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

溫柔敦厚 (온유돈후)

작성일 작성자 방울새



溫柔敦厚 (온유돈후)

괴이하거나 익살스럽거나 노골적이지 아니하고 독실한 정취 있는 경향



명사

(1)

[문학] 괴이하거나 익살스럽거나 노골적이지 아니하고 독실한 정취 있는 경향. 중국에서는 이것 시의 본분으로 하였다.

(2)

(기본의미) 성격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 .


溫柔敦厚-온유돈후

(따뜻할 온, 부드러울 유, 도타을 돈, 두터울 후)

마음은 순하고 온화하며 인정이 많고 두텁다는 말​


이황은 우리 고전 시가 작품에 대하여...^^


‘음란하다(淫哇), 방탕 교만하다(矜豪放蕩),

세상에 대해 공손하지 않다(玩世不恭)’ 등의 평가를 내리면서...

그와 상대되는 용어로 ‘온유돈후’를 제시하였다.


 

최진원은...^^

고려 시가가 ‘주(酒)·가(歌)·무(舞)의 관능적(官能的) 향락(享樂)’이 주된 내용이라고 정리하면서...

“이 관능적 향락은 도학자 퇴계에게는...성정을 흐리게 하는 못마땅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라고 지적하였다.



온유돈후(溫柔敦厚)는 이와는 대조되는...

진실하고도 맑은 소리로 선(善)을 이끌어 내고 비루함을 씻어버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온유돈후는 퇴계 이황이 자신이 지은 국문 시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 지향하는 작품 세계를 드러내는 말로 사용했다.



그 유래는...

『예기(禮記)』 「경해(經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그 나라에 들어가면 교화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온유돈후하면 시의 교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주희는 성품이 부드럽고 따스하며 안색이 온화하다는 말이라고 주를 달았다.

이것이 바로 시의 효용이어야 한다고 이황이 말한 것이다.


17세기 초반의 문신 장경세(張經世)는 그 내용을...

 ‘의사(意思)의 진실,

 음조(音調)의 청절(淸絶),

 선단(善端)의 흥기(興起),

 사예(邪穢)의 탕척(蕩滌)’ 등으로 보았다.


「언지」 6의 사시(四時)의 질서가 ...

가흥(佳興)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한 가지’라고 파악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시의 질서는...

난초(幽蘭),

흰구름(白雲),

청산(靑山),

유수(流水)보다 더 자연의 질서를 잘 드러낸다.

 

그것은 움직이고 변화하면서도 제 위치를 잃지 않는 자연의 질서를 더 잘 설명한다.

그 질서는 ‘화만산(花滿山) 월만대(月滿臺)’와 같이 실질적 내용을 가지면서도...

실체화되지 않는 변화의 축으로서의 태극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기 적절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흥이다...^^


사람도 그 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시의 자연과 사람의 만남에서 가흥을 느낀다.

그것은 자연의 근원적 조화와 충만한 실질과, 역시 자연의 태극을 나누어 갖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 근원적 심성이 조화롭게 일치됨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흥이기에 아름답다....^^



구체적 자연물을 통해서 세계의 근원적 조화를 만난다는 심미적 경험이 바로...

「도산십이곡」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우리 의식 속에 들어와 세상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삶의 틀을 형성해 나가는 자양분이 된다.

그 결과물이 세계를 사는 포괄적 행동규범의 근거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세계를 깊이 이해할 때 원망이나 자랑, 음란함 등은 사라지고...

세계와 통합되는 자아의 따듯한 시선, 온화한 얼굴이 남는다.

이것이 온유돈후이다.


이러한 시가 미학은 현재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현대시와의 접맥을 통해 한국적 시가 미학을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세상과 부딪친다.


세상이 늘 합리적이거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어서...

사람들은 때로는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 대하여 자만심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비판 또는 비관하거나 스스로 오만해지거나 과도한 슬픔 또는 기쁨에 빠지기 쉽다.


온유돈후는 어떤 경우에도 따스하고 부드럽게 도타운 정으로 세상을 대하라고 주문한다.

이것이 시 또는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이황은 말한다.

시 또는 예술은 그 경지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황은 「도산십이곡」을 통해 그렇게 하고자 하였다.


