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머리장식]옛 사람들의 전통머리장식을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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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머리장식]옛 사람들의 전통머리장식을 알아볼까요?

베틀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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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던 옛 전통 머리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요?

 

 

고구려 시대의 불화

시녀의 머리 모양은 송나라에서 타마계를 변형시켜 다체롭게 만들었던 바로 그 머리 형태중 하나인 것이다.

고려 여인들에게 송나라의 머리 모양이 비치고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고구려 인학3호분 동수부인머리(힐자계)

우리나라 전통머리 중에서 가장 오해된 귀족머리 형태중 하나이다.

인학3호분고분은 고구려 미천왕의 묘로도 알려지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망명한 동수라는 삶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정확하지는 않아서

고증해 볼 가치가 있다. 동수부인에 머리 형태를 살펴보면 두상 두 장에 고계를 하고 환장식을 둘렀으며

이 머리장식은 중국이 진나라 고문서나 그림에서도 보여시며 고구려의 미가 독창적인 머리모양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거두미

가체 신금사목보다 앞선 시대의 기록으로 영조초의 병화집이 있다. 이는 문무겸전으로 명상이 있던 이 형상의 문집으로 이에 의하면

거두미는 내명부가 어유미는 외명부가 착용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왕명으로 보호를 받는 여성들인 명부 중에서도 궁중안에서는

기거하는 내명부는 거두미를 궁 바깥에 기거하는 여성들인 외명부는 어유미를 착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관기머리

궁중과 관아의 기생들 트레머리에 해당되는 기생은 일반 시중의 기녀를 말한다. 관기머리는 당연히 기생방의 여인들과 머리 모양이

달랐다. 그들은 신분상으로 관청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지정하는 격식대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어유미

어유미는 그 동안 그 모습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논란이 되어 왔다. 항상 거두미와 같이 취급되어 왔기 때문에 거두미와 그 모습에서

어떤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왔다. 특히 궁중복식사가로 권위신 김용숙 선생이 거두미보다 작은 목제 가발로 추정한 이후로

더욱 혼란스럽다. 거두미와 다른 점은 일단 크기가 작고 착용하는 층의 신분이 다르며 착용하는 때도 다르다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석주선선생도 이에 대해서 궁금증이 풀어지지 않아 거두미 어유미 여섯자를 쓴 쪽지를 2년 동안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단국대 출판부에 1993년에 발란한 관모와 수식 예술화 되어있다.

 

 

조선시대 불화

고려 말부터 전해져 온 조선 초기의 고계 중 가체를 이용한 높은 머리를 뜻하는 것이다.

 

 

발해 대인수 왕비

발해 250년 역사중 가장 성대 했던 시절은 바로 선왕때였다. 당나라 사람들은 이때 발해를 가리켜 해동성국이라 칭한다.

당나라 문화에 익숙했을 것이다. 발해는 신라와 담을 쌓고 오히려 당나라와 일본과 유화정책을 썻기 때문이다.

발해에 들어온 당나라 머리는 신라의 머리이기도 하며 대담하고 성대한 느낌과 미적으로도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다.

 

 

고려 노국공주머리

노국공주 머리 모양은 가체머리를 크게 올리고 장식 따로 머리 아래를 받쳤는데 명나라 상류층 여성들의 유행 머리와 유사하다.

노국공주는 인덕왕후 종실 위안의 딸이며 본명은 보합실리다 공민왕이 원라에 입조해 있던 1351년 시집왔으며 능은 운암사 동쪽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정능이라 하였다. 노국공주 영전의머리 형태를 재현한 것으로 가체를 크게 올리고 꽃과 보석, 구슬로 장식하였다.

 

 

고려시대 환계머리 장식

환게 머리장식은 고구려 안악3호분 묘의 여주인공에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 까지 널리 이용된 머리 장식중 하나이다.

환의 숙자가 한 개 에서부터 다섯 개 정도까지 보여지고 있으며, 이 스타일은 당나라 송나라를 비롯해 고려시대의 불화에서도

발견된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보여 진다.

 

 

조선시대 트레머리

트레머리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항상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가체머리와 어떻게 다르냐 하는 점이다. 또 얹은머리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 놓은 참고서가 많은데 얹은머리를 설명에 대조해 보면 서로 다르게 되어 있어 이는 또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어떤 자료에는 가체를 트레머리와 같은 것으로 설명해 놓기도 했고 또 어떤 자료에는 큰 머리 모양을 축소시킨 것으로 서북 지방에서 흔희 볼 수 있는 머리 모양이라고 했다. 이런 하이를 알고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체를 이용했다는 점,

머리에 얹은 형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궁년머리 쌍계

1982년 문화제 보호 협회에서 발간한 한국 복식에 보면 김동옥 교수의 신라 통일기 복식이 실려 있다.

긴 머리 모양은 큰 쪽 두 개를 올려놓은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다.

 

 

고구려 평강공주

25대 평원왕의 딸로 사람들이 바보라 했던 온달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장군으로 성장시킨 전설 같은 여인이며 그녀의 공주시절 모습을

총명하면서 진취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머리 모양은 요란하지도 않으면서 품격이 느껴지도록 표현했다.

 

 

조선시대 가체머리

얹은머리와 구별되는 가체 머리 가체머리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이 머리 모양에 대한 명칭이다.

기록에는 가체, 피체, 가계, 운계, 고계 허튼머리 등으로 표현되고 있고 현대에 와 이 머리 설명하는 각종 사전류나 참고서에는 얹은머리, 다래머리, 또는 트레머리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중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은 얹은머리이다.

 

 

신라시대 선덕여왕 머리

신라시대 여인들은 화려한 장식을 한다.

 

 

고구려 직녀머리

고구려의 유행으로 보이는데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되기를 기대해 보면서 작품을 한다. 두단으로 TKd여 옆으로 놓인 머리 모양을 틀로

만들어 올렸다. 직녀의 머리모양은 특수한 직업을 지닌 여성으로 보이게 한다. 직녀는 직업의 명창이고 그들의 상징하는 머리로

등장에 왔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비천계

황후가 창조해낸 절묘한 미용 예술 궁전 안에 살고 있다는 한 뱀에 관한 것이었다. 뱀은 늘 입안에 붉은 구슬 같은 것을 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큰 오동나무 열매였다. 어느 날 그 뱀이 황후의 머리에 나타나 일대 화재가 되었다.

황후는 매일 머리를 빗어 다듬었는데 그녀가 즐겨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 전체를 잘 서리어 묶어서 늘어뜨리는 형식이었다.

 

 

통일신라시대 돈황머리

1997년 경춘에 발간한 임영미 선생의 한국의 복식문화 제1권에는 신라여인들의 실제머리 모양을 알아 볼 수 있는 유물들이 그림으로

실려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자료에서 한 가지 특징으로 짚을 수 있는 것은 머리 모양이 위로 올라져 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 편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유물에는 이미 내린 형태의 머리 모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대륙에서의 머리 모양 변천이

한반도에 와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출처: 2009 한복사랑페스티벌/ 한국전통머리협회 부스에서 직접 촬영

 

머리가 특이하고 신기한것들이 많습니다.

어쩜 저렇게 만들생각을 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머리가 얼마나 무거울까?

진짜 머리인지 가발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힘듦속에서 굳건함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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