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

 

출생 ; 1606년 07월 15일 

출생지 ; 네덜란드

경력 ; 둘째 부인의 내조로 대표작품 다작(1645), 명암 효과 사용하여 대담한 극적 구성 시도(1641),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호평(1633) 

특기사항 ; 1669년 10월 사망


네덜란드 화가·판화가. 제분업자(製粉業者)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라틴어학교를 거쳐 1620년 레이덴대학에 들어갔으나 화가가 될 것을 결심, 곧 퇴학하고 J. 스와넨부르흐와 암스테르담에 있는 P. 라스트만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라스트만은 이탈리아로부터 카라바조 및 엘스하이머의 영향을 네덜란드에 도입한 일련의 이야기 화가들, 이른바 <렘브란트 전파(前派;Pre-Rembrandtists)>의 대표자로, 구약성서에서 작품의 소재를 취하여 전세대의 기교파와는 대조적으로 우의성(寓意性)을 배제하고 이야기의 명쾌한 서술을 지향한 그의 회화는 렘브란트에게 영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1625년 무렵부터 레이덴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친구 J. 리벤스와 경쟁하며 강한 명암대비와 정교한 자연주의적 세부묘사를 한 이야기 그림을 그렸다.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그 곳에 정착했다. 암스테르담 외과의사회의 위촉으로 그린 《털프 박사의 해부학강의(1632)》로 크게 호평을 받아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수많은 초상화를 계속 그리는 한편 레이덴시대의 친구인 문인정치가 C. 호이겐스의 추천으로 네덜란드 총독 프레드릭 헨드릭을 위해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連作)을 제작했다. 1634년 프리슬란트의 명문 출신 사스키아 반 오이렌부르흐와 결혼하고 화가조합에 가입, 이어서 1639년에는 시내에 저택을 구입했다. G. 플링크·F. 볼 등 많은 제자를 양성한 이 시기의 작품에는 《아브라함의 희생》 《눈을 찌푸린 샘슨》 등 극적 순간의 격렬한 움직임과 얼마쯤 과장된 몸짓과 표정에 의한 감정의 표출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들은 렘브란트가 이탈리아 유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P.P. 루벤스를 필두로 하는 당시의 국제적인 바로크 조류(潮流)에 아주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실적인 네덜란드 풍경화 속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일련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풍경화 제작과 한평생의 취미였던 미술품·골동품 및 타국의 무구(武具)·의상 등 대규모 수집도 이 무렵에 시작되었다. 이 10년 동안이 그의 명성과 생활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그의 회화가 성숙해짐에 따라 당시 일반이 좋아하던 평판(平版)의 초상화 등에 만족하지 못해 외면적으로 정확한 묘사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과, 깊은 인간성을 중요시해서 종교적 또는 신화적인 제재(題材)나 자화상이 많아졌다. 그의 대표적인 명작 《야경(1642)》을 고비로 갑자기 세계적인 명성에서 멀어져갔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당시의 유행인 기념촬영적인 단체 초상화에서 벗어나 그의 독특한 명암의 효과에 의한 대담한 극적 구성을 사용했으나 일반인은 그 예술성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해 아내와도 사별하고 실망과 곤궁에 빠졌으나, 그의 위대한 예술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그는 파산선고를 받고, 둘째 부인 헨드리케와 자식 티투스마저 죽은 뒤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유대인 지역의 초라한 집에서 죽었으나, 죽은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위대한 예술성이 입증되었다. 그의 예술은 시대를 초월한 것이었으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최대의 화가였다. 종교·신화·초상·풍경·풍속·정물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작품은 현존되고 있는 것만도 약 600점의 회화, 300여 점의 에칭과 수천 점의 소묘가 있다. 높은 종교적 정감과, 인간심리의 움직임이 깊이 있게 표현된 그의 작품에는 따뜻한 애정이 스며 있다. 작품으로 《사스키아 반 오이렌부르흐의 초상》 《헨드리케 스토펠스의 초상》 《엠마오의 그리스도》 《야곱의 축복》 《유대인 신부》 《성가족(聖家族)》 《다에나》 《병자(病者)를 고치는 그리스도》 《3그루의 나무》 등 다수가 있다.

