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의 산행스케치

천안 광덕산에서 만난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님의 시와 사랑 이야기

작성일 작성자 약수














산행코스 : 광덕사주차장 - 왼쪽능선 - 광덕산 - 장군바위 - 부용묘 - 광덕사

산행일정 : 2019년 1월 20일 (일), 7.07km, 3시간 24분 (식사포함)











매서운 골바람이 부는 영하에 그나마 바람이 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시산제를 지낸다. 

다들 올 한해 무탈하게 안산 하시고, 댁내에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기를..











광덕사 주차장에서 바로 왼쪽 능선을 타고 오른다.











고흥 류씨묘역











들머리부터 능선을 따라 광덕산 정상까지 가파른 등로가 이어진다.











광덕산에 진즉 올 기회가 몇번 있었으나, 특색없이 밋밋하고 조망터 하나 없는 산길이 맘에 들지 않아, 그간 미뤄두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 정기산행지로 선정이 안되었으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겸사겸사 묵은 숙제를 해치우는 산행길인듯 하다.











광덕사에서 해사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하라고

비닐이 둘러쳐진 아늑한 분위기의 친절한정자를 하나 만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일행들 단체사진 한장 남긴다.











조금전 시산제를 지내면서 외쳤던 산악인의 선서가 새겨져 있는 멋진 비석

비석 때문인지 시산제 지내기 딱 좋아 보이는 분위기를 풍긴다.











산 아래 주차장에서도 한참 먼 광덕 쉼터는 왜 이정표에 표시를 하는건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꽤 가파르다.

내려오는 분들이 이리로 올랐으면 꽤 고생했을 거라고들 하신다.

개인적인 생각은 오를때는 가팔라도 괜찮지만, 내려설때는 완만한 길이 더 좋은것 같다.











몇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혀간다.
























































광덕사 일주문에는 '태화산광덕사' 라고 쓰여 있다.

즉, 이 산이 예전에는 태화산(太華山) 으로 불리웠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고지도 15개를 찾아보니, 그중에 대동여지도를 포함한 7개 지도엔 태화산으로

광여도, 청구도, 해동지도등 나머지 8개 지도엔 광덕산 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광덕산 보다도 호서제일가람 이었다는 광덕사가 유명하다보니 각종 지도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혼란스러운것은, 인근 호서대학교 뒤편에 태화산 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는데

청구도, 대동여지도에는 그 산이 대학산(大鶴山) 이라고 적혀 있다.

사실 여기도 대학산 이라는 이름 보다는 대학사 라고 하는 사찰이 더 많이 나오는걸 보니, 산 이름이 절 이름에서 비롯된걸 알 수가 있다.


즉, 예전에 태화산, 광덕산 이라고 불리웠던 지금 이산은 현재 광덕산으로 통일이 되었는데

근처의 대학산 이라고 불리웠던 산은 태화산으로 둔갑을 했으며, 또 그산의 휴양림은 태학산 이라는

태화산과 대학산이 섞인듯한 출처불명의 애매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세먼지로 시계가 그리 선명하지 못하여, 앞쪽 아산 봉수산 직선거리 뒤에 있는 홍성 용봉산이 희미하게 그림자만 보이고, 우측의 서산 가야산도 마찬가지다.


광덕산의 유일한 조망점인 정상은 위 사진 정도의 좁은 시야만 열어놓고 나머지는 웃자란 잡목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조망을 가리는 잡목을 정돈하여, 적어도 정상에서 만이라도 사방으로 조망이 확보 된다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광덕산 망경산과 설화산으로 이어지는 종주길 이정표가 있다.

둘다 광덕산 같지 않게 조망이 좋은 산이다.

망경산은 실제로도 그렇지만 이름만 들어도 조망이 좋을것 같아 보이고 설화산은 이름도 예쁘다.











우리는 설화산과 망경산 가는 같은 능선길 장군바위로 ~












광덕산 정상석 뒤로 이름도 예쁘고 조망도 좋은 설화산(雪華山)이 보인다.











광덕산 정상을 내려서니 남원에서 오신 모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준비하고 있다.

조금 더 지나 바람이 잔 사면에서 점심을 느긋하고 푸짐하게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장군바위를 향해 걷는데, 능선 칼바람이 소백산을 생각나게 한다.

바람만 없으면 그렇게 추운날이 아닌데..











장군바위


옛날 허약한 한 젊은이가 깊은 산속을 헤매다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서 물이 뚝 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받아먹었더니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됐다고 하여 장군바위라 칭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 이다.











