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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치고 나가야 한다, 최연 선생의 북맹(北盲)탈출 강연을 듣고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이제는 치고 나가야 한다, 최연 선생의 북맹(北盲)탈출 강연을 듣고

 

 

남북으로 갈린지 74년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못난 조상을 둔 탓도 있다. 마치 남북조시대를 보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와 발해를 남북조로 보고 있다. 발해역사만큼 기간으로 볼 수 있다. 발해역사가 698년부터 926년까지이니 228년이 된다.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남북조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남쪽에서는 1945 8 15일에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이라 한다. 이승만 이래 문재인까지 19명이 최고통치자가 배출되었다. 북한은 같은 해 99일 북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 한다. 특이하게도 김일성 부자와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 세습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한반도 사람들은 1948년부터 현시점인 2019년에 이르기까지 71년 동안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북한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신문과 잡지, 방송매체 등을 통하여 제한된 정보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는 아니라고 했다. 주식시장에서도 공시된 것은 정보가 아니다. 제대로 알려면 경험한 사람을 통해야 한다. 2019 420일 정평법회에서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인 북맹(北盲)탈출로부터라는 주제로 열렸다.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인 최연선생이 북한실상을 알리는 형식으로 법문을 했다.

 



 

최연선생에 따르면 북한을 일곱 번 다녀왔다고 했다. 대부분 노무현-김대중정부시절이다. 그때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칠년을 재직했는데 북한지원사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서 남북불교도대회를 1차와 2차에 걸쳐 개최했고 금강산 신계사복원사업도 있었다고 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것은 4년전이라 한다. 박근혜정부시절 어린이 재단 관련 일로 다녀왔다고 한다. 이명박-박근혜정부시절에는 대북사업이 꽁꽁 묶여 있었음에도 월드비전과 어린이 재단사업 두 곳만은 허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평양에 어린이 병원을지어주고 의약품 등을 공급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vs 인민민주주의

 

최연선생은 법문에서 남북한체제에 대하여 비교설명했다. 과연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할까? 한국에서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체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그들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말한다. 마치 기차길이 평행으로 달리는 것 같다. 이는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도 설명된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자유민주가 키워드이다.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는 인민민주가 키워드이다. 공통적으로 민주라는 말이 들어간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에서는 자유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민을 강조한다.

 

자유와 인민은 어떤 개념일까?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또다른 이름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인민민주의는 사회주의의 또다른 이름이라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우선시하고, 인민민주주의는 평등을 우선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은 매우 가치 있는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에 해당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철로와 같은 것이다. 자유를 강조하면 평등이 억압되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억압된다. 이렇게 남북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공산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최연선생은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정치이념으로서의 차이뿐만 아니라 경제이념으로서의 차이도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공산주의일까? 공산주의라기 보다는 사회주의라 한다. 왜 그럴까? 아직까지 지구상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산주의는 개인소유고 없고, 계급도 없고, 무정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연선생에 따르면 북한은 공산주의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고 했다. 이는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국호에서도 나타난다. 또 북한에는 당이 있는데 조선공산당이 아니라 조선노동당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이라 한다. 같은 일당독재 국가이지만 명칭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당독재에 대하여

 

북한에서는 일당독재국가이다. 모든 권력은 노동당에서 나온다. 이런 권력체제는 노동당이 국가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당 최고 책임자가 국가기관 최고책임자 보다 서열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도 노동당외에 정당이 있다는 사실이다. 청우당과 민주사회당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정당을 야당이라 하지 않는다. 이를 우당(友黨)이라 한다.

 

정당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한마디로 정권을 잡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당은 수권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는 과거 집권경험이 있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 외에 다른 수권정당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일당독재체제라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은 다당제이다. 크게는 양당제이다. 이는 양당이 수권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권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당이라 볼 수 있다.

 

일당제와 양당제, 어느 것이 더 나을까? 그것은 그 나라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의 경우 평등이 키워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일당이 유리할 것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일정부분 독재를 인정한다. 특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한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일당독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사유재산까지 억압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이라든가 자원 등 국가기간산업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북한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라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양당제의 이점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하는 것이다. 두 개의 정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았을 때 독재를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표로 심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라는 가치를 지향한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에 따른 시장경제를 채택한다. 개인의 사유재산뿐만 아니라 공장도 가질 수 있고 자원도 개발할 수 있다.

 

초기에 자본주의의 폐해는 극심했었다. 이익의 축적에 따라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했다. 1920년대 공황이 일어났을 때 케인즈의 이론이 적용된 수정자본주의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신자본주의체제이다. 다시 본래의 자본주의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그결과 또다시 극심한 부익부빈익빈현상과 함께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가장 우월한 체제로 알려져 있다,

 

일당제와 양당제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교해 보면 일장일단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서만 살아 본 한국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와 사회주의경제체제는 생소한 것이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불행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나름대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만장일치제이다.

 

만장일치제에 대하여

 

사람들마다 견해가 있다. 회의를 하면 의견 충돌로 인하여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만장일치는 꿈도 꾸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회의를 하면 만장일치로 한다.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이렇게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여줄까? 이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일당독재국가의 한계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다수결이 있다. 의견이 갈릴 때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51 49방식이다. 51%가 모든 것을 가져 가는 승자독식을 말한다. 나머지 49%는 패배자가 된다. 패배자를 넘어서 원수가 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all or nothing’이다. 이와 같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제도는 오늘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볼 수 있고 대통령선거에서도 볼 수 있다. 투표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에서는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한다. 마치 거수기들이 표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물밑 작업을 한 후에 투표한 것이라 한다. 표결 전에 충분히 토론을 하고 의견수렴을 하여 결론을 낸 것이라 한다. 그결과 투표장에서는 만장일치가 나오는데 이는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것이라 한다. 누구도 소외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최연선생은 불교에서의 삼중공의제와 같은 것이라 했다.