 


1. 천사 앞에서 뒷걸음질치는 당나귀

THE ASS BALAAM BALKING BEFORE THE ANGEL
1626년 板 油彩 65×47Cm
파리 코냑 제이 미술관 소장

라이덴 시대의 렘브란트의 가장 초기에 속하는 작품의 하나이다. 1624년,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고전주의적 역사화가(歷史畵家) 라스트만에게 6개월 동안 사사 (師事)했으며 그곳에서의 수업에서 기초적인 회화기법, 즉 정통적인 화면 구성, 입체적 인체 표현, 정밀한 세부묘사, 무리없는 채색법(彩色法) 등을 익혔다. 이 작품에서는 그와 같은 영향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나, 이미 수업기(修業期)를 지난 렘브란트의 독특한 면모가 약동하고 있다. 즉, 그는 주어진 주제를 하나의 회화작품(繪畵作品)으로 구성할 때, 이야기의 설화적(說話的)인 도식(圖式)을 피하고, 화가 자신이 그 장면의 목격자인 것처럼 리얼하고 직접적인 표현 방법을 추구한 것이다. 천사에게 길을 가로 막혀 주저앉은 당나귀를 채찍질하는 발람에게서 어쩌면 화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2. 자화상

SELF FORTRAIT
1628년경 板 油彩 23.4×17.2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63년이라는 길지도 않은 생애에 약 60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겨 놓고 있다. 이 방대한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서양 회화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굳이 비길 만한 예를 찾자면, 짧고도 비극적인 생애를 산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호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자기 응시의 화가,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치는, 내향적이자 인간의 정신적 갈등에 남달리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렘브란트에게 있어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편력(遍歷)을 더듬는 이정표(里程標)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연대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자화상과 비교하여 1628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렘브란트의 가장 젊은 날의 초상화이다.


3. 자화상

SELF FORTRAIT
1629년경 板 油彩 37.9×28.9Cm
헤이그 마우리리치하이스 왕립 미술관 소장


4. 토론하는 두 철학자

TWO SCHOLARS DISPUTING
1628년 板 油彩 71×58.5Cm
멜버른 국립 갤러리 빅토리아 소장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그 주제가 어떠한 것이었든, 이 그림은 라이덴 시대에 있어서의 명암의 대비가 강조된 카라바지오풍(風)이 농후한 작품의 하나이다. 네덜란드에 있어서의 카라바지오의 영향은 매우 강력한 것이 었으며, 그것이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은 대조적인 두 인물을 매우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으로 그린다는 모티브, 두 번째로는 인물의 표현이 규범적인 미(美)의 표현이라는 고전주의적 전통에서 완전히 이탈되어 여기에서의 노후의 모습 그 자체가 강조되어 있다는 것, 세 번째로는 명암의 대비로서 대립되는 화면의 인물과 기타의 사물들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렘브란트는 주제의 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다가선다.


5. 예루살렘의 파괴를 한탄하는 예언자 예레미야

THE PROPHET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TION OF JERUSAEM
1630년 板 油彩 58×46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1630년을 전후해서 노인의 단독상(單獨尙)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며, 모델은 그의 부친으로 생각되고 있다. 렘브란트의 라이덴 시대는 유채 기술의 훈련기이며, 앞의 작품과 함께 이 작품 또한 그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암굴에서 부각되는 인물, 금속 용기의 반짝임, 묵직한 포목(布木)의 질감(質感)등, 이 모두가 20년대의 생경(生硬)한 광택 (光澤)과는 달리, 은근히 가라앉은 색채 속에 오히려 광채를 빛내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물론 성서에서 취한 것이나 이 그림과 일치되는 기술(記述)은 없다. 렘브란트가 그 주제를 자유롭게 해석한 것으로 보이며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의 불운(不運)을 알고 있던 예레미야는 아직도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행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6. 여자 예언자 한나(렘브란트의 모친)

