 할례 받은 백성입니다. 그리고 ⑸구원의 백성(제사장의 백성)이요, ⑹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백성이며, ⑺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소유한 백성이요, ⑻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백성이며, ⑼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있는 백성이요, ⑽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선포할 사명이 있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도들이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가르치신 중심사상은, 혈통 적 유대인, 육체적 유대인, 표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 유대인, 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성경으로 거듭난 성령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 당시에도 예수께서 당시 대제사장들이나 많은 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 율법 학자들을 향해 참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무화과나무 밑에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학수고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던 나다나엘을 보시고 참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1: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유대인은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하나는 '이방인들에게는 없는 율법이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은 네가, 다른 민족을 지옥의 땔감정도로 보는 네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크리스천이다 하는 자가 왜 그러느냐?'는 반문입니다.
"네가 율법에 의지하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부여받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특권은 자랑할 뿐 아니라 그 특권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월감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함으로 나타났으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그 특권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에겐 언약을 지켜야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 속에 큰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고 가르치면서도 그 사랑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함으로 율법주의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23-24절에서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앞에 있는 12절에서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 자기들이 의지하고 있는 율법이 오히려 자기들을 정죄할 것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섣불리 믿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 가서든지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랑할 때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도 없으면서 겉으로 자랑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 남자들을 보면 머리에 베레모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감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는 분이십니다.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심판주시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5:42절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본문의 배경은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는 잡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나타내려는 악한 마음을 가진 자를 책망하는 말입니다.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그 영혼을 사랑하므로 전도합니다. /아멘!/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동의했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그 말씀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고 동의했다'는 말입니다. 누가?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롬1:21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자들이라고 했습니다.

 

▶19절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말씀을 잘 배워서 지식을 먼저 가졌습니다. 다음으로 진리의 규모를 가졌다는 말은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체계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규모'는 문자 그대로 '규격과 모양'라는 말입니다. 뼈대, 골격,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의 지식도 아니고, 사람이 연구하고 탐구해낸 진리도 아닌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통째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마음속에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경멸했습니다.
▶어떻게 멸시하고 경멸했는가? 19절 하반 절과 20절입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여기에 나오는 '소경이라든지 어두움에 있는 자,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이방인을 가리켜서 하는 말로 유대인들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경멸하고 멸시했습니다. 반면에 자기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인도하는 자요, 빛이요, 훈도요, 선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믿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발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이 부족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항상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잘나고, 더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목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권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집사로 나오지 마십시오. 직분을 감투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이런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죄인의 심정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할/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는 자들을 복음으로 깨우고 가르쳐서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죄 속에 빠져 방황하는 무리들을 건져내는 일입니다. /아멘입니까?/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을 지칭해서 말씀합니다만 오늘날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영적 유대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는 동일한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는 영적으로 연약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또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뜻도 있습니다. 훈도란 잘못을 범할 때 채찍질도 가하는 엄한 선생을 가리킵니다. 훈계라는 뜻도 됩니다.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은 특권을 부여받은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훈계하는 자는 가르치는 선생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절부터는 유대인들의 죄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21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이방인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부터 먼저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외식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자라면 그 가르침대로 자기 스스로 먼저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말을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하는데 유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선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너희들이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과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우쭐대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17-20절까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전에 먼저 네 자신에게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 자녀요, 참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좀 더 깊은 교훈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먼저 남을 위해 믿음의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도적질하지 말라, 도적질 말라, 나쁘다 그것은 죄다' 가르치는 네가 도적질한다는 말입니다.
말로는 제8계명을 가르쳤지만 그들 자신은 8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유대인들은 부정직한 방법을 통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구약에 보면, 장사꾼들은 저울추를 속였습니다. 되박을 마음대로 변경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철면피와 같이 돈을 긁어모으는데 열심이었던 '샤일록' 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구나" 하나님의 것까지도 도적질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하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떼먹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까지 도적질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땀흘려 번 돈이 탐이 나서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실 때 그 물질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자입니다. /억지 같습니까?/

