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은대리성 & 차탄천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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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은대리성 & 차탄천 주상절리

아미고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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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의 관문

 

연천의 관문인 "한탄대교" 앞에 그리고 적성 방향에서 한탄강을 건너는 "사랑교"를 건너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입구에도 이런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이나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내용들이 모두 선사시대를 말하고 있으며, 원시사회는 지금처럼 과학 문명의 이기(利器)로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시대였으니, 전곡을 비롯한 한탄강 유역이 사람들이 수렵 채취를 하며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었던가 보다.

 

이렇게 "은대리성"을 찾아간다.

 

 

 

 

 

 

은대리성

 

은대리성은 "호로고루" 및 "당포성"과 함께 한탄강 유역에 남겨진 고구려의 옛 성으로,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성으로 옛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의 하나인 동벽의 전경이다.

 

명에서는 남벽과 북벽을 절벽이라 하고 서벽은 언급이 없지만, 내가 답사하며 관찰한 바로는 한탄강의 남벽과 차탄천의 서벽은 용암이 흘렀던 바위 절벽이 확실하지만, 언덕이기는 하지만 개활지로 연결되는 북벽이 절벽이었는지까지는 의문이면서도 동벽 같은 토성은 없었을까 궁금했었다.

 

유일한 평지 개활지인 동쪽에 동벽(土城)을 쌓았는데, 그 형태와 규모 그리고 방식이 호로고루 및 당포성과 동일하며, 조선 시대에 축성을 했던 김포 덕포진의 토성과 견주어 생각해보면 그랬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은대리성인데, 현장에서는 성(城)이라는 표현 대신 벽(壁)이라 표현한 것은 성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벼웠을까.....

 

 

 

 

 

한탄강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다녔음에도 동두천 쪽에서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신천 위로만 다녔지 동두천에서 염색 관련 화공약품 등이 흘러든 “한탄강관광지(한탄강 유원지)” 아래 지역은 피하다 보니 “은대리 성”을 오늘에야 가보게 되었다.

 

석축의 모습으로 미루어 원래의 모습이려니 생각되었다.

 

 

 

 

 

 

이런 날을 추억하자고 담은 인증샷인데...

10년쯤 지나면, 그때 우리 참 젊었었지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이 측은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 자랑스랍기도 하다.

 

 

 

 

 

 

삼각형 형태의 이 공간이 병영이었고 군막이 있었을 텐데, 이 병영에서 허구한 날들을 보냈을 군인들은 쉼 없이 흐르는 한탄강과 차탄천 그리고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부모형제자매 또는 순이를 생각하며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행복할 시간들을 그렸을까.....

 

군생활의 대부분을 비무장지대 속의 GP에서 보냈던 나는 그랬었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밤에 사삭대는 갈대의 부대끼는 소리를 바라보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 그리고 그 달빛을 온몸으로 담아내는 달맞이꽃들과 밤새워 얘기하곤 했었는데.....

 

내 시절에는 GP에 투입되면 6개월이 기본이었는데, 기껏 몇 평의 공간에서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하며 1개 소대(30명 내외)가 북한에 대한 24시간의 경계근무를 하면서 보내니,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대원들의 감정관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욱하는 내 성격이 어느 날 터져버려서 사건이 터졌는데 다행히도 몸만 서로 부딪히고 총기까지는 번지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는데 생각할 때마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서로가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

 

GP에서 계급장을 떼는 것은 아마도 저격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을 테고, 나는 GP장(중위) 다음 서열의 내무반장인 단기 하사였고, 길고 긴 밤을 식구들과 함께 지루하지 않게 보내고자 성능이 좋은 무전기에서 FM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던가를 잡아 무전으로 공유하여 초병들 모두가 함께 흥얼거리며 보내곤 했었다.

 

시간을 초월한 그런 공간의 한 구덩이에서는 창포가 우리를 반긴다.