THE PROPHETESS HANNAH(REMBRANDT'S MOTHER)
1631년 板 油彩 60×48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모친은 라이덴의 빵 제조업자의 딸로서, 1589년에 같은 시(市)의 밀가루업자 하르멘, 즉 렘브란트의 부친과 결혼했다. 그녀의 집안은 라이덴에서도 이름난 가톨릭 신자 가족이었으며, 렘브란트도 모친을 통해 종교적 관심을 깊이 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또 이 작품에 그려진 여인이 모친이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으나, 그것이 여자 예언자 한나 인가에 대해서는 확증이 없다. 어쨌든 이 작품은 라이덴 시대에 렘브란트가 도달한 고도의 유채(油菜) 기술의 숙달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골똘히 책을 읽고 있는 노부(老婦)의 얼굴이며, 책장을 누르고 있는 주름살진 손등의 가식(假飾)없는 사실적 묘사를 통해 노모의 진정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책장에 비쳐진 광선(光線)효과는 아직도 카라바지오풍의 것이다.


7. 사스키아

SASKIA
1633-4년경 板 油彩 99.5×78.8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이 그려질 무렵,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따라서 주문도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한 주문 초상화 제작 틈틈이 그는 아내 사스키아의 초상화를 적어도 10 여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상화 모두가 화사한 의상과 모자,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초상화에서 렘브란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창출한 가장 이상적인 여자의 프로필상(像)인 폴라이우올로의 <婦人像>에 필적할 만한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어두운 바탕 위에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옆얼굴, 정교한 착색(着色)에 의한 의상과 장신구의 리얼한 질감(質感)의 표현 등, 여기에서는 렘브란트가 이제까지 습득한 기법적인 완숙함이 구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사스키아를 통해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시키려고한 것이다.


8. 베일을 걸친 사스키아

SASKIWITH A VEIL
1633년 板 油彩 66.5×49.7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라이덴에서 다시 암스테르담에 나타난 렘브란트는 그 곳 명문의 딸 사스키아와 1633년에 약혼, 이듬해 결혼한다. 이 사스키아상(像)은 약혼 시절의 작품이다. 양가집의 딸 답게 사스키아는 머리로부터 어깨까지 베일을 걸치고 있고, 또 머리, 귀, 목에는 진주가 걸려 있다. 그 밖에도 금빛 레이스가 달린 화사한 의상과 호화로운 장신구,그러나 이와 같은 치장은 오히려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사스키아의 대담한 눈매와 믿음에 찬 표정이 오히려 이 모든 장신구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바야흐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떨쳐 가는 렘브란트가 다시 뜻하지 않게 명문과 미를 겸비한 여성을 얻게 된 기쁨이, 사스키아의 모습을 통해 넘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9. 십자가로부터의 降下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33년경 板 89.4×65.2Cm
뭔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은 그리스도 수난전(受難傳) 연작 다섯 작품 중의 두 번째의 것이다. 이 연작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降下>, <승천>, <매장>, <부활>의 5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연작의 완성에 7년이 필요했다. 이 7년에 걸친 그리스도 수난(受難) 연작을 통해서 렘브란트가 추구한 것, 그것은 바로 생동하는 인간의 내면적 감동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감동의 표현을 그는 일단은 극적인 명암의 대비로 포착했고, 인물의 자태와 배치에 있어서의 동세(動勢), 그리고 테마 자체가 지니는 비극성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단출한 화면 구도 속에 압축시키고 있다. 이그림은 아마도 동시대의 바로크 회화(繪畵)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을 의식해서 그려진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10. 그리스도의 승천

