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

戱贈杜甫 (희증두보)

작성일 작성자 방울새





戲贈杜甫(희증두보)-李白

두보에게 농담삼아 주다

 


飯顆山頭逢杜甫 (반과산두봉두보) 반과산 머리에서 두보를 만나니

頂戴笠子日卓午 (정대립자일탁오) 눌러쓴 삿갓에 햇볕이 쨍쨍 내리네...



借問別來太瘦生 (차문별래태수생) 그 사이 어찌 그리 야위었느냐 묻으니

從前作詩苦 (총위종전작시고) 모두가 시 짓는 고통 때문이라네...^^




    * 戱贈 (희증) 장난으로 주다. 재미 삼아 주다. 막역한 사이에 쓸 수 있는 말이다.

    * 飯顆山 (반과산) 이름. 전하는 바로는 장안長安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飯顆山頭長樂坡前으로  쓴 자료도 있는데 長樂坡도 역시 장안 부근에 있다.

    * 笠子 (입자) 대나무 껍질이나 야자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가리키며 비나 햇빛을 가리는 데 사용한다.

    * 日卓午 (일탁오) 해가 머리 위로 오는 시간, 즉 정오를 가리킨다.

    * 借問 (차문) 묻다.

    * 太瘦生 (태수생) 여위고 허약하다. 수척해지다. ‘은 어조사로 당시의 관용어였다.

    * 總爲 (총위) 모두 ~때문이다.

    * 作詩苦 (작시고) 시를 지을 때 한 글자도 소홀히 하지 않는 두보의 창작정신을 말한 것인데,

      두보杜甫는일찍이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이란 시에서 爲人性僻貪佳句, 語不驚人死不休

      사람됨이 아름다운 구절이나 욕심을 내고 / 남을 놀라게 하지 않는 말이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

 

 

감상


시의 제목이나 내용을 얼핏 보면 두보를 놀리고 비웃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나, 시에 담긴 뜻은 시 짓기에 무척 애를 쓰는 두보를 칭찬하는 것이다. 어떤 글자를 써야 하는가를 고심하느라 몸마저 야위었으니, 그 노력은 한시를 지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 제목을 贈杜子美(증두자미)’라고도 하며, 둘째 구의 亭午卓午(탁오)’로 쓴 자료도 있는데 뜻은 같으나 이 측성이어서 마땅치 못하다. 셋째 구도 借問別來太瘦生(차문별래태수생)’ 또는 爲問緣何太瘦生(위문연하태수생)’으로 쓴 자료도 있음을 밝혀 둔다.


이백과 두보는 11년의 나이 차이가 있으면서도,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시를 주고받거나 문학에 대하여 논했다고 한다.


두보는 夢李白(몽이백)’ 등 이백에게 주는 시가 여러 편인데, 이백이 두보에게 준 또 한 편의 시를 소개한다. “醉別復幾日 登臨徧池臺 何時石門路 重有金樽開 秋波落泗水 海色明徂來 飛蓬各自遠 且盡手中杯

(취해 헤어진 게 얼마이던고, 연못이나 누대에서 함께 하지 않았던가. 언제 석문 길에서 또다시 만나, 다시 술자리를 벌여 볼 건가. 가을이라 사수 물살은 줄었지만, 바다 빛깔 같은 조래산은 환히 어렸네. 흩어지는 쑥대처럼 헤어질 판이니, 남은 술잔이나 비우자꾸나.)”魯郡東石門送杜二甫


 

이백 (李白) (701 ~ 762)


중국 당()의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靑蓮). ()나라 쓰촨 성[四川省] 사람. 어려서부터 시서(時書)에 통하여 민산(岷山)에 숨어 종횡책사(縱横策士)의 술()을 즐겼으며, 후일 조래산(徂徠山)에 살며, 술을 즐기어 6(六逸)의 한 사람이 되었다. 742년에 강남(江南) 회계(會稽)에 갔다가 친구의 천거로 한림(翰林)학사가 되었으나 방종(放縦)하여 진관(進官)이 되지 못하고 다시 각지에 순유(巡遊)하였다.

안사(安史)의 난에 양주(楊州) 절도대사의 막하에 있다가 모반(謀反)에 연좌되어 야랑(夜郎)지방으로 귀양갔다가 후일 사면되었다. 대종(代宗) 때의 좌습유(左拾遺)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고, 62세로 선주(宣州)에서 사망했다. 시인이 배출된 현종(玄宗) 시대에 있어서 두보(杜甫)와 더불어 시선의 일컬음을 받았으며 중국 역대를 통하여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는 주관적인 자유 분방으로...한번 붓을 들면 곧 시가 되었다고 한다~!


사상에 있어서는 유교적 색채가 엿보였다.

그의 생활 태도를 반영한 대표작으로는 촉도난(蜀道難)이 있다. 이태백 시집30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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