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죄 없는 주검들
아버지가 지금 간다.
부디 무사 하기만 해 다오~~
헉, 헉, 헉,,,
다시 힘을 내어 안산을 지나고 반월을 통과 수원을 향하여 쉬지않고 발을 굴렀다.
아침해가 뜨거워지지 시작 하고
계속 줄을 잇는 피난민들을 살피면서 달리고 있는데 이제는 명치끝이
뜨끔 뜨끔 아프기도 하고,
다리엔 힘이 없는지 발을 땅에 디디는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아~ 이자리에 그냥 주저 앉고 싶다.
아~ 아니, 여기 어디 그늘막 아무데서나 다리좀 쭉 뻗고 잠시 쉬고 싶다.
아니 잠도 자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뛰고 있는데 자꾸 눈이 감아진다, 그래도 뛰고 또 뛰었다.
얼마를 뛰었을까?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 봤더니 아차~ 이런 내가 자면서 뛰고 있었다.
아냐 조금만 더가면 식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조금만 더 버티자 자지말자 하며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려 찍어 보았으나 허벅지는 아무 감각도 없었다.
만져봐도 감각없는 다리...
그러나 그 다리로 내가 달리고 있었다.
6월27일
엄마는 동생을 업고 구르마를 끌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동생이 울면 잠시 앞으로 돌려 젖을 물리며 그렇게 계속 나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오신다던 아버지는 하루 낯하고 한밤이 지났고 다시 해가 뜨겁게 비치는데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구르마를 밀면서 혹시나 아버지가 오실까?
하며 뒤를 돌아 보는 나를 엄마가 위로 한다.
" 문규야 아버지 꼭 올거야 조금만 더참고 가자 "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이 엄마같지가 않았다. 예뻣던 눈은 부었고 빨갛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세수도 못한 까맣게 탄 얼굴은 비지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었고 엄마는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지
다른 피난민들과 같이 뒤처지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갔다.
가끔 고무신을 벋고 발을 식히는데 발과 발가락 사이엔 검고 두꺼운 때가 찐득찐득하게 붙어 있었다.
아 참, 나는 어제 저녁부터 오른쪽 귀가 가렵고 간지러워 참지못하고 손가락으로 자꾸 귓구멍을
쑤셔댔더니 이제는 귀에서 맑은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귓구멍이 갑자기 간지럽고 따듯해지면서 진물이 흐른다, 업친데 덥친 격이다, 엄마에게 말했다.
" 엄마 귀에서 물나와~"
엄마가 잠시 구르마를 멈추고 내귀를 보더니 구르마에 실어놓은 이불 끝에서 솜을 조금 뜯어내어
가늘은 꼬챙이에 감아 내귀를 닦아내고 완두콩만한 솜을 뭉쳐 귀를 막아주며 묻는다.
" 아프진 않니? "
" 응 안아파 "
그렇게 응급조치를 하고 우리는 또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4살인 나는 뒤에서 밀고 동생 필규를 업은 엄마는 구르마를 끌며....
저기 앞에 피난 가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거기서 잠시 쉬는것 같았다.
시원한 냇물이였다(지금의 일월저수지 하류)
피난민들은 거기서 밥도 짖고 목간도 하고 어떤이들은 발래도 하고 있었다.
엄마도 그 근처까지 힘겹게 구르마를 끌고가 세우고 우리 모두를 냇물에서 닦게 했다.
동생과 나는 옷을 다벗고 목간을 하고 엄마도 몇일 못씻은 몸을 옷을 입은체로
냇물에 들어가 시원하게 주저 앉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닦는것 같았다,
그때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웠는지 지금도 그때의 그 냇물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엄마는 그사이에도 그동안 밀렸던 많은 일을 해놓는데
동생 기저귀도 빨고 양은솟도 닦고 엄마와 내 고무신도 닦아 말렸다.
그순간에도 나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불을 지펴 죽을 끓이기 시작 했다.
냇가에서 금방뜯은 쑥등 몇가지 나물을 넣고 주먹밥 두덩이를 솥에 털어 넣고는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맞춘 맛있는 죽이었다.
여기에 모인 많은 피난민들도 모두 밥을 짖거나 음식을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슬프고 처량해 보였다, 전쟁을 피해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좀 쉬어야 겠다.
