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처님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구미 대둔사 순례를 하고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부처님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구미 대둔사 순례를 하고

 

 

순례를 떠났다. 구미에 있는 대둔사이다. 8교구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서 446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아도화상이라면 고구려승려로서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승려로 알려져 있다. 역사로만 본다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절 중의 하나이다.

 

대둔사는 어디에

 

대둔사가 정확하게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 지도를 찾아 보았다. 대둔사는 남쪽에 있는 구미시와 북쪽에 있는 상주시 사이에 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어느 산사나 마찬가지로 산중 깊숙한 곳에 숨어 있듯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순례는 능인선원 금강회 춘계순례에 동참했다. 금강회에서는 매년 두 차례 순례를 간다. 날자가 정해져 있다. 전반기에는 6 6일 현충일이고, 후반기에는 10 3일 개천절이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매번 참가하고 있다. 참가하고 나서는 기록을 남겼다.

 

요새 같은 대둔사

 

2019 6 6일 순례단을 실은 전세버스가 대둔사 입구에 도착했다. 내륙 중앙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 대둔사는 천혜의 요새처럼 보인다. 마치 난공불락의 성을 마주하는 것 같다. 육중한 바위로 축대를 쌓아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모두 아홉 대의 버스가 동원되었다. 약 삼백여명 되는 대규모 순례단이다. 그러나 십년전까지만 해도 삼십대 가량 되었다. 거의 천명에 달하는 초대규모 순례단이 이동한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 무상한 세월에 순례단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특별서비스를 받고

 

대둔사 경내에 도착하니 특별서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둔사 신도회에서 연꽃차를 제공한 것이다. 종이컵으로 한잔 받았다. 얼음물이 들어가서일까 갈증이 해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대우 받았다는 느낌이다. 작은 정성 하나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것 같다.

 

 



주지스님의 대둔사 소개

 

대중들이 대법당 앞에 자리 잡았다. 오전 10시 반에 도착했으므로 12시 반까지 두 시간 동안 법회를 갖는다. 그래서 순례법회라고 한다. 단순하게 사찰 경내를 한바퀴 둘러 보고 떠나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일까 법회가 시작되었을 때 삼귀의부터 시작하여 천수경, 정근, 법문 순으로 여법하게 진행되었다. 마무리는 항상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마친다.

 

 



주지스님이 대둔사를 소개했다. 주지스님은 능인선원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9년전인 2000년에 머물렀다고 한다. 태국지원에 파견 나가 소임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능인선원장 지광스님에 따르면 능인선원을 거쳐간 스님들이 매우 많다고 했다. 그리고 중앙승가대학에 장학금을 지원 했는데 매년 20명 가량 선발해서 수여했다고 한다. 능인선원을 거쳐간 스님들과 장학금을 받은 스님들이 지금은 한국불교 중진이 되어 한국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한다.

 

대둔사는 도리사와 함께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충렬왕의 왕자 왕소군이 1231년 몽고침략때 불타버린 것을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 대둔사는 승병의 근거지였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중의 하나인 사명당 유정스님이 1606년 승군을 주둔시킨 일이 있는데 그 숫자가 만명 가량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둔사를 보면 마치 성채를 연상케 한다.

 

화엄성중 정근을 했는데

 

천수경이 끝나자 정근이 시작되었다. 정근시간은 꽤 길다. 보통 삼십분 이상 된다. 각 사찰의 맞는 정근을 하는데 대둔사에서는 화엄성중정근을 했다. 원장스님이 화엄성중, 화엄성중,…”라고 정근하면 신도들도 따라서 하는 것이다. 세 번에 한번 높낮이가 있는 특유의 운율을 넣는다. 계속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집중이 된다. 일종의 사마타 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대둔사에서 화엄성중 정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충일이기도 한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둔사가 화엄사찰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화엄성중 하는 것에 대하여 사명당 유정스님의 승군이 머물렀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전시에는 성()이 되는 화엄사찰

 

한국에 화엄사찰이 있다. 보통 화엄십찰이라 하여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십찰은 일종의 방어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전란이 났을 때 성곽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화엄종이 국가의 안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십찰은 평시에는 절이지만 전시에는 성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산사에 가면 대부분 축대 위에 건설되어 있다. 경사진 곳에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든지 축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둔사의 경우 성벽처럼 우람하다는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바위를 보면 절이라기 보다는 성에 더 가깝다. 승병 만명이 주둔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전란이 발생했을 때 성으로 사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산사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대둔사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서일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것 같다. 관광지화된 유명사찰과 달리 산사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유월에 볼 수 있는 갖가지 꽃이 만발해 있다. 붉은 앵두처럼 생긴 보리똥이 탐스럽게 열려 있다. 민들레 처럼 생긴 둥근 골프공 모양의 꽃은 하나의 우주를 보여 주는 것 같다.

