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의 산행스케치

겨울 무등산 -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 규봉암 한바퀴

작성일 작성자 약수















산행코스 : 원효사 - 서석대 - 입석대 - 장불재 - 규봉암 - 꼬막재 - 원효사

산행거리 : 13.21km, 5시간45분 (점심포함)











옛길로 해서 서석대로 향한다.











정상부 까지는 조망이 없는 숲길이 이어진다.

무등산 옛길 2구간, 무아지경의 길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진행방향 왼쪽, 나뭇가지 틈으로 의상봉이 보인다.











주검동 유적지 비석을 지난다.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 이라고 새겨져 있다.

의병장 김덕령 장군과 의병부대가 칼과 창을 주조했던 곳 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이번 겨울은 눈이 귀하다.

무등산에 여러번 왔는데, 제대로된 설경을 본적이 없는것 같다.





















불태산, 병풍산, 내장산이 보이는 풍경











중봉과 광주시











KBS 중계소가 있는 장불재와 뒤로는 월출산과 제암산이 보이는 풍경












제암산 방향을 당겨본다.











반대쪽으로는 담양의 명산인 불태산과 병풍산이 늘어서 있다.











병풍산 우측으로는 정읍의 백암산, 내장산과 담양과 순창에 걸쳐있는 추월산이 보이고

강천산, 여분산, 회문산 등 순창의 산들 뒤로 전북 완주의 모악산까지 보인다.





















월출산을 당겨본다.











무등산 정상부


















































서석대




















무등산의 돌들은 대부분 서 있는듯 보인다.











무등산에서 바라보는 조계산과 모후산











그 옆으로 광양 백운산 까지 보이는 조망











백운산을 당겨본다.











정상석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정상석은 워낙 붐벼서 얼굴이 안나온 이분 사진으로 대신

앞 모습이 잘나온 사진도 있으니, 보시게 되면 댓글 달아주세요 ^^





























조선 선조때 지은 고경명의 유서석록을 잠시 옮겨 보자면


상봉에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동쪽이 천왕봉(天王峯)이며, 가운데 것을 비로봉(毘盧峯, 地王峯)이라 한다. 그 사이는 백여 척쯤 되며 평지에서 바라보면 대궐을 마주보는 것 같다.


서쪽에 있는 것이 반야봉(船若峯, 人王峯)으로 비로봉과 두 정상의 거리는 무명베 한 필 길이나 되지만 밑은 한 자 거리쯤밖에 되지 않으니 평지에서 바라보면 화살촉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듯 조선중기에는 천왕 (불교 사천왕), 비로, 반야 이렇게 불교식 이름의 봉우리 였던것 같은데

지금은 천왕, 지왕, 인왕 으로 천지인 으로 부르고 있다. 봉우리 이름이 언제부터 바뀐것인지에 대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등산 서석대에서 바라본 풍경들











낙타봉을 거쳐 안양산으로 가는 백마능선











산그리메 일행들과 식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바로 옆에서 식사를 하던

다른 산악회 버스를 타고온 동네 산꾼들을 우연히 만났다.




















하늘 바라보고 쭉쭉 뻗은 무등산의 바위들











무등산 입석대


서석대로 그렇고 입석대로 역시 '서있는 돌' 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 주상절리의 서있는 돌, 즉 선돌의 뜻을 따서 '입석' 이라 하고, 음을 따서 '서석' 이라 했다. 그렇게 하여 서석산 이라는 무등산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 생겨났다.










입석대











장불재로











장불재에서 A, B팀으로 나눠지고

B팀은 바로 하산, A팀은 규봉암으로..











규봉암 가는길











규봉암 가는길에 바라본 모후산, 조계산, 백운산











일행들과 50m 미끼에 속아 석불암을 찾아간다고 한참 가다가 못찾고 되돌아 왔다.

집에 와서 지도를 보니 조금 더 갔어야 했다. 300m가 맞는듯











대신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규봉암 사진 한장은 건졌다.











규봉암의 첫 인상은 단단한 성채 같았다.

커다란 종루가 일주문 역할을 겸하고 있다.











무등산 규봉암


규봉암을 보지 않고는 무등산에 올랐다고 말하지 말라던데

이제야 비로소 무등산에 다녀갔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규봉암에 오르려면 원형 출입구를 지나야 한다.




















종루 겸 일주문











규봉암과 광석대


규봉암(圭峰庵)은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암자를 감싸고 있는 선돌인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함께 무등3대로 불리운다.











김덕령 장군의 전설이 전해오는 규봉암 문바위


청년 김덕령은 무등산을 중심으로 상봉과 서석, 입석, 규봉, 지장암쪽을 뛰어다니며 무예을 닦는데 전념했으며, 그가 이곳에서 말달리기를 익히던 어느날,  준마로서 아껴오던 백마를 타고 문바위에 올라와서 백마에게 말하기를


"내가 큰 일을 하려면 말부터 잘나야 하는 법이다. 내가 이제 활을 쏘고 저 청궁마을 건너 바위까지 달리겠다. 이 화살보다 네가 먼저 당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목을 치겠다."


고 말하니 백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곳 문바위에서 화순 동면 마산리 살바위까지는 20리쯤 되는데 청년 김덕령이 활를 쏘자마자 백마는 네 발굽을 모아 번개치듯 눈 깜짝할 순간에 청궁의 살바위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화살은 보이지 않아 화살이 먼저와 땅에 떨어져 없어진 것으로 생각한 김덕령은 약속한 대로 칼을 뽑아 백마의 목을 쳤다.


순간, 뒤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맞고 말 머리와 함께 땅에 툭 떨어지니 김덕령은 화살과 백마의 머리를 들고 자기의 경망과 조급함을 후회하며 한없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 뒤 말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때부터 이 바위를 화살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살바위'라 했고 이곳 마을을 말이 죽었다고 하여 '마살리(馬殺里)' 라 했다고 한다. 후에 殺자의 이름이 흉하다고 하여 山으로 고쳐 지금은 마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규봉암을 나와서 꼬막재로




















신선대를 돌아보고 북산에 올라야 지리산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 텐데..

다음번엔 억새평원을 지나 신선대와 북산을 가보고 싶다.











꼬막재에서 잠시 쉬며 마지막 간식을 들고 간다.











올라가며 보았던 의상봉을 내려와서 다시 본다.











뒤풀이를 위해 광주 충효동으로 이동하여 보니 엄청난 크기의 왕버들 세그루가 있다.

충효마을의 상징적 나무이자, 지형적 결함을 보완 하고자 하는 비보림 이라고 한다.


눈없는 겨울 무등산. 흔히들 앙코 없는 찐빵 이라고 하지만, 맑은 날씨속에 즐겁게 걷다 왔다

이번 겨울은 눈이 참 귀하다. 아직 이번 겨울 설경을 보지 못했는데, 다음주 한라산은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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