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천년지장(千年之藏) 고반재에서 정평불 하계수련회를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천년지장(千年之藏) 고반재에서 정평불 하계수련회를

 

 

2019 8 17일 오후, 정평불 12일 하계수련회 첫 번째 이야기 고반재


정평불에서는 매년 한차례 이상 수련회를 떠난다. 12일 수련회이다. 작년에는 두 번 떠났다. 작년 4월에 월정사로 12일 갔었고, 8월에는 서산 참사람의 향기도량으로 1 2일 떠났다. 기록해 놓은 것을 보니 월정사수련회에는 20명이 참가했고, 서산수련회에는 18명이 참석했다. 이번 2019년 하계수련회는 함양 고반재로 떠났다.

 

왜 수련회를 하는가?

 

수련회를 왜 하는 것일까? 연간 계획일정에 따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우정을 쌓는 것이다. 임원참가자가 많지만 일반회원들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원들과의 교류는 정평법회나 눈부처학교, 시국관련 모임 등에서 가능하다. 카톡 등과 같이 에스엔에스 상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백번 문자로 소통하는 것 보다 한번 만나는 것만 못하다. 만나는 것 보다는 밥 한끼 함께 먹는 것이 더 낫고, 밥 한끼 보다는 12일 수련회가 훨씬 더 낫다. 수련회를 하면 급속하게 친밀해지기 때문이다.

 

수련회를 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나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한사람의 머리보다는 백사람의 머리가 더 나은 것이다. 이른바 브레인스토밍이라 하여 자유롭게 제한없이 조건없이 토론하다 보면 기발한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의견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면 단체가 미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화합과 전진의 장

 

수련회는 화합과 전진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함께 이동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보냈을 때 자연스럽게 화합의 장이 이루어진다. 또 함께 토론하고 함께 고민했을 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서 전진의 장이 된다.

 

화합과 전진의 장을 위한 정평불 고반재 하계수련회가 2019 8 17일부터 18일까지 주말을 맞이하여 12일동안 열렸다. 과연 몇 명이나 참여할지가 큰 관심사였다. 예년의 경우를 본다면 20명 안팍이 되기 쉽다.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에스엔에스상에 참가자 꼬리표 달기를 했다.

 

임원은 당연참가자로 했다. 그렇게 모아보니 27명 가량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당일날 출발하는 날이 되었을 때 예상한대로 20명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하여 빠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노쇼(No Show)이다. 당일날 아무런 연락없이 불참하는 것을 말한다.

 

보시바라밀행, 인욕바라밀행, 정진바라밀행 수련회

 

어떤 일이든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훌륭한 일이 된다. 이번 고반재 12일 수련회에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보았다. 그것은 육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먼저 보시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고반재는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 양재에서 264키로 되는 거리에 있다. 자동차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이다. 참가자가 20명이 넘어 갔을 때 전세버스 이야기가 나왔다. 25인승 마이크로버스 이야기도 나왔다. 문제는 비용이다. 이틀간 백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예상되었다. 그렇게 했을 경우 인당 8만에서 10만원을 회비로 걷어야 한다. 카풀조를 짜서 가면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카풀조를 짜서 가기로 했다.

 

카풀조는 대단히 익숙하다. 작년 월정사때도 서산모임때도 그렇게 갔다. 이번에도 카풀조를 짰다. 자동차가 있는 사람이 탈 것 보시하는 차원에서 협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이런 와중에 박종린 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카풀차량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전화 했다는 것이다. 불력회 회원 중에 9인승 카니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차를 빌려서 자신이 직접 운전하겠다고 했다. 듣던 중에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마치 구세주, 아니 관세음보살을 만난 듯 했다. 박종린선생의 협조로 카풀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이번에 차량을 지원하고 탈 것 보시한 사람들은 보시바라밀을 실천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보시바라밀행을 실천한 사람들이 또 있다. 음식을 보시한 사람들이다. 세 끼를 해결해야 했다. 첫날 저녁은 시켜 먹기로 했다. 고반재 아래에 있는 마을의 김밥집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둘째날 아침과 점심이다. 아침은 밥을 해 먹기로 했다. 유병화 선생과 최원녕 선생이 각각 밑반찬과 먹거리를 준비해 왔다. 점심은 아침밥 먹다 남은 것을 모아서 주먹밥을 만들었다. 주먹밥을 각자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점심때 먹기 위한 것이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비용절감과 환경에 대한 것이다. 식당에서 먹으면 비용이 들어가고 시간이 깨진다. 그러나 직접 지어 먹으니 시간도 절약되고 비용도 절감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경수련회가 된 것이다. 잔밥과 반찬을 모아서 비빈다음 김으로 싸서 주먹만한 주먹밥을 만든 것이다. 밥과 반찬을 남기자 않아서 친환경적 수련회가 된 것이다.