이날 A코스는 부용묘를 경유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다들 무심코 장군바위에서 광덕사로 내려선다.

이정표에 쓰여진 광덕쉼터가 마치 광덕사와는 다른길 처럼 혼동을 유발하는것 같다.

광덕쉼터 대신에 부용묘/광덕사/광덕쉼터 라고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미 꽤 내려선 일행들을 부를수 없어 혼자서 A코스 능선길을 진행한다.

광덕산에서 볼만한거라고는 부용묘 딱 한개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빠뜨릴수가 없었다.











완만하게 오르막 내리막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나무가지 사이로 정상조망이 빼어난 망경산이 보인다.






























어느순간 봉우리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앞쪽 직진 능선길을 가도 광덕사로 향하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왼쪽으로 가도 광덕사로 향한다.











광덕쉼터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처음엔 혼동이 되었다.

이 길이 광덕사가 아닌 광덕쉼터로 내려서는 별도의 길 인가 하고

이정표에 나오지 않은 우측방향 능선길에도 광덕사 라고 하나 만들어 두어야 하겠고

광덕쉼터라고 쓰여 있는곳은 역시 부용묘/광덕사/광덕쉼터로 고쳐야 하겠다.

부용묘는 위 이정표에서 광덕쉼터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드디어 마지막에 광덕쉼터와 광덕사가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광덕쉼터로 내려서는 길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이다.

이곳에서 광덕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잠시후 왼쪽으로 부용묘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부용묘는 길에서 보이지 않고, 안내판 뒤로 길을 따라 살짝 올라야 한다.











운초 김부용(金芙蓉) 묘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연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삼십객 노인이 있는 반면 팔십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운초 김부용은 송도 황진이, 부안 이매창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시기로 운초시집등에 350여수의 주옥같은 한시를 남기고 있으며, 김이양 대감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평안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4살때 글을 배우기 시작해 11살때 당시(唐詩)와 사서삼경에 통한 문재로 알려졌다고 한다. 11살때 부친을 여의고 그 다음해 어머니마저 잃자 어쩔 수 없이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가 기생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운초(雲楚)라는 시명(詩名)을 가지고 시문과 노래와 춤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얼굴마저 고와서 천하의 명기로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19살때, 시문을 통해 일찍이 김이양의 인품을 흠모해 온 부용은 평양에 머물면서 77세의 평양감사 김이양의 신변을 돌보아 드리라는 소개를 받았는데, 이에 김이양이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거절하자,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연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삼십객 노인이 있는 반면 팔십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라고 말하여 거두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호조판서가 되어 한양으로 부임하게 되자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양인의 신분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정식 부실로 삼았다. 김대감이 한양으로 간 다음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다가, 애절한 부용상사곡을 통해 부용을 불러다 한양 남산 중턱에 신방을 꾸렸는데, 단촐하고 소박해도 숲이 우거지고, 기화요초로 정원을 꾸려 녹천당(祿泉堂) 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사람들이 부용을 초당마마 라고 불렀다.


김이양은 83세로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한 생활을 하며 부용과 다정하게 지냈으며, 둘은 나이를 떠나 서로의 시(詩)세계를 이해하면서 깊은 애정을 지니게 된다. 이때 부용이 김이양에게 보인 시 한수  ‘부용당청우(芙蓉堂聽雨)’ 를 살펴본다.


芙蓉堂聽雨   부용당에서 빗소리를 듣다


明珠一千斛 (명주일천곡)

遞量琉璃盤 (체량유리반)
箇箇團圓樣 (개개단원양)

水仙九轉丹 (수선구전단)


옥구슬 일천 말을 유리 쟁반에 쏟는구나.
알알이 동글동글 신선의 환약(丸藥)이런가


1844년 2월 김이양은 회방(回榜: 과거 급제 후 60년이 되는 해)에 조상들의 성묘를 위해 고향인 천안 광덕사(廣德寺) 경내에 있는 자신의 장원(莊園)에 부용을 동반하고 순행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그들이 깊은 인연을 맺은지 15년이 되는 1845년 김대감은 92세의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고, 이때 부용의 나이는 겨우 33세였다. 김이양 대감을 보내고 방안에 제단을 모시고 밤낮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한 심정을 시로 달랬다.


十五年來今日流  (십오년래금일유)
峨洋一斷復誰栽  (아양일단부수재)


십오 년 정든 님 오늘도 눈물 짓네,
끊어진 우리 인연 누가 다시 이어줄꼬.


