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 마하자야망갈라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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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강독

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 마하자야망갈라가타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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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 마하자야망갈라가타

 

 

말을 듣는 내내 답답했다.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스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금요니까야강독모임에서

 

지난 5월 15일 오랜만에 금요니까야강독모임을 가졌다. 코로나철임에도 불구하고 늘 보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마스크를 한 사람도 있고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마스크를 했다. 마스크를 한 채 말도 했다. 독송 두 번째 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불인의 실천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의 어떤 사람은 모욕을 모욕으로 갚고, 분노를 분노로 갚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불인의 실천이라고 한다.”(A4.166)

 

 

앙굿따라니까야 ‘인내의 경’에 실려 있다. 경에서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말하고 있다. 불인의 실천(akkhamā paṭipadā), 인내의 실천(khamā paṭipadā), 제어의 실천(damā paṭipadā), 고요의 실천(samā paṭipadā)에 대한 것이다.

 

경에서는 불인과 인내가 대조적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내의 실천은 “세상의 어떤 사람은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갚지 않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지 않는다.”(A4.166)라고 하여 불인의 실천에 반대되는 것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정혜사

 

스님은 금요강독모임의 멤버이자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접협회 회장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남양주 정혜사에 그 먼거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사실상 금요모임은 스님과 스님의 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은 때로 정혜사에서 강독모임을 열기 위한 장소제공도 했다. 일년에 한 두 차례는 정혜사에서 강독모임이 열렸다.

 

 

정혜사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다산공원 가까이에 있다. 정혜사에서 두 물이 만나는 곳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일 것이다.

 

 

 

 

본래 두 물이 만나는 곳은 청정지역이다. 경치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환경도 좋다. 그래서일까 김열권법사는 이곳 정혜사를 위빠사나 집중수행 수련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본래 두 물이 만나는 곳은 청정지역이다. 경치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환경도 좋다.

 

 

아래 집 사람의 신고로 인하여

 

스님은 경을 독송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것은 절 바로 아래에서 사는 사람때문이다. 절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자꾸 신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집 사람은 자꾸 꼬투리를 잡아서 시청에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벌금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절에서는 연등을 단다. 그것도 절 바깥에 다는 경우도 많다. 부처님오신날 길가에는 울긋불긋 연등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회가 용인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길거리 연등을 보고서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코로나19로 인하여 한달 늦추어 5월 30일날 봉행된다.

 

스님에 따르면 또 아랫집 사람이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길거리 연등을 문제삼은 것이다. 옛경춘가도에 달아 놓았을 것이다. 또 절 가까이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달아 놓았을 것이다.

 

아래집 사람은 울긋불긋 연등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시에 신고를 하여 담당공무원이 찾아왔다고 한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치하라는 것이다. 스님은 할 수 없이 연등을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어떻게 치루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 신고를 하는 것일까?

 

스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답답했다. 모임 멤버들도 스님 말을 듣고 모두 착잡했다. 스님에 따르면 아무리 참으려 해도 이제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에서는 인내의 실천이라고 하여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갚지 않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마음 속으로는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집 사람은 한 두 번도 아니고 걸핏하면 신고한다고 했다. 대체 아래집 사람은 왜 이렇게 스님을 괴롭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래집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또 아래집 여자주인의 오빠가 목사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윗집 절이 보기 싫었을 것이다. 울긋불긋 단청도 보기 싫었을 것이고, 길거리의 울긋불긋 연등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걸핏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래집 사람의 탐욕에 대한 것이다. 스님을 괴롭혀서 스님이 절을 팔고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스님도 이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더구나 아래집 사람은 돈도 많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 서야 툭하면 신고를 하여 스님으로 하여금 불선심을 자극하게 만들까?

 

상대하지 말라고

 

여러 가지 해법이 거론되었다. 전재성 회장은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다가 그래도 인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범벌(梵罰: brahmadaṇḍa)을 말했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왕따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마부 출신 찬나에게 범벌을 내렸다. 찬나는 부처님이 왕자로 있을 때 유성출가를 도왔다. 그때 그일로 인하여 안하무인격이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찬나의 행위는 승가의 화합을 해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찬나와 누구도 말 걸지 말라고 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때까지 묵빈대처하는 것이다.

 

묵빈대처한다고 아래집 사람이 신고를 멈출까? 신고가 들어 갈 때 마다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출가수행자로서 참아 낼 수밖에 없는데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다고 했다. 경에서 아무리 인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여러 차례 당하고 보니 소용없다는 것이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전재성 회장은 목사인 오빠를 만나 보는 것 어떤지 말했다. 아니면 그 지역 기독교 고위층과 면담해 보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말 했다. 기독교인이라면 목사가 하는 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전재성 회장은 ‘기도’해 보라고 했다. 자신도 번역하다 잘 안되면 기도한다고 했다. 기도를 하다 보면 상황이 바뀌어 질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기도는 기독교인들이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다. 일종의 ‘기원’ 같은 것이다. 아마도 ‘마하자야망갈라가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게송일 것이다.

