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거라면 뭐하러 왔나?

 

 

그럴거라면 뭐하러 왔나?”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말 할 법하다. 황교안 대표가 뻣뻣이 서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부처님오신날 은해사에서 황교안은 시종 뻣뻣한 자세로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그는 합장하지 않았다. 고개도 숙이지 않았다. 관욕을 권유할 때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럴거라면 거기에 뭐하러 갔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이것은 오래된 진리의 말과 같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법에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나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앉으라고 하면 앉는다. 고개 숙이라고 하면 숙인다. 그쪽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축하하러 간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교인이니까 그렇게 못해!”라며 고개 빳빳이 세우고 있다면 볼썽사나운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왜 무례할까?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예수 믿으라고 한다.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 전도사는 막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전도대상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 대체 이런 무례는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골세레모니가 있다. 전국민이 시청하는 텔레비젼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골을 넣었을 때 동료들과 기쁨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만치 떨어져 무릎꿇고 자신의 신에게 먼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장면에 기독교인이라면 환호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인이 보기에는 씁쓸하다. 골을 넣으면 기쁘긴 하지만 동시에 눈쌀 찌뿌린다. 골을 못넣어도 걱정되고 골을 넣어도 걱정된다. 과도한 종교적 행위가 불쾌를 야기 한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축구장에서 기도행위 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다. 만일 상대편 선수도 같은 신을 믿고 있다면 신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축구장에서 골세레모니 하는 것은 국민을 얕잡아 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전국민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무례한 행위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 우월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문명의 종교라고 한다. 문명의 종교가 들어와서 학교와 병원을 지어서 개화 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 종교는 모조리 미신숭배나하고 우상숭배나 하는 열등한 종교라고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 개종의 대상인 것이다. 이는 자만이다. 우월의식에 따른 종교적 자만은 상대방 종교에 대한 무시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예수천국불신지옥!”을 외치는 무례로 나타난다.

 

무례한 그들은 공존을 거부하는 듯하다. 불상을 부수고 절에 방화를 한다. 시장과 같은 지자체 장들은 성시화운동을 하여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공격적 선교로 인하여 불교인들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종교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불교는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오래 전에 절단 났을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영원주의는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유일신교 종교는 모두 영원주의라 볼 수 있다. 왜 영원주의가 사견일까?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연기법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멸을 관찰하면 영원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생성을 관찰하면 허무주의는 깨진다. 부처님은 25백년 전에 연기법으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가 허위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영원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진리를 모르는 무지라 볼 수 있다.

 

불교인들은 이 땅이 불국토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유일신교도들은 공존을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공격적 선교에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교인들은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불교는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불교는 담마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한다. 부처님가르침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옴을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 산사음악회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안양에 산다는 민주당 비례의원은 저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절에 다닙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절에 다닌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자가 아님에 분명하다. 표를 보고 온 것이다. 성남에 지역구를 둔 두 국회의원이 등장했다. 산하나만 넘으면 성남이라 말하며 인연을 강조했다. 이들 의원들도 자신이 불자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인사가 길어지자 그만해라!”라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산다. 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비불교 정치인들이 절에 가는 것도 표 때문이다. 황교안도 표를 보고 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는 먼저 교회를 다녀 왔다. 그리고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절에 간 것 같다. 가서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뻣뻣하게 서 있었다. 무례한 행위이다. 길거리전도사처럼, 골세레모니 하는 것처럼 예의가 없는 것이다.

 

누가 황교안더러 오라고 했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불교행사에 가면 불교식 행사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다면 예의가 아니다. 불교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의 무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불교인들은 분노한다. 그럴거라면 뭐하러 왔는가?

 

 

2019-05-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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