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김광수원장 서울치과 개업의 날에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김광수원장 서울치과 개업의 날에

 

 

언젠가 TV에서 양이빨로 씹는 장면을 보고서 매우 부러웠다. 빵을 한입 크게 물고서 양이빨로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고서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한쪽으로만 씹으니 피로감이 쌓였을 뿐만 아니라 맛도 느끼지 못했다. 다른 한쪽으로 씹으면 아팠다. 그렇게 몇 년 보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사무실 부근 치과를 찾아 갔다.

 

병원에 좀처럼 가지 않는다. 이빨에 문제가 생겼을 때나 감기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고 가는 일이 없다. 그래서 종종 비난 받는다. 이렇게 병원 갈 일이 없다 보니 매달 납부하는 건강보험료가 아깝다. 이제까지 병원에 가서 가장 혜택 본 곳이 치과병원이다.

 

치과개업의 날에

 

치과개업식에 참석했다. 정평불 공동대표 김광수 선생이 창신동에서 2019 9 5일 개업한 것이다. 작년 초에 학교를 정년 퇴임한 후에 일년 이상 초야에 묻혀 살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개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정평불 회원들은 개업 축하모임에 참석했다.

 

개업식날 비가 왔다. 우중에 준비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개업선물이다. 의견을 모은 결과 시계를 준비 하기로 했다. 개업식 선물로서 화환이나 난 등이 있지만 오래 도록 기억에 남을 것으로 시계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황학동에 시계거리가 있었다. 지하철 1호선 동묘역에서 꽤 걸어 가야 했다.

 

디지털 시계를 구입했다. 파워 코드만 넣으면 자동으로 현재시간은 물론 온도와 습도, 음력날자, 요일이 표기 되는 신개념 최첨단시계이다. GPS로 신호를 받아 세팅하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다고 한다. 보통 개업식용으로 사용되는데 십만원 했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회원들을 만났다. 모두 다섯 명 모였다. 현장에서 합류한 사람까지 합하면 일곱 명 참석했다. 빈손으로 갈 수 없다. 각자 능력껏 보시했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납 시켰다. 함께 모아 하나의 봉투로 만들었다. 종이에개업을 축하합니다.” “번영하길 기원합니다.” “대박나십시오.”라는 문구를 썼다.

 

역동적인 창신길

 

위치는 어디쯤일까? 검색을 해 보니 동대문역 1호선 1번출구에서 창신길을 따라 가면 되었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창신길 40-2 번지이다. 1번 출구에서 약 180미터 가량 된다. 지도를 보니 창신길은 꽤 긴 길이다. 서울 성곽과 함께 남북으로 형성된 길로서 낙산공원과 한성대로부터 1키로미터 이상 이어진 긴 길이다.

 

 



창신길은 매우 역동적인 거리이다. 한눈에 보아도 활력이 넘친다.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이곳이 대표적인 서민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1번 출구에서 이백미터 거리를 걸었는데 즐겁고 유쾌했다.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시장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러고 보니 창신길은 봉제골목길로도 유명하다.

 

봉제골목이야기는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다. 1970년대 동대문 의류산업이 번창하면서 봉제공장이 하나 둘 생겨났는데 지금은 무려 900개가 넘는 봉제공장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창신길은 한국봉제산업의 메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빗물이 계곡을 따라 한 곳으로 합류 되듯이 요지에 김광수 선생의 개업을 알리는 플레카드가 걸려 있었다.

 

 



김광수원장의 서울치과

 

개업한 치과병원 명칭은 서울치과이다. 치과는 크지 않다. 3층짜리 작은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 전체를 쓰고 있는데 비좁은 느낌이다. 아마 큰 치과에만 다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식 건물에 있는 치과를 보면 넓직넓직 하다. 홀도 넓고 방도 많고 의사와 간호사도 여러 명이다. 이에 반하여 김광수원장의 서울치과는 협소해서 비교된다. 그러나 서민거리의 분위기에 맞는 것 같다. 더구나 창신동에는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크게 세 구역이다. 대기실과 진료실과 엑스레이촬영실이다. 치과에 가면 볼 수 있는 좌석 장치는 두 개이다. 당분간 혼자서 진료본다고 했다. 최소한의 장비만 갖추어져 있는 것 같다. 큰 곳만 보아서일까 사이즈가 작아서 작은치과이다.

 

 



개업과 관련된 불교의식은

 

개업식 축하의식을 가졌다. 이복우 선생이 목탁을 잡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의식에 따라 몇 가지 진언을 했다. 마지막으로 나무석가모니불 정근으로 마무리 했다.

