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수정교회 매각이 의미하는 것

작성일 작성자 어깨동무

수정교회 매각이 의미하는 것 2011-06-06 20:45:07  
  이름 : 이종전 목사     조회: 761    
    
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최초의 메가 처치(Mega Church)이며 복음주의를 대변해온 수정교회가 4600만 달러에 매각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지난 해 10월부터 수정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소식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매각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정교회를 이끌어온 로버트 슐러는 교회를 개척하는 단계부터 메가 처치로 세워가는 과정이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교회를 만듦으로써 자신도 놀랄 만큼 엄청난 교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수정교회를 바라보면서 전 세계의 목회자들이 그를 닮아가려고 했다. 또한 슐러와 수정교회는 전 세계 신학생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런 그가 이끌어온 수정교회가 부도로 인해서 매각처분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과 경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정교회를 메가 처치로 만드는 과정에는 자본주의식 경영학이 그 원리가 되었다. 한 마디로 투자를 통한 성장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자금관리는 철저하게 생산성과 투자가치를 전제하는 방식이다.

매각과정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수정교회가 예배당을 지은 것이 언제인데 매각대금 4600만 달러 가운데 3600만 달러가 건축비를 상환에 쓰이고, 나머지 1000만 달러도 건축과 관련한 납품비 미지급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의 부동산 취득에 있어서 론제도가 한국과 다르다 할지라도 매각대금 전액이 사실상 건축비 상환금으로 지출되어 한다는 것은 그동안 헌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재투자의 개념으로 쓰였기 때문에 부채상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재벌그룹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제 원리와 질서에 합당한 것인지 묻게 된다.

둘째, 인본주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슐러의 사상은 한 마디로 요즘 새로운 것처럼 세인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긍정의 힘” 그것이었다.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긍정적 적극적 가치관은 그가 수정교회를 세우면서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사상에 있어서 근본이며 전부다.

그의 초기작으로 “불가능은 없다.”와 “당신도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잘 알려진 그의 사상을 한 마디로 알 수 있는 책이다. 1970년 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책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대로 메가 처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근본이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긍정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긍정적 가치관은 목회 방법론에 있어서도 자유로웠고 파격적이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이벤트를 예배에 도입해 회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 예배에서 회중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배를 기획함으로 감동의 요소를 만들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끊임없는 퍼포먼스로서의 예배와 다양한 컨퍼런스를 기획하여 회중들의 관심을 붙드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그러한 노력은 TV나 라디오 방송, 그리고 각종 소셜 컴뮤니케이션 매체들을 이용해서 홍보되었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도 했다. 하지만 기획되는 퍼포먼스와 축제, 컨퍼런스, 프로그램들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교회로 모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정교회의 오늘의 모습이다.

셋째, 세습의 한계를 보여준다. 세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가 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습을 정당화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적, 단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 처치의 세습은 재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많은 문제를 동반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양적 사고에 있어서도 세습에는 양면이 있으나 슐러의 경우는 실패의 전형을 보여주는 경우가 되었다. 슐러가 은퇴하는 즈음에 후계자로 세워진 사람들이 그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급기야 2006년에 부자세습을 하는 쪽으로 선회한 수정교회는 급속히 어려움을 드러냈다.

아들로서도 현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이번엔 딸을 동원해서 후계구도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서 이번엔 남매간의 갈등으로 발전해서 어려움을 자초했다. 노구를 이끌고 다시 목회현장에 서야 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목회자의 마지막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슐러가 말년에 보여준 모습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더하게 했다.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전성기의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끝내는 법정에 서야 하는 그의 모습은 그를 존경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슐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할 정도가 됨으로써 더 이상 그를 바라보며 모여들었던 수정교회는 현상을 유지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함으로 끝까지 작은 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확인할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닐까.

수정교회의 매각 소식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랄 것이다. 필자도 일찍이 이를 염려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더 아프다. 그리고 슐러와 수정교회를 닮겠다고 열심히 미국까지 좇아가서 배워온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아프다. 바라기는 한국교회가 이 사실을 깨달아 같은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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