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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린 뿌리를 찾아서
   박만수 ( )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 자고 애써 일하며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꿈을 이루는가 하면 좌절과 고통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을 깨닫게 되고, 어느덧 죽음이 불청객처럼 찾아옵니다. 

 

그날그날 입에 풀칠하느라 힘겹게 사는 사람이나 멋지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나, 죽는 것은 매일반입니다. 상처투성이의 인생이나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는 인생이나, 죽는 것은 똑같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죽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인생은 짧고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장수하며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누린다 해도, 길어야 백 년 남짓이면 인생이 끝나고 맙니다. 짧은 인생과 죽음의 종말이라는 인류의 공통분모는 하나의 뿌리에 맞닿아 있습니다. 아무리 가지가 많은 나무라도 뿌리는 하나이듯이, 복잡한 인생의 뿌리도 하나이며, 삶의 모든 문제가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서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비해 삶의 길이가 너무 짧은 것은, 짧은 인생 자체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짧은 인생은 길고 긴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이며, 영원한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과정입니다. 인생의 시험기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닌 기회의 끝이며, 시험의 끝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일평생을 어떻게 살았든지 결국은 죽음으로 마감하고, 총결산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생의 결산에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시험에서 합격권에 들었다는 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는 동안 올바른 선택을 하였고,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면, 죽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신비는 죽음이라는 실마리를 통해 풀리게 됩니다.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첫 단추부터 바르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며, 현재의 삶은 죽음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주는 메시지를 놓친 채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공허함이며 무의미한 삶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줄 안다는 것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미래를 동경하고 사모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시간이 흐르다가, 죽음과 함께 시간도 끝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기회기간입니다. 시간의 기회는 죽음으로 마감되며,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삶이 기다립니다. 시간의 끝이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짧은 인생은 영원한 인생을 준비하는 짧은 기회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의 시간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기간이자 시험기간인 것입니다. 

 

시간은 말없이 앞만 향해 달려갑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듯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도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길어야 백년 남짓한 짧은 인생이지만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더 없이 소중한 기회인 것입니다. 시간의 기회는 각 사람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삶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현 상태는 신(神)도 아니고 짐승도 아닙니다. 어쩌면 신과 짐승의 중간자(中間者)인지도 모릅니다. 신처럼 살든 짐승처럼 살든 어떻게 살든지 간에 선택과 결과는 각 사람의 몫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의 본능에 따라서 짧은 인생을 가장 가치 있고 보람차게 산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짧은 인생을 육체의 본능에 따라 짐승처럼 살다가 의미 없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처럼 살다가 죽는다면, 아무리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삶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짐승 같은 삶이 사람다운 삶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짐승, 고상한 짐승, 훌륭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짐승은 어디까지나 짐승일 뿐입니다. 

 

신처럼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세상을 온통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물어뜯고, 짓밟고, 죽입니다. 머리 좋고 힘센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온갖 좋은 것을 차지하지만, 경쟁에 밀린 힘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먹히고 빼앗기고 무시당하며 소외당합니다.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서 어찌 하든지 살아남으려고 아귀다툼하는 모습은, 개인뿐 아니라 민족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서로 으르렁대고 다투며,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힘센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여 집어삼키는 일은 약육강식의 인간세상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 없어집니다. 사람의 육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늙어가다가 결국은 죽습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현세적 가치관이 인류의 삶을 짐승과 벌레 수준으로 타락시켜 버렸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 돈, 돈입니다. 육체의 기회와 시간을 온통 돈벌고, 돈 쓰느라 정신 없는 모습입니다. 인류는 길을 잃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하였으며, 사람들은 어리석게 살다가 의미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 사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이라면 다 체념하고서 적응하여 사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거나,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고 판단되면, 어찌 하든지 그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대로 짐승처럼 살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은 아닙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잃어버린 뿌리를 찾는 것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사람답게 살고자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짐승과 다르다는 증거입니다. 짐승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일반이지만, 사람은 짐승이 추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추구합니다. 짐승은 삶의 참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도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일반이지만, 사람은 죽음의 의미와 메시지를 깊이 생각할 줄 알고, 나아가 짧은 인생의 시간들이 영원을 위한 기회 기간이며 시험 기간임을 깨닫습니다. 짐승은 그런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저 먹고 사는 데 급급하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짐승의 삶입니다. 

 

사람의 뿌리가 짐승의 뿌리와 같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짐승은 짐승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사람의 조상이 짐승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저 짐승으로 보일 정도로 사람의 시각이 짐승의 시각으로 타락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부모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겉모습이 짐승과 닮았다 해서 사람의 조상이 짐승일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사람의 뿌리를 짐승이라 믿게 된 것은, 인류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만 집착하다가 정상적인 시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집착하는 모습은 종교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내세와 영적인 것들을 명분으로 삼지만, 실상은 현세의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 것이 종교인들의 공통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세의 물질적인 복을 빼앗길까봐 두려워서 종교를 갖기도 합니다. 그들 역시 당장 눈앞의 현실과 물질의 필요 때문에 종교를 선택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물질 중심의 세계관에서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겉은 온갖 영적인 장식으로 포장하였지만, 속에는 세속 물질주의와 다를 바 없는 가치관이 들어앉아 있으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교세확장과 헌금 늘리기를 통한 물질적 기득권의 확보입니다. 종교 기득권도 알고 보면 거룩하게 포장된 일종의 물질 기득권입니다. 

 

인류가 물질주의(materialism)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원래의 제자리를 떠나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다운 삶의 뿌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에 집착한 나머지 영적인 감각과 시력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유물론과 진화론 사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되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눈앞의 현실세계가 온통 물질의 법칙과 경제질서에 따라 정신 없이 핑핑 돌아갑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경제 동물들의 전쟁터와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갑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당장의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짐승 같은 삶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모순투성이며, 비정상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온갖 문제 속에 뒤엉켜서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현실 세계의 질서에 따라가며 거기에 동화되어 살다 보면, 자칫 사람다운 삶의 길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답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http://antioch.co.kr

출처 : 마지막 때의 진리(眞理)
글쓴이 : 아이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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