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국속의 태국불교공동체, 의정부 담마까야(法身寺) 2018 까티나축제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한국속의 태국불교공동체, 의정부 담마까야(法身寺) 2018 까티나축제

 

 

평범한 일상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해외여행은 큰 변화입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철마다 나가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밖에 나가기 힘듭니다. TV에서 보여 주는 세계테마기행류와 같은 다큐로 접할 뿐입니다. 그러나 눈과 귀로 접하는 정보는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습니다. 현지에 있어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의정부 담마까야(法身寺)에서 본 까티나축제도 그런 것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까티나축제 참여권유 전화를 받고

 

전서울지역포교사단장 이주영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의정부 법신사에서 태국 까티나축제를 하는데 참석해 보는 것이 어떻느냐는 것입니다. 여러 번 망설인 끝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전화를 한 이유는 2주 전인 10 28일 서울담마와나선원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까티나축제에 참석하여 글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올린 글은 오늘은 공덕짓기에 좋은 날,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 법요식’(2018-10-29)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까티나축제가 열린지 2주가 지났는데 또 다시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축제

 

2018 11 4일 일요일 이른 오전에 의정부행 1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안양 명학에서 법신사가 있는 의정부역까지는 1시간 35분 가량 걸립니다. 도중에 광운대역에서 한번 갈아 탔습니다. 이동 중에 법신사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법신사에 대해 올려져 있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법신사와 관련하여 카페에 단발적으로 몇 개 보일 뿐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국제포교사회 카페에 올려진 것이 있습니다. 카티나축제와 관련하여 10 28일 양주 마하보디사 스리랑카 법당, 11 4일 평택 마하위하라 스리랑카법당, 그리고 11 11일 의정부 법신사법당에서 열린다는 짤막한 내용입니다. 카티나축제가 세 번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주노동자를 위한 배려로 보여집니다. 전국 각지에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위한 축제인 것입니다.

 

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

 

법신사는 어떤 절일까? 인터넷에서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네비게이션에도 검색어가 뜨지 않고 길찾기에도 법신사는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알려준 주소 의정부3 127-9’를 입력하여 찾아 갔습니다. 의정부역에서 약 3백미터 가량 떨어진 거리입니다. 이주영선생이 빌딩 앞에 나와서 마중했습니다.

 








 

의정부 법신사는 5층짜리 빌딩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물입구에는 태국어로된 간판이 보입니다. 1층에는 法身寺명상센터라고 한자와 우리말로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간판에는 사단법인 법신사 태국이라 되어 있습니다. 법신사가 사단법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나의 종단과도 같은 것입니다.

 








건물 상층부에는 한글로명상센터네온사인이 눈에 들어 옵니다. 이렇게 명상을 강조해서일까 1층 유리벽 쇼윈도에는 매주 토요일 법회를 알리는 문구가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2 30분까지 기초담다까야 명상배우기가 있고, 오후 2 30분부터 3 30분까지는 명상체험이 있습니다. 명상체험이 끝나면 질의응답시간이 있습니다.

 

태국 이주노동자들의 쉼터

 

한글 문구를 보면 담마까야(法身寺)를 건립한 목적은 마치 한국포교를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날 까티나 축제에서 목격한 것은 태국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대학 3학년에 다니는 노굴스님으로부터도 확인 되었습니다.

 

노굴스님에 따르면 의정부 법신사에서는 매주 토요일 법회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다름 아닌 태국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법회입니다. 그런데 법신사는 태국인들을 위한 거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태국인들이 법신사로 몰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서울에서 대학로 끝자락에 있는 혜화동 성당 주변에 필리핀 사람들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 봅니다.

 

태국어로 법회가

 

법신사는 태국이주노동자들에게 쉼터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커다란 5층짜리 건물 전체가 장식된 것을 보면 태국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갑니다. 법당에 들어가면 태국분위기가 확실합니다.

 






까티나축제가 열리는 법당은 3층에 있습니다. 법당 명칭은 명상센터라 되어있습니다. 담마까야라는 명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마까야 명상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날 오후에 약 20분 가량 명상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도명상같은 것입니다. 모두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태국어로 끊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무언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백명 가량 모인 태국사람들

 

담마까야 까티나축제는 태국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날 약 3백명 가량의 태국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는 흰옷입은 사람들도 꽤 되었습니다. 서울 동국대 불교대학 2학년에 다닌다는 태국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흰옷 입은 사람들은 태국에서 이날 행사를 치루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 합니다. 나이가 들어 보이고 여유 있고 부유해 보여서 태국 중산층 사람들 같습니다. 흰옷입은 사람중에는 태국유학생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흰옷입은 사람들은 약 100명 가량됩니다. 나머지 약 2백명 가량은 평상복인데 대부분 20대 초반입니다. 아마 한국에서 일하는 태국이주노동자들일 것입니다. 이곳 의정부 법신사에서 매주 토요일 법회가 열리기 때문에 법신사는 태국이주노동자들에게는 거점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날 법당에는 태국사람들로 가득해서 꽉 찼습니다.

