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일단 주막집으로 들어가 두사람을 앉히고 주머니에서 지전을 몇장 꺼내 주모에게 주며

막걸리를 한말 주문하고 따로 한되를 총각김치 안주와 함께 주문해 두사람과 한사발씩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지전을 꺼내 한장씩 둘에게 나누어 주고


" 내 잠깐 시장안에 사는 누이 한테 다녀 올테니 더 마시고 있어요 "


하고 나가려 하자 두사람이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완장을 보여주며


" 내가 누구요? 내가 중대장이요 늦으면 두사람은 막걸리 한말 들고 먼저 들어가요


  나는 늦더라도 꼭 돌아 올테니 "


하고 두사람이 말리기도 전에 벌써 문을 닫고 시장의 어둠속으로 뛰어가며 숨었다.....

그리고 잠시후 아버지는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목에선 조금전에 마신 막걸리가 뱃속에서 출렁거리며 내는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주막집도 신흥학교도 중대장도 모두 생각밖의 일이다.


오로지 컴컴한 숭의동 벌판에서 갖은 공포에 떨며

끌려가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남편을,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울고 있을

식구를 생각하며 어둠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도 할틈이 없었다,


생각 나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게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한다는것 밖에 없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자빠져 나뒹굴어지면 오똑이처럼 또 다시 일어나  숭의동 벌판으로

뛰고 또 뛰었다.


한편 울다 잠들은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는 서러움에 지쳐서 흐느끼고 있었다.

나도 엮시 아까 끌려가신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엄마와 함께 울다가 또 울다가 지쳤다.

아니 나는 엄마와 동생이 울고 있으므로  무서워서 같이 울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 울어서 눈물도 말랐다, 가슴과 목이 아파와서 더 울수도 없었다.

어머니도 두눈이 퉁퉁부은 상태로 구르마에 기대어 가끔 딸국질을 하듯 온몸을 떨듯 흐느끼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산넘어로 넘어가고  산그림자가 벌판에 드리워 지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졸려와 자꾸 눈이 감긴다.


" 엄마~ 졸려~, 배도 고파~ "  

" 배 고프니조금만 더참어, 참었다가 아버지 오시면 쑥개떡 먹자 "


하며 내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두손으로 몇번 문질르며 닦아 주신다.

그때 엄마에게서 가슴에서 나는 비릿한 젖냄새가 코끝에서 맴도는데 그냄새가 그렇게 맡기 좋았다.

(~ 지금은 맡아볼수 없는 포근한 엄마의 따듯하고 구수한 가슴 냄새.....)


피난 가는 사람들이  안보이기 시작한것이 한참 되었다.

숭의동 벌판에 홀로 남아 공포에 떨며 애간장을 태우며 통곡하기를 몇시간인가

이제는 지처서 울힘도 없다.

배도 한없이 고프고 눈이 자꾸 감긴다...정말 졸립다.... 졸려서 죽을것 같았다...


아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개건너 백석 방향 하늘에서는 자꾸만 번갯불 같은 붉은 섬광이 자꾸만 번쩍이다가

어두워지고 또 번쩍하고 어두워지기를 계속한다.

공산당이 가깝게 저기까지 처들어 온것 같았다.


멀리서 자동차 라이트가 얼굴에 비치며 자동차가 지나갈땐  행여나 아버지일까?

아니면 공산군 차일까?

하며 겁에 질려 고개를 숨기기도 하고 차가 지나간뒤엔 다시 고개를 내밀며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고 컴컴해진 하늘을 보며 그리고 소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 문규야 일어나봐 아버지가 오는것 같애 어서 일어나~ "


" ? 아버지가 와? "


" 그래~ 잘 들어봐 저기 저쪽에서 너를 부르는 소리 안들려? 들리지? "


엄마와 나는 아버지가 끌려갔던 방향의 어둠속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목소리를 한참

찾았다.

...................


마침내 나는 어둠속 멀리에서


" 문규야~~ "    


" 문규야~ 어데있니 ? "


하고 목이 쇠어서 컬컬한 아버지가 숨이찬 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돌아보며


" 아버지다 엄마 아버지야~ "  


하며 어둠속 아버지 소리가 나는곳을 향해 뛰어갔다.