  • 『 한국 시가론과 시조관』(박미영, 박이정, 2006)
  • 「〈도산십이곡〉의 미학적 접근」(신연우, 『이황 시의 깊이와 아름다움 』, 지식산업사, 2006)
  • 「 강호가도」(최진원, 『국문학과 자연』,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77)


  •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에 월만대(月滿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늬 그지 이시리

    - 이황 李滉(1501-1570. 연산군 7년-선조 3년), 도산12곡 6 

     

    화만산하고 = 꽃이 산에 가득 피었고 

    월만대라 = 달빛이 누대(樓臺)에 가득하구나 

    사시가흥 = 네 계절의 아름다운 흥취 

    어약연비 =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음. 천지조화의 묘함을 뜻함. 

    운영천광 = 구름 그림자와 하늘빛. 도산서원에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는 누대(樓臺)가 있다 함. 

    어늬 그지 이시리 = 어느 것이 끝이 있겠는가?


    이황 도산십이곡 전문 분석 및 해설


    ▶ 핵심 정리
    ▷ 작자 : 이황( ; 15011570)
    ▷ 출전 : <진본 청구영언>
    ▷ 종류 : 연시조(12)
    ▷ 성격 : 교훈적
    ▷ 제재 :  6 : 언지(言志),  6 : 언학(言學)
    ▷ 주제 :  6 : 자연에 동화된 생활 ,
     6 : 학문 수양 및 학문애
     
    (1)
    이런 엇더며 뎌런 엇다료
    草野愚生(초야 우생)이 이러타 엇더료
    려 泉石膏肓(천석 고황)을 고텨 므슴료
     
    (풀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주제 : 천석고황
     
    (2)
    煙霞(연하)로 지블 삼고 風月(풍월)로 버들사마 [2]
    太平聖代(태평 성대) ()으로 늘거나뇌
    이듕에 바라 이른 허믈이나 업고쟈
     
    (풀이) 연기나 놀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으로 삼아,
    어진 임금을 만난 좋은 시대에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병(老病)으로만 늙어가는구나.
    주제 : 자연과의 동화
     
    (3)
    淳風(순풍)이 죽다니 眞實(진실)로 거즈마리
    人生(인생)이 어디다 니 眞實(진실)로 올 마리
    天下(천하) 許多英才(허다 영재)를 소겨 말솜가
     
    (풀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사라져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로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없어졌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어찌 속일 수가 있겠느냐.
    주제 :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
     
    (4)
    幽蘭(유란) 在谷(재곡)니 自然(자연)이 듣디 됴해
    白雲(백운) 在山(재산)니 自然(자연)이 보디됴해
    이 듕에 彼美一人(피미일인)을 더옥 닛디 몯얘
     
    (풀이) 그윽한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듯 매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주제 : 연군
     
    (5)
    山前(산전) 有臺(유대)고 臺下(대하) 有水(유수)
    로다
     만 며기 오명가명 거든
    엇디다 皎皎白鷗(교교 백구) 머리  고
     
    (풀이) 산 앞에는 대(낚시터)가 있고, 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구나.
    갈매기들은 무리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 망아지[賢者]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 망아지는 큰 뜻을 품었나보다.)
    주제 : 자연을 등지고 있는 현실 개탄
     
    (6)
    春風 花滿山(화만산)고 秋夜(추야) 月滿臺(월만대)
    四時佳興(사시가흥)ㅣ 사롬과 가지라
    며 漁躍鳶飛 雲影天光(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풀이)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춘하추동 사계절이 각기 지닌 멋은 사람의 흥겨워함과도 같구나.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하늘을 나니
    흐르는 구름은 그림을 남기고,
    밝은 햇빛은 온 누리를 비추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주제 : 대자연의 웅대함 찬미
     
    (7)
    天雲臺(천운대) 도라드러 (완락제) 簫洒(소쇄)듸
    萬卷生涯(만권 생애) 樂事(낙사) 無窮(무궁)얘라
    이 듕에 往來風流(왕래 풍류)롤 닐어 무슴고
     
    (풀이)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아담하고 깨끗이 서 있는데,
    거기서 수많은 책을 벗삼아 한평생을 보내는 즐거움이란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랴?
    주제 : 독서의 즐거움
     
    (8)
    (뇌정) 破山(파산)야도 聾(농자) 몯 듣니
    白日(백일) 中天(중천)야도 瞽者(고자) 몯 보니
    우리는 耳目聰明男子(이목총명남자)로 聾(농고)디 마로리
     
    (풀이) 우레 소리가 산을 무너뜨리도록 심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지는 않아야 하리라.
    주제 : 진리 터득의 중요성
     
    (9)
    古人(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古人(고인) 몯 뵈
    古人(고인)를 몯 뵈도 녀던 길 알 잇
    녀던 길 알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풀이)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보지 못했지만 그 분들이 행했던 가르침이 앞에 있구나.
    그 행하신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행하고 어찌할 것인가?
    주제 : 인륜 대도를 실천 궁행해야 함
     
    (10)
    當時(당시)예 녀던 길흘 몃를 려 두고
    어듸 가 니다가 이제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 마로리
     
    (풀이) 예전에 걷던 길을 몇 년이나 내버려두고,
    어디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예전에 걷던 그 길로) 돌아왔는가?
     