 

내빈석에는 한국인 20여명이

 

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내빈석이 마련 되어 있습니다. 의자를 두 줄로 했는데 앞줄에는 스님들이 앉고 뒷줄에는 재가자들이 앉았습니다. 내빈석 스님들 대부분은 테라와다스님들입니다. 스리랑카스님은 세 분 보입니다. 나머지 빨강가사 스님들은 한국인들인데 아마 태국에서 계를 받은 스님들로 보여집니다.

 








한국가사를 입은 한국스님도 몇 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성종단에서도 관심 보이지 않고 교계언론에서도 관심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참석한 재가자 중에는 종교평화관련 회원 몇 명이 있었고, 담마까야와 인연있는 분들 몇 분이 오셨습니다. 내빈석 사람들은 약 20명여명 가량입니다.

 

태국법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현장에 앉아 있으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합니다. 마치 태국법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불상도 다르고 스님들의 가사 색깔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다릅니다.

 

중앙에는 태국양식의 커다란 황금색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모니 불상이 아니라 법신불을 뜻하는 담마까야불상입니다. 그러나 법당안에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는 불상 하나만 있을 뿐 그 어떤 형상도 볼 수 없습니다.

 

이국적 불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것입니다. 한국형불상과는 달리 눈을 감고 명상하는 모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상이 아닙니다. 법신불입니다. 이는 한국어로 법신께 삼배하겠습니다.”라는 한국어 멘트로도 확인 되었습니다.

 





 

담마까야(Dhammakaya)라는 말은 법신(法身)을 뜻합니다. 담마(Dhamma)라는 말이 ()’을 뜻하고 까야(kaya)라는말이 ()’을 뜻하기 때문에, 담마까야에 대하여 법신(法身)’이라 합니다. 그런데 담마까야는 태국에서 신흥종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신봉하는 불교와 달리 법신을 신봉하기 때문에 정통교단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고 합니다.

 

담마까야는 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대함일 것입니다. 무려 150만평 부지에 100만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도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수십만명이 집단으로 명상하고 수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지원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의정부에 있는 법신사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법신사상의 시초에 대하여

 

법신이라는 말은 대승불교에서 비로자나 법신불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법신이라는 말은 초기경전에도 등장합니다. 상윳따니까야 존중의 경의 게송에 모두가 올바른 가르침을 공경하여 살았고, 살고 있으며, 또한 살아 갈 것이니, 이것이 깨달은 님들의 법성이네.” (S6.2)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법성(法性)이라는 말은 담마따(dhammatā)를 말합니다. 법의 성품은 부처님들의 법성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출현 했던 부처님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석가모니부처님이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아자빨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것도 해당됩니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고 나서 나는 내 스스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진리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거기에 의존하는 것이 어떨까?”(S6.2)라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은 진리를 발견한 것이지 만든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연기에 대하여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세계는 정해져 있으며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S12.20)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담마는 부처님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무시이래 모든 부처님들이 발견하고 말씀하여 온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상윳따니까야 인연상윳따(S12)를 보면 연기에 대하여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빳씬의 경(S12.41)부터 차례로 과거칠불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부처이름만 바뀔 뿐 연기법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부처님은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M28)라 했습니다. 이 말은 연기를 보는 자는 조건적으로 생겨난 사실을 보고, 조건적으로 생겨난 사실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yo paiccasamuppāda passati. So dhamma passati...passatī)”(Pps.II.230)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연기를 보았고 앞으로 미래의 부처님도 연기를 볼 것입니다.

 

연기는 부처가 출현하든 하지 않든 진리로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진리 그 자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dhamma)에 대하여 어떤 특정한 시기에 신()이 되었다고 했는데, 가이거는 Ggs.I.139에서 바로 이것이 법신사상의 시초라 합니다.