세상이 온통 신났다 이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껏 소리쳤다.


" 아 버 지 ~~~ "


아들의 소리만듣고 방향을 잡으신 아버지가 어둠속에서 달려온 나를 발견 하고는

번쩍들어 안고 내볼에 아버지의 따가운 볼을 비벼 대며


" 많이 기다렸지? 이제 또 가자 "


하며 나를 내려 놓고 엄마에게 가서


자기, 걱정 많이 했지? " 이제 부지런히 가자 "


하며  소리없이 감격한 기쁨의 눈물을 쏟고 있는  엄마의 양어깨를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두눈엔 굵은 감회의 눈물이 소리없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것을 나는 보았었다.


그것이 바로 사나이의 눈물이며  남편과 아버지가 가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철옹성 같은 사지를 탈출해 나온  한가족을 책임진 이세상에 존재하는 대한민국 가장의

숭고한 눈물이었다.


그런 사실을 61년이 지난 오늘 다시한번 추억해본다.....


그렇다,

전쟁통에 본의 아니게 끌려가며 생이별을 했던 많은 가족들의 아버지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  


아직도  생사를 알수 없고  지금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때 

나는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난것이  하눌님께 감사하고

단군할아버지께 한없이 감사할 일이었다 ^^*


그리고  개인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같은 민족에게 이념이 다르다 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삼천리 강토를 피 바다로 물들인 민족의 원수 공산당 모리배 김일성.

이자는 내가 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 사라져  내이름이 호적에서 지워진다 해도

잊을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렇게 무차별로 휘둘렀던 총검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또는 길옆에서,

또는 논밭과  다리 밑에서 단말마의 비명에 쓰러져 썩어 가는 주검들이 너무 억울해서 

죽을때 뜬 눈을  아직도 감지 못하고 구천에서 방황하고 있을 영혼들 때문에.......

절대로 잊어선 안되리라.  


아버지는 다시 구르마 손잡이 안으로 들어가  끌며


" 문규엄마 오늘 밤 안으로 인천을 빠져 나가 도망 가야돼 또 잡힐수 있어

  내가 무조건 도망 나온거거든  자기가 힘들더래도 소사까지는 가야해 "


" 문규 아버지 재가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하는데 자기 오면 먹자고

  아직 아무것도 안먹였어 "


그때서 아버지는 우리가 물한잔  안먹고 생으로 굶으며 당신을 기다렸던 것을 아시고는

또 눈물을 흘리시며 생각에 잠긴다.


아버지는 신흥학교에서 주먹밥도 먹고 시장에서 막걸리도 한대접 마셨다..

잠시 생각하시더니


" 아차~ 그랬지 당신은 굶었구나 ~ 그래~ 그래 우리 먹으면서 가자 "


하며 구르마를 세우고 구르마의 보따리를 클러 먹을것을 꺼내 내려 놓았다.

쑥으로 빚은 말본가루 개떡 한개씩 그리고 물 한사발을 놓고 세식구가 그렇게 허기를 채웠다.


아버지는 언제 군인들이 눈치채고 쫓아와 다시 잡혀갈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단 일각도

더 이곳에 머무를수가 없었다 .


날이 밝기전에 인천을 벗어 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길을 재촉 해야만 했다.


(먹는시간과 배변을 하는 시간이 아니면 밤낯을 안가리고 계속 걸어야 했다,자료사진)



우리는 그밤을 수봉산 서쪽의 제물포를 통과하여 지금의 경인국도를 통하여 소사

양호재 고개를 찾아 아버지는 구르마를 끌고, 어머니는 밀고 나는 구르마위에 올라가서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 졸며 자며 엄마와 아버지의 꿈을 꾸며 피난을 가고 있었다.


그꿈은 아마도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까르륵 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고

엄마는 부엌에서 맛있는 개떡을 만들어 노란 설탕과 열무김치와 함께 소반에 담아내와

먹자고 하고, 동생 필규는 시원하게 꼬추(?)를 내놓고 방안에서 쌔근쌔근 자는꿈이었다.