THE ASCENSION OF CHRIST
1636년 캔버스 油彩 92.7×68.3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른바 <昇天圖>는 <성모 승천>이 관례적인 것이다. 렘브란트는 이 <승천도>도 그발상(發想)의 원천은 멀리는 티지아노의 <성모 승천>, 가깝게는 루벤스의 같은 주제의 작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이들 그림에서의 성모 마리아를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모 승천>이라는 테마는 바로크 화가들이 즐겨 다루어 온 테마이다. 구름을 끼고 신비로운 햇살이 번지는 하늘, 그것을 떠받치는 천사들, 그것들에 휩싸여 찬란한 빛에 싸여 승천하는 마리아, 이는 장려함과 사실적인 면에서도 유동성을 잃지 않는 바로크 회화의 안성 마춤인 화제(畵題)인 것이다. 1630년대의 렘브란트는 그의 화력(畵歷)에 있어서도 가장 바로크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때이며 그 바로크적 경향이 성모 승천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11. 그리스도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1639년경 布 板 油彩 91.9×67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에 대해서 렘브란트 자신이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고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표현에 대한 해석이 또한 엇갈린다. 즉, 문자 그대로의 화면에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뜻한다는 해석과, 반대로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의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 그림의 장면은 떠들썩한 혼란의 상태로 그려져 있다. 무장한 경비인 들은 놀란 나머지 갈피를 잃고 있고, 반면에 부활하는 그리스도는 화면 한 모퉁이에서 서서히 신성한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화면 중앙 전체를 밝히는 천사의 부름에 오히려 슬픔에 잠긴 듯한 그리스도와 부활에 놀라 허둥지둥 하는, 이 고요와 떠들썩함의 대비, 이 드라마는 바로 화가 자신의 종교적 심성(心性)의 표현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12. 가니메데스(미소년)의 납치

THE ABDUCTION OF GANYMEDE
1635년 캔버스 油彩 171×130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니메데스는 미소년(美少年) 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제우스는 그를 독수리를 시켜 납치케 하여 올림퍼스 산에 데려오게 한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미소년으로 그려져 온 가니메데스를 렘브란트는 왜 그처럼 공포에 떠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이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신화(神 話)에서 테마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한낱 신화적인 세계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현실의 한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독수리에 채여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애의 스케치를 남겨놓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이 그림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신화의 단순한 서술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의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특히 163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13. 폭풍을 머금은 풍경

STORMY LANDSCAPE
1638년경 板 油彩 52×72Cm
브리운쉬바이크 안톤 울리히侯(후)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풍경화는 1630년대 후반에서부터 50년대 전반에 걸친 약 20년 사이에 그려지고 있다. 소묘가 약 250점, 에칭 24점 그리고 유화 17점에 달하는 풍경화는 그다지 많은 작품 수는 아니나 렘브란트의 예술적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 그 이유는 자연의 묘사가 그로 하여금 회화 표현상 및 심리 표현상에 있어 새로운 경험을 얻게 하고, 또한 넓이 있는 공간과 아울러 외광의 문제에까지도 눈뜨게 했기 때문이다. 이 <폭풍을 머금은 광경>은 일종의 상상풍경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한 순간의 반짝이는 양광(陽光)으로 언덕 위의 마을이 환하게 물들여져 있다. 그러나 그 양광은 명멸하며 먹구름과 양광 하늘과 대지의 화면에 넘치는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이 그림에 신비감마저 부여하고 있다.


14. 선술집의 방탕아

THE PRODIGAL SON IN THE TAVERN
1636년경 캔버스 油彩 161×131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해석이 내려지고 있다. 그 해석을 대별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 렘브란트의 신혼 생활의 행복한 모습을 그린 것. 둘째, 성서(聖書)에 나오는 방탕아의 역할을 스스로 연기하고 있는 렘브란트와 사스키아 부부. 셋째, 자만심에 대한 경종의 우의(愚意)가 담긴 것. 그러나 그와 같은 해석은 어찌 됐든 이 작품은 렘브란트 자신과 사스키아를 모델로 한 다분히 우의적인 2인 초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그림에서는 의기 양양한 렘브란트가 사스키아를 무릎 위에 앉히고 이쪽을 향해 술잔을 높이 들고 있다. 그리고 왼쪽 탁자 위에는 공작이 놓여 있다. 네덜란드의 도덕적 우의(寓意)에 의하면 술잔은 호의호식을, 공작은 오만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렘브란트가 차고 있는 칼도 그 때의 신분으로서는 허용되지 않은 것이었다.