▶22절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말로는 7계명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7계명을 어겼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그 여인을 취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혼증서만 써주었습니다. 이 같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를 제외하고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가 바로 간음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독일에 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 옆집 아저씨가 이따금씩 자기 집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그 옆집 아저씨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옆집 아저씨가 놀러올 때는 어머니가 이런 구실 저런 구실을 붙여서 자기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아들이 하루는 밖에 나가서 노는 척하고 가만히 돌아와서 문틈으로 동정을 살피는데 어머니와 옆집 유대인이 함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때부터 유대인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되었고, 이 아이가 자라서 급기야는 쓰레기와 같은 유대인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6백만이나 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누구인가? '히틀러'의 이야기입니다. 유대인 한 사람이 간음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죄 없는 동족 6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여기 간음이란 남녀 관계의 성적인 관계도 포함합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의 포인트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정조를 잃어버리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골3장에서는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간음하는 자와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영적인 간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유대인들은 우상을 지극히도 가증히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당시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에 당시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존엄한 신의 아들 디베리우스 가이사"라고 써 있어 유대인들은 이 화폐가 우상 숭배적인 화폐라고 생각하면서 그 화폐를 만지기조차 꺼렸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우상을 가증스럽게 여겼지만 뒤에서는 돈이 된다고 생각이 되면 이방 신전에 몰래 들어가서 신사 물건을 훔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우상을 훔쳐서 이방인들에게 내다 팔았습니다.
여기 '산사'란 우상을 섬기는 집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우상을 섬겼던 재물을 도적질하면서도 우상을 가증이 여긴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니 한마디로 어리석은 소경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탐내며 하나님보다 권력을 더 의지하고 사람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다스림보다는 인간의 다스림에 지배를 받는 자가 더 많습니다.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는 자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게 됩니다. 그 자랑은 헛된 자랑이요, 가증한 자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한 만큼 하나님의 자녀다운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정말로 저 집사님 모습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 같구나!" 그러나 우리가 바로 살지 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저 모양이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기록된 바'는 사52: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범죄한 너희로 인하여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영광은커녕 모독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너희가 감히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도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된 삶 때문에 행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가 반성해봐야 합니다.
신앙 잡지에서 이런 만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구경갔는데 보니까 사람의 모습은 없고 귀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또 입술만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신앙인 들이 듣기는 많이 듣고,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는데 들은 그대로 살지 못하고, 말한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을 꼬집어서 만화로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요즘 자가용에 물고기 모양의 장식을 붙이고 다니는 차들이 많습니다. 이 물고기 모양은 헬라어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다섯 단어의 첫 글자를 모으면 물고기라는 단어가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를 나타내기 위해서 차에 물고기 모양을 붙이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보다도 교통법규를 잘 지켜야 하고, 양보하면서 운전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는지 우리가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25-29절까지는 진짜 유대인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속으로 거듭난 자가 유대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5절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 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는 창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백성 된 표로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난지 8일 만에 남자아이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인데 요즘 말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너는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표를 받았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하면 아닙니다. 그 표를 받은 아이가 자라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올바를 때, 그 할례가 유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는 자를 가장 더러운 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 "할례 받지 못한 더러운 놈"이라고 우습게 보았습니다.
출12:48절을 보면 특히 유월절을 지킬 때, 누구든지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할례 받은 것을 큰 자랑으로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할례란 지금의 세례로 생각해도 됩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그 할례는 받으나 마나한 무 할례가 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세례 교인이라고 자랑해 봐야 아무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세례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다는 표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를 살리셨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믿음의 행위와 열매가 없다면 세례 받는다는 것이 헛된 것입니다.
바울은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무 할례가 되느니라!" 할례 받았으나 바로 살지 못하면 할례 받지 않은 자와 같다는 뜻입니다.

 

▶26절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육신적으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것이 바로 할례 받은 사람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아니했느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의 제도를 지켰느냐, 지키지 아니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기 위하여 율법을 허락해주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절대로 의롭게 못합니다. 3: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절대로 의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이와 같은 탄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갈3:24절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율법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입니다.

 

▶27절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쉽게 표현하면 할례를 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았으나 신앙의 덕을 세우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합니다.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있는가? 내 힘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있는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이루신 그분과 연합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천명하셨습니다.

 

▶28절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표면적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3:6-7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육신으로 할례를 받았으나 할례의 참 뜻에서 떠난 자는 진정한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콜라 병에 코카콜라 상표가 붙어있으나 그 병 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름만 성도요,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습니다.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 속에 모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할/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이 말은 참으로 속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진짜 유대인이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할례의 진실한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진정으로 참 신앙인은 마음이 깨끗합니다. 마음이 선한 잡니다. 남을 용서하고, 남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남을 나보다 좋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신령에 있다고"합니다. 원어 적인 의미로는 '성령 안에 있는 마음이 할례 받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되느니라" /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여기 의문은 '문서, 책'이란 의미로 율법을 가리킵니다. 율법은 의식이요 제도입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 영의 사람이 되고, 그러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이면적 유대인이 되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것은 오직 인간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기에 참 유대인이 된 것에 자랑과 칭찬은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바울의 결론적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입니다.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1: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
우리 모두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삶의 변화를 주고 하늘에 시민권을 얻게 해 주신 우리 주님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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