 

 

 

 

 

 

 

한탄강 유역 고구려 3성의 당포성(위) & 호로고루(아래)

 

 

 

 

 

전망대 가는 길 & 서.북벽

 

곧장 가면 차탄천과 만나는 서쪽 절벽과 한탄강의 남쪽 절벽이 만나는 삼각 꼭지점의 전망대이고, 오른 쪽으로 가면 북쪽의 개활지로 내려가는 언덕길인데, 동쪽의 평면 개활지와 북쪽의 이 급경사의 개활지가 전략적인 진퇴의 통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서쪽의 이 길을 내려가보지 않지만, 내려가 보면 은대리성의 모습과 한탄강 그리고 차탄천의 모습은 물론 차탄천의 끝자락에 있는 삼형제바위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은대리성의 서벽은 이렇게 차탄천을 끼고 있는 절벽이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지진이 있었고 용암이 흐르면서 아름다운 절경을 연출하여 우리는 그 절경을 즐겁게 감상하지만, 용암이 흐르던 시절을 살아갔던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전망대 & 전망대의 전경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아름다운 풍경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한탄강이라는 이름과 차탄천이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가 있지만, 너무 허접한 거 같아서 생략한다.

 

 

 

 

 

 

삼국시대

 

삼국시대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국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편의상 상징적인 몇 개의 지도만 올리는데, 그 시절에는 모르기는 해도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며 "종족" 또는 "부족" 정도의 개념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사실 부족과 종족 그리고 민족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민족"이라는 용어와 개념의 탄생은 중세의 마감과 더불어 태동되는 근대 국가의 전형적인 형태인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의 경기흐름에도 호경기와 불경기의 싸이클이 있듯이 역사와 패권에도 그런 게 있어 왔는데, 금시초문의 "코로나19"가 어떤 마술을 부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면, 역사란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시간)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문득 중국에서 회자되는 중원(中原)이 떠오르고, 중국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중원인 베이징을 포함한 허베이성, 산시성, 산둥성, 허난성 일대를 제패해야된다는 얘기를 칭다오(청도)에서부터 베이징으로 기차 여행을 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대륙의 평원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 너른 평원을 두고 굳이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한반도를 탐할 이유가 있었겠나.....

 

 

 

 

서울 주변에 비하면 쑥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싱싱하고 깨끗하고, 민들레 또한 그래서 옛 고성이 쑥대밭 되는 것도 조금은 덜어주고 민들레의 번식에는 지장 없이 이파리만 띁어왔다.

 

이렇게 서울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내 가슴에 묻혀있던 동심에서 형성되었던 마음이 피어오른다.

 

세상에 그런 말이 있더라.

남자는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많고, 여자는 지나간 과거를 말하기 때문에 비교적 진실하다고...

 

나도 그랬던가.......

그렇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암수는 모두 서로 사랑하며 대를 이어왔고 번식했지만, 그 중심 또는 결정권은 언제나 암컷이 가지고 있었고, 젊은 수컷들은 수컷이 사랑을 만들고 즐기는 주체인줄 착각하지만, 사실은 출산의 고통에 대한 보상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만들고 즐기는 주체는 암컷이고, 사랑에 대한 나머지 얘기는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잖나.....

 

 

 

★★★★★★★★★★★★★★★★

 

 

 

차탄천 주상절리

 

한탄강과 차탄천의 주상절리는 이곳저곳 많이 다녀보았지만 느낌이 별로였는데, "차탄천 주상절리"는 혹시나 해서 답사했는데 역시나 느낌은 별로다.

 

주상절리는 역시 무등산 서석대와 제주 중문의 주상절리대가 육각형의 모습과 기둥 형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상절리대 같다.

 

내 경험칙으로는 아직 철이 좀 이른데, 피라미 낚시를 하겠다고 애를 쓰는 친구가 있고...

캠핑을 하는 젊은 친구들도 몇 있다.

 

요즈음엔 캠핑-카와 캠핑 장비를 자랑하려는 친구들도 있지만,

하여튼 산과 계곡과 강에서 캠핑을 해 본 사람은 그 상큼한 맛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추억의 향수 때문에 종종 캠핑을 떠난다.

 

 

한탄강과 차탄천...

30여년을 그래왔듯이 올 여름에도 더위를 피해 내가  움직여  찾아가야할 곳이다.

 

얼마 전까지는 적성까지만 닦여있었던 준고속도로가 이제는 연천 너머까지 시원스럽게 뚫렸다.

시간과 비용을 초월해서 이 길은 언제나 가슴이 탁 트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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