 

태국 담마까야는 진리의 몸으로서 부처님을 말합니다.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은 자를 부처라 하는데,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하여 비빳씬 붓다 등 과거에 출현한 모든 부처님들도 이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태국 담마까야에서 말하는 법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하여 과거에 출현했던 모든 부처님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담마까야명상은 어떤 것일 것일까?

 

담마까야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2016년 불교신문에 따르면 국제포교사의 체험수기가 있는데 담마까야에 대하여 수많은 샤머니즘 요소들과 뒤섞여 있는 태국의 전통불교를 쇄신하고자 창설된 일종의 신흥종단이다.”(불교신문, 2016-03-23)라 했습니다.

 

담마까야가 신흥종단이긴 하지만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빠알리어로 된 삼장교육과 전통적인 위빠사나 명상법을 계승한 담마까야 명상수행을 두 가지 핵심과제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핵심수행법인 담마까야명상은 어떤 것일 것일까?

 

불교신문 기사에 따르면 담마까야명상에 대하여 조용히 앉아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코를 통해 숨이 들어가면서 지나가는 몸의 중요한 일곱 군데 지점을 바라보고, 특히 호흡이 끝나는 (배꼽 위 손가라 두 마디 지점인) 몸의정중앙에 집중하여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맑은 수정 구슬을 떠올림으로써마음을 멈추는것이 그 핵심이다.” (불교신문, 2016-03-23)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이날 까티나 축제 현장 법당에서 커다란 구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배구공만한 투명한 구술이 연꽃에 감싸여져있는 모양입니다.

 





 

담마까야가 신흥교단이라 하여 선입관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할 듯합니다. 태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샤마니즘과 습합된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테라와다불교는 일반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르려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담마까야는 태국내에서 신불교운동의 소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의 보수회귀 본능

 

태국을 계율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는 테라와다 3국에서 스리랑카는 교학의 나라,미얀마는 수행의 나라, 태국을 계율의 나라라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본은 교학의 나라, 한국은 수행의 나라, 중국은 계율의 나라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수행의 나라 미얀마와 한국은 공통입니다. 한국인들이 미얀마로 수행을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계율의 나라 태국에서 계율이 문제가 되어 담마까야라는 새로운 교단이 매우 융성한 것은 보수회귀 현상이라 봅니다. 어느 불교전통이든지 질서가 무너질 때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한국불교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초기불교와 위빠사나와 같은 수행법이 유행하는 것도 본래부처님 가르침으로 회귀하자는 운동일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종교는 보수회귀속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를 종교의 보수회귀본능이라 할 것입니다. 태국 담마까야에서 계율을 중시하고 빠알리 삼장을 기본으로 하고 부처님의 수행법을 강조하는 것은 강력한 보수회귀 정신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태국은 불교대국

 

문화충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말하는데, 높은 문화를 접했을 때 받는 충격을 말합니다. 이번 의정부 법신사에서의 까티나축제에서 본 태국불교도 역시 신선한 문화충격을 주었습니다. 불교에 관한 한 태국이 우리나라 보다는 선진국임에 틀림 없습니다.

 

태국은 불교국가입니다. 전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불교가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불교의 교세가 전국민의 15.5%에 지나지 않는 한국불교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태국의 경우 인구가 6900만명으로 불교인구는 95%에 달합니다. 태국의 불교인구는 6500만명입니다. 이는 한국의 불교인구 760만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더구나 태국불교는 철저한 계율에 따라 부처님 근본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불교인구입니다. 태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은 뒤쳐지지만 불교에 관한 한 불교대국이고 불교선진국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흰옷을 입은 재가자와 노랑가사 스님들을 보면

 

태국불교는 부처님의 전통이 살아 있는 불교입니다. 이번 법신사 까티나축제 참가자들의 모습에서도 일부 확인 되었습니다. 그것은 붓다와 담마와 상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엿보였습니다.

 




법당에 들어가니 인종이 다른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더구나 흰옷을 입은 재가의 남녀는 매우 경건하고 엄숙해 보입니다. 법회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단상에는 스님들이 아홉명 앉아 있는데 노랑가사를 입었습니다.  11월 중순의 한국날씨는 영상 10도 안팍으로 쌀쌀 함에도 태국스님들은 오른쪽 어깨의 맨살이 드러난 가사를 입고 있습니다. 태국식 그대로 차림새입니다.

