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의여정4-16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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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박문규의여정4-16 大尾

노당 큰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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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박문규 정원(大尾)


강제로 수용당한 억울함에 울분이 터졌지만 두 아이의 앞길이 창창하고 또한 직업군인으로서 국록을 먹고 살기에

청와대로 찾아 가려던 생각을 버리고 다시 한 번 보란듯이 오똑이처럼 일어 서기로 했다.

그리고 국민을 기만하는 자들이 가난하고 힘 없는 국민에게 지은 죄에 따른 엄중한 심판을 받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末路(말로), 그 모습을 꼭 보리라 하고 마음을 먹었다 


(용현동에서 아내와 진돗개 덕실이와 새끼들 이집이 수용 당한다)



2000 9월 말경

동네에서도 신경 안 쓰고 내버려둔 폐가를 평당 35만원씩 총 359평의 토지를 사서 텃밭 150평 중 대지가 있는 75평을 팔고

75평은 텃밭으로 쓰고 209평에 토목공사를 시작 하면서 건축비 5,000만원을 대출신청을 했다.


전국의 지방을 돌아 다니며 다세대 주택과 빌라를 건설하고 있는 처남의 친구 광현이에게 공사를 맡기기로 한 것은

그가 처남으로 부터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모든 공사의 설계에서부터 토목공사와 건물, 그리고 전기와 수도 등 모든 것을 끝내 주는 조건으로 하면서

평당 건축비 150만원으로 32평을 짖기로 했다.


나는 인천에서 38평을 억울하게 수용당하며 보상금은 얼마를 받았고

집은 무슨무슨 돈으로 지으며 입주 할때는 냄비와 숫가락 그리고 이불만 갖고 입주해도 

무리없이 살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알았어 매형 집을 지을때 자재가 어쨌다거나 뭐 그런걸 쓰느냐고 묻거나 따지지만 마 

그러면 150만원에 적벽돌과 스라브 기와집으로 건축비를 마춰 줄께"

아 또하나 보일러는 심야전기로 해주고 시작할 때와 끝날 때가 다르게

별 이상한 방법으로 추가 비용발생은 인정 안한다.

그러면 그 자리서 공사 중지한다 알았지?”

알았어 형~”


구두계약은 이렇게 대충 했지만 토목공사가 시작 되는날 공사현장에서 광현이와 마주 앉아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가

이내 포기 하고 말았다.

그럴것이 법으로 보호되어야 할 등기권리증이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인데 계약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광현이와 처남, 그리고 나는 서로 믿기로 했다.

옹벽과 심야전기 보일러가 설계 이후에 변경 되었으므로 너무 비용이 많이 드니 고려 해달라고 했고

나도 꽉 막힌 사람이 아니므로 추가 비용을 인정 해주었다.


집을 짓는 동안 어머니와 동생들이 기쁜마음으로 찾아와

참관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누가 알까?


오래전에 전원주택과 가든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키가 6척인 매부가 천정이 너무 얕다며

천정을 아파트처럼 얕게 하지말고 벽돌 두장 정도 더 높이라

고 하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또한 동창이며 절친인 준모는 인천서 路線(로선)버쓰를 타고 자주 찾아와 벽돌한장,

기와 한 장까지 같이 들어주며 자기 집 일처럼 구석구석 신경을 써주었다.


신청한 대출금이 나오기 전이라 공사가 진척 되면서 자재비가 바닥이 났었을 땐 정말 난감하기도 했었다.


돈이 없어서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광현이의 독촉에 난감해 하다

어렵게 말을 꺼낸곳이 인천의 자동차용품 거래처인 액센트 시트카바 업소다.

김광천대표와 그부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더니

박소장님 같은분 안 빌려주면 누굴 빌려줍니까?”

하며 바로 은행에서 500만원을 꺼내다 주며 대출금이 나오면 갚으라며 무이자로 빌려준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대출금이 나오자 마자 찾아가 바로 갚았고 이자를 한사코 고사 하기에 좋

아하는 담배 한보르만 선물하고 말았다.


