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정평불 8월 정기법회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정평불 8월 정기법회


 

 2019 8 17일 오후, 정평불 12일 하계수련회 두 번째 이야기 정평법회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이제 사자성어로 정착되는 듯 하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뜻이다. 로맨스와 불륜은 다른 말이다. 그러나 서로 사랑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내로남불은 흔히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때 사용된다. 아니 합리화 내지 일반화 시킬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청문회장에서 고위공직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8월 정평법회가 고반재에서 열렸다. 정평불 1 2일 수련회장에서 열린 것이다. 고반재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열린 행사가 ‘8월 정평법회이다. 정평법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회원들은 카풀하여 각지에서 달려왔다. 2019 8 17일 고반재 2층 법당에서 열린 8월 정평법회 법사는 박병기 선생이다.

 






박병기 선생은 불자의 사회윤리라는 주제로 법문했다. 이 주제는 정평불에서 추진하고 있는 불교사회교리중의 하나이다. 십여개의 불교사회교리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최초로 재가불자의 사회교리를 만들고자 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 법회로 네 번째가 된다.

 

박병기 선생은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다.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박병기 선생은 우리 사회에 대하여 도덕 과잉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빈곤의 사회이다.”라고 말했다. 과잉과 빈곤은 반대 되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윤리가 한편으로는 과잉이고 또 한편으로는 빈곤하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 표현이다. 개인에게 적용되는 윤리는 넘쳐 나지만, 반면 사회에 적용되는 윤리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윤리이다. 어떻게 해야 사회윤리를 풍부하게 할 수 있을까? 특히 불교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사회윤리는 어떤 것일까?

 

박병기 선생은 불자윤리에 대하여 재가보살윤리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재가불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사회윤리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박병기 선생은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는 스스로 재가보살로서 잘 살아냄으로써 불교의 가치를 시민사회 드러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구성원들과의 적절한 관계맷기를 통해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 맞는 시민윤리를 함께 정립해 가는 일이다.”라고 했다.

 

재가보살로서 잘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는 다름 아닌 오계를 잘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오계 지키는 것이 불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마하나마여, 부처님에게 귀의 하고 가르침에 귀의 하고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신자가 됩니다.(S55.37)라고 말씀 했기 때문이다. 오계 보다는 삼귀의가 먼저 인 것을 알 수 있다.

 

삼보를 귀의처로 하고 의지처로 하고 피난처로 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부처님은 이어서 마하나마여, 재가신자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고, …”(S55.37)로 시작되는 오계에 대하여 말씀했다. 삼귀의는 필수조건이고, 오계는 필수에 준하는 조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처님은 삼귀의와 오계에 이어서 믿음과 보시공덕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최종적으로는 마하나마여, 세상에 재가신자는 발생과 소멸에 대한 고귀하고 통찰력 있는 지혜를 갖추고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지혜를 성취합니다.”(S55.37)라고 말씀 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수행공덕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은 오계준수라는 개인적 것에서부터 보시와 같은 사회참여, 그리고 자기완성에 이르는 수행까지 불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라고 했다.

 

불자의 조건은 오계 보다는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더 먼저이다. 그런데 오계는 불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지켜야 하는 도덕적 의무사항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종교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윤리에 해당된다. 재가불자가 잘 산다는 것은 다름 아닌 오계를 준수하는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과의 적절한 관계맷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다름 아닌 사회참여일 것이다. 나혼서만 잘 살 수 없다. 내가 여기 이렇게 존재 하는 것은 타인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나홀로 잘살기만 바란다면 그는 이기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기 때문에 비난 받는다. 내로남불이 될 수 있다. 고위공직자 후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도덕적불감증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회참여를 하면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공동선(共同善)을 향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시바라밀행 같은 것이다.

 

재가불자의 사회윤리는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계가 도덕적 의미이긴 하지만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강제할 수 있다. 오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이 되는 도덕적 덕목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오계를 지켰을 때 사회윤리는 자동적으로 지켜 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계를 지키면 향내가 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박병기 선생은 법문에서 재가보살의 삶은 그 자체로 향기로워야 하고, 그 향기는 이 찰나의 의미에 관한 깨침에서 뿌리가 마련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천불교의 선구자라 일컬어지고 있는 팃낫한 스님의 이야기를 한구절 소개했다.

 

 

우리의 참 고향집은 지금(여기)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평화는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다. 그 평화에 접속하면 우리는 변화되고 치유될 것이다.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명상) 수련의 문제이다우리는 진짜로 살지 못한다. 예쁜 아기가 다가와서 웃어줄 때 그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가? 아니면 생명과 서로를 만날 그 값진 기회를 잃고 마는가?”(팃낫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154-156)

 



 

팃낫한 스님은 지금 여기에서 늘 깨어 있으라고 했다. 이 말은 늘 싸띠(sati)하라는 말과 같다. 자기자신을 늘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계는 자연스럽게 지켜 진다. 그런데 계를 지키면 향내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꽃향기도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고 전단향이나 다라수향이나 말리까향도 못하지만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참사람은 모든 방향으로 향기를 품네.(A3.79)라고 했다. ‘계의 향기(戒香)’에 대한 것이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질 수 없지만 계의 향기는 바람과 무관하게 사방, 팔방, 시방, 저 멀리 천상계에 까지 이른다고 했다. 이렇게 계의 향기가 퍼져 나가면 세상은 맑고 향기로워 질 것이다. 예쁜 아기가 웃어 줄 때와 같은 향내나는 세상과 같다.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계를 지켰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마치 꽃과 벌나비와 같은 것이다. 꽃이 있으면 벌과 나비가 몰려 온다. 꽃의 향내를 맡고 오는 것이다. 계의 향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의 향기가 세상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계준수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참여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무량심사섭법일 것이다. 특히 사무량심 중에서 자애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 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라고 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보시하는 보시공덕 보다는 오계를 지키는 지계공덕이 더 수승하다. 지계공덕 보다 더 수승한 것이 수행공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계를 지키는 것 보다 잠시동안이라도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라고 바라는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 더욱 더 큰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계를 지켜 사회를 향기롭게 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수행을 하여 수행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8월 정기법회에서 박병기 선생은 동체(同體)’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동체성에 대한 깨침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고통을 포함하는 모든 이들의 고통감소를 위한 실천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실천이다. 그런데 실천은 명상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잠시라도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도 명상에 해당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이 시대 불자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회윤리라고 볼 수 있다.

 

 

2019-08-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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