    이제나마 돌아왔으니 이제는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주제 : 학문 수행에 전념할 결의
     
    (11)
    靑山(청산) 엇뎨야 萬古(만고)애 프르르며
    流水(유수) 엇뎨야 晝夜(주야)애 긋디 아니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만고 상청) 호리라
     
    (풀이)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주제 :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의지
     
    (12)
    愚夫(우부)도 알며 거니 긔 아니 쉬운가
    聖人(성인)도 몯다 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낫 듕에 늙 주를 몰래라
     
    (풀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를 알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또 만세에 스승이 될 만한 성인도 다 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어 가는 줄 모르겠구나.
    주제 : 영원한 학문 수행의 길
     

    ▶ 작품 해설
    <도산십이곡>이란 조선조 13대 명조 20(1565)에 퇴계 이황이 지은 12수로 된 연시조를 말한다.
    이것은 퇴계 자신이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와서
    도산서원에서 후진을 양성할 때에 이학(理學)을 닦는 심지(心志)를 노래한 것으로
    주자(朱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받아 천석 고황(長石膏肓)과 강학(講學),
    사색으로 나날을 보내던 그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십이곡>은 전6곡과 후6곡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6곡은 ‘언지(言志)’라 하여 때를 만나서 사물을 접할 때에 일어나는 감흥을 노래하고,
    6곡은 ‘언학(言學)’이라 하여 자신의 학문 수덕(學問修德)의 실제를 노래하고 있다.
    흔히 유학자(儒學者)들의 시조가 그러하듯이
    이 노래에서도 역시 중국 문학을 차용한 곳이 많고
    생경한 한자어가 많아 문학적으로는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듯하다.
     
     
    ▶ 작품 감상
    [1] 본래 우리 시조 문학은 은일 문학(隱逸文學)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은일 문학이란 일종의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의미한다.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는 데에는 우리 문학에 크게 2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당초부터 현실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기피하려는 것과
    또 하나는 현실에서 패배한 나머지, 용납하지 못할 현실을 저주하면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이다.
    이 시조는 도산십이곡 가운데 전6곡의 서곡(序曲)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위에서 얘기한 은일 문학으로서의 현실도피 적 경향이 짙은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에 정이 들어 이것을 버리고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작자 자신의 지극한 자연애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자연 귀의(自然歸依)에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작픔에는 자연에 묻혀 사는 지사(志士)의 참뜻이 잘 묘사되어 있다.
    ‘천석 고황(泉石膏肓)’은 핵심어가 되며 ‘초야 우생(草野遇生)’은 자신을 겸손하게 일컬은 말이다.
     
    [2] 연하(煙霞)와 풍월(風月), 집과 벗이 대구를 이루어
    자연에 완전히 몰입 동화된 작자의 심경이 잘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의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사실 이 병()은 이 작품이 작자의 만년(晩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병(老病)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초장에서의 천석 고황(泉石膏肓)의 상태나 앞 시조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고 보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더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공자의 신독(愼獨 ; 혼자 있을 때에 더더욱 몸을 삼가함)이란 말도 있듯이 태평 성대일지라도 자신의 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은 한 고고(孤高)하고도 청빈(淸貧)한 도학자(道學者), 선비를 연상케 한다.
     
    [3] 초장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중장에서는 맹자의 성선설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여,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고 있는 작자 자신의 성리학적 입장을 뚜렷이 밟히고 있다.
    아울러 세상의 많은 영재(英才)들에게 성선설이 옳음을 주장하면서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4] 초장에서는 그윽한 난초의 향기를 드러내어 후각적인 효과를, 그리고 중장에서는 흰눈을 등장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榮辱盛衰)로 점철이 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들이다.
    이것들은 우리 고시가에 흔히 쓰이는 범상(凡常)한 용어들로 시어 자체는 다른 작품에 비해 별로 특이할 것이 없으나 작자 자신이 속세를 잊고 완전히 자연에 몰입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에서는 벼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연군의 정이 떠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에 귀의하려는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그랬듯이 자연에 몰입은 하면서도 완전 귀의(歸依)를 하지 못하고 있다.
    종장의 ‘피미일인(彼美一人)’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요,
    초장의 ‘듣디 됴해’의 ‘듣디’는 한시에서 향기를 맡는다는 뜻으로 ‘문향(聞香)’이란 어휘를 사용한 표현의 미라고 할 수 있겠다.
     
