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위대한 촛불 위대한 국민, 10.12서초동촛불 최후통첩

작성일 작성자 진흙속의연꽃

위대한 촛불 위대한 국민, 10.12서초동촛불 최후통첩

 

 

어제 10.12서초동 촛불이 서초역사거리에서 열렸다. 백만명 가까이 되는 이런 대형촛불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열리는 촛불에 내리 세 번 모두 참석했다. 머리수 채워 주기 위해서라도 갔고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서라도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같아서 참여한 것이다.

 

대열의 끝은 어디일까?

 

저녁 6 50분 교대역 9번 출구를 나서자 열기가 가득했다. 메인무대는 서초역사거리 십자로에 있지만,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교대역사거리도 서초역사거리 못지 않게 뜨거웠다. 지난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교대역사거리에도 전광판이 설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기 때문에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교대역사거리는 서초역사거리에서 지하철로 한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있다. 분위기는 모두 똑같다. 그러나 교대역 사거리를 지나 강남역 방향으로 가면 독립적분위기이다. 통제를 벗어난 지역 같은 느낌이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이다. 그래서일까 즉석 연설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광판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생동감이 있었다.

 






대열의 끝은 어디일까? 교대역 사거리에서 약 300미터 지점에 끝이 보인다. 서초역 사거리 십자로에서 한방향의 끝인 것이다. 끝에 서니 전광판도 마이크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스팔트에 앉아 있다. 누군가 조국수호하면 검찰개혁하며 따라 부른다. 또 사람들은 노무현과 문재인, 조국이 그려져 있는 초상화를 들고 외친다. 한켠에는제발! 지금 여기 국민을 보라라는 플레카드를 펼쳐 보였다 




 

거리풍경을 보니

 

이재명과 관련된 캠페인도 있었다. 이는 이재명구하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이재명에 대한 탄원서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곳 촛불현장에서도 서명을 받고 있었다. 구호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일하게 도와 주세요이다. 공정사회를 꿈꾸는 이재명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촛불집회에서 촛불장사가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불에 타는 촛불이 아니다. LED촛불을 말한다. 촛불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모습의 LED촛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머리에 쓰는 왕관모양의 촛불도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인도한켠에서는 트럭에 오뎅 등 따끈한 국물이 있는 것을 파는 노점이 등장했다.지난주에는 보이지 않았다. 3년전 광화문촛불에서는 노점이 열지어 있었으나 이번 촛불에서는 드문드문 있다. 귤을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한망에 2천원 했다. 대목을 기대하고 좌판을 벌였으니 팔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망 샀다.

 




왜 최후통첩이라고 했을까?

 

이번 촛불주제는 최후통첩이다. 왜 최후통첩이라고 했을까? 최후통첩이라는 말이 승리를 눈앞에 두고 밀어 붙이는 것 같다. 마치 항복하라는 말같이 들린다. 또 항복하든지 아니면 한판붙어 보자는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이번 촛불은 지난주 촛불보다는 약간은 차분한 듯 했다. 이주일전 촛불 때는 사람들이 격앙되어 있었다. 일주일전 촛불때는 긴장되어 있었다. 이번촛불은 약간 여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에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주 극적인 변화가 몇 개 있었다. 그동안 수세에 몰린 분위기였으나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폭로한 것이 반전의 기회를 맞이 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길 수 있다는 느낌을 감지한 것 같다. 아무리 털어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럴 때 최후통첩이라 하여 백만함성으로 제압하고자 한 것이다.

 




조국이 사퇴해서는 안된다고

 

조국사태로 인하여 이득을 본 집단이 있다. 그것은 야당일 것이다. 이는 여론조사로 나타난다. 대통령지지율이 최저가 되고 정당지지율은 오차범위내로 좁혀졌다. 지금까지 조국사퇴라는 구호로 재미를 본 것이다.

 

보수기득권층에서는 단지 의혹에 불고한 것을 기정사실화 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조국이 계속 자리를 지켜 주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조국이 내려가면 안되는 것이다. 이 페이스대로 총선까지 가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페이스북에서 어느 보수층 지지자는 조국이 사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뒤로 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매우 진지했다. 대형전광판을 응시하면서 대형스피커에서 나오는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일사불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 청년, 장년, 노년 연령대도 다양하다. 아이들을 대동하여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다. 왜 그들은 즐거운 토요일날 저녁이 있는 삶을 뒤로 하고 아스팔트에 앉아 있는 것일까?

 

이번 서초동촛불의 특징은 구호로 알 수 있다. 그것은 검찰개혁” “조국수호로 요약된다. 특히 조국수호라는 말이 눈에 띈다. 조국이라는 일개 장관을 수호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게 생각되지만 조국수호는 현정부수호가 되고 결국 2016년 광화문촛불로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수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렸을까?

 




공정하지 않은 것에 공분하는 것

 

정의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정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의는 사회나 공동체에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의는 반드시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주전 사람들이 몰려 나온 것은 공분했기 때문이다. 조국가족이 압수수색당한 것이 자신의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1980 5.18때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때리고 죽였다. 이에 공분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런 것이 정의라고 볼 수 있다. 1987 6월 항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건과 이한열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다. 이번 서초동촛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라고 볼 수 있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공분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의인 것이다.

 

노조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은 이익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다. 반면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노조에서 파업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때문이다.

 

노조의 파업에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빨간조끼를 입은 노조원 수천명이 집단시위를 해도 시민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의 이익에 시민이 참여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국사태는 다르다. 이익과 관련 없기 때문에 나의 일처럼 참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의로운 세상,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매주 나왔다. 여기에 어떤 사심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이득을 바라고 나온 것이 아니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분노해서 나온 것이다. 공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그것이 바로 정의이다.

 




위대한 촛불 위대한 국민

 

정의는 고상한 것이 아니다. 정의는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보통사람도 정의로울 수가 있다. 불의를 보고 참지못하고, 불공정한 것을 보고 분노하면 바로 그것이 정의이다. 토요일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참여한 위대한 국민이다.

 

서초동 밤하늘에 울려퍼진 백만함성이 대한민국 구조를 바꾸고 있다. 촛불참여자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비록 개인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참여가 사회구조를 바꾸고 있다. 후대 사람들은 위대한 촛불로 기억할 것이다. 후대사람들은 빚을 지고 살 것이다.

 



 

2019-10-1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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