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

全唐詩(전당시) 放言五首(방언5수) / 作者(작자)白居易(백거이)唐 (당)

작성일 작성자 방울새


<원문>


全唐詩(전당시) 放言五首(방언5수) / 作者(작자) 白居易(백거이) 唐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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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真暮偽何人辨 (조진모위하인변) 낮과 밤의 참과 거짓 누가 가려냈으며

古往今來底事無 (고왕금래저사무) 옛날부터 지금까지 안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但愛臧生能詐聖 (단애장생능사성) 사랑을 받은 장무중은 거짓 성인이었고

可知甯子解佯愚 (가지영자해양우) 용무자도 알고 보면 꾸며진 바보였네

草螢有耀終非火 (초형유요종비화) 수풀 속 반딧불 끝내 불꽃일 수 없고

荷露雖團豈是珠 (하로수단기시주) 연잎 위 둥근 이슬 진주는 아니지만

不取燔柴兼照乘 (불취번시겸조승) 조승주가 있으면 횃불 몫을 하는데

可憐光彩亦何殊 (가련광채역하수) 가련타 광채끼리 다르다 할 게 무엇인가.



世途倚伏都無定 (세도의복도무정) 서로 기댄 복과 재앙 정해진 게 하나 없고

塵網牽纏卒未休 (진망견진졸미휴) 세상일에 얽히는 것도 살아서는 못 쉴 테니

禍福回還車轉轂 (화복회환거전곡) 복과 재앙 갈마들기 돌아가는 바퀴 같고

榮枯反復手藏鉤 (영고반복수장구) 뒤집히는 영고성쇠 가락지 찾는 놀이 같네

龜靈未免刳腸患 (구령미면고장환) 신령스러운 거북이는 배가 갈라지고

馬失應無折足憂 (마실응무절족우) 말을 잃으면 다리 부러질 걱정 없으니

不信君看弈棋者 (불신군간혁기자) 그대가 바라보는 내기바둑 믿지 말게

輸贏須待局終頭 (수영수대국종두) 승패는 판이 끝난 뒤에 알게 될 테니.



贈君一法決狐疑 (증군일법결호의) 자네에게 의심 없 방법 하나 알려줌세.


不用鑽龜與祝蓍 (불용찬구여축시) 거북점도 산가지점도 볼 필요가 없다네.

試玉要燒三日滿 (시옥요소삼일만) 옥돌인지 알려면 불로 사흘을 달궈야 하고

辨材須待七年期 (변재수대칠년기) 재목 판별에도 칠 년 세월이 필요하다네.

周公恐懼流言後 (주공공구유언일) 주공도 조정의 유언비어를 두려워했고

王莽謙恭未篡時 (왕망겸공미찬시) 왕망도 찬탈 전까지 겸손했다 하는데

向使當初身便死 (향사당초신편사) 만약에 그사람이 일찍 죽어 버렸다면

一生真偽復誰知 (일생진위부수지) 평생 참과 거짓 누가 알수 있겠나....^^

    

    * (): 원진元稹을 가리킨다.

    * 狐疑 (호의) 의심하다. 여우의 본성이 의심이 많은 것에서 생긴 말이다.

    * 鑽龜 (찬구)와 축시(祝蓍) 거북의 등껍질에 구멍을 뚫거나 톱풀이라고도 하는 시초蓍草의 줄기를 늘어놓아 길흉과 일기에 관해 점을 치던 것을 가리킨다. ⟪순자荀子왕제王制에서 相陰陽, 占祲兆, 鑽龜陳卦, 主攮擇五卜, 知其吉凶妖祥, 傴巫跛覡之事也(음과 양을 살펴 길흉에 관한 여러 가지 조짐들을 점치고, 거북 껍질에 구멍을 뚫거나 산가지를 늘어놓고 점괘를 살펴서 불결한 것을 쫓고 길한 것을 취하며, 비 오고 비 개고 구름 끼고 날이 맑았다 흐렸다 하는 것과 소나기 등을 점쳐서 그 길한 것과 흉한 것, 그리고 요사스럽고 상서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이 곱사등이 무당과 절름발이 박수가 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 試玉 (시옥) 이하 두 구절 옥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불 속에 넣고 사흘을 지켜봐야 하고 재목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칠 년을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에서 나온 말로 선비의 곧은 의지는 오랫동안 단련을 거쳐야 하고 동량이 될 인재도 단기간에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회남자淮南子숙진훈叔眞訓에서 鐘山之玉, 炊以爐炭, 三日三夜而色澤不變(종산에서 나는 옥은 숯불 속에 넣고 사흘 밤낮을 지내도 빛깔과 윤기가 변하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사기史記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서 其北則有陰林巨樹, 楩楠豫章(그 북쪽 숲에 편목과 남목과 예장목 같은 큰 나무들이 있다).’이라 했고,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豫今之枕木也. 章今之樟木也. 二木生至七年, 枕樟乃可分別(‘는 오늘날의 침목을 말하고 은 오늘날의 장목을 말하는데 이 두 나무는 칠 년을 자란 뒤에야 침목과 장목으로 구별할 수 있다).’이라고 했다.