어디 냇가라도 있으면 잠시 목좀 추기고 좀 쉬었다 가야겠다.
더이상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것 같아 불안 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안된다.
살아야 가족을 만날수 있지 않는가?
살려면 우선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저기 저 앞쪽 멀리에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때는 연기도 나고 밥도 짖는 모습이다.
언듯 밝은 예감이 스친다, 그렇다 저곳에 내 식구가 있을것 같다,
그래 어서 가보자, 없으면 잠시 쉬고 또 가면 되지....
들뜬 마음으로 무조건 그곳을 향해 내 달렸다,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 갔다.
그때
많은 무리들과 몇발작 떨어진 냇가에서 나를 향하여 뛰어 오는 아이가 보인다.
" 아버지~~ 아버지~~ 엄마, 아버지야~~ "
그랬다 내 아들이었다.
기적처럼 그곳에 내 식구가 모두 무사히 도착해 밥을 짖고 있었다.
아~ 이렇게 감격 스러울수가 있을까?
내식구를 살아 만났다.
다리엔 힘이 빠지고 더 뛸수가 없어서 주저 앉으려 했던 이곳에서 이순간에
모두가 살아서 가족을 만난 것이다.
조금 전까지도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감각도 없이 뛰어 달리며 천지신명님께 내가족을
살아서 만나게 해달라고 빌면서 뛰어 왔었다.
아~ 천지 신명님이시여~ 고맙습니다 하눌님 감사합니다.
마음 속으로 감사하며 울부짖는 내얼굴에 감격의 눈물이 또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체면도 차릴것 없었다,
내마누라와 내자식 모두를 한꺼번에 포옹하고 얼마동안 크게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낸후 냇가에 들어가 온몸을 푹 담그고 모든 피로를 씻어 흘려 보냈다.
애엄마가 막끓인 따듯한 죽 한사발을 맛있게 먹고 그자리에서 들어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잠이 든것이 아니고 완전히 죽어 있는것 같았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애엄마가 광목 홋이불로 구르마에 연결하여 햇빛을 가려준 덕에 몇시간인지 아주 포근하게
잠을 잘수 있었다.
검게탄 문규 엄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눈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본순간 내 가슴을 울컥한다.
해방군 이라는 놈들 한테서 구사 일생으로 도주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오직 고향까지 가는데 필요한것은 시간뿐, 꺼릴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힘을 내서 수원 오산을 향하여 힘차게 이동을 해야 한다, 충분히 쉬고 배불리 먹고 공산군들이
처들어 내려 오기전에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야 한다.
그렇게 몇시간을 편안하게 쉰후 기력을 회복한 아버지와 엄마,
모든 짐을 구르마에 올려 싣고...주위 사람들과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다른 피난민들도 한가족씩 또는 한 무더기씩 그곳을 떠나 수원을 향하여 출발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끌고 나는 구르마 위에 타고 동생을 업은 엄마가 뒤에서 밀고)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힙차게 앞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르마를 밀겠다고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아버지에게 말했다.
" 아버지 천천히 가, 내가 구르마 못밀잔아~ "
내가 아버지 발걸음을 따라갈수가 없었다, 거기다 나는 네살박이 어린이였다.
내 옆에서 구르마를 밀던 엄마가 나를 번쩍 들어 구르마에 올려 놓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죄없는 주검들
6월 29일
맥아더 장군이
시찰하고 B29 폭격기로 평양을 폭격 한 날이다(자료 확인)
수원을 지나고 남으로 남으로 가던중에 우리나라
엊그제 대전으로 피난 했다는 소문도 들려 왔고 어제 새벽에는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는 말도 들었으나,
그보다 더안타까운 소식은 우리 국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수원으로 후퇴 하고
있다는 소식 이었다....
뙤약볕이 내려 쬐는 한 낯 오산을 지나 천안을 향해 가던중 나는 일생에 몇 안되는
무서운 일을 겪고 말았다.
우리는 구르마를 끌고가 길옆의 빈집으로 가서 쉬고 있었다.
한 200 여미터 되는 신작로 끝에서 한 아저씨가 등짐을 메고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고
그뒤에는 도라꾸 한대가 스믈스물 따라오고 있었다.
멀리서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 오는데 그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이었다.