 




개업식날 어떤 의식을 하면 좋을까? 개업식과 관련하여 몇 가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결혼식이나 이사, 또는 개업과 관련된 의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딘가에 정리되어 있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예경지송을 보면 개업식에 대한 것이 있다. 통과의례품이라 하여 결혼식, 출생증명식, 집들이, 개업식에 대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예경서, 삼귀의, 오계, 부처님의 찬탄, 가르침의 찬탄, 참모임의 찬탄, 등불공양, 향공양, 꽃공양, 축복의 경, 승리와 축복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축복의 경승리와 축복의 게송에 주목한다.

 

축복의 경(Magalasutta)’은 마하망갈라숫따(Sn2.4)라 하여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다. 이와 같은 축복의 경은 예불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수호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축복의 경이라고 했을까? 이는 마지막 게송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그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아니하고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9)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승리와 축복의 게송(Jayamagala Gāthā)’은 모두 아홉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경전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전승되어 온 게송으로서 경전에서 새길만한 내용을 간추려 누군가 신심 있는 불자가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야망갈라가타는 부처님의 승리와 축복에 대한 것이다. 악마에 대한 승리, 야차에 대한 승리, 외도에 대한 승리, 모함에 대한 승리 등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마지막 아홉 번째 게송이 유통분인데 이 부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여덟 게송을 매일매일 게으름 없이 독송하여 닥쳐 오는 수 많은 불행을 극복하고 슬기로운 자로서 해탈과 지복을 얻게 하소서.”라고 되어 있다.

 

축복이라는 말은 현재의 행복뿐만 아니라 미래의 번영까지 포함한다. 누군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 축하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번영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식도 마찬가지이고 개업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축복을 뜻하는 빠알리어 망갈라(magala)라는 말은 행운(lucky)’ ‘상서로(auspicious)’ ‘번영(prosperous)’의 뜻이 있다.

 

자야망갈라가타에서는 게송마다 후렴구가  떼자사  바와뚜    자야  망갈라니 (Ta-tejasā  bhavatu  te  jaya-magalāni)”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그대에게 임하서소!”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승리와 축복이 그대에게(te)’ 또는 나에게(me)’ 오길 바라는 것이다. 승리와 축복의 게송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승 되어 온 대표적인 수호경으로서 특히 이사, 개업, 혼례의 날에 독송된다.

 

왜 또다시 개업했을까?

 

김광수 원장에게 물어 보았다. 정년퇴임을 했음에도 왜 또 다시 개업을 했는가에 대해서이다. 대부분 정년퇴임 하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2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해보고 싶었던 것이나 못 했던 것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김광수 원장은 크게 두 가지로 말했다. 하나는 아직도 젊다는 것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5년은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봉사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개업을 하는 것이 단지 돈벌이 목적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치료 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도 사회에 대한 봉사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김광수원장이 이번에 개업한 것은 15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이전에 지방에서 개업했었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다 보니 15년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작년 정년 퇴임을 하여 거의 일년 이상 수행자로 살면서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치과의사로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활동가 김광수 보다는 의사 김광수라는 말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무엇 보다 소외 계층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창신동에는 서민들이 많이 산다. 또한 동남아 이주민 노동자들도 많다. 김광수 원장에게 또 한가지를 물어 보았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은 이주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김광수원장은 사정을 보아 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민주화운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광수원장에 따르면 건치운동을 했다고 한다. 건치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약자이다. 건치는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1989년 창립 되었다. 그래서일까 진보적 성향이라고 한다. 김광수원장은 건치 창립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강물처럼 번영하길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이빨이 시리거나 피가 나거나 잘 씹지 못한다면 치과에 가 보아야 한다. 치료를 받으면 훨씬 낫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 한쪽으로만 씹었을 때와 양쪽으로 씹었을 때 맛도 다르다. 병원에 가면 기적이 일어난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현실화 되었을 때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선생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김광수원장은 정년퇴임을 했음에도 다시 현실로 돌아 왔다. 그것도 잘사는 동네가 아니라 서민과 외국인 이주민이 사는 동네에 개업했다.

 

때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편안함과 안락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혹시 치과는 3D 업종이 아닐까?”라고. 하루 종일 남의 이를 들여다 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쩌면 중노동과 같은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힘이 있을 때까지 진료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봉사라는 말이 크게 와 다았다.

 

개업식 가는 날 청계천에 물이 크게 불었다. 김광수원장의 서울치과가 강물처럼 번영했으면 좋겠다. 부처님의 위대한 승리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2019-09-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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