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 시골에도 갖은자와  못 갖은자, 배운자와 못배운자간의 이념적

갈등의 싹이 암암리에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낯과 밤을 구분하여 국군과 인민군놈들이 출몰하고 동리인들의

무고한 고발에 피를 말리는 도피와 굶주림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어머니와 애엄마 그리고 문규와 필규를 업고 병필이는 나와 지게로 보따리 몇개를

등에지고 또다시 으슥한 밤을 틈타 또 다시 피난길을 나섰다.


얼마동안 머물었던 문간방에는 아버지만 남아계시고 우리식구는 모두 깊은 산속으로

피해 숨어야 했다.


팔매실(회북면 송평리 : 옛날 高麗葬 터)의 밤길은 정말 험했다.


낮에는 국군들이 인민군에게 부역한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고.

밤만 되면 다시 인민군들이 혈안이 되어 국군에게 부역한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기에

마을의 젊은 청장년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피신을 하느라 한곳에 머무를수가 없었다.


밤에는 인민군이, 낮에는 국군이 교대로 마을을 뒤지고 다니며 쑥밭을 만들며 발고된

사람들을 찾아 잡아갔다.


피난 오기전 인천에서 이런일이 있었었다.

대한제분 다닐때 노동조합 간부들이 근로자 모두에게 조합에 가입하라며  

노조 가입원서에 손도장을 받으며 일장 연설을 하는데

" 인민의 적인 파쇼 부르조아 악덕 지주들을 몰아내고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

  다같이 단결하여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을 만들자 "

는등  반 인륜적인 연설을 늘어 놓을때 많은 참가자들과 나도 그자리에서 있었다.


그일,

빨갱이 연설을 들었다는 이유로  여러사람들과 함께  빨갱이라고 발고를 당하였고

어느날 변명 한마디 못한체 발길로 채이는등 몰매를 맞으며 감옥까지 끌려가서

보름간이나 매를 맞으며 온갖 고문을 다 당하고 뼈를 깍아내는 고통을 견디어 냈고

결국은 불온사상이 없다고 훈방으로 풀려나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피난온 이곳에서도 밤만되면 인민군이 나를 찾는 다는 소문이었다.

그말을 어르신들이 미리 귀뜀을 해주었기 알게 되었고 숨어 살기로 결정 했다.


국방군에 끌려 갔다가 살아 왔으니 분명히 국방군의 첩자이거나

반동분자 임이 틀림없을터 붙잡히면 인민 재판을 당할것이 분명 하였기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었다.

(손을 묶인 앞에 두사람을 인민재판하는 모습.자료사진)


인생살이....

참으로 고되고 살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사는것이 인생이라면 차라리 태어 나지 말것을...

왜 일본놈들 한테서 해방이 되어 나라가 양분되고 국방군과 인민군으로 나뉘어

서로 무참하게 죽이고 잡아가고 살육을 자행 하는가?


잔인하고 더러운 왜놈들 치하에서도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아오면서   

그토록 꿈에도 그리고 원했던 해방을 맞아 한동안 얼마나 기뻐 했었는가?


이제 우리 힘으로 우리말을 쓰며 우리끼리 똘똘뭉쳐 잘 살자던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이 생각 난다.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

그런데 왜 뭉치지 않고 38선을 갈라 놓았는가

해방이 되고나니 이제는 또다른 인간말종들이, 일하기는 싫지만

편안하게 살면서 배는 부르고 싶었기에 조금 배웠거나 조금 더 있는자들이

저희들 배불리고자 무지한 서민들을 현혹하며 감투싸움을 시작 했다.


지난 500여년의 조선 역사에 있었던 반상,주종(양반과 상놈)이 없어지고 

모처럼 내땅을 갖게 되었으며 힘들고 고달프지만 일만 열심히 하면 내 재산이 모이고

저축을 하며 살수있는 세상이 왔는데 그이상 무엇이 부족해 나같은 무지랭이가

뜻도 잘모르는 민주주의,공산주의사상을 배우고 따라야 하는가?


세상에 노동자가 일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상 낙원에서 살수 있는가?

어떤 농민이 밭갈고 등짐지지 않고 편안하게 낙원에서 살수 있단 말인가?


노동자,농민이 일 안하고 농사 안지으면 지금 내 앞에서 잘난척하는

저 정치 모리배들과 민중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이 일하고 농사를 지어

우리 노동자 농민을 지싱낙원에서 편하게 놀고 먹여줄것인가 

따지고 확인 해봐야 한다.


