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기(佛紀)따로 기념일따로 한국불교, 사월보름을 붓다의 날로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불기(佛紀)따로 기념일따로 한국불교, 사월보름을 붓다의 날로

 

 

모임에 나가면 종종 알아 보는 사람이 있다.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십년 넘게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 들으면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또한편으로는 이름도 없는 보통불자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올린 글이 누군가에는 영향을 주고 있음에 틀림 없다. 붓다의 날 담마와나선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담마와나선원 붓다의 날 행사와 관련하여 글을 올렸다. 처음 참석한 테라와다불교의 부처님오신날 행사는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이런 이유로 참석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일반법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 탁발법회라 하여 좌선하고 공양하고 법문 듣는데 이것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았다.

 

붓다의 날이라 하여 특별한 날이 아니다. 문화공연 하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과 관련하여 법문 듣는 날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꽃공양한다는 것이다.

 

꽃공양은 불단을 장엄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큰 의미가 있었다. 이 몸도 꽃처럼 시들어 가는 것을 봄으로써 무상을 자각하라는 뜻이다. 촛불을 켜는 등공양은 무명을 밝히라는 것이고, 향을 사르는 향공양하는 것은 계의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청정수 공양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날 붓다의 날 행사에서는 꽃공양 하나만 했다.

 

어디에 가든지 후기를 작성한다. 붓다의 날 행사 역시 후기를 작성했다. 행사 다음날 거의 8시간 가량 썼다. 이렇게 완성된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페이스북과 밴드, 카톡방에 공유했다. 그런데 어느 법우님이 대단히 인상적인 댓글을 달았다. 블로그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글에 마음이 다가왔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부처님 오신날은 부처님 탄생일의 의미가 있는데
동시에 쓰고 있는 불기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불기 2563년이 부처님이 탄생하신지 2563년이 아니라 부처님이 열반하신때로부터 2563년이라고 하니까 불기도 수정을 해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Y 법우님)

 



 

참으로 핵심을 가로지르는 말이다. 이제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지적해 주었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 행사 할 때 한국불교의 각 종단에서는 불기 2563년 봉축행사를 가졌다. 이는 모순이다. 불기 2563년은 열반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부처님 탄생만을 기념하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에서는 불기 2563년에서 80년을 더한 2643년 행사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부처님 탄생을 축하는 봉축행사에서 불기 2563년이라고 봉축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음력 사월초파일에 부처님 탄생만을 축하하는 행사를 갖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중국와 한국밖에 없다. 대만의 경우 오월 두 번째 주 일요일에 행사를 갖는 것으로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양력으로 4 8일에 행사를 갖는다. 동아시아 불교국에서는 나라마다 행사날자가 모두 다르다. 그것도 탄생에 대해서만 행사를 갖는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테라와다불교국가와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대부분 불교국가들은 사월 보름날 행사를 갖는다. 그것도 탄생과 성도, 열반 이 세 가지에 대하여 한날에 갖는다. 더구나 사월보름날은 베삭데이(Vesak Day)라 하여 유엔에서도 1999년에 공식적으로 홀리데이로 인정된 바 있다. 그래서 사월보름날의 베삭데이는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공식적 붓다의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와 함께 성스런 날로 인정되어서 유엔사무총장이 축하메세지까지 발표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월보름날 베삭데이가 공식적인 붓다의 날이다. 이 날은 부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성도,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그래서 부처님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하여 2563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타당하다.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한꺼번에 행사했을 때 부처님 열반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부처님 탄생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2643년 주년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 성도절에는 2608년 행사를 가져야 한다. 열반절 행사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2563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는 오로지 탄생일만을 기준으로 하여 2563주년 행사를 갖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이런 모순은 테라와다불교를 표방하는 선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문자를 하나 받았다. 과천에 있는 B선원에서 온 것이다. 문자를 보니 불기 2563년 행사를 하는 와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날자가 5 12일이었다. 한국불교의 초파일과 같은 날자이다. 테라와다불교를 지향하는 선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국불교에서는 불기(佛紀)를 사용할 때 부처님 열반을 기준으로 하여 사용한다.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다. 전세계적인 추세에 따르는 것으로 불교도기도 포함된다. 이 오색깃발은 본래 1885년 미국 올코트 대령이 스리랑카 불교부흥운동을 돕던 중에 고안된 것이다. 이후 1950년 스리랑카에서 발족한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채택되었다. 그리고 1956년 불기 2500년을 맞이하여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불교에서는 남방불기와 불교도기를 도입함에 따라 전세계적 추세에 따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북방불기를 과감하게 버리고 남방불기를 따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불기따로 기념일따로가 된 것이다. 제대로 따르려면 기념일도 바꾸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월보름에 행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동시에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기와 기념일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함께 기념하는 것은 근거가 있다. 맛지마니까야 아주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것의 경’(M123)에 따르면 부처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하여 과거 부처가 출현했을 때의 탄생게를 말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님이다.

