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뛰어야 산다


아버지는 일단의 군인인듯한 무리들에게 잡혀 젊은청년들과 함께 숭의동 고개를 넘어 

신흥동 해광사 앞길을 지나 신흥 소학교 운동장으로 끌려 갔다.


거기엔 벌써 수백명의 청장년들이 모여 있었고 군 작업모에 군복을 입은 꽤나 지위가

높은 사람인듯한 사람과 그를 따르는 일단의 군인들도 30~40 여명은 되는듯 했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중 반이상은 젊은 학생들이었으며 그들은 나라를 지키겠다고

솔선하여 지원한 사람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버지와 같이 식구들과 피난을

가다가 젊은 남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운동장 여기 저기서 억울 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과,

젊은 사람이 나라를 안지키면 누가 부모 형제를 지키냐고 계몽하는 사람들,


묵묵히 군인들의 지시에 따르며 열을 마춰 진열을 짜고 앉아서 휴식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긴 장총을 메고 운동장에 모여 있는 남자들을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는 군인들로 뒤 범벅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느긋한 하루를 지내려던 평화롭고 화창하던 6월의 일요일날 아침에 

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북쪽 공산당 괴수 김일성이가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처내려

왔다는 소리다.

신흥학교 운동장의 확성기로 라디오? 선전 방송이 들린다.


"오늘 새벽 4를 기하여 북괴 김일성이가 선전포고도 없이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을 자행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군이 괴뢰군들과 용감 무쌍하게 맞서서  막아 내고 있습니다


 국군들이  곧 그들을 몰아 낼것이니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고향을 지키시고


 외출중이거나 휴가중인 전장병은 속히 소속 부대로 귀대를 하시기 바랍니다 "


라디오에서는 대충 이런 내용이였지만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끊임없이

들려 왔다.


(38선 넘어 남침하고있는 북괴탱크신식무기가 없던 국군으로서는 속수 무책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운동장안에 집결된 인원이 거의 1,000 여명은 넘을것 같았다.


지금은 군인들에게 더 끌려 오는 사람들도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용군으로서  만약에 필요한 예비병력을 편성하는 것이라 한다.


연단에서서 지휘하는 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1,000여명의 남자들을 편대를 짜기 시작했다.

하나의  편대를 중대라고 불렀으며 그인원이 약 100여명이 되었고 그중대에는 네사람의

군인들이 배정되었다.


지원자들인듯한 젊은 학생들도 5 중대를 편성하고 그들은 20명의 부하들과 책임자가

직접 통솔 한다고 하는것 같았다.


아버지는 10중대에 배정되었는데 4명의 군인들과 통상 통명을 마쳤고 각 중대마다  

특출한 한 사람을 골라 나이와 이름을 확인하고  적어 가더니 책임자에게 가서 승인을

받는지 각 중대에 선임된 사람을 번갈아 처다본후  책임자의 지시가 내려 졌다.

팔뚝에 차는 완장을 하나씩 주며 중대장으로 임명 한다고...


이것참 야단 났다,

숭의동 벌판에서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 무슨 일은 없는지,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고 끌려 오는 순간부터 애간장이 타며 썩는 이속을 어찌 해야 할지....


 6가 넘었을까?

소 달구지 몇대로 실어온 주먹밥과 된장국이 작은 바가지로 배식 되었다.

아버지는 중대장이라 가만히 있어도 중대원들과 4명의 군인이 알아서 밥을 타다 주었다.

그러나 밥이 넘어갈리가 없었다오로지 타는 가슴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속수 무책이었다.


학교 운동장 여기 저기를 돌아 봐도 너무 공개되어 있어 뚫고 도망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후 중대장 회의 집합이 있어서 교장실 안으로 들어가 회의에 참석 하여

10 여개 중대의 완장찬 중대장들이 모두 모여 인사 하고 난후 예기를 들으니


" 탱크를 몰고 내려오는 적에게 국군이 밀리고 있다고 하는 소식과 내일 아침


  상황을 본후 의용군의 참전, 혹은 후퇴를 결정 하겠다 "


고 하는 내용이었다.

중대원 일행이 있는곳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어찌 해야 하야 할지 안절 부절하며 속만 태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녁 8시쯤, 아직 월미도 쪽으로 해가 걸려 있었다.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멀리 바닷가 위 하늘에선 가끔 번개를 치는듯

폭발 섬광이 번쩍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지는 4명의 소대장들을 모이게 하고 앞일을 의논하는척하며 그들에게

경계심을 풀게하는면서 의용군의 임무에 대단히 충성하는 척 했다.

그리고 눈치껏 분위기도 뛰우면서...


" 이렇게 만났으니 인연인데 우리 같이 막걸리 한잔씩 하자 "


고 제의하고 지전을 몇장 꺼내주며 군인에게 막걸리를 사올수 있는냐고 물었다.


" 대포 생각은 간절 하지만 대장에게 들키면 혼납니다 "


하며 중대장님이 이곳분 이시니 한번 구해 보시지요 중대장인 아버지에게 오히려 부탁을 한다.

아버지는 흐미 하나마 한가닥 실날 같은 희망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해도 넘어가고 또한 정문 보초가 일반인들 2명이 서고있으니 잘하면 밖으로

나갈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해서인가 서산에 뉘엇 뉘엇 저물어 가는 붉은해가 너무느려 원망 스러웠다.

중대원들은 소속별로 교실과 강당에 자리를 잡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여기 저기

진행을 감독하며 기회만 보고 있었다.....


이제 9시쯤 되었는지 밤이 깔리고 어두워지기 시작 했다.

아버지는 나이 많은 군인을 불러 한잔 하는 시늉을 보이며 두명만 정문까지 같이 나가자고 했다.


그 군인은 쾌히 대답하며 조금만 더 하며  완전히 어두워 지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일각이 급해 미치겠는데,  

남의 속도 모르는 군인놈은 완전히 세월아 네월아 태평세월이었다.


정말 냉정하고 얄밉기가 너구리 같아서 한대 쥐어 박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를 갈며

주먹에 힘을 쥐고 참았다.

그리고 얼마후 그군인과 두명의 중대원을 대동하고 왼팔에 중대장 완장을 찬체

시침을 딱 떼고 정문을 통과 한다.


" 중대장님 어데 가십니까? "


" 어 수고 하시는군요 나간 사람들 없죠? "


" ~! "


" 잘 지켜요 우린 대포한잔 생각나서 막걸리 한잔 하고 올께요~ "


하며 보초의 어깨를 다독이며


" 아무말도 하지 말고 이따가 막걸리 생각 나면 따라 나와요~ "


  ~ 얼마나 순진한 우리 동포 인가? 정문을 지키는것이 아니고 탈출을 도와주는 보초가 아닌가?

책임자인 군인은 거기까지 배웅하고 정문에 서서 아버지와 두명이 시장쪽으로 가는것을 확인하듯

한참 바라보다가 강당으로 돌아 갔다.


뒤를 돌아보니 드디어 정문의 불빛이 안보이고 지척이 암흑이다.

단지 시장통의 주막집만이  남포등불이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같이간 두사람을 떼어 놓아야 한다,


 



9월 3주 이 블로그 인기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