    [5]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대 아래에는 맑은 물이 있으며 여기에 또한 갈매기들까지 내 벗이 되어 오락가락하는
    이 좋은 곳을 놓아 두고 왜 먼지 낀 속세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가 하고 세속인들을 나무라고 있다.
    ‘교교 백구(皎皎白駒)’는 본래 ‘현자(賢者)가 타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현자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결국 종장에서는 글이나 좀 읽고 수양을 쌓았다는 자들이 입신 양명에만 눈이 어두워 아름다운 자연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6] 초장에서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 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려서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연의 조화를 무척 로맨틱하게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7] 작자는 조선 시대의 거유(巨儒)로서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이다.
    그러기에 이런 작자가 책 속에 파묻혀 살았으며
    또한 거기서 지극한 낙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무아경(無我境)의 학문 수련 속에서 때때로 모처럼 한가한 때에 틈을 내어 산책을 하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껴보는 그 순간의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한중 진미(閑中珍味)라고나 할까.
    이 작품은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린 시조다.
     
    [8] 여기서 ‘우뢰’나 ‘해’는 ‘진리’, 곧 도()를 지칭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자,
     '속세의 일에만 연연하여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한 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계하며 반드시 '진리의 길'을 걸어야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던 바,
    이 역시 ‘진리 터득의 중요함’을 단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어구(語句)라 할 수 있다.
     
    [9] 여기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마(牛馬)가 다닐 수 있는 거리’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옛 성현들이 걸었던 학문 수양의 길’이라고 해석하고 보면 뜻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이 시조의 수사법 (修辭法)상의 또 하나의 묘미는
    앞 구의 끝말을 뒷 구의 첫말로 가져와 그 뜻을 이어 나가는 연쇄법(連鎖法)을 쓴 데에 있다.
    옛 성현들의 길을 본받고자 하는 작자 자신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고,
    또한 옛 성현과 군자들이 행하던 인륜 대도(大道)
    오늘날의 우리들도 실친 궁행(實踐窮行)하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10] 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 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동방(東方) 성리학의 대가였던 그도 벼슬길은 역시 외도(外道)임에는 한가지였다.
    ‘녀던 길’은 학문 수행의 길이요, ‘어듸 가 니다가’는
    그 길을 소홀히 하고 벼슬길에 올랐던 것을 이름이며,
    ‘년 듸  마로리’는 학문 수행에 전념할 향심(向心)과 결의를 보인 것이다.
     
    [11]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는 구절은
    언뜻 ‘산석유수(山石流水)’의 대자연 속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실은 끊임없는 학문 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살고 싶은 마음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靑山’과 ‘流水’의 영원성은 순간자인 인간에게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12] 학문이란, 인생의 의미가 끝없이 깊듯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아직도 이 길의 끝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종착점이 없다는 데에 그 심오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학문의 기본 성격인 보편성과 일반성을 실제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으면서도,
    노래가 생명으로 하고 있는 정감과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수사학적(修辭學的) 배려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 시조는 그가 주자의 높고 깊은 학행(學行)을 어떠한 몸가짐으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면학의 태도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그가 쓰는 구절마다에서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어떤 학덕(學德)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밖에 있네(平蕪盡處是靑山 行人在靑山外)’라는
    구양수(歐陽修)의 싯구를 연상시키는 노래이다.
    여기에서 작자의 쉼 없는 학문 정진의 정신 자세를 엿볼 수 있다.

    ex) 

    사람들은 나에게 '넌 어떤 사람이야'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나는 어떤 종류의 남자일까?

    보통의 사람들은 '넌 착해' '너무 여려' '어떨 땐 차갑게 느껴져' '골드문트같은 남자'라고도 하곤 했다.

    가끔 떠오르는 이런 질문들을 정리해 본 적이 있다. 곧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내리는 스스로의 정의를.

    이곳에 쓰지는 않으련다. 우선 쑥스럽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얘기들이라 비난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더욱 살을 붙여보기도 하겠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부분만 본다거나 보고 있는 부분만 증폭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그런 이상적 모습은 바로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남자이다.