 





 

나무의 연꽃, 후박나무꽃

 

후박나무를 보았다. 말로만 듣던 나무이다. 두 그루가 있다. 한그루는 대웅전 뒤에 있고, 또 한그루는 응진전 옆에 있다. 짙푸른 잎파리가 번들거린다. 남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활엽수이다. 무엇보다 꽃이 아름답다. 마치 목련꽃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사월에 피는 목련꽃 보다는 좀 더 품격 있어 보인다. 나무에서 피는 연꽃처럼 벌어진 꽃잎사이로 노랑 꽃대가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골동품을 보는 듯한 대웅전

 

대둔사 대웅전은 고색창연하다. 마치 오래된 골동품을 보는 듯 하다. 전면 3,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로 대웅전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단청도 벗겨져 있어서 더 오래 되어 보인다. 17세기 말에 지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보물로 지정 되었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보았다. 천정에는 다포로 되어 있어서 섬세한 조각작품을 보는 것 같다. 주불은 아미타부처님이다. 특이하게도 건칠로 된 것이다. 대개 철이나 흙, 나무로 조성된 불상이 많은데 이곳 대둔사 불상은 재질이 삼베와 종이로 된 것이다. 삼배와 종이를 몇겹씩 발라서 옷칠하고 금박을 입힌 것이다. 그래서 불상이름이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다. 건칠불상은 고려시대 후기에 유행했다고 한다.

 




대둔사에는 보물이 많다

 

대둔사에는 보물이 많다. 산중 깊숙이 있기 때문에 보전 되어 왔을 것이다. 최근에는 응진전에 있는 나한상이 예고 되어 있다. 최근 문화재청에서 다녀 갔는데 보물지정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한상의 모습이 매우 다채롭다. 나한상 특유의 해학적 모습도 보인다. 머리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가장 눈에 띈다. 보통 16나한상이라고 하는데 나한이라는 말은 번뇌 다한 아라한을 한자어로 표현 한 것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정근(精勤)

 

법회는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화엄성중 정근이 가장 핵심이다. 순례자들은 지극정성으로 원장스님의 화엄성중 정근에 따라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하며 운율을 넣어 정근한다. 듣기만 해도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불보살 명호를 부르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했을 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정근하는 동안 마음이 청정해져서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비빔밥 한그릇 들고

 

법회가 끝났다. 다음은 즐거운 점심공양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절에서 주는 점심공양은 비빔밥이다. 수백명이나 되는 순례자들에게 밥상 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비빔밥 한그릇 들고 아무 곳에서나 앉아서 먹는 것이다. 자리가 없으면 서서 먹기도 한다.

 

 


 

비빔밥은 비벼 먹어야 맛이다. 시뻘건 고추장을 한숫가락 떠서 맛나게 비비면 밥한톨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절에서 먹는 비빔밥은 그 어디에서 먹는 밥 보다 맛이 있다. 그것은 식재료가 청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산행하느라고 힘을 쓴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정근하느라 목소리를 낸 것도 있다. 순례자들은 포만감과 함께 다음 행선지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증말로 부처님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요.”

 

금강회 순례법회를 14년째 따라 다니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순례자들을 보니 대부분 고령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고 나이 든 어느 분은 유모차와 같은 보행기에 의존하고 있다. 고령화 현상은 이제 일반화 된 듯하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타종교도 공통된 현상이라고 한다.

 

원장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증말로 부처님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말했다. 참가한 사람들 눈높이에 맞춘 법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말 부처님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부처님은 2563년전에 완전한 열반에 들었지만 법신으로서 부처님은 살아 있는 것이다.

 

진리로서의 부처님은

 

부처님은 32상과 80종호를 갖춘 거룩한 상호를 갖추고 있다. 누구나 부처님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처님 당시 부처님의 제자 박깔리는 부처님의 얼굴만 바라 보았다. 마치 학생이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럴 때 선생님은 주의를 줄 것이다. “왜 학생은 내 얼굴만 빤히 바라고 있죠?”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은 부처님 법문에 집중하지 않고 부처님 얼굴만 빤히 바라 보고 있는 박깔리에 주의를 주었다. 부처님은 박깔리여,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S22.87)라고 말씀 했다.

 

여기서 진리란 법(Dhamma)을 말한다. 얼굴과 목소리는 영원하지 않지만 담마는 영원함을 말한다. 그래서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진리의 몸으로서 부처님을 말한다. 그래서 법신(法身: dhammakāya)’이라고 한다.


사람은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누군가 이름을 기억해 주고 있다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이다. 이름은 오로지 관념 또는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 오래 기억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 부처님이 그렇다.

 

오온으로서 부처님은 오래 전에 몸이 부서져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가르침은 남아 있다. 후대에 구전 되어 온 것이 문자화 되어서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부처님 가르침은 살아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며 초기경전을 펼치면 부처님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는 부처님이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i)”(S22.87)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 가르침을 접하면 정말로 부처님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라고 볼 수 있다.

 

 


2019-06-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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