 




단상의 스님들은 감관이 맑고 청정해 보입니다. 아홉명의 스님들 중에는 태국에서 온 스님도 있고 일본에서 온 스님들도 있습니다. 아홉명의 상가가 구성되어 한국에서 여법한 까티나축제가 개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흰옷 입은 재가불자들 역시 감관이 맑고 온화합니다. 불교가 생활화 되어서 일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공양물을

 

이날 까티나축제 식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 되었습니다. 오전에는 탁발공양하고 오후에는 가사공양을 했습니다. 축제참석자자들은 각자 공양물을 비닐쇼핑백에 담아 가지고 있습니다. 공양물을 보면 다양합니다. 과자, 음료수, 빵 등 온갖 것이 다 있습니다.

 




남방에서는 까티나축제하면 일년 먹거리가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합니다. 그런데 공양물은 모두 스님들에게 직접 보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단에 공양물을 올려 놓지만 탁발하는 스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살아 있는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각자 빠짐없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공양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법당에서 탁발행사를

 

남방불교에서 탁발하는 장면은 거룩해 보입니다. 라오스의 탁발장면은 여행패키지 상품으로 팔릴정도입니다. 이곳 의정부 법신사에서도 탁발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 길거리 탁발은 없었습니다. 그대신 법당 안에서 탁발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은 10 28일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담마와나선원에서 본 길거리 탁발행사와 대조적입니다.

 

참석자들은 먼저 스님들에게 지극한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 대부분 불상 앞에 있는 아홉 분의 태국스님들을 바로 보고 있었지만, 내빈석에도 각국에서 온 스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태국불자들은 내빈석을 향하여 일부가 방향을 돌려 앉았습니다. 그 모습이 대단히 진지해 보여서 말로만 듣던 태국불자들의 신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탁발이 시작 되었습니다. 비록 법당안에서 행해진 것이긴 하지만 거리에서 탁발하는 것처럼 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지나갑니다. 신도들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합장하며 맞이합니다. 이와 같은 탁발행사가 의정부 역 앞에서 열리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님이 지나갈 때 신도들은 정성스럽게 마련한 공양물을 한두개씩 발우에 넣어 드립니다. 주로 과자와 음류수와 같은 작고 소박한 공양물입니다. 발우가 넘치면 옆에 따라 다니는 사람이 별도의 자루에 쓸어 담듯이 넣습니다.

 





 

이날 법당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사람도 빠짐 없이 탁발공양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불교에서 전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 해에는 길거리에서 탁발공양 했으면 합니다. 비록 퍼포먼스나 쇼라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불교인들에게는 전에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점심공양시간에

 

까티나행사를 축제라 합니다. 축제라는 말이 들어 가듯이 축제분위기입니다. 그렇다고 춤과 노래를 곁들인 축제가 아닙니다. 스님들에게 기쁨으로 공양하는 것 자체가 축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어니무어니 해도 점심시간만큼 즐거운 축제도 없을 것입니다.

 

탁발행사가 끝나고 점심공양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들과 내빈들은 비쿠석이 마련된 별도의 룸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태국에서 온 힌옷입은 신도들 역시 별도의 룸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비쿠방과 신도방이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비쿠 옆에는 여자가 앉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식사는 태국식입니다. 면종류의 음식은 향이 매우 강합니다. 마치 베트남 쌀국수향내가 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육수에 고기가 있는 국거리는 중국식 같기도 한데 입에 잘 맞았습니다. 육식과 채식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국절에서는 철저하게 채식위주이지만 이날 까티나 축제 현장에서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가 많았습니다.

 



 

옥상에서 서서 식사를

 

이날 까티나축제 참석자는 약 3백명 가량 됩니다. 이중에 2백명 이상은 이주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5층 옥상에 마련된 노천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꽤 넓직합니다.

 




수백명이 이곳 저곳에서 서서 식사를 합니다.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보입니다. 젊어서 그런지 표정이 매우 밝습니다. 흰옷입은 사람들은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한국내 태국유학생들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20대 젊은이들이어서 활력이 넘쳐납니다. 이번 까티나축제는 이주노동자들의 날인 것 같습니다. 이들 노동자들이야말로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돈나무, 돈일산, 돈부채를 만든 이유는?

 

점심공양시간에 본 것은 돈나무입니다. 가지에 천원짜리 지폐를 마치 나뭇잎파리처럼 매달아 놓은 것입니다. 어떤 것은 일산모양입니다. 일산모양에는 고액권인 오만원짜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부채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폐를 이용한 부채입니다.

 




돈나무, 돈일산, 돈부채는 처음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으로 문화의 차이를 느낍니다. 모두 스님들에게 공양할 것입니다. 아니 승가에 공양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전에는 스님들에게 과자, , 생필품 등 온갖 것을 개별적으로 공양했습니다.이는 탁발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후에는 가사공양했습니다. 이는 탁발스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단의 아홉명의 승가에 가사와 돈나무 등을 공양했습니다.