    예기(禮記)에는 이러한 말이 있단다. 경해(經解)편 첫 장에서 6경으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득실에 대한 공자님 말씀이 있는데,

    공자 왈, " 그 나라에 들어가보면 그 교화를 알 수 있다. 곧 그 사람됨이 언사나 얼굴빛이 온유하고 돈후함은 '시경'의 가르침의 효과이다'

    (子曰 入其國 其敎可知也 其爲人也 溫柔敦厚 詩敎也)

    온유는 사기(辭氣 - 말과 얼굴빛)를 말함이고, 돈후는 성정을 말한 것인데, 시란 찬미하거나 풍간(넌지시 돌려 말해 스스로 깨우치게 함)하거나 원망하거나 할 때, 직접 지적하지 않고 완곡하게 혹은 온당하게 노래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닦을 때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 온유하고 돈후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성경에도 '온유'라는 표현이 있다. 흥미롭게도 두 개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첫 번째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의 구절은 the meek(KJV, NIV) 또는 the gentle(NASB)로 해석된다. 흔히 '사랑 章'으로도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온유하며'에서의 온유의 의미는 kind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온유는 부드러움이지만 때론 강함이다. 친절함도 있지만 때론 담대하다. 자신의 신념과 자신의 목적을 지키되 항상 언사나 얼굴빛을 통해 다른 사람과 반목하지 않는다. 두터운 정과 배려인 '돈후'함과도 일맥상통한 의미일 수 있다.



    난 이래서 온유돈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도 약간의 부침과 반목도 있었지만 상당히 가깝게 이 길을 걸어온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아버지께서 우리 가훈을 만드셨는데, 바로 '베풀자'였다. 이런 한 단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고 있다라고 한다면 현실성이나 타당성이 떨어져 보이긴 하지만, 난 그 가훈이 나의 성정과 잘 맞는다 생각한다. 그래서 내 딸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말하곤 한다.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나 가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갖는 걸 기뻐하라'고.

     

    그래서 나는 물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논어((語) 옹야편(篇)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지자요수 인자요산 (智者樂水 仁者樂山)이 정확하게 틀린 해석이 아니라면 나 역시 지혜로운 사람보다 인자한 사람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비록 등산을 즐기지 않지만 산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해짐을 느낀다. 때론 산이 되고 싶어했었고, 다른 사람에게 산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든든한 산처럼 지켜주고 싶어했고, 경쟁자나 주변 사람에게는 부드럽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사람이 나에게 잘 어울리고, 또 내가 그렇게 추구하는 인물상이고 싶어한다.




    연비어약 - 鳶 솔개 연, 飛 날 비, 魚 물고기 어, 躍 뛸 약.
                 - 솔개(鳶)가 날고(飛) 물고기(魚)가 뜀(躍)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 속에 고기가 뛰노는 것과 같은 천지조화의 오묘한 작용

    " 산뜻한 구슬 잔엔/황금 잎이 가운데 붙었네/점잖은 군자님께/복과 녹이 내리네/솔개는 하늘 위를 날고/고기는 연못에서 뛰고 있네/점잖은 군자님께서/어찌 인재를 잘 쓰지 않으리오"
     
    솔개가 하늘에서 날고 고기가 연못속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성군(聖君)의  다스림으로 정도(正道)에 맞게 움직여지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새는 하늘에서 날아야 자연스러운 것이며,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자연스럽다. 이는 천지의 조화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퇴계(退溪) 선생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에서 천지만물의 자연스런 운행을 이렇게 노래했다.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하고 秋夜(추야)에  月滿臺(월만대)로다.
    四時佳興(사시가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어약연비) 雲影天光(운영천광)이야." 
    봄바람이 산 가득 꽃을 피우고, 가을 밤 달빛이 환히 비추는 것은 어긋남이 없는 우주의 질서이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와 함께 함은 자연과 합일된 인간의 모습이다.
    게다가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못에서 뛰노니 이는 우주의 이치가 잘 발현된 상태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은 만물이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들을 집약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원문]

    瑟彼玉瓚 黃流在中 豈弟君子  復祿攸降 鳶飛戾天 漁躍于淵 豈弟君子 遐不作人
    瑟彼玉瓚 산뜻한 구슬 잔엔
    黃流在中 황금 잎이 가운데 붙었네
    豈弟君子 점잖은 군자님께
    復祿攸降 복과 녹이 내리네
    鳶飛戾天 솔개는 하늘 위를 날고
    漁躍于淵 고기는 연못에서 뛰고 있네
    豈弟君子 점잖은 군자님께서
    遐不作人 어찌 인재를 잘 쓰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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