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세상이야기

[스크랩] [자료] 1970년 9월 23일, 고종의 마지막 후궁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별세

작성일 작성자 오월

[자료] 1970년 9월 23일, 고종의 마지막 후궁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별세

 

고종황제 마지막 후궁(後宮)  삼축당(三祝堂) 김씨 별세

사라진 이조(李朝)의 잔영(殘影)

<경향신문> 1970년 9월 24일자

 

양반(兩班) 출신으로 8살때 입궐(入闕)

50여년 외로운 은둔생활(隱遁生活)만

 

고종황제의 후궁이었던 삼축당 김씨(80, 본명 옥기玉基)가 23일 하오 2시쯤 세브란스병원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김씨는 고종이 거느렸던 8명의 후궁중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던 분. 이로써 한많은 궁중비화를 간직했던 고종의 후궁은 모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씨는 당시 양반출신이던 김순옥(金順玉)씨의 2남 2녀중 맏이. 8살 때 나인으로 입궐한 그는 21살 때 40세나 연상인 고종의 눈에 들어 8번재의 후궁이 되었다. 이후 김씨는 고종이 승하할 때까지 7년을 모셨다.

고종 승하후 순종은 부왕의 뜻을 좇아 덕수궁에 있던 엄비의 처소를 경복궁 담너머 현재의 사간동 106으로 옮긴 후 선왕이 총애하던 두 후궁 삼축당(三祝堂)과 광화당(光華堂)을 함께 살도록 했다. 이때 순종은 궁중법도를 깨고 아니를 낳은 후궁에게만 내리는 당호(堂號)를 하사, 삼축당으로 부르게 됐다.

삼축당은 1.4후퇴 당시 피난살이를 빼고는 50여년을 문밖출입을 끊고 쓸쓸한 은둔생활을 계속, 한평생을 의좋게 한집에서 지내온 광화당이 세상을 떴을 때(67년) 그는 "나도 하루속히 고종을 모시러 가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불교에 귀의, '○상행(○相行)'이란 법명까지 얻고 인근 법륜사(法倫寺)에 나가는 것이 고작 외출이었고 독경만이 만년의 고독을 달래는 유일의 낙이었다.

매월 15만원씩 문화재관리국에서 지급하는 생계비로 지내온 김씨는 한집에 살아온 조카며느리 차정숙(車貞淑, 42)와 차씨의 딸 김현배(金玄培, 15, B여중 2년)을 유족으로 남겼다. 사간동 자탁에 마련된 빈소에는 방자(方子)여사, 박찬주(朴贊珠)여사, 이수길(李壽吉, 종친회 이사장)씨 등만이 다녀갔을 뿐 찾는 이도 별로 없다.

장례는 7일장으로 고종을 모신 금곡릉(金谷릉)에 광화당과 나란히 묻히게 된다.

 

고종황제 마지막 후궁(後宮)  삼축당(三祝堂) 김씨 별세

영락한 양반의 장녀(長女)로 8세때 입궐, 뛰어난 재색(才色) 21세에 후궁

<한국일보> 1970년 9월 24일자

 

아기 낳지 않고 당호(堂號) 받아

궁중(宮中)일 입다문채 쓸쓸히

"속히 금곡(金谷)가 황제 모셔야지"

 

고종황제의 마지막 후궁 삼축당(三祝堂) 김씨(이름 玉基, 80)가 23일 하오 1시 50분 서울 종로구 사간동(鍾路區 司諫洞) 106 삼축당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삼축당 김시의 별세로 8명이나 되던 고종황제의 후궁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삼축당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 교남동(西大門區 橋南洞)에서 영락한 양반인 김순옥(金順玉)씨의 2남 2녀의 맏이로 출생, 8살때 나인으로 경복궁에 입궐했다. 재색이 뒤어났던 삼축당은 까다로운 궁중법도속에서 공종황제의 눈에 띄어 21세가 되던 해 당시 61세이던 고종의 후궁이 됐다.

삼축당은 후궁으로 뽑힌 뒤에도 시기와 질투가 들끓는 비빈 궁녀사회와는 달리 같은 해에 입궐, 자신보다 5년먼저 승은(承恩)을 입은 광화당 이완덕(光華堂 李完德)씨(67년 11월 10일 별세)와는 유별나게 우애가 두터웠다.

1918(착오)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순종은 부○의 뜻을 살려 당시 덕궁에 있던 선황(先皇)의 두 후궁을 위해 엄비가 살던 집을 들어 경복궁 담너머 사간동에 집을 지은뒤 광화당과 삼축당이 같이 살게 했다.

순종은 이때 삼축당 김씨에게 삼축당(三祝堂)이란 당호(堂號)를 하사했다. (원래 당호는 승은을 입은 후궁이 아이를 낳아야만 하사함. 따라서 삼축당 김씨는 아이를 낳지 않고 당호를 하사받은 고종황제의 유일한 후궁임).

이렇게 광화당과 의가 좋던 삼축당도 3년전 광화당마저 별세하자 "나도 하루속히 금곡(金谷)으로 가서 고종황제를 모셔야겠다"고 말해왔으며 지난 궁중일엔 일체 입을 다문채 만년엔 문화재관리국에서 매월 15만원씩 지급하는 생계비로 조카며느리 차정숙(車貞淑, 42)와 조카 김현배(金玄培, 15, B여중 2년)과 쓸쓸히 지냈었다.

삼축당 김씨가 별세한 23일 빈소가 차려진 삼축당(대지 70평 건평 25평0엔 왕가의 영고성쇠를 말하듯 방자(方子)여사와 박찬주(朴贊珠)여사가 다녀갔을 뿐 아무도 찾는 이 없었다. 

[사진설명: 이구(李玖)씨 내외가 보낸 국화분만이 놓인 삼축당 김씨 빈소에서 김씨의 친동생 김순애(金順愛)씨가 분향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동아일보> 1970년 9월 24일자
 

고종황제 마지막 후궁(後宮)  삼축당(三祝堂) 김씨 별세

8세에 입궐, 뛰어난 재색(才色) 갖춰

방자(方子)여사 조화(弔花)만 빈소지켜

<동아일보> 1970년 9월 24일자

[사진설명: 승려의 독경 속에 쓸쓸한 빈소, 원내는 삼축당 김씨.] 

(기사 본문의 인용은 생략함)

 

고종 마지막 후궁(後宮)  삼축당(三祝堂) 김씨 별세

<조선일보> 1970년 9월 25일자

고종 황제의 마지막 후궁 삼축당(三祝堂) 김씨(본명 金玉基, 80)가 23일 오후 2시쯤 세브란스병원 별관 252호실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김씨는 8명이었던 고종의 후궁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장례는 전주이씨종친회장(全州李氏宗親會葬)으로 5일장. 오는 27일 오전 9시 발인되며 장지는 금곡홍유릉(金谷洪裕陵)으로 정했다.

 

(정리 : 2007.6.14,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

 

출처 :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 | 글쓴이 : 제자리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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