 

둘째는 인욕바라밀행이다. 이번 수련회는 참고 견디는 수련회가 되었다. 그것은 잠자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고반재는 절이 아니라 노스님이 홀로 사는 수행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특히 잠자리가 불편했다. 방이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에게 할당 되었다. 남자들은 대청마루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것도 이불이 없어서 각자 담요를 하나씩 가져와야 했다. 이런 사실을 사전에 공지했다. 요가 없어서 야외에서 사용하는 메트를 준비했다. 베개가 없어서 바람을 넣어서 사용하는 야외베개도 준비했다. 각자 자신이 잘 수 있는 것을 준비한 것이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잠을 자는 것이 단지 눈을 붙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고반재에서 자는 것은 해외여행가서 사성급호텔에서 자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템플스테이라 하여 절에서 자는 것이나, 수련관에서 자는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샤워시설도 부족하고 잠자리도 불편하여 그야말로 인욕바라밀행을 실천하는 수련회가 되었다.

 

셋째는 정진바라밀행이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모든 것이 불편한 수련회이지만 법이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정평법회와 수행법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수련회는 정평법회날과 겹치기 때문에 수련회 첫날 오후 늦게 정평법회가 열렸다. 박병기 선생이 재가보살의 사회윤리에 대하여 법문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김진태 선생이 부처님 당시 수행과 관련하여 법문했다. 특히 수행법문 할 때는 행선과 좌선에 대하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고반재는 어디에

 

2019 8 17일 점심을 전후하여 모두 6대의 카풀차량이 고반재를 향하여 출발했다. 목표는 4 30분에 시작하는 정평법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개별 출발한 사람도 있었다. 또 지방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국각지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고반재는 정확하게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지도를 보니 경남 함양군 안의면 장자동길 99’라고 되어 있다. 대전에서 진주간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데 지곡IC 가까이에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천년지장 고반재라고 되어 있다. 천년의 창고 고반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반재는 어떤 의미일까? 종림스님에 의하면 반야를 생각하는 집이라고 해서 고반재(考般齋)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의하면 2016 12월에 개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 대장경 복간본이 소장된 곳으로도 소개 되어 있다.

 




고반재는 박물관

 

오후 4 50분 고반재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처음 본 고반재는 마치 별장 같았다. 이층집이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 들어 가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밖에서는 아담한 집으로 보였으나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무척 너른 공간이 나왔다. 마치 별세계가 펼쳐진 듯 했다.

 



 

고반재 현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불상이다. 팔이 잘려 나간 작은 불상이다. 다리는 결가좌를 하고 있다. 얼굴은 한국형 불상처럼 보이지만 익숙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불상인지 알 수 없지만 상호가 매우 평온해 보였다.

 



  

고반재에는 마치 박물관 같다. 책이 가장 많지만 불상도 있고, 각종 불구도 보인다. 불교와 관련하여 온갖 것들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개원식 기사에 따르면 고반재는 최초 대장경인 초조대장경 복간본이 소장된 곳으로, 이 이외에도 20년 종림스님이 팔만대장경을 연구하며 모은 고서 등 2만여점이 보관된 책박물관이기도 하다.” (종림스님이 새로운 꿈을 그리는 곳 '고반재', 오마이뉴스 2016-12-07)라고 쓰여 있다.

