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는 있어도 다름은 없다

 

 

평화로운 아침이다. 일요일 아침 햇살이 밝다. 전형적인 6월 중순의 날씨이다. 아침에는 선선하고 상쾌하지만 점심때가 되면 더워진다. 그래서일까 귀촌하여 농사짓고 있는 선생에 따르면 새벽일찍 밭에 나가 일을 한다고 한다. 낮에는 더워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6월 말 경에 감자가 출하되는데 무농약 친환경 농법을 적용했다고 한다. 미리 한박스 주문해 놓았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다면 이전날 잘 산 것이나 다름 없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에게 따르는 보상과 같은 것이다.

 

불교사회교리에 대하여

 

2019 6 15일 정평법회가 장충동 우리함께빌딩 6층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임원들이다. 그러나 숫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반드시 많이 모여야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세상을 움직인다.

 




최근 정평법회에서 시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교사회교리에 대한 것이다. 타종교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불교에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평불에서는 17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매월 법회 때 마다 법사가 해당 주제에 대하여 법문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7개월 걸린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주제별로 법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평불에서 종합하고자 하는 불교사회교리는 불교교리의 원칙에 따른다. 철저하게 경전에 근거하여 개인의 깨달음과 사회적 실천을 지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마디로 자리이타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불교사회교리는 1) 사회적 고와 깨달음의 사회화, 2) 불자의 평화론, 마음의 평화와 사회평화의 불일불이, 3) 불자의 정의론, 4) 불자의 자유론, 5) 불자의 윤리적 자세, 6) 불자의 인권, 7) 공동선, 8) 불자의 직업과 소명, 노동, 9) 환경과 생명, 10) 불자의 생명관과 일상생활-낙태, 11) 가정생활, 12) 불자의 성생활, 13) 불자의 사랑, 이성애와 동성애, 14) 불자의 경제관과 경제행위, 15) 복지, 16) 정치와 국가권력, 국가관, 17) 불교경제학 이렇게 17가지 주제로 매월 법회를 통하여 발표 된다. 법사는 정평불 내부 인적자원과 초청강사가 맡게 된다.

 

요즘은 유튜브시대이다. 불교사회교리에 대한 법문은 모두 유튜브에 공개 된다. 17개 법문 중에 현재 1번에 해당되는 사회적 고와 깨달음의 사회화에 대한 사회교리를 지난 5 18일 정평법회 때 정평불 상임대표 이도흠 선생이 법문했다.  이번 6월 법회에서도 역시 정평불 상임대표 이도흠 선생이 2번에 해당되는 불자의 평화론, 마음의 평화와 사회평화의 불일불이라는 사회교리를 법문했다. 앞으로 모든 불교사회교리에 대한 법문은 유튜브에 공개된다. 유튜브에 공개 되어 조회수가 많아지면 정평법회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6월 정평법회 주제는 불자의 평화론, 마음의 평화와 사회평화의 불일불이에 대한 것이다. 불교사회교리 두 번째에 해당되는 주제이다. 제목 그대로이다. 제목에 모든 것이 함축 되어 있다. 개인의 평화와 사회의 평화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화와 사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틱낫한 스님의 분노다스리기를 보면 호흡명상에 대한 것이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심호흡을 하라는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분노는 이전 마음이 될 것이다. 분노의 마음을 돌리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모든 번뇌 망상은 호흡이나 복부관찰 등에 사띠 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틱낫한 스님은 수행으로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 한 것이다.

 

분노다스리기에 경전만한 것이 없다. 경전에 수 많은 부처님 가르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해 두고 싶은 게송이 있다. 그것은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네.”(S7.3)라는 게송이다.

 

화 내는 사람에게 화 낸다면 화내는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새김을 확립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그 둘 다를 위한 것이네.” (S7.3)라고 했다. 화내는 사람에게 화내지 않는 것이 둘 다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화를 돋구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윈윈(win-win)’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될 수 있다

 

개인적 평화는 수행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화가 났을 때 사띠하면 가라 앉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평화에 대한 것이다. 이는 사회폭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집단학살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반드시 집단학살과 같은 폭력은 전시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시에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나 아렌트악의 평범성순진한 생각없음으로 설명된다. 누구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악마의 속성이 발현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될 수 있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언젠가 영화를 보았다. 평범한 사람을 간수역과 죄수역으로 구분하여 어떤 상황이 초래 되는지에 대한 것을 알아보는 영화이다. 결과는 끔찍 했다. 간수역을 맡은 사람에게 폭력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완장을 채워 주면 평범한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충격적 내용이다. 이른바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루시퍼 이펙트와 같은 실험 사례를 말한다.

 

동일성패러다임을 보면

 

천사도 악마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루시퍼 이펙트이다. 이는 다름 아닌 사회구조적 폭력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학살과 같은 사회적 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이도흠선생은 동일성 패러다임으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내편과 네편으로 가르는 것이다. 내편이면 함께 하고, 네편이면 내치는 것을 말한다. 한자식으로 말하면 당동벌이(黨同伐異)’이다. 최근 조계종에서 권승들이 보이는 행태와 같은 것이다.

 

동일성패러다임 사례는 매우 많다. 백인이 유색인을 차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백인우월주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의 입장에서 유색인종은 타자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대표적이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집단 학살당한 것도 동일성패러다임에 적용될 수 있다. 그때 당시 조선사람을 학살한 사람은 일본에서도 천민에 해당되는 일본사람들이었다.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조선사람을 타자로 본 것이다.

 

차이는 있어도 다름은 없다

 

동일성은 반드시 타자를 상정한다. 한번 타자로 지정되면 그 다음에 폭력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이도흠선생은 원효의 변동어이론으로 설명한다. 금강삼매경에 실려 있는데 같다는 것은 다름에서 같음을 분별한 것이요, 다르다는 것은 같음에서 다름을 밝힌 것이다.”로 시작된다. 이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내안에 너가 있다. 너 안에 내가 있다는 대대대대(待對)적 이론으로 설명된다.

 

대대(待對)적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 이도흠 선생의 눈부처이론이다. 상대방의 눈을 통하여 나를 보았을 때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은 해체된다. 내안에 상대방이 있고, 상대방 안에 내가 있어서 대대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렇게 대대적 관계가 형성되면 차이는 있어도 다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일성패러다임으로 인한 끔찍한 집단학살이나 사회적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하면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유월의 눈부신 햇살에 세상이 평화로워 보인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세상도 평화로워 보인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이 평화로워야 한다. 분노가 일어나면 호흡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행위를 관찰 했을 때 번뇌망상은 사라진다. 개인의 평화는 수행으로 완성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하면 가족 생각이 난다. 가족도 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자애의 마음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하면 이웃으로도 확산된다. 그리고 사회로, 온 우주로 확산된다. 사회평화는 자신의 평화로부터 이루어진다. 불교교리적으로 말한다면 사무량심의 확산이다.

 

개인의 평화는 사회의 평화로 이어진다. 개인의 평화가 사회평화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불교사회교리적으로 말한다면 원효의 변동어이론에 따른 대대적 이론이다. 이와 같은 불교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눈부처이론이라 볼 수 있다.

 

 

2019-06-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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