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면, 조계종 도반HC 관련 고발고소전을 보면서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면, 조계종 도반HC 관련 고발고소전을 보면서

 

 

며칠전 페이스북에서 불교신문 기사를 보았다. 누군가 올려 놓은 것이다. 기사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공지영작가가 스님에게 참회한다는 내용이다. 사진을 보니 공지영작가가 합장하며 총무원장 스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로 옆에는 미황사 금강스님이 앉아 있다.

 

조계종총무원장 원행스님과 미황사 금강스님은 어떤 역할일까? 공작가가 참회했다고 하니 아마도 금강스님과 함께 온 것으로 보인다. 금강스님을 통하여 어려운 자리에 갔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사진을 보니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사과를 받고 있다. 원행스님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원행스님 옆에도 스님이 있는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공지영은 왜 참회했을까?

 

기사를 읽어 보았다. 기사 서두에서 조계종 종립학교관리위원회 스님들 회의 사진에자유한국당문구를 합성한 이미지를 자신의 트위터 등에 올려 논란이 된 공지영 작가가합성 사진인 줄 몰랐다며 불교계에 참회 뜻을 밝혔다.”(불교신문, 2019-10-02)라고 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사과의 대상이 조계종 종립학교관리위원회 스님들임을 알 수 있다. 공작가는 이들 스님을 대표한 종무원장 원행스님에게 사과한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를 보면 좀더 구체적이다. 공작가가 사과한 대상이 구체적으로 명기 되어 있다. 기사에서는 혜봉스님과 우봉스님으로 되어 있다. 두 스님과 관련된 종관위(종립학교관리위원회)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공지영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참회의 삼배를 했다. 그러나 종관위에서 명예훼손 소송취하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논란이 된 합성사진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검색을 해 보았다. 검색해보니 문제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 삭발과 관련된 것이다. 누군가 SNS에 합성사진을 올려 놓았는데 공작가가 아무 생각없이 트위터에 잠시 웃고 가시죠라는 멘트와 함께 공유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문제삼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조계종에서 정평불 상임대표를 고소했는데

 

스님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명예훼손이라 하여 고소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스님도 명예가 있기 때문에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당연히 고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SNS에 돌아다니는 합성사진, 그것도 정치관련합성 사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런데 스님들의 고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법보신문에 따르면 조계종사업지주회사 도반HC에서 정평불 이도흠상임대표 등 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발내용은 허위사실에 따른 언론유포와 명예훼손혐의에 대한 것이다. 이도흠상임대표 등 3명은 전조계종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달력사업국고보조금 횡령의혹으로 고발한 바 있다. 조계종단측에서는 이에 맞대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단에서 수익사업을 해도 되는 것일까? 율장에 따르면 출가자는 어떤 이익이 되는 장사나 사업 등 수익사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가르침으로 가득했다. 이런 가르침은 경장에서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다. 그럼에도 회사를 만들어 놓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율장정신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도반HC라는 사업체를 만들어 놓고 전총무원장은 대표이사로 있었다.

 

전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도반HC 대표이사로 있었을 때 횡령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내부고발자에 의하여 폭로된 바 있다. 이에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했다. 명백한 자료를 가지고 고발한 것이다.

 




조계종측 도반HC에서는 고발한 사람들에 대하여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발에 고소로 맞선 것이다. 그러면서 참회를 요구했다. 마치 공지영작가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듯이 참회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고발을 취하하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정평불 등이 제기한 의혹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사실임을 밝혀내 이들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행위에 책임을 묻겠다.”(법보신문, 2019-10-08)라고 한 것이다.

 

그동안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스님들이 사회법에 의존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 아니 할 수 없다. 재가불교단체에서 사회법에 스님들을 고발하는 시대 역시 불행한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일차적으로 스님들의 잘못이 크다. 스님들이 소속되어 있는 종단의 잘못도 크다. 그것은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족계대로 살았다면, 율장정신대로 살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전총무원장 자승체제 8년동안 불교개혁을 요청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갖은 노력을 했다. 기고문을 쓴다든가 삼보일배, 피켓팅, 기자회견, 촛불법회, 단식투쟁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았다.