 

진귀한 것들로 가득한

 

고반재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1층과 2층에는 온갖 진귀한 것들로 가득하다. 한문으로 된 고서는 물론 동남아, 티벳, 스리랑카 불경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어느 동굴에서 천년 동안 보관 되어 있었던 것이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글자를 알 수 없지만 귀중한 부처님 말씀이 적혀 있을 것이다.

 



 



















고반재의 보물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 박물관처럼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잘 정리 되어 전시 되고 있기는 하지만 도난의 우려도 있어 보인다. 수 많은 사람들이 고반재에 들락거린다고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특히 책이 그럴 것이다. 책을 빌려 간 다음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불투도죄를 짓는다고 볼 수 있다.

 







고반재는 이층구조로 되어 있다. 일층에는 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고, 이층은 거주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층에는 방과 주방, 거실이 있다. 특히 거실은 집필실이기도 하고 다실이기도 하다. 이십명 이상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너른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 이층공간에도 갖가지 진귀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천년지장(千年之藏)

 

고반재는  두 개의 동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본건물이라 볼 수 있는 2층집이고, 또 하나는 초조대장경 복간본이 모셔져 있는 천년지장(千年之藏)건물이다. 여기서 천년지장건물은 마치 티벳불교에서 보는 윤장대를 연상케 한다. 마치 사당 건물을 연상케하기도 한다.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신성한 영역처럼 보인다.

 

 



천년지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모두 마루바닥으로 되어 있다. 땅바닥에서 약 칠팔십센티 띄어져 있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을 연상케 한다. 들어가 보니 빨강색으로 옻칠한 괘짝이 사방 벽면에 가득하다.

 




괘짝 하나를 열어 보았다. 두루마리가 나왔다. 두루마리를 풀어 볼 수 없다. 제목만 보았다. 묘법연화경도 있고 유마경도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초조대장경 복간본 2,040권이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초조대장경에 대하여

 

언젠가 초조대장경에 대한 기사를 교계뉴스에서 보았다. 그때 관심 있게 본 것을 블로그에 기록해 두었다. 다시 찾아 보니 2011년도에 쓴 것이다. 그때 당시 교계신문기사 제목이 충격적이었다. 놀랍게도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자 불교계에서 자랑할 만한 법보인 고려대장경이 가짜라니 황당했다. 포털에서 고려대장경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대장경과 관련하여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저자 오윤희”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의 설명에 대하여 각 언론사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붓다뉴스에서는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라고 했고, 법보신문에서는 천년된 고려대장경이 진화된 짝퉁이라고?’라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불교포커스에서는 대장경에 성경이 들어 있다면?’라고 제목을 달았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 이윤희 선생에 따르면 초조대장경에 대하여 중국대장경의 짝퉁이라고 표현했다. 왜 짝퉁인가? 중국 송나라 개보대장경을 그대로 배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엎어 놓고 배꼈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장경에는 외도문헌도 보인다는 것이다. 인도육파철학의 하나인 수론종 상키야 학파의 문헌인 금칠십론(金七十論)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승론종 바이세기카 학파의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도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불교가 힌두교와의 논쟁에서 패한 것에 대한 문헌이라고 한다.

 

대장경에 왜 외도문헌이 들어가 있을까? 그것은 그때 당시 유행하던 사상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신수대장경(19121925)의 경우에는 기독교 성경에 대한 것도 들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는 경교삼위몽도찬(三威蒙度讚)이라든가, 찬송가로 사용된 경교삼위몽도찬(三威蒙度讚)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대장경은 일종의 백과사전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대장경의 개방성에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 오윤희 선생은 앞으로 천년후에 대장경이 결집된다면 기독교의 성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이 들어가 있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초조대장경에 대하여 짝퉁이라거나 엎어 놓고 베낀 것이라고 하여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카피단계를 거친다. 전자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일본 것을 그대로 베켰다.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에 대하여 데드카피(Dead Copy)라고 한다. 엎어 놓고 베끼는 것이다. 그런데 차츰 데드카피에서 카피단계로 발전하고, 마침내 독창적으로 개발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대장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에는 엎어 놓고 베꼈으나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팔만대장경을 결집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대장경이 간행 된지 천년이 되었다. 초조대장경이 그것이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1011년부터 시작하여 1087년에 완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초조대장경은 몽고침략으로 1232년에 불타 버렸다. 1236년 몽고가 다시 침략해 오자 이를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호국불교적인 의미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251년 다시 완성했다. 이를 재조대장경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말한다.

