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군이 38선 넘어 처들어 온데 큰일 났어~~.." 


대문을 두두린 사람은 국방색 군복을 입은 순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온동네를 돌며 전쟁이 났으니 알아서 피난하라고 알려주러 다니는 것으로

아마도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것 같았다.

청천 하늘아래 날벼락도 유분수지  해방되고서 이제는 자유세상 이라고

열심히 일하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몇년간의 행복이 순식간에 일장 춘몽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38선 이북의 빨갱이 공산당이 처들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급함에 떨고 있었다.


장기를 두시던 자전거포 아저씨도 놀라고 두부공장 사장님도 놀라고 어머니도 놀랐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여기는 괜찮겠지 하는 요행을 바라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혹시나 하고 어느새 동산 꼭대기 높은 곳엘 다녀오신 김씨와 아버지가 소리 치신다.


 

"월미도쪽에 연기가 나는것이 이상해"


하며 한참을 고민을 하며 망설이시던 아버지,

화창하고 편안해야 할 일요일,

난데없이 빨갱이가 처들어 온다는 소문이 믿겨지지 않았다


해방후 상경하여 얼마나 힘들게 취직한 회사인가?

그런 소중한 직장을 놔두고 우리만 살겠다고 피난을 가야 하는가?

직장이 월미도쪽에 있는데 그정든 직장을 뒤로하고 나혼자 달아나야 하는가?

아무튼 아버지 마음은 회사로 달려가서 확인도하고 수위에게 인사라도 하고 떠나야 할것

같은데 월미도 쪽은 이미 길이 막히고 있을것 같아 회사쪽으로 갈수도 없었다.


거기에 갔다가 정말 길이라도 막히면 식구들의 안위도 문제지만 잘못하면 헤어져 평생을

만나지 못할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아버지는 대한제분쪽으로 가는것을 포기하고 그냥 피난을 가기로 했다.



(아래섬이 월미도다)



"월미도에 불이 났어 그쪽으로 갈수도 없어~" 


문규엄마 먹을것 하고 이불하고 ?하고"...


하는등 말을 끝내지도 않고 얼 버무리며 정신없이 마음만 다급해 했다.


"김씨 리어카 하나 팔아요. 계란가루 하고 밀가루를 줄테니,


~그리고  김씨는 피난 안가요? " 


"나야 고향이 여긴데 여기서 어델가? 그냥 있을거여"


평소에 우리집에 있는 배급물자를 가끔 사다 쓰던 자전거집 아저씨가 오늘도 밀가루와 설탕을

구하려고 찾아와서 아버지와 장기를 두고 있다가 난데없이 난리소식을 듣게 된것이다

이미 월미도 하늘에선 검은연기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 했고 멀리서는 포성도 들리는것 같았다.


" 박씨 따라와봐 괜찮한것 하나 있어"


그리고 뒤돌아

" 밀가루 1포 설탕 한관 그리고 계란깡통 3개만 줘요 리어카 값이에요"

먹을것이 귀했던 시기,


그렇지만 구르마를 안판다고 하면 그나마도 못 구하기 때문에...

리어카 값이 턱도 없이 비싸지만 우리가 다급하니 따질수가 없었다.

속으로 불만이 가득 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고 요구한데로 물건들을 내주고

자전거 바퀴로 만든 리어카를 끌고 오셨다.

양은솟과 곤로,,이불 먹거리등을 리어카에 가득히 바리바리 싣고


내가 태어난 송월동에서 어머니가 급히 만든 마지막 점심을 

末粉가루(제분시 상품으로 못파는 밀가루 지금은 닭 사료로 쓰임로 빚은

수제비로 대충 점심을 먹고

두부공장 사장과도 인사를 끝낸 우리 가족도 피난 행렬에 끼게 되었다.

그시간이 6 25일 일요일 오후 2시경이었다.


아버지는 구르마를 끌고 동생을 업은 어머니는 뒤에서 밀고 나는 구르마뒤에 매달려 미는둥

뒤로끄는둥 그렇게 남으로 남으로  충청북도 보은 아버지의 고향으로 길을 따라 갔다.


전동 변전소 길을 지나고 홍예문을 넘어 신포동 시장 거리를 헤집고 나와 답동사거리로 방향을

돌려 그렇게 쉬지않고 언제까지 가야 할지 예측도 못하는 먼길을 한발 한발 나아갔다.


신작로에는 여기 저기서 모여든 피난 행렬이 늘어 났다.

우마차로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일가들도 보이고,

자전거에 집채만한 보따리를 싣고가는 아저씨도 보이고,

그냥 식구마다 등 보따리를 메고 가기도 하고  머리에 힘겹게

이고 가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도 많았다,


또한 우리처럼 구르마로 살림살이를 싣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피난민의 행렬이 시간이 갈수록 자꾸 늘어만 갔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국방색 군복을 입은 어설픈 동작의 군인들이 하나둘 보이고

그중에 몇명은 자기들 키와 비슷한 총을 멘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피난민속에 숨어 같이 남으로 내려가는 공산 괴뢰군을 찾는것 같았다.