부용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상하면서 일체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오로지 고인의 명복만을 빌며 16년을 더 살았고, 그녀 역시 님을 보낸 녹천당에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임종이 다가오자 유언으로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대감마님이 있는 천안 태화산 기슭에 묻어달라’ 했다 한다. 49년의 짧은 생애동안 그녀는 운초시집, 오강루(五江樓) 등의 문집에 한시 350여 수를 남겼다.

마치 이황과 두향의 이야기 같은 애절한 느낌이 전해온다.


매년 이곳에서 부용의 추모문학제가 열려 그녀를 기린다. 그녀가 사랑했던 김이양 대감의 묘는 위 산행지도에 표시해둔것 처럼 명부전 뒤쪽 지능선 마루에 있다. 근래 다녀간분들 사진을 보니, 후손들의 발길이 끊겼는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雨中書懷  빗소리를 들으며


一別成都惱遠思  한번 서울로 떠나 이별하니 생각은 하염없고 
庭花如雨滴  뜰 꽃은 떨어져서 비 내리듯 하는구나
鵲數聲 罷夢  처마 밑 까치 소리에 어린 꿈 깨고보니
夢中歸路細如絲  꿈에 본 길 희미하게 실낱처럼 떠오른다

春風忽 蕩  봄 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고
山日又黃昏  서산에는 또 하루 해가 저문다

亦如終不至  오늘도 님 소식은 끝내 없건만
猶自惜關門  그래도 아쉬워 문을 못 닫소

垂楊深處倚窓開  실버들 휘늘어진 창에 기대어
小院無人長綠苔  님 없는 집에는 이끼만 낀다
簾外時開風自起  주렴 밖엔 봄바람이 절로 불어와
幾回錯誤故人來  님 오시나 속은 게 그 몇 번인고



운초 김부용의 시중에 가장 유명한것은 일명 보탑시로 알려진 '부용상사곡' 이다. 김대감이 부용을 부실로 삼았으나, 훗날을 기약하며 한양으로 혼자 떠나게 되었는데, 부용은 몇달을 그리움과 외로움의 나날을 보내도록 소식이 없자 피를 토하는 애절한 시를 써서 인편으로 보내는데, 이게 바로 부용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시 '부용상사곡' 이다. (*보탑시 - 글자로 탑을 쌓듯이 지은 시)



芙蓉相思曲

 

別, (별)
思. (사)
路遠 (로원)
信遲 (신지)
念在彼, (념재피)
身留玆. (신유자)
巾櫛有淚, (건즐유루)
扇環無期. (선환무기)
香閣鍾鳴夜, (향각종명야)
練亭月上時. (련정월상시)
倚孤枕驚殘夢, (의고침경잔목)
望歸雲恨遠離. (망귀운한원리)
日待佳期愁屈指, (일대가기수굴지)
晨開情札泣支頣. (신개정찰읍지신)
形容憔悴把鏡淚下, (형용초췌파경루하)
歌聲嗚咽對人含淚. (가성오인대인함루)
掣銀刀斷弱腸非離事, (체은도단약장비리사)
躡株履送遠眸更多疑. (섭주리송원모경다의)
朝遠望暮遠望郞何無心, (조원망모원망랑하무심)
昨不來今不來妾獨見欺. (작불래금불래첩독견기)
浿江成陸地後鞭馬騎來否, (패강성륙지후편마기래부)
長林變大河初乘船欲渡之. (장림변대하초승선욕도지)
見時少別時多世情無人可測, (견시소별시다세정무인가측)
好緣斷惡緣回天意有誰能知. (호연단악연회천의유수능지)
一片香雲楚臺夜神女之夢在某, (일편향운초대야신녀지몽재모)
數聲良簫秦樓月弄玉之情屬誰. (수성량소진루월롱옥지정속수)
欲忘難忘愁依牡丹峯可惜紅顔老, (욕망난망수의모단봉가석홍안로)
不思自思强登浮碧樓每歎緣鬢衰. (불사자사강등부벽루매탄연빈쇠)
孤處霜閨腸雖欲雪三生佳約寧有變, (고처상규장수욕설삼생가약령유변)
獨宿空房淚從如雨百年貞心自不移. (독숙공방루종여우백년정심자불이)
罷春夢開竹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파춘몽개죽창영화유소년총시무정객)
攬香衣推玉枕送歌舞者類莫非可憎兒. (람향의추옥침송가무자류모비가증아)
時出門望出門望甚矣君子薄情豈如是, (삼시출문망출문망심군자박정기여시)
千里待人難待人難悲哉賤妾孤懷果何其. (천리대인난대인난비재천첩고회과하기)
惟願寬仁大丈未決意渡江舊面燭下欣相對, (유원관인대장미결의도강구면촉하흔상대)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哀魂月中泣相隨. (물사연약아여자함루귀천애혼월중읍상수)