 

팔만대장경을 한단어로 축약하면

 

팔만대장경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려 있다. 정확하게는 팔만사천 가르침이라고 한다. 팔만사천이라는 말은 많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테라가타에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에게서 팔만이천, 수행승들에게서 이천을 받아 팔만사천법문을 담지하고 있다.”(Thag.1030)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팔만사천법문이라하여 모두 부처님의 법문이 아니다. 이천법문은 제자들의 법문인 것이다. 실제로 니까야를 보면 사리뿟따, 마하깟싸빠, 아난다 등 제자들의 법문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법문에 대하여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밤부터, 잔여 없는 열반의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든 밤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대화하고 말하고 설한 모든 것이 이와 같고, 다른 것과 다르지 않다.(It.121-122)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이 설한 모든 가르침은 이른바 구분교, 즉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 형태로 경전에 남아 있다. 이것이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의 팔만사천법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팔만사천법문을 한글자로 축약한다면 무엇이라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마음 심()’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사띠(sati)’라고 말한다. 고반재에서는 중도인 것 같다. 이는 천년지장의 주련을 보면 알 수 있다.

 

천년지장에 주련이 두 개 걸려 있다. 하나는 불생역불멸부단역불상(不生亦不滅 不斷亦不常)이라고 되어 있고, 또 하나는 불일역불리불거역불출(不一亦不異 不去亦不出)이라고 되어 있다. 무슨 뜻일까? 인터넷 검색해 보니 용수의 중론에 나오는 팔불중도송에 대한 것이다. 귀경게라고도 하는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단멸하지도 않고 항상함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중관을 잘 아는 노스님의 생각이 담겨 있는 주련이라 볼 수 있다.

 

팔만사천법문에 대하여 한나의 단어로 축약하라고 말한다며 사성제일 것이다. 이는 근거가 있다. 맛지마니까야에 코끼리 발자취에 비유한 큰 경’(M280이 있다. 경에 따르면 사리뿟따가 도반들에게 벗들이여, 움직이는 생물의 발자취는 어떠한 것이든 모두 코끼리의 발자취에 포섭되고 그 크기에서 그들 가운데 최상이듯, 벗들이여, 이와 같이 착하고 건전한 원리라면 어떠한 것이든 모두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포섭됩니다. 네 가지는 어떠한 것입니까?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입니다.”(M28)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로 포섭된다. 모든 법은 사성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펼쳐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성제라는 우산으로 모두 들어 오는 것이다. 그런 사성제의 핵심은 다름 아닌 고와 고의 소멸에 대한 것이다. 괴로움에 대하여 철저하게 알았을 때 괴로움이 소멸이 된다. 이는 오온에 대하여 나의 것(五取溫)’이라고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그래서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소멸을 본다라고 하는데 이는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발생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도 본다.”(S56.30)라는 가르침에서 근거한다.

 

천년후에 고반재에서

 

고반재 천년지장에는 초조대장경 복간본이 보존 되어 있다. 마치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장경각을 보는 듯 하다. 고반재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성스런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초조대장경은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래된지 천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송나라 대장경을 본뜬 것이긴 하지만 후대 팔만대장경의 원형이 되었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지 천년이 지났다. 몽고전란 때 목간은 모두 불타버리고 사라졌으나 인쇄된 경전은 남아 있어서 오늘날 볼 수 있게 되었다. 천년후에 고반재에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온갖 진귀한 서적과 희귀한 것으로 가득한 고반재에서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2109-08-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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