 

 

“모든 뭇삶의 요익을 위하시는

크나큰 연민의 수호자께서

모든 초월의 길을 이루시고

위없는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했사오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 하여지이다.”

(예경지송, 230쪽)

 

 

마하자야말강라가타(maha jayamaṅgala gāthā)는 ‘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예경지송에도 실려 있다. 모두 21개의 게송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게송만 옮긴 것이다.

 

마하자야망갈라가타는 경전에 없는 게송이다. 후대 신심 있는 불교인이 경전에서 좋은 게송과 구절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천수경과 같아서 생활게송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재성회장에 따르면 마하자야망갈라가타는 삼보의 가피를 염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게송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는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 하여지이다.”라는 후렴구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의 위대한 승리가 ‘나에게(me)’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그대에게(te)’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언젠가 금요강독모임 시간에 전재성회장은 이 자아망갈라가타를 해설해 주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강독을 시작하기 전에 음악을 들었다. 마치 가톨릭 성가처럼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내는 이 노래는 유튜브에도 있다. 아마 전재성회장은 이 자야망갈라가타를 염두에 두고 스님에게 기도하라고 했을 것이다.

 

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불교인으로 살기가 점점 팍팍해지는 것 같다. 스님으로 사는 것은 더욱 더 힘드는 것 같다.

 

정혜사 주지스님의 하소연을 들어 보니 아래집 여자는 대단히 악의적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인들의 최대명절 마저 방해하려는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인이라고 하여 참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대응한다면 이는 불인의 실천이 될 것이다.

 

불인의 실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낸다면 불인의 실천이 될 것이다. 모욕을 모욕으로 갚고, 분노를 분노로 갚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는다면 이 세상은 싸움 그칠 날 없을 것이다. 불교인이라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갚지 않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지 않는다.”라는 부처님의 ‘인내의 실천(khamā paṭipadā)’에 대한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여기 원한 맺힌 자가 있다. 그렇다고 원한을 원한으로 갚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구경에 따르면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Dhp.5)라고 했다. 근심한다고 하여 근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슬퍼한다고 하여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근심을 놓아 버렸을 때 근심이 사라지고, 슬픔을 놓아 버렸을 때 슬픔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원한은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라고 했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다. 그 나를 욕하고 때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나아가 나의 것을 빼앗아 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적개심을 가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 ‘그는 나를 욕하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 나의 것을 약탈했다.’라고

사람들이 이러한 적의를 품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원한은 사라진다.”(Dhp.4)

 

 

나를 욕하고 심지어 때리고, 더 나아가 나의 재산을 빼앗아 간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갚지 않고, 욕지거리를 욕지거리로 갚지 않는다.”(A4.166)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애의 마음을 낸다고 하여 그에 대한 원한이 사라지는 것일까?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하는데

 

흔히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한다. 그러나 원한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낼 수 없다. 원한 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낸다고 하여 원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 더 원한만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에게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 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A5.161)라고 했다. 원한 맺힌 자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자꾸 불선심만 일어난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 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A5.161)라고 했다.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한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청정도론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좋아하는 친구 다음에는 무관한 자에 대하여, 무관한 자 다음에는 원적인 사람에 대하여 자애를 닦는 것이 좋다.”(Vism.9.12)라고 했다. 자애의 마음을 내는데도 순서가 있음을 말한다. 그 다음에 원한 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자애수행할 때 원한맺힌 자를 왜 가장 나중에 두는 것일까? 이는 앞서 경에서 언급된 대로 원한 맺힌 자를 생각하면 더 원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한 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려거든 먼저 “무관한 자 다음에 원적인 자에게 자애를 닦아야 한다.”(Vism.9.13)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와 무관한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었을 때 마음이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 상태에서 원한 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었을 때 나의 마음도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래도 원한이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후의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자애수행을 한다고 하여 모두 원한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시도해도 원한이 풀리지 않을 때 최후의 하나의 방법이 있다. 청정도론 자애수행 최종단계에서는 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한맺힌 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보시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를 길들이고

보시는 일체의 이익을 성취하게 하는 것,

보시하는 것과 사랑스러운 말로써

머리를 들고 머리를 숙인다.”(Vism.9.39)

 

 

원한 맺힌 자에게 선물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놀랍게도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머리를 들고 머리를 숙인다.”라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시주는 머리를 들고 시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선물이나 보시를 받으면 고개가 숙여지게 되어 있다. 원한 맺힌 자도 선물을 받을 때 고개를 숙일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아래집 여자에게 선물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처님의 승리의 축복이 나에게

 

백번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 보다 선물 한번 하는 것만 못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선물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마음이 괴롭다면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위대한 승리가 나에게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갖가지 모함을 받았다. 자야망갈라가타를 보면 외도 찐짜마네위까가 거짓임신으로 부처님을 파멸시키려고 했다. 이때 부처님은 어떻게 했을까? 게송에 따르면 “적멸과 안온으로 섭수했다.”라고 했다. 대응하지 않고 고요함과 부드러움으로 대응한 것이다. 결국 부처님이 승리했다.