북쪽 하늘및 멀리 개건너와 박촌쪽에서는 가끔  , , 하는 포성도 들려 오기도 했다


(지금의 홍예문)


답동 성당앞을 지나 신흥소(초등)학교 앞으로 올라가 도원고개를 향하여 한시간정도 걸어 갔다.

아버지가 잠시 멈추고

힘들어 하면서도 살겠다고 말없이 따라가는 나를 번쩍들어 구르마

꼭대기에 태우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나갔다.


내생전 태어나서 이렇게 먼거리를 쉬지않고 걸어 본적이 없었다.

물론 첯돌때 조금씩 걸었고 워낙 나약하게 태어났지만 가벼운 만치 빠르게 걸었다고 한다

동생은 엄마 등에서 덥다고 칭얼 대면서도 나와 가꿍을 하며 심심치 않게 헤죽거리기도 하고

세상 모르고 파닥 거렸다.


얼마를 갔을까?


언덕 마루에 올라서서 아버지의 땀을 닦아 주며 어머니가 물을 한바가지를 건네 주고

숭의동 고개라고 한다.

왼쪽 옆에는 기찻길이 있고 오른쪽에는 초가집 몇채만이 길옆에 있었다.

한 숨을 쉬고  초여름 했살이 뜨거운 오후 3 4시쯤 되었을까?


피난민들 사이를 헤집고 한무리의 군인들이 오더니 피난민 대열중에 젊은 남자들을

가려내며 뭐라고 몇마디 주고 받고 하더니 남자를 끌고 가려고 한다.

순간 주변이 술렁 거린다.


몇몇 행렬은 못본척 도망가듯 앞만보고 재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젊은 남자에게 군인들이 가자고 하고 젊은이는 안간다,못간다 하며 큰소리가 오고 가고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버지도 잡힐것 같아 불안 하신지 다급히 어서 가자고 재촉하며

구르마를 끌고 가기시작 했다.

고개를 푹숙이고 그들을 못본체하며 얼마를 갔을까?

뒤에서 세명의 군인이 아버지를 부른다.


"어이 구르마 양반 할말 있으니 잠깐 거기서~ "


설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외침이 너무 공포 스럽고 서릿발 같았다

또한 식구와 구르마를 끌고 도망도 갈수가 없었다.

군인들중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아버지의 나이와 이름을 묻고 가족관계를 확인하고는  


"피난을 어데로 가십니까?"


"충청도요 거기가 고향입니다"


"그래요? 그럼 잠시 식구들 여기서 기다리게 하고 박씨는 저희와 잠시 같이 갑시다"


하며 한명이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다른 두명은 어머니와 구르마를 초가집 그늘로 옴겨 놓는다.

이에 당황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울며 군인들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제발 보내 달라고....


"나는 나이도 많고 처자식이 있어서 같이 남을수가 없어요 한번만 보내주세요"


그러나 애원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들에게 선택된이상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를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한참을 큰소리로 왈가왈부 생과사를 넘나드는 실강이와 밀고 밀치는 몸동작을  벌이다가

결국은 무지막지하게 다그치는 군인들에게 끌려가며 하신말씀,


 "문규 엄마 아무데도 가지말고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꼭이야 울지 말고 ~"


그렇게 소리치고  땅에 주저 앉아 통곡하는 엄마와 우리형제를 뒤에 두고 끌려 가시면서

뒤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큰소리로 외쳐 다짐 하셨다.


" 꼭 올께 꼼짝말고 기다려~"


큰소리로 억울하다고 다투고 호소하며 소리쳐 반항 하셨기에 탁하고 칼칼한 쉰 소리로

보내 달라고 울부짓던 아버지의 처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내귀에 여운으로 남아 있다


얼굴엔 뜨거운 피 눈물을 계속 흘리시며 순식간에 우리와 생이별을 하며  아버지는

군인들과 함께 그렇게 어데 인가로 사라지셨다.


엄마와 우리는 낯선 그곳에서 아버지가 사라저간 방향을  처다보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하염없이 울면서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었다.


1950,6,25,새벽에 공산당 괴수 김일성 쏘련의 지원을 받아 선전 포고 없이 

38선 전 전선을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불법 남침하여 벌린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침략전쟁을 자행 하였고.

우리민족의 참극은 이제 시작 되었던 것이다.  


평화로운 초여름의 일요일 우리 남한당국은 아무 준비도 못하고 그렇게 속절없이

김일성의 마수에 당하고 말았다.

~ 어찌 잊으랴 1950년 6월25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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