 

왜 갈마를 하는가

 

삼중공의제란 무엇일까? 이는 다름 아닌 백사갈마(ñatticatutthakamma)’를 말한다. 율장에 따르면, 백사갈마란 한번 제안한 뒤에 다시 세 번 “찬성하면 침묵하고 이견이 있으면 말하라.”라는 의사결정제도를 말한다. 이와 같은 백사갈마는 갈마를 관리하는 자, 즉 ‘산가지표결의 관리인(salākāgāhāpaka:행주인)’의 권한으로 진행된다.

 

백사갈마로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수결에 의한 표결을 한다. 이를 율장에서는 다수결의 원칙(yebhuyasikā)’이라 한다. 율장에 따르면 쟁사가 발생했을 때 일곱 가지 해결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다섯 번째가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쟁사를 그치게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쟁사는 주로 비법(非法)에 대한 것이다. 정법(正法)을 수호하기 위해 갈마가 열린다. 백사갈마나 다수결의 원칙은 비법을 쳐내기 위한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서 잘 나타난다.

 

 

“아난다여,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쟁사를 그치게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만약 그 수행승들이 주처에서 쟁사를 해결할 수 없으면, 그들은 보다 많은 대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아난다여, 그러한 수행승들은 모두 화합하여 모여야 할 것이다. 함께 만나서 가르침에 따른 원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르침에 따른 원칙을 적용하면 그에 따라 쟁사를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어떤 쟁사는 이와 같이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그쳐지게 된다.(M104)

 

 

정법을 수호하는 것이 승가의 화합이다. 서로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하여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설령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표결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다수결로 차선책을 선택한다면 율장의 의미는 없어져 버린다.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교에서 대중공의제는 철저하게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정법을 수호하는 것이 결국 승가의 화합임을 말한다.

 

정치판의 차선책과 종교의 최선책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정당은 다당제이지만 양당이 번갈아 집권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제도의 핵심은 자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투표에 따른다.

 

유권자 한사람 한사람의 표가 반영되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이런 제도는 북한의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 체제 보다 훨씬 우월할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된 것처럼 승자독식제도이다. 득표수 51%가 모든 것을 다 차지 하는 것이다. 득표수 49%는 다음 선거를 기약하며 패배자로 살아야 한다. 마치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양당제를 보면 매일 전쟁을 하는 것 같다.

 

권력을 잡은 정당은 여당이 되고, 권력을 빼앗긴 정당은 야당이 된다. 이것은 선거판 룰에 따른 것이다. 이때 여당과 야당은 서로 정치라는 것을 한다. 정치를 하면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 붙일 수 없다. 야당이라 하여 반대만 할 수 없다. 적당하게 타협해야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은 항상 차선책이다.

 

정치판에서는 기본적으로 차선을 추구한다. 이는 협상 파트너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다. 만약 정치판에서 최선을 추구한다면 야당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파트너를 인정하기 때문에 협상을 하고 그 결과로서 차선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치적 행위는 차선책을 추구한다.

 

종교에서는 항상 최선을 추구한다. 만일 종교에서 차선을 추구한다면 교주의 가르침은 변질되어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종교에서는 정치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승가에 쟁사가 생겼을 때 다수결의 원칙(yebhuyasikā)’이 있다고 하여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만일 타협하여 차선책을 내놓는다면 율장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국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따라 일당이 지배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만장일치제를 채택한다. 이런 제도가 불교의 삼중공의제와 유사하다고 했다. 이는 다름 아닌 최선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념을 지켜 내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치 불교에서 쟁사가 발생했을 때 갈마하는 것이 비법을 쳐내고 정법을 수호하는 것과 같다.

 

전쟁광들은 끊임 없이

 

법문형식을 빌어서 최연선생으로부터 북맹탈출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이제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 명확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실상이다. 영상자료로 본 오늘날의 북한은 옛날 북한이 아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볼 수 있다.

 

이제까지 권위주의 정권시절 대북정책은 혐오론붕괴론이 지배했다. 심지어 전쟁불사도 이야기했다. 이전에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과거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언제까지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살아 갈 것인가?

 

전쟁은 증오심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전쟁광들은 끊임 없이 증오심과 적개심을 불어 넣는다. 이제까지 분단 70여년이 그랬다. 그러나 이제 두 세대가 지나갔다. 이제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만들어야 할까?

 

이제는 치고 나가야 한다

 

4 27일은 인간띠 잇기 운동하는 날이다. 작년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휴전선 일대에서 인간띠 잇기 하는 날이다. 순수하게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주관하는 것이다. 이 운동에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도 참여한다. 목적지는 강원도 양구에 있는 펀치볼전적지이다. 회원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천도재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제 치고 나가야 한다.” 최연선생이 강연형식의 법문 말미에 한말이다. 문재인대통령이 남북중재자역할을 자임하며 북미간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남북평화문제를 언제까지나 정부나 지자체에 맡겨 둘 수 없다. 이제 민간이 나서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4 27일 디엠지 인간띠 잇기 운동에서부터 치고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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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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