 

종권을 쥐고 있는 권승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개혁운동에 참여 했던 스님들을 징계하고 불이익을 주었다. 더 이상 이와 같은 방법으로 되지 않자 사회법에 의지하게 되었다. 명확한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그런데 종단측에서는 명예훼손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합심하여 못된 승려를

 

스님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스님은 아니다. 스님처럼 보이지만 스님 같지 않은 스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스님은 추방해야 한다. 재가자들도 못된 스님을 추방할 수 있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이 라자가하 깃자꾸따 산에 계셨을때이다. 담미까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객승에게 못 되게 굴었다. 경에서는 객승을 비난하고 매도하고 상해하고 구타하고 욕설했다.”(S6.54)라고 되어 있다. 요즘말로 하면 폭력승에 해당된다. 그리고 절을 사유화 했다. 오늘날 권승들의 행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경에서는 놀랍게도 재가불자들이 합심하여 못된 승려를 쫓아 내 버린다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은 담미까라는 못된 승려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재가불자들은 폭력승 담미까를 쫓아내는데 동의했다. 재가불자들은 폭력승을 찾아 가서 존자여, 이 처소를 떠나주십시오. 그대는 이곳에서 충분히 살았습니다.”(S6.54)라고 말했다. 오늘날 권승들에게 종단을 떠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결국 폭력승 담미까는 그곳을 떠났다. 폭력승은 왜 버티지 못하고 떠났을까? 그것은 부처님 당시 승려들은 재가불자들의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재가불자들은 스님이나 승가에 옷과 탁발음식과 와좌구, 필수약품을 보시한다. 승려들은 후원이 끊어지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재가불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처소를 떠나주십시오.”라고 요구하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권승들은 다르다. 그들은 조상이 물려준 막대한 토지와 문화재를 사유화 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요직을 차지하여 명예와 칭송까지 누리고 있다.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면

 

출가자가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누리는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득과 명예와 칭송은 두렵고 자극적이고 거친 것으로 멍에를 여읜 위없는 안온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S17.1)라고 했다.

 

출가자가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은 좀더 구체적으로 어부의 낚시바늘을 문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어부는 악마 빠삐만을 말한다. 스님들이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것은 악마의 낚시바늘을 문 것과 같다. 한번 물리면 악마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전총무원장 자승스님은 8년 동안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해왔다. 자승스님과 함께 한 권승들 역시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금횡령 등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재가불교단체에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개혁코져 하였으나 변함 없었다. 오히려 잘못을 지적하는 스님과 불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탄압했다. 이에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명예훼손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파초와 대나무와 갈대는

자신의 열매가 자신을 죽이네.

수태가 노새를 죽이듯,

명성이 악인을 죽이네.”(S17.35)

 

 

불교는 개혁되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썩어서 망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제도를 고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제도개혁을 하여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권승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에 따르면 바라이죄를 저지른 승려에 대하여 그는 수행자를 더럽히는 자이고 수행자의 쭉정이이고 수행자의 쓰레기이다.”(A8.10)라고 했다.

 

쓰레기는 버려야

 

쭉정이는 뽑아버려야 한다. 쓰레기는 버려야 한다. 출가자 중에도 쭉정이가 있고 쓰레기가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서는 그들은 이와 같이 알고 나서 그를 추방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다른 훌륭한 수행승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A8.10)라고 했다.

 

재가불교단체에서는 다른 청정한 스님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총무원장 자승스님을 검찰에 공금횡령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조직이 정상적이라면 자승스님은 대가를 치룰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고발했어도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검찰이 개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검찰개혁이 곧 불교개혁이 된다. 이번만큼은 권승들에게 인과가 엄중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함께 산다면, 그대는 알리라.

삿된 욕망, 분노가 있는지

위선, 완고, 잔혹 그리고

질투, 인색, 교활이 있는지.

 

사람들 사이에 수행자처럼

그는 고요히 말한다.

비밀리에 악행을 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존경이 없네.

 

술책을 부리고 거짓을 말하네.

그에 대하여 그렇게 알고나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그를 쫓아내야 하리라.

 

수행자처럼 행동하는 사이비수행자

그 쓰레기는 뽑아버리고

그 오물은 버려버려라.

그 쭉정이는 날려보내라.

 

삿된 욕망을 지니고

악한 행위의 경계를 거니는 자를 추방하고

스스로 청정하고

청정한 사람과 함께 살며

새김있고 화합하고 현명하면,

괴로움의 종식을 이룬다.”(A8.10)

 

 

2019-10-1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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