15. 삼손의 혼례식

SAMSON POSING THE RIDDLE TO THE WEDDING GUESTS
1638년 캔버스 油彩 126×175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혼례식 축하연에 초대된 신부 데릴라의 친지들에게 삼손이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 대해 당대의 한 문필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주제에 담겨진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대인들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의자에 앉지 않고 대신 자그마한 침대를 사용했다. 한번도 깎아 본 적이 없는 장발의 삼손은 그 손짓 등으로 미루어 열심히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 그림이 삼손의 혼례식 축하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삼손이 아니라 신부이다. 그림의 거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부는 강한 광선을 온 몸에 받으며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그녀는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전체 화면에서 고립되어 있는 듯하며 동시에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16. 다윗王의 편지를 든 밧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
1654년경 캔버스 油彩 142×14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구약성서에서 주제를 따온 작품으로서 다윗의 아내가 되라는 사자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으나, 동시에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두려워하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종단에는 다윗을 배반해야 하는 운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누드화이기는 하나 렘브란트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밧세 바의 마음의 갈등을 그려내는데 있었다. 작품의 구도 자체는 고대의 부조(浮彫) 작품을 묘사한 동 판화에서 빌어 온 것이기는 하나 그 구도 이상으로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이 밧세바의 얼굴 표정이었다. 요컨대 렘브란트는 고대의 구도 원리에 따르면서 그것을 그의 고유한 비극적 드라마로 묘출(描出)한 것이다.

 


17. 목욕하는 수잔나

SUSANNA SURPPISED BY THE ELDERS
1637년경 板 油彩 47.5×39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목욕하는 수잔나>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이래 즐겨 다루어진 테마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나체의 수잔나와 그것을 숨어서 바라보는 두 장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는 두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 희미하게 한 장로의 얼굴이 보일뿐이다. 정원에서 막 목욕하려는 수잔나는 인기척에 놀라, 놀라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풍만하고 싱싱한 육체가 햇볕을 온 몸에 받고 하나의 광선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작품이 그려지기 일년 전 렘브란트는 역시 여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제작한 '다나메'를 그리기도 했거니와, 이 작품 역시 나부(裸婦)에 대한 관심에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18. 성가족(聖家族)

THE HOLY FAMILY(WITH ANGELS)
1645년 캔버스 油彩 117×91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聖家族>의 주제를 소묘, 에칭, 유화에서 줄곧 되풀이해 그렸다. 1630년 초기에는 다분히 루벤스풍의 성화(聖畵)를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나, 40년대 후반기의 이 작품은 종교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밀한 일상적 가족의 정경을 그린 것처럼 느끼게 한다. 1642 년, 사스키아의 사후(死後) 헨드리키에가 렘브란트가(家)에 들어와 자리잡는 40년대 말까지, 렘브란트는 가정적으로 매우 불우했다. 그 까닭에 그는 한층 더 가정적인 행복이라는 테마에 이끌렸던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모친은 자애로운 눈길을 갓난아기에게 돌리고, 뒤켠에서는 요셉이 목수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 위로부터 천사가 날아 내려오고 있음으로 해서 이 일가가 성가족(聖家 族)임을 나타내고 있다. 어린 그리스도의 오른팔, 성모의 책과 얼굴, 내려오는 천사들에게 비쳐진 광선 효과의 연결은 괄목할 만하다.

출처 : 세계의 명화 | 글쓴이 : 피터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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