    * 周公恐懼流言 (주공공구유언) 주무왕周武王 사후,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을 하고 있었는데,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등이 주공이 왕위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주공이 도읍을 떠나 동쪽으로 떠났는데, 나중에 주공의 진심을 알게 된 성왕이 주공을 불러 관숙 등을 진압하게 하였다

 

    * 王莽謙恭 (왕망겸공) 왕망이 왕위를 찬탈하기 전에는 겸손을 가장한 것을 가리킨다. ⟪한서漢書왕망전 王莽傳에서 ‘()爵位益尊, 節操愈謙. 散輿馬衣裘, 賑施賓客, 家無所餘. 收贍名士, 交結將相卿大夫甚衆. (…) 欲令名譽過前人, 遂克己不倦(왕망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지조를 지키고 겸손해졌다. 수레와 옷가지를 벗어두고 빈객들을 돌보느라 집에 여유가 없었다. 명사들을 돌보고 교유하는 장상 및 공경대부들이 아주 많았다. (…) 명성이 옛사람들을 능가할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단속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 다).’이라고 했다.

    * 向使 (향사) 만약에

 


誰家第宅成還破 (수가제댁성환파) 어느가문의 저택을 지었다 부수고

何處親賓哭復歌 (하천친빈곡부가) 어느곳의 친빈이 곡하다 노래하랴.

昨日屋頭堪炙手 (작일옥두감자수) 어제의 권세는 손 델듯이뜨겁더니

今朝門外好張羅 (금조문외호장라) 오늘 대문밖에 그물치기 좋아라.

北邙未省留閑地 (북망미성류한지) 북망노는땅 아직 보지 못햇고

東海何曾有定波 (동해하증유정파) 동해에여태껏 일정한 파도 없었네.

莫笑賤貧誇富貴 (막소천빈과부귀) 천빈웃지말고부귀 자랑 마시라.

共成枯骨兩如何 (공성고골양여화) 모두 해골된후그둘 어떠한가.

 


泰山不要欺毫末 (태산불요기호말) 태산은 털끝만큼도 속일 필요가 없고

顏子無心羨老彭 (안자무신서로팽) 안자는 장수한 팽조를 의심하는데 무심 하였으리라.

松樹千年終是朽 (송수천년 종시후) 천년 자란 소나무도 마침내 섞어 버리고

槿花一日自為榮 (근화일일자위영) 무궁화꽃하루로되 영화롭게 여기다.

何須戀世常憂死 (하수연세상우사) 어찌 세상에 미련을 두어 매양 죽음을 근심 하느냐.

亦莫嫌身漫厭生 (역막혐심만염생) 또한 육신과 죽음을 근심하지 말아라.

生去死來都是幻 (생거사래도시환) 살고죽고 가고 오는것 모두가 환상과 같으니

幻人哀樂系何情 (환인애락계하정) 환상에 사는 인간이 너찌 애락에 신경을 쓰느냐.

 

* 放言(방언) 방어(放語).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내놓는 말 

* 泰山(태산) 중국 산동성에 있는 명산. 오악의 하나로 높고 큰 산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 毫末(호말) 털 끝. 털끝만한 작은 일.

* 顔子(안자) 안회(顔回, 기원전 521? ~ 기원전 491?)는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자연(子淵)이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그러나 31세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 羨() 부러워하다.

* 老彭(노팽) 팽조(彭祖). 본명은 전갱(籛鏗)으로 요()임금 때 팽성(彭城)에 봉해진 뒤 周 三代에 걸쳐 8백 년을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

* 槿花一日榮(근화일일영)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때 시드는 무궁화에 비유해서 사람의 영화(榮華)가 덧없음을 말한다. 槿花一朝夢(근화일조몽).

* 自為榮(자위영) 하루의 영화로 만족한다는 뜻.

* 亦莫(역막) 그렇다고 ~ 하지말라.

* 漫厭(만염) 함부로 싫어하다.

* 都是(도시) 모두. 전혀

 

백락천(白樂天)44세 때 조정의 미움을 사서 강주(江州)의 사마 (司馬:군사 담당의 벼슬)로 가는 도중, 원진(元稹:자는 微之)방언(放言)이란 시를 보내준 데 대해 같은 제목으로 답해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원진은 백락천과는 함께 과거에 올랐던 둘도 없는 친구로, 그가 강릉(江陵:후베이성 강릉군)으로 좌천되어 슬픔에 싸여 있을 때였다.


원진元稹 [779~831]


당조唐朝 때 시인으로 자는 미지微之 또는 위명威明이고, 낙양洛陽 사람이다. 북위北魏 종실인 선비족 탁발부의 후예로 부친 원관元寬과 모친 정씨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신악부新樂府를 제창한 그를 사람들이 원백元白으로 병칭하였다. 어려서 부친이 세상을 뜬 뒤 모친을 따라 봉상鳳翔에 있는 외가로 가서 자랐다. 정원貞元 9(793)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을 제수한 뒤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직간을 잘하여 보수적인 관료와 환관들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구세력과 타협하여 벼슬을 살았다.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를 지내던 중 진중에서 병사했다. 염시艶詩와 도망시悼亡詩에 특히 능했다.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60권과 《소집小集》10권을 남겼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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