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미래도

 

 

근원적 두려움이 있다. 원초적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살고자 하기 때문에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근원적 두려움, 원초적 두려움은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서 올라 온다. 평소에는 알 수 없는데 종종 꿈으로 나타난다. 선 잠을 잘 때 특히 그렇다. 잠을 푹 자면 꿈이 없다. 그래서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고 했나 보다.

 

꿈을 꾸었다. 직장에서 쩔쩔 매는 꿈이다. 나이 들어 어렵사리 잡은 직장인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해서 눈치 보는 꿈이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아 먹었을 때 무척 불안한 것이다. 언제 퇴출될지 모른다.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 쫓겨나면 벌어 먹고 살 것이 없다. 생계가 막막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살 날은 많이 남았는데 직장이 불안 했을 때 갑갑한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다가 꿈을 깼다. 꿈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했다.

 

한동안 멍했다. 꿈속에서 장면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 왔을 때 안심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계 수단으로 일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정년이 없는 일이다. 나이 들어서도 늙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간 다행스런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꿈속에서는 쩔쩔매는 것일까?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직장을 수없이 옮긴 이유도 있다. 크고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작고 불안정한 직장에서는 언제 그만 둘지 모른다. 수없이 회사가 생겨나고 망한다. 사업이 안되면 접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직장을 알아 보아야 한다. 때로 타의에 그만 둘 때도 있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이 보장 되지 않는다. 더구나 기술을 따라 가지 못했을 때 퇴물이 된다.

 

낡은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나이 든 엔지니어를 고액으로 고용하는 곳은 없다. 40대 중반에 이르러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려고 했다. 이것 저것 알아 보았으나 마땅히 해 먹고 살 것이 없었다. 육체가 튼튼하다면 건설현장이라도 갔을 것이다. 단순 기술로는 고용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일이년 해매다 보니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벌써 13-14년 전의 일임에도 꿈속에서 쩔쩔 매는 것으로 나타난다. 힘겨운 인생이다.

 

고객에게 전화가 왔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증거를 들이대니 정말 잘못 되었다. 도면에 써 있는 문구를 못 본 것이다. 담당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검도 해달라고 요청 했는데 이상없다고 하며 진행해도 된다고 메일 보내 왔다. 그런데 잘못 된 것이다. 이런 경우 담당과 말다툼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은 수습하는 것이 상책이다. 잘잘못을 따져서 반반씩 손실을 분담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객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럴 때는 조용히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해 주겠다고 했다. 손실을 고스란히 떠 안은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스런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두 개 중에 작은 물건에 작은 수량이었기 때문에 손실 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12일 단납기로 진행했다. 오늘 발주 내고 내일 물건 수령하는 식이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하여 고객이 있는 이천공장으로 직접 가져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도면을 꼼꼼히 확인 하지 과보는 컸다. 금전적으로 손해 났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손해 보았다. 금요일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눈부처학교 조준호선생 강연을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에 안양에서 이천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천 공장에 도착하여 물건을 건네 주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처리 해야 한다. 급하면 급한대로 대응해 주어야 한다. 때로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 회사는 10년 고객이다. 사실상 10년 동안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담당이 수없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계속 유지 되는 것은 10년 전에 담당자가 부장이 되어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히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이 있으면 불이익도 있다. 칭찬이 있으면 비난이 있기 마련이다. 명예가 있으면 불명예도 있다. 당연히 행복이 있으면 괴로움도 있다. 항상 이익만 있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손해 나는 일도 있다. 누구는 칭찬하지만 누구는 비난한다. 명예를 추구하다 보면 불명예도 따라다닌다. 행복을 바라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이익이 없다면 불이익도 없을 것이다. 칭찬이 없다면 비난도 없고, 명예가 없다면 불명예도 없고, 행복이 없다면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익과 칭찬, 명예,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불이익, 비난, 불명예, 괴로움이 따라 붙는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수행승에 대하여 낙싯바늘을 문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낙싯바늘을 삼킨 물고기는 어부가 원하는대로 이끌린다. 마찬가지로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수행승은 악마의 낙싯바늘을 삼킨 것과 같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버리지 않고 바란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자는 악마의 낙싯바늘을 삼킨 것으로 불행에 빠지고 재난에 빠져서 악마 빠삐만이 원하는대로 이끌리게 된다.”(S17.2)라고 말씀했다.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견적을 낼 때 지나치게 이익을 취하고자 한다면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약간 손해 나는 듯 내야 한다.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견적을 내여 한다. 고객이 손해 본다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화응대를 친절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업의 경에서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A4.79)라고 말씀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주었을 때 움직이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의도한 것 이상으로 주라는 것은 요즘말로 고객감동에 해당된다. 이런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접 뛰었다. 손실을 안고 직접 전달해 주었을 때 조금은 신뢰가 만회 되었으리라고 본다. 잘 살펴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손해 보았다. 12일이라는 짧은 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관여 되었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하여 우주의 씨줄과 날줄이 다시 짜여져서 출렁가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혹시 이번 일로 인하여 고객이 마음이 바뀌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 되는 것이다. 10년 동안 먹여 살렸는데 버린다면 큰 타격을 입는다. 이런 불안감이 꿈으로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지나가다 종종 보는할머니다. 허리가 굽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리어커에 폐지를 잔뜩 모아 힘겹게 끌고 다닌다.

 




폐지할머니를 볼 때 마다 인생이 힘겹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열등한 조건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열등한 조건을 타고 났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 보다는 낫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근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폐지 줍는 할머니처럼 미래를 바라지 말고 사는 것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미래도 보장되지 않을까?

 

 

2019-07-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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