개나 소나 다 지상낙원에서 살게되면 일은 누가 할것인지......

백성들의 처지는 생각치 않고 온갖 감언이설로 잘났다고 편을 갈라 자기편 만들고

무슨 당,무슨연맹,무슨위원회를 만들고 서로 헐뜯고 피튀는 싸움을 벌리는가 ?

우리 국민들이 원하던것이 이런 자유 민주주의는 분명 아니었다.


처음 맛보는 자유에 너무순진한 우리 국민들이었다.

온갖 좋은 말로 포장된 호화스러운 사상과 이념,

잘난 지식인이며 배부른 정치꾼 양반들,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자유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에게는 먹고 살기가 더 고통스러울 뿐인 허울 좋은 개살구와 같았다.


나는 그저 내의무를 다하고  내가 땀흘려 열심히 일한만치 벌어 보리밥이라도 먹고 

따듯한 방에서 발 쭉 뻗고 잠만 잘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 할수 있었다...  


숲속의 칡넝쿨과 아카시아, 온갖 잡목들을 헤치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파리와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소리가 마치 비행기 소리와 같았다.


무척 깊이 들어 왔는데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구덩이가 파져 있었고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 하기 시작 했다.


(참살당했거나 폭사당한 주검들 부패되어 구더기가 쓸고 냄새가 심했다 : 자료 사진)


얼마를 갔을까?

인적이 닿지 않는곳을 찾아야 한다며 계속 가고 있는데 설상 가상으로

어머니 등에 업힌 문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그소리가 유난히 크게  깊은 숲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리되니 우리와 같이 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힐끔 힐끔 돌아보며

" 그아픈 아이때문에 우리 다죽겠오 "

하며 앞으로 내달려 나가고  뒤에 처진 우리는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

문규를 보며 그저 들키지 않기만을 애간장을 태우며 빌고 또 빌었다.

문규엄마의 속은 얼마나 타고 있을까?


저 병약하고 어린것이 왜이리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게 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팔자 때문이리라, 못난 애비 에미를 만나 사서 하는 고생이리라...

죽을것인가? 죽임을 당할 것인가, 차라리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문규야 이밤을 넘기지 말고 조용히 숨을 거두거라)

그리하여 너를 뺀 나머지 식구들이라도 살게 해다오....

하며 무정한 짐승만도 못한 생각도 몇번이나  했었다,

애비로서 무슨일이 있어도 생각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어머니가 힘이 드시다며 잠시 쉬어 가자고 털퍼덕 주저 앉고

그래서 그곳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나와 애엄마가 문규를 받아 달래보았다.


귀에서는 피고름이 흐르고 궁뎅이와 종아리엔 모기에 물려 여러곳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얼굴은 계속 울어 눈물 자국이 얼룩져있고 엄마가 부르는것도 아랑곳 않고 눈을 감은체

고통을 참느라 신음을 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전까지  생각들이 떠올라 잠시나마

나의 어리 석었음을 한탄하며 미안한 마음에 울컥 가슴이 메어 왔다.

눈물이 주루룩 쏟아진다.

(문규야 미안하다 잘못 했다......)


애엄마가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땅과 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데

" 어머니, 문규 아버지~ 이러다 문규 죽는것 아니유?

  아이구 불쌍한 내새끼

  문규 아버지어머니 우리 애좀 살려줘요~ ? "

처절하다,

아니 처절하다 못해 비통하다, 우리의 처지가 너무 처절 비통하다.

어른들의 마음을 아는지 얼마후 부터는

문규가 고통스러운 신음만 할뿐 울음을 멈췄기에 우리의 행군은 다시 계속 되었다.


파리와 모기가 들끓는 이곳 산자락 오솔길에 언제 파놓았는지  구덩이마다 빠짐없이

들어 있는 군마의 시체와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모를 빡빡머리 송장들이 썩는냄새를 피우며

우리들 발끝에 자꾸 채이고 있어 길을 옆으로 비껴 가며 산속으로 계속 올라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막내 병필이가 수상하다,

병필이도 잡힐까 불안한 마음에 문규를 자꾸 처다보며 안절 부절 하는것이 수상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앞만 보고 가는사이에 어머니로부터 문규를 빼앗고는

" 어치피 문규는 죽어요 버리고 가요 그래야 우리라도 살아요! "

하며 뒤로 뛰어 가더니 송장들이 들어있는 구덩이에 던지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부모를 잃은 피난길에 버려진 전쟁 고아 ; 자료 사진)


애엄마가 화들짝 놀라 필규를 내려 놓드니 어느새 달려가 병필이를 밀치고 송장속에서

딩굴며 꿈틀 거리던 문규를 안고 나오며 막내에게 큰소리로 외치며 욕을 퍼 붓는다.

