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分堂記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

이덕무는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으나 가난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지요..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말했건만, 지금 보니 넓힌 게 아니라 오히려 둘러막았군.

그대가 개울가에 거주할 때 집 이름을 매미허물과 귤껍질이라는 뜻의 ‘선각귤피(蟬殼橘皮)’라 하여

작음을 드러내더니 이 방은 무엇이라 이름하였는가?”


이덕무는 웃으며 답합니다.

 “‘팔분당(八分堂)’이라고 하였네.”


손님이

“이름은 어디서 가져왔는가?”라고 묻자...

 

이덕무는

 “그대 스스로 찾아보게”라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벽에서 왔군. 벽에 걸린 글씨가 십분의 이는 전서체로 쓰이고, 십분의 팔은 해서체로 쓰였으니….”

 

“그렇지 않네. 거기에 집이 작다는 뜻이 있는가?”


 “병풍 밖에 남은 공간이 몇 자나 되는가? 만약 십분의 이라면 집의 이름은 그것에 있네.”


“병풍 밖은 십분의 삼인데 어찌하여 집의 이름을 칠분당이라 하지 않고 팔분당이라 했겠는가?”

마침내 이덕무가 작명 이유를 설명 합니다.

 

“크기로 이름을 삼는 것은 거짓되고 괴벽한 것이라 군자가 취할 것이 못되네...^^


사람은 태어날 때 십분의 선한 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지.

그러나, 장성하여 어른이 되면 기질에 구애받고 외물에 빠진다네.

 그리하여 본성을 잃게 되고 악의 세력이 빠르게 자라나 거의 팔구분에까지 이르러…

보통사람은 선과 악을 오분씩 갖고 있는 자도 있고, 선과 악을 사분과 육분으로 갖고 있는 자도 있네.

그러니 칠분과 팔분의 선이 십분에 이르는 것은 얼마나 진보하느냐에 달려 있네...^^


나는 어쩌면 선과 악을 오분씩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네...

만약 소인됨을 부끄러워하여 죽을 때까지 선을 행한다면,

 다행히 육분이나 칠분에 도달하기를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와 같은 사람도 현인을 바라는 그런 선비일 수도 있다면,

우러러 그것을 사모하고 발돋움하여 거기에 이르고자 하네.


그 경지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기쁘게 받아들여 힘써 노력할 수 있는,

칠분과 구분의 사이이니 바로 팔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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