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

題畵竹(제화죽)鄭燮 (정섭)

작성일 작성자 방울새





題畵竹 (제화죽) )鄭燮 (정섭)


一節復一節 (일절부일절) 한마디위로 또 한마디씩 자라며

千枝攢萬葉 (천지찬만엽) 천개의 가지에서 만개의 잎을 펼펴 내지만

我自不開花 (아자불개화) 나는 스스로 꽃같은거 피어내지 않아

免撩蜂與蝶 (면료봉여접) 벌과 나비 모여 드는일 없게 하리라...^^



鄭燮이 자기가 그린 대나무 그림에 붙인 시이다.

대나무는 마디로 자라고 잔 가지가 많으며 가지마다 잎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여름에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淸凉)함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에는 잎마다 눈이 쌓여 가지가 휘고 부러지기도 한다....

대나무는 매화,난초,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어지는데,

벌이나 나비는 꿀이나 꽃향기를 찾아드는... 소인배(小人輩)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나무를 그리면서 꽃은 그려넣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요...^^



鄭燮 (정섭 1693~1765)


중국(中國)청(淸)나라 때의 문인(文人) 화가(畵家) 서예가(書藝家) 특히 대나무 그림에 정통하였고 양주 팔괴(揚州 八怪)의 한 사람으로...

화가(畵家)이자 서예가(書藝家)로 자는 극유(克柔)이고 호는 판교(板橋)이며 쟝쑤성(江蘇省 )흥화(興化)사람입니다.

1752년에 60세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시(詩).서(書).화(畵)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였습니다.

과거에 응시하여 강희제(康熙帝) 때 수재(秀才)가 되었고 옹정제(雍正帝) 때 거인(舉人)이 되었으며 건륭제(乾隆帝)때 비로소 진사(進士)가 된 뒤에 산동의 범현(范縣)과 유현(濰縣)에서 지현(知縣)을 지냈습니다.


훗날 고을 사람의 소송을 도와 이기게 한 것 때문에 지방호족들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간 뒤로는 다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시(詩)서(書)화(畵) 모두 특색 있는 작풍을 선보였으며, 그림에서는 양주팔괴(揚州八怪)중 한 분이십니다


특히 난초와 대나무 그림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그림으로는 《묵죽도병풍墨竹圖屛風》가 잘 알려져 있고, 문집으로는 《판교시초板橋詩鈔》와 《도정道情》이 있습니다.


참고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후 그는 많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가뭄이 들면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자신의 녹봉을 모두 들이는 등 청렴한 관리로서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건륭17년, 유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재민 구휼문제로 상관 눈 밖에 났습니다만....

그가 관부를 떠날 때 현의 백성들이 모두 길거리로 나와서 그를 전송했는데, 그는 세 필의 당나귀 가운데 한 필은 자신이 타고, 다른 한 필은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타고 나머지 한 필에는 짐을 싣고 길을 떠났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현령으로 지낸 그의 삶이 얼마나 청빈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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