얼마를 갔을까?

아침해가 뜨거운 신작로길 한옆에 잠시 서며


" 이제는 낯에는 숲속으로가며 쉬고 밤에만 내려 가야 하겠다 "


하는 검게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에는 굵은 물방울이 콧등을 타고 계속 흘러 내리고

밤새 걸어 지친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니 말이 없는게 아니었다.

말도 할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것이다,


동생을 잠시 내려 쉬를 시키며 잠시 순간을 쉰다.

발바닥은 짖무르고 배는 고프고 허기져 동생에게 줄 젖도 말라 버린것 같았다.


젖을 물고있는 동생이 자꾸 보채고 있었다.

양호재 고개와 미산리길을 지나 수원으로 가는 신작로길이다. 몇시나 되었을까

길거리 마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끼리 길옆에서 밥이나 죽을 끓이고 있었다.


아버지도 신작로 한적한곳에 구르마를 세우고 여기서 아침먹자 하며 곤로와 솟을 

내려놓고 물초롱을 들고  근처 또랑을 찾아가 물한초롱을 길어 와서 엄마에게 말 하셨다.


" 자기 주먹밥을 하자, 아무래도 그것이 편할것 같애 "


엄마도 피난가면서 자주 멈춰 밥을 하는것은 앞으로 나가는데  방해만 될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그렇게 한다며 동생을 아버지에게 주고 보리를 먼저 넣고 끊인뒤

다시 거기에 쌀을 한줌을  씻지도 않고 보리 끓른 솟에 털어 넣었다. 쌀에 묻어 있는

쌀분도 씻어 버리기 아깝지만 씻을 물도 풍족 하지 않았다.


(이 주먹밥은 쌀이 많이 들어가 깔끔하고 맛있게 생겼다.자료사진)

 

그렇게 만든 주먹밥을 멸치를 넣어 깡통(CAN)으로만든 고추장과 소금을 찍어 요기를

하고 몇시간을 눈을 붙이며 쉰후 다시 길을 재촉하여 수원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626,  

우리 피난민들은 38선 전선의 소식과 아군의 반격이 어떤지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남쪽으로만 가면 살것이라는 희망만을 가슴과 머리에 간직하고 집잃은

개미들처럼 그렇게 무리지어 길게 행군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군이 북괴군을 물리칠 것이고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 다시 찾아 오면

된다는 희망을 갖고서......

 

신작로에 늘어난 피난민들.

모두가 남으로 가기 위하여 수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속에 끼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지금 걷고 있는곳이 어데인지 어디쯤인지도 모른체 앞에가는 피난민들을

따라서 자동적으로 발을 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가끔 먼지를 뒤집어 쓰며 군인들을 태운 도라꾸(트럭)들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고 또 어떤 도라꾸들은 보따리를 산높이 쌓아 올리고 그위에 수십명이

올라타고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붕,붕거리며 힘들게 움직여 우리들 앞을 통과해

나가는데 우리는 그사람들로 부터

김포 비행장이 폭격을 당했고 공산군이 임진강을 넘었다는 전황을 들었다.

그러니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얼마를 갔을까?

오른편 쪽으로는 넓은 염전이 보이고  더 멀리에는 바다가 보인다. 지금의 고잔이나

반월 어딘가로 추측이 되는곳이다.

 

신작로 양편에 붉은완장을 찬 남자들 수십명이 손에는 죽창과 몽둥이등을 들고

언제 부터인지 젊은 남자들을 모두 끌어내어 수십명씩 정렬시키고 우리들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몇몇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고 젊은 남자들은 혼비 백산하며

어깨 짐들을 벗어 버리고 후다다닥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는 엄마에게 


" 자기~ 이길로 수원쪽으로 저사람들 하고 계속가~ 20리건 30리건 계속 더가

  그리고 거기가 어디던지 길옆에서 기달려

  오늘밤 안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갈께~"


하고 아버지도  말없이 내볼을 쓰다듬고는

우리들과 조금 떨어져서 저들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낯추어

젊은 피난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다시한번 생사를  초월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좌충우돌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무작정 붉은 완장들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 나갔다.

논뚝으로 숲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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