" 이나쁜놈아~ 네 세끼냐? 내새끼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린다~

  이놈아 이 천하에 벼락을 맞을 놈아 ~~~ 내 새끼란 말이다 ~~"


미물도 제 새끼를 해꼬지 하면 날카로운 독아를 들어 내고 물불 안가리고 달려든다.

하물며 사람일진데 아무리 병약하다고 하며 죽으라고 버리는데

어떤 어미가 가만히 참고 있겠는가


막내를 죽일듯이 떠 밀쳐내던 그 힘이 한밤의 팔매실 산을 뒤 흔드는것 같았다......

문규 엄마의 외침이 산을 타고가 메아리 쳐 돌아 온다

" 이 천하에 벼락 맞을 놈아 ~ 내새끼다 ~~ 내 새끼다 ~~ 내새끼다 ~~~ "


이일이 있은후 막내는 형수에게 떠밀칠때 그등등한 기세에 주눅이 들었었고 이후

죽을죄를 지었노라고 골백번 사죄하고 이때부터 형수 말이라면 무조건 잘 따랐다.


9 15일 국방군과 유엔군이 인천과 군산에 상륙 했다는 소식과 함께 밤마다 나타나던 

인민군의 행적이 안보이기 시작하였고 패퇴하기 시작 하는것 같았다


우리 식구의 팔매실 은둔생활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안보이던 국방군들의

행렬이 자주 눈에 띄어 국방군의 반격이 날로 거세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문규는 피난처에서 썩은 송장에서 묻어온 병균때문인지 

부스럼 병이 온몸에 퍼져 매일 피고름을 짜내고  귀속의 고름도 후벼 내야 했다.


흘린 피고름 닦은 걸래를 물에 빨면 냇물이 피고름으로 뿌옇게 변하곤 했었다.

귀와 부스럼병을 고치고자 하나 돈을 구할수가 없어서 

피난올때 갖어온 미군담요를 팔아 치료비를 마련하였고  너무 허약 하다며

침을 놓는데 저를 죽이는줄 알고 가슴 터질듯이 울어대며

" 아버지 살려주세요, 엄마 나좀 살려주세요 네? 나 안죽이면 안돼요?"

살려 달라며 온방안을 뒹굴며 생똥을 싸기를 몇번인가?


시내에 나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다이아찡을 사다 먹이며 가루를 내어

물로 반죽해서 붙이길 몇차례 치료 하고서 서서히 딱지가 생기고 또 말라붙고

아이가 기운을 차리기 시작 했다


내아들 문규,

총명하긴 했지만 워낙 병약하여 태어나 백일도 안되어 귓병(중이염)에 걸리고

그때부터 오른쪽귀가 반 병신이 되었으며 먹성도 안좋아 가려 먹는 음식도 많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육류나 생선류보다는 채소와 나물류를 좋아해 없는 살림에

일부러 고기를 사 먹일 필요는 없었다.


애가  회복 하고부터는 동생을 맡겨놓고 품앗이를 다녀와도 될만큼 잘 견뎌 주었다.

혼자서 동생 필규와 잘 놀며 보고 있었다.


내아들 문규,

그 험난했던 피난길에서도 우리만 살기 위하여 매정하게 버릴번 했으나

그러나 버리지 않았고, 죽일번 했으나 죽이지 않았고

그리고 끝까지 살려낸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며 다행인가 ? ............


아직도 내 귓가엔 그날밤 팔매실 산중에서 막내를 향해 울부짖던 문규 엄마의

처절했던 절규가 메아리로 남아 생생하게 들려 온다....


" 내 새끼다 ~~ 내 새끼다 ~~ 내 새끼란 말이다 ~~

  엉엉엉~~ "



 **[이상으로 제 1 장 6.25 한서린 피난길을  끝맺습니다]**



### 강원도 속초 고성 산불이 속히 진화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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