" 부~~우~~웅~~~~ "
그때 아버지가 저기서 걸어 오는 아저씨에게 두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외 쳤다,
" 빨리 뛰세요~~~ 아니 거기 업드려요~~ "
" 붕~~~~~~~~ "
비행기 소리가 더욱 커지고 빨라 졌다 그아저씨는 아버지가 소리치는 뜻을 알아채고
화들짝 놀라 그자리에 급히 업드려 우리쪽을 향하여 아주빨리 기어 오고 있었다.
" 따 따 따 따 따 따~~~~ "
" 따 따 따 따~~~ "
그 비행기는 신작로로 달려가는 자동차를 향하여 순식간에 기관총을 쏴대고 지나갔고
신작로엔 하얀 흙먼지가 쓩쓩쓩 튀어 오르고 도라꾸는 기관총을 맞았는지 우왕 좌왕
비틀 거리다가 길 옆 도랑으로 쑤셔 박혔다.
그순간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왜 그랬는지 그집의 마루밑으로 쑥~ 들어가 숨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더이상 이곳으로 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꼼짝도 못하며 드러 누워
살려 달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아버지가 급히 달려가 그 아저씨를 부축 하여 이 쪽으로 데려 오는데 그아저씨는 얼마나 놀랐는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급하게 기느라 앞 무릅이 모두 파열되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기관총을 쏘면서 한번 지나가면 죄없는 피난민들이 이렇게 죽어갔다
(비행기가 지나간뒤 처참한 피난민들의 모습 ; 자료사진)
나는 그때 하늘에서 붕~ 거리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이렇게 엄청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후부터 비행기 소리만 나면 누구보다 먼저 아무곳으로나 도망을가서
온몸을 집어넣고 숨었다고 했다.
6월 30일
(북괴군이 한강을 넘어 밀고오고 미군 4만여명의 투입이 결정 되었다 ; 자료확인)
이제는 가끔 날아와 쏘아붓는 비행기의 기관총이 무서워 신작로가 아닌 산속길을 타고
움직이기고 신작로보다 더 힘들고 속도도 느렸지만 남으로 가는 모든 사람들도 다 그렇게
숲길로 피난길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는 산속길이라 힘들지만 한낯에도 계속 이동 할수가 있었기 그래도 하루를 걸으면
100리(40km)이상을 갈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보은까지 2일만 더 가면 도착 할수 있다고 했다.
멀리 우리가 지나온 북쪽 하늘에서 날아오는 비행기 소리도 가끔 들려왔고
산밑의 신작로 쪽에서는 기관총 소리도 들려왔다.
공산당들이 이제는 오산과 천안 평택을 넘어와 공중 공격을 하고 가는것 같다고 같이 가는
피난민 아저씨들과 아버지가 말을 하는것을 들었다.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공산당 놈들이 우리보다 먼저 대전을 점령하고 기다릴것 같다며
다시 피난길을 재촉해 걸었다.
아~
우리 국방군들은 어디에 있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햇살이 뜨거운 한낯에는 이렇게 더위를 피하며 쉬기도 했었으나 이제는 그 다리밑 마저도
마음놓고 앉아 쉬며 시원한물에 지치고 상처난 발을 담글수도 없게 되었다.
자동차던 달구지던 피난민이던 관계없이 움직이는 물체에는 무조건 비행기가 한두대씩
날아와서 폭탄을 떨구고 기관총을 쏘고 가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출몰하며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 하고 부터는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이 산길을
이용하여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힘들고 지친몸을 다리밑 그늘에서 쉬고있는 피난민들 ; 자료사진)
한강을 돌파한 북괴군의 진격 속도가 빨라진 모양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우리와 반대로 열을지어 올라가는 국군들이 보였었는데...
이제는 비행기가 자주 우리들 보다 앞질러 남쪽으로 네려가 폭격을 하거나 우리들 근처에서
기관총을 쏴대고 돌아 가는등 우리가 가는길의 주변을 떠 다니며 정찰도 하고 사라진다.
비행기가 날아와 기관총을 쏘고 간자리엔 틀림없이 이렇게 사람들이 쓸어져 있는것을 보면서
그참혹함에 어린 나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과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아버지와 엄마를 감시 하듯이 놓지지 않으려고 바짝 따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