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에시아의 이야기

쇼비니즘의 어원, 프랑스 병사 니콜라 쇼뱅의 일화

작성일 작성자 아리에시아

'쇼비니즘 Chauvinism'이라는 단어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일컫는 말입니다. 애국심과는 어감이 많이 다르지요.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앞뒤 재지 않고, 때로는 옳고 그름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않고, 맹목적이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자세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비니즘은 1780년경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는 니콜라 쇼뱅 Nicolas Chauvin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쇼뱅은 생일도, 태어낸 연도도 불확실합니다. 1776년에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나, 쇼뱅의 이름이 유명해진 뒤에도 한참 뒤에나 출현한 생년이라,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니콜라 쇼뱅은 18살에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맹렬히 싸웠고, 무려 17번이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지도자이던 나폴레옹은 쇼뱅을 치하해 명예를 뜻하는 검과 특별 연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쇼뱅이 거듭된 부상 끝에 불구의 몸이 되었을 때에도 그의 충심은 여전했으며, 심지어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서 사실상 폐위된 뒤에도 나폴레옹을 지지했습니다. 쇼뱅은 나폴레옹을 뜻하는 제비꽃을 옷깃에 꽂고 다녔는데, 죽을 때까지 그랬다고 합니다. 한 일화에 따르면,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였던 워털루 전투에서 "근위대는 항복하지 않는다, 다만 죽을 뿐이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군을 일러 그랑 다르메(Grande Armée, 영어로는 grand Army, 직역하면 '위대한 군대', 번역어로는 '대육군')라고 부르는데, 니콜라 쇼뱅은 '위대한 군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용맹하게 싸운 것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군의 군복을 그린 당시의 삽화입니다. 쇼뱅이 전투에 참여했을 때에는, 이런 옷을 입고 싸웠을 것입니다. 전투용 군복이 선명한 총천연색 색채에 장식적인 느낌이 강한 디자인인 이유는, http://blog.daum.net/ariesia/132 에서 설명한 적 있습니다. 무릎을 꿇거나 선 자세로만 총을 쏠 수 있던 시기, 화약무기의 연기가 너무나도 짙어서 피아식별에 용이한 외양이 선호되던 시기, 엄폐라는 개념이 전투에서 거의 없던 시기여서 선명한 색의 군복을 선호하게 되었지요.



쇼뱅의 이름은 19세기 중반 즈음 부르봉 왕조가 복고되어 루이 16세의 동생이 프랑스 국왕으로 재위하던 시절, 간간이 그리고 꾸준히 회자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자료 중에서만 따져봐도, 1821년에 쇼뱅의 일화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이미 등장했으며, 이후로도 쇼뱅이 등장하는 예술작품이 여럿 발표되었습니다. 부르봉 왕조 시절 나폴레옹 추종자의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때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쇼뱅의 이미지에서는 맹목적인 모습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나폴레옹에게 광적인 충성을 바친다는 것이, 나폴레옹을 근본 없는 찬탈자쯤으로 여긴 곳에서 어떻게 비쳤을지는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통용된 쇼뱅의 일화 중에서는 나폴레옹이 권력자이던 시절에도 나폴레옹 숭배가 너무 지나쳐 동료 군인들이 은근히 거리를 두고 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가 하면, 나폴레옹이 쓸쓸히 몰락한 뒤에도 혼자서 열렬하게 숭배했을 때에는 동네 사람들조차 비웃었다는 등의 후일담도 따라붙었습니다.



1831년, 연출가로 활동하던 코냐르 Cogniard 형제는 쇼뱅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삼색 모표La Cocarde tricolore>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잊힌 작품이지만 당시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니콜라 쇼뱅이라는 이름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그리고 쇼뱅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웬 요상한 한 명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의미가 확장되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극단적인 태도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게 되었으며, 끝내 쇼뱅의 이름에서 따온 '쇼비니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에 이릅니다. 쇼비니즘은 직역하면 쇼뱅주의, 쇼뱅처럼 행동하기 정도의 뜻을 가지는 단어인데, 오늘날에도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행동, 특히 극심한 국수주의를 가리킬 때 쓰이는 말입니다. 그리고 코냐르 형제의 <삼색 모표> 이후로도 쇼뱅의 이야기는 계속 세간에 회자되었고,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도 http://blog.daum.net/ariesia/73 쇼뱅을 다룬 작품을 집필한 적이 있습니다.



1839년에 그려진 코냐르 형제의 초상입니다. 1806년생 테오도르 코냐르와 1807년생 이폴리트 코냐르는 함께 연출가로 활동한 형제였습니다.



전술했듯이 코냐르 형제의 1831년작 '삼색 모표'를 비롯해 19세기 초중반에는 쇼뱅이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 만들어졌으며, 쇼뱅이라는 이름도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니콜라 쇼뱅이라는 이름은 나폴레옹 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 쇼뱅을 특별히 치하했다는 기록도, 쇼뱅이라는 군사가 여러 번 부상을 당했지만 용감하게 계속 싸웠다는 기록도, 심지어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복무했었다는 기록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비슷한 행보를 보인 인물조차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니콜라 쇼뱅의 이야기가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누가 지어냈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입니다. 쇼뱅을 다룬 작품에서는 하나같이 나폴레옹을 지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시대착오적인지를 강조하는데, 이런 의도의 연장선에 위치했을 공산이 큽니다.



오늘날 쇼뱅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쇼비니즘은 비단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특정 지도자나 국가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모습이나,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일컬을 때 널리 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쇼뱅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두고두고 회자될 강렬한 캐릭터성 자체를 창작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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