가끔 찾아가 점심으로 식사를 주문해 주면 그 마저도 돈을 못내게 하였던

그 부부는 나에게는 이 시대에 보기 어려운 휴머니스트 부부였다.

김광천 사장 그리고 사모님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 ^^”


돈을 너무 부족하게 시작한 공사지만 이렇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셨던 분들이 있었기에

이제 서서히 박문규의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200012 4

드디어 입주하는날이다.

무쏘로 흰둥이 덕실이를 실어다 수돗가에 묶어놓고 다시 검둥이(깜상)도 실어와 매어 놨다.

아내는 마티즈로 인천 김포를 왔다 갔다 하며 바쁘게 이사짐을 정리하고 나는 나대로 보일러 손보기 전기 손보기,

그리고 광현이와 공사 미불금을 계산하고 지급해야 했다.

실 평수 35/평당/150만원=5,250만원.

여기엔 옹벽비용, 심야전기 보일러비등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너무 싸게 잘 지었다.

광현이가 손해는 보지 않았을까 걱정 하는 중인데 200만원만 노력의 댓가로 달라고 하기에 쾌히 수락하고

후일 그 돈을 지급했다..

집을 다 지어놨더니 사람들이 우리집을 전원주택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면서 부러워 하는데 이 우쭐한 마음... 

그리고 내손으로 나무, 잔디, 돌등을 정리하며 조경을 가꾸고 2~3년이 지난 후 부터 나의 집은 정말 작은 전원주택이 되었다.

(김포에 지은 박문규의 정원)

좌상: 마당에 주차된 차와 잔듸밭
우상: 손녀와 며느리,그리고 제수씨가 대추를 줍고있다.
좌하: 장차 투스타(
小將) 장군이 앉게되는 장군 바위에서 가족들과 삼겹살오찬
우하: 가족 형제들과 밴댕이 파티중.


(: 주차장과 잔듸밭, : 대문에서 본 전경)


20021215

이집에서 큰아이를 장가보내고 알뜰하고 예쁜 며느리를 맞아 손녀와 손자를 얻었고


2010 65

둘째 아이도 아버지끼리 만나 친하게 지내다가 그 댁의 둘째딸 예쁜 규수와 결혼을 했다.

나는 이 두 형제가 딸 아들 구별 말고 손주를 그저 대 여섯명만 낳아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박문규의 정원은 내 손주들뿐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마음놓고 즐기며 뛰어놀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내와 나 두 식구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그 날까지의 여생을 어디에 누구에게도 기대 살지 않고 밥 벌이를 하고자

노력중인데 아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필자가 모아둔 재산이 있는 줄 잘못 알고 그 동안 애 많이 썼으니 이제는 편하게(?)쉬라는 말들을 자주한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나는 대우중공업에서 자동차 영업으로 파견될 때 한 동안 절망과 번뇌 속에서 그렸던 계획,

내 인생 목표인 박문규의 정원을 향하여 앞으로 나가는 중이다.


그것은 대충 1,000 여평의 토지에 700여평의 텃밭 그리고 300 여평의 정원엔

마굿간과 양지바른 뒷뜰에 10평정도의 가족 납골당을 만들고 마당엔 우리 가족들 차 20대쯤 주차하고

(현재는 승용차 7~8대 밖에 주차 못하고 어떤 땐 두 세 대 정도를 외부에 주차하는 일이 있다)

 

아담한 30여평의 집을 짖는 것,

이것이 내 평생 그리던 박문규의 정원인 것이다.

전편에서 말했드시 나의 이 계획은 아내와 아이들이 반대만 하지 않으면

현재 실현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며 아내에게 내 계획을 자주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3년후...





2017년 7월2일


드디어

"소설같은 나의 스토리 박문규의 여정"의 끝인

박문규의 정원이 지어졌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960여평의 토지위에 작고 아담한 전원(농가주택)주택이다.


(아내와 집 설계도를 검토하는 모습 2017년5월)

2017,06,02

2017,07,02 이삿짐도 다 못풀고 새 집에서 첫밤... 꿈은 이루어졌다.

2019,07,21 하얀 설악초가 만발한 박문규의정원





 박문규의 정원 大尾(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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