부용상사곡


이별하오니
그립습니다
길은 멀고
서신은 더디옵니다
생각은 님께 있으나
몸은 이 곳에 머뭅니다
비단 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향각서 종소리 들려 오는 이 밤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이 때
쓸쓸한 베게에 의지했다가 잔몽에 놀라 깨어
돌아오는 구름을 바라보니 멀리 떨어져 있음이 슬픔니다
만날 날 수심으로 날마다  손꼽아 기다리며
새벽이면 정다운 글월 펴 들고 턱을 괴고 우옵니다
용모는 초췌해져 거울을 대하니 눈물 뿐이고 
목소리도 흐느끼니 사람 기다리기가 이다지도 슬픔니다
은장도로 장을 끊어 죽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의심도 많습니다
어제도 안 오시고 오늘도 안 오시니 낭군님께서 어찌 그리 신의가 없습니까
아침에도 멀리 바라보고 저녘에도 멀리 바라 보니 첩만 홀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대동강이 평지가 된 뒤에나 말을 몰고 오시려 합니까
장림이 바다로 변한 뒤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오렵니까
이별은 많고 만남은 적으니 세상사를 누가 알 수 있으며
악연은 길고 호연은 짧으니 하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운우무산에 행적이 끊기었으니 선녀의 꿈을 어느 여자와 즐기시나요
월하봉대에 피리 소리 끊기었으니 농옥의 정을 어떤 여자와 나누고 계십니까
잊고자해도 잊기가 어려워 억지로 부벽루에 오르니 홍안만 늙어가고
생각치 말자해도 절로 생각나 몸을 모란봉에 의지하니 슬프도다 검은 머리 자꾸 쇠해가고
홀로 빈 방에 누우니 눈물이 비오 듯하나 삼생의 가약이야 어찌 변할 수 있으며
혼자 잠자리에 누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백년 정심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낮잠을 깨어 창을 열고 화류소년을 맞아들여 즐기기도 했으나 모두 정 없는 나그네 뿐이고
베게를 밀고 향내 나는 옷으로 춤을 춰 보았으나 모두가 가증한 사내 뿐 입니다.
천리에 사람 기다리기 이토록 어려우니 군자의 박정은 어찌 이다지도 심하십니까
삼시에 문을 나가 멀리 바라보니 애처로운 천첩의 심정은 과연어떠하겠습니까
오직 바라건데 관인하신 대장부께서 강을 건너오셔서 구연의 촛불 아래 흔연히 대해 주시고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가운데서 길이 울지 않게 해 주옵소서












부용묘에서 내려서는 등로에 마련된 낡고 소박한 안내도 











부용묘를 내려서며 몇수 그녀의 시를 읽어본다.

150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와 사랑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같은 등산객이 지나다 들려 인사를 하고, 또 해마다 묘소에서 열리는 추모문학제를 통해

김이양 대감이나 정실부인 보다도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게 광덕사로 들어선다.




















천불전 앞에 오층석탑과 새로 만든 지장보살상이 있다.











광덕사 5층석탑













지장보살상과 왼쪽 뒤로 산신각












약수 한모금 마시고..





























왼쪽의 나무가 그 유명한 천연기념물 398호 광덕사 호두나무다


산행 초입에 보았던 묘소인 고흥류씨(高興柳氏) 가문의 류청신이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서 그 묘목을 이곳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에 심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해진 시초가 되었다고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천안의 유명한 호도는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두(胡桃)란 이름의 유래는 애초 원나라에서 가져온 복숭아 처럼 생긴것 이라고 해서 원도(元桃) 라고 해야 했지만, 이곳 스님들은 원나라를 오랑캐라 불러, 오랑캐 호(胡)자를 써 호도(胡桃)로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은 호두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나도 그렇다.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을 나서며 산행을 마치고 병천 아우내장터로 이동하여 시산제 뒤풀이를 했다.

그러고보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 열사도 고흥류씨다

고흥류씨와 호두 이야기, 그리고 운초 김부용 시인의 시와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던 광덕산

별볼거 없다고 미뤄두다 찾은 산에서 나이를 초월한 150년전 두 남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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