 

자야망갈라가타는 외도에 대한 부처님의 승리에 대하여 여덟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게송 후렴구마다 “땅떼자사 바와뚜 떼 자야망갈라나니(Taṃ-tejasā bhavatu te jaya-maṅgalāni)”라는 후렴구가 붙는다. “이 위대한 힘으로 승리의 행운이 나에게(또는 그대에게) 임하길 바라옵니다.”라는 내용이다.

 

불교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모함을 당했을 때 여러 가지 해법이 있다. 그런 것 중에 하나는 부처님 가피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를 기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징은 부처님의 위신력이 ‘나에게(me)’ 또는 ‘그대에게(te)’ 임하길 바라는 것이다.

 

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 마하자야망갈라가타

 

금요강독모임 멤버중의 한사람인 스님이 고통을 겪고 있다. 아래집 사람의 모함으로 인하여 위기에 빠져 있다. 불교인들의 최대명절인 부처님오신날도 지장받고 있다. 스님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강독모임에서 들었던 마하자야망갈라가타를 옮겨 본다.

 

 

마하자야망갈라가타(위대한 승리의 축복의 게송)

 

1.

모든 뭇삶의 요익을 위하시는

크나큰 연민의 수호자께서

모든 초월의 길을 이루시고

위없는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했사오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하여지이다.

 

2.

보리수 아래서 승리하시어

싸끼야 족에게 환희를 가져다주었사오니

이처럼 제게(그대에게) 승리가 함께하여

승리의 축복을 성취하여지이다.

 

3.

부처님의 보배에 귀의하오니

하늘사람과 인간의

가장 위없고 가장 탁월한 약초

부처님의 위력있는 공덕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파괴되고

모든 괴로움이 소멸되어지이다.

 

4.

가르침의 보배에 귀의하오니

타오르는 고통 식혀주는

가장 위없고 가장 탁월한 약초

위력있는 가르침의 공덕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파괴되고

모든 두려움이 소멸되어지이다.

 

5.

참모임의 보배에 귀의하오니

섬길 만하고 공양할 만한

가장 위없고 가장 탁월한 약초

참모임의 위력있는 공덕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파괴되고

모든 질병이 소멸되어지이다.

 

6.

세상 어떠한 종류의 보배이든지

엄청나게 많은 갖가지 것들이 있지만

부처님에 견줄 보배는 없사오니

제게(그대에게) 이 진실로 행복이 함께하여지이다.

 

7.

세상 어떠한 종류의 보배이든지

엄청나게 많은 갖가지 것들이 있지만

가르침에 견줄 보배는 없사오니

제게(그대에게) 이 진실로 행복이 함께하여지이다.

 

8.

세상 어떠한 종류의 보배이든지

엄청나게 많은 갖가지 것들이 있지만

참모임에 견줄 보배는 없사오니

제게(그대에게) 이 진실로 행복이 함께하여지이다.

 

9.

제게 다른 귀의처 없고

부처님이 저의 위없는 귀의처이오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하여지이다.

 

10.

제게 다른 귀의처 없고

가르침이 저의 위없는 귀의처이오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하여지이다.

 

11.

제게 다른 귀의처 없고

참모임이 저의 위없는 귀의처이오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하여지이다.

 

12.

모든 재앙 진압되고

모든 질병 소멸되고

모든 장애 사라지어

제게(그대에게) 승리의 축복이 함께하여지이다.

 

13.

모든 축복이 함께하고

모든 하늘사람들이 수호하소서.

부처님의 모든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언제나 평안이 함께하여지이다.

 

14.

모든 축복이 함께하고

모든 하늘사람들이 수호하소서.

가르침의 모든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언제나 평안이 함께하여지이다.

 

15.

모든 축복이 함께하고

모든 하늘사람들이 수호하소서.

참모임의 모든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언제나 평안이 함께하여지이다.

 

16.

별들과 야차들과 귀신들

악령들의 장애로부터

수호 게송의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제거되어지이다.

 

17.

별들과 야차들과 귀신들

악령들의 장애로부터

수호 게송의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제거되어지이다.

 

18.

별들과 야차들과 귀신들

악령들의 장애로부터

수호 게송의 가피의 힘으로

제게(그대에게) 모든 재앙이 제거되어지이다.

 

19.

하늘이나 땅위에 살고 있는

위신력을 지닌 신들과 용들께서는

이러한 공덕을 기뻐하여

영원토록 세상에서 가르침을 수호하소서.

 

20.

하늘이나 땅위에 살고 있는

위신력을 지닌 신들과 용들께서는

이러한 공덕을 기뻐하여

영원토록 세상에서 가르침을 수호하소서.

 

21.

하늘이나 땅위에 살고 있는

위신력을 지닌 신들과 용들께서는

이러한 공덕을 기뻐하여

영원토록 세상에서 가르침을 수호하소서.

 

(예경지송, 239-247쪽)

 

https://www.youtube.com/watch?v=aIJjHTroqPM

 

 

 

2020-05-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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