 




가사는 스님개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에 공양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는 부처님이 가사를 손수 지어 보시하려는 양어머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수행녀에게 고따마여, 승단에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M142)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생필품은 개별스님에게 보시하고 가사와 돈은 승가에 보시합니다. 이번 태국 의정부법신사에서 이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신도들이 돈나무, 돈일산, 돈부채를 만든 것은 개별스님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에 보시하는 것입니다. 돈봉투를 승가에 보시할 수도 있지만 나무나 양산, 부채모양을 만들어 가시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까티나축제의 하일라이트 가사공양

 

까티나축제의 하일라이트는 가사공양입니다. 점심식사후에 법당에서 가사공양시간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사공양자들은 5층 옥상에 집결했습니다. 어느새 식사테이블은 말끔히 치워지고 수백명에 노랑가사를 들고 도열해 있습니다. 돈나무를 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침내 가사공양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입장한 사람은 화동(花童)입니다. 태국전통의상을 입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꽃을 들고 입장했습니다. 이어서 흰옷입은 재가자들이 노랑가사를 두 손에 들고 차례로 입장합니다. 다음으로 돈으로 장식된 일산과 돈으로 장식된 돈나무, 그리고 돈으로 만든 부채를 든 사람들이 입장합니다. 옥상에 있던 불자들이 법당에 모이니 법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가득합니다. 까티나 축제가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히따야 수카야 닙바나야짜

 

아홉분의 태국스님 중에는 태국에서 온 스님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연장자이고 법랍이 높아 보이는 스님은 자린스님입니다. 의정부 법신사 부주지는 숙산스님입니다. 동국대에 다니는 태국여학생에게 물어서 알았습니다.

 

법당에서는 태국어로 합니다. 종종 빠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주로 자린스님과 숙산스님이 말합니다. 축원이 끝날 때 마다 히따야 수카야 닙바나야짜라 합니다. 이 말은 익숙합니다. 이익과 안락과 열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3백명 가량 모인 행사에서 프린트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처럼 진행합니다. 진행자가 빠알리 문구를 선창하면 참석자는 후창합니다. 일반 재가불자들이 잘 따라 합니다. 빠알리어 문구가 생활화 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법문할 때는 태국어로 합니다.

 

법당에서는 태국어로 합니다. 종종 빠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주로 자린스님과 숙산스님이 말합니다. 축원이 끝날 때 마다 히따야 수카야 닙바나야짜라 합니다. 이 말은 익숙합니다. 이익과 안락과 열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신도들은 나모 땃사 바가와또로 시작 되는 예경문과 빠알리어로 된 삼귀의와 오계를 잘 따라 합니다. 이런 예경문은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도 이제 익숙한 것이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빠알리 예경문을 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국어로 하면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가사공양이 끝나고 아홉명의 상가 중에 가장 연장자인 자린스님으로 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스님들과 재가자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초전법륜경입니다. 이날 태국스님들이 독송한 것입니다. 일반 신도들은 따라 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아홉명의 상가스님, 그리고 내빈으로 초대된 스님과 흰옷입은 태국불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태국스님들은 모두 여법하게 보였고 태국불자들은 표정이 밝어 매우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태국불교문화축제에서 신선한 충격을

 

의정부 법신사는 한국속의 태국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한국이지만 이곳 법당만큼은 태국을 그대로 옮겨 온듯합니다. 모든 것을 태국식으로 하고 태국어로 하기 때문에 알아 들을 수 없지만 분위기로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입니다.

 

법신사에서 본 까티나 축제는 한국불자들에게는 볼 수 없는 경건함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자세는 신선한 충격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불교가 생활화 되어 있어서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저임금과 3D업종을 마다하지 않는 9만명에 달하는 태국인들이 있습니다. 법신사는 이들에게 의지처이자 쉼터와 같은 곳입니다.

 

의정부 법신사에서 태국불교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알려지지 않았고 어느 불교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연락망을 통해 모였습니다. 이번에 까티나축제를 통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태국불교문화축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굳이 태국에 가지않아도 태국불교문화를 맛 볼 수 있는 글로벌 시대가 되었습니다. 계율의 나라라는 태국불교의 진수를 보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신 전서울포교사단장 이주영 선생에게 감사드립니다.

 

 

2018-11-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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