이것은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M123)

 

 

경에 따르면, 보살은 태어나자마자 일곱발을 내딛고 모든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선언한 것이다. 가장 우두머리인 것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살은 왜 이렇게 선언했을까? 앙굿따라니까야 베란자의 경’(A8.11)을 보면 답이 나와 있다.

 

베란자의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병아리 부화의 비유를 들고 있다. 어미 닭이 여러 개의 알을 낳아서 품지만 가장 먼저 알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손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무명에 빠진 계란의 존재와 같은 뭇삶들을 위하여, 둘러싸인 무명의 껍질을 깨고 홀로 세상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히 깨달았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A8.11) 라고 선언한 것이다.

 

알은 순서대로 낳는다. 어제 낳은 알과 오늘 낳은 알에는 순서가 있다. 그러나 껍질에 둘러 쌓여 있는 한 알은 알일 뿐이다. 알껍질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된다. 알에는 순서가 있지만 껍질을 깨고 나오는데 있어서는 순서가 없다. 어미 닭이 똑같이 품어 주지만 먼저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가장 손위가 된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아눗따라삼마삼보디(anuttara sammāsambodhi: 無上正等正覺)’ 라고 한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이라 한다. 또 한편으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위없는 깨달음이라 한다. 그래서 무상정등정각, 즉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이라 한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부처가 출현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마치 알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와 같다. 무명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왔기 때문에 세상의 최상자(jeṭṭho seṭṭho lokassa)’라고 선언한 것이다.

 

탄생게를 보면 부처님 일생을 엿볼 수 있다. 보살이 최후로 성취할 것들의 전조가 실려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보살이 십바라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부처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다 갖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님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님이다.”(M123)라며 무리중의 가장 우두머리라고 선언한 것은 퇴전할 수 없는 가르침(Dhamma)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상정등정각의 성취를 의미한다. 성도(成道)에 대한 것이다. 보살이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ayamantimā jāti)”라고 말한 것은 남김 없는 열반의 세계(無餘涅槃)에 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열반(涅槃)에 대한 것이다.

 

탄생게에는 세 가지 사건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런데 모두 최후라는 것이다. 태어남도 성도도 열반도 최후로 성취될 것들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남방테라와다불교국가에서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한날에 지내는 근거가 되는 게송이라 볼 수 있다.

 

보수적인 집단이 있다. 대개 기득권층이다.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에 대하여 불온시하고 탄압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기득권 집단은 현재 이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어느 곳일까? 아마 종교계일 것이다.

 

종교계야 말로 보수중에 보수에 속한다. 이단이 생겨나면 처낸다. 근본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새롭게 교리를 해석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신흥종교집단도 당대에서 끝나는 것은 종교의 강한 보수회귀성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가 타락하면 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운동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불교계는 어떨까?

 

부처님은 열반에 들 때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교인이라면 가르침(Dhamma)과 계율(Vinaya)대로 살아야 한다. 쟁사가 생겨 갈마(kamma)를 하는 것도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가르침과 계율이 무시되면 어떻게 될까? 전혀 다른 불교가 되어 버릴 것이다.

 

동아시아불교는 동아시아 문화와 환경에 맞게 변형 되었다. 이에 대하여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고 퇴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수천년 내려 오면서 오늘날 부처님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보전 하고 있는 남방테라와다 불교와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나게 되었다.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부처님 기념일에 대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붓다의 날은 사월보름날이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에서는 나라마다 기념일이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일을 갖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기를 보면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한 남방불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모순이다. 한국불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남방불기를 사용하면서 부처님 탄생을 기념하는 초파일 행사를 갖고 있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잘못된 것도 오래 되면 전통이 되는 것일까? 전통이어서 바꾸지 못한다면 보수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보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 법과 율을 따져서 맞았을 때 보수가 된다.

 

한국불교는 언제 바뀔까?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불기와 기념일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함에도 그대로 가는 것은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바뀌게 될 것이다. 사월보름날을 붓다의 날로 기념하는 세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을까?

 

 

2019-05-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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