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전 어느 날 문득..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살아보니, 세상 참 살것도 없더라'


뭐 별것 산것 같지도 않았는데

금새 황혼의 쭈그렁 칠순 노인네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이 세상 영원할것 같아도, 막상 살아보니 살것도 없더라

일장춘몽, 허망하게도 짧다는 말씀 이셨다.


그때는 내가 40대라 그 말씀이 그렇게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쉰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때 아버지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난다.


당장 이라도 스무살 신입생으로 돌아가 캠퍼스 동아리방을 뛰어다니고

체육대회날, 축제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며 호기를 부려도 이상하지 않을것 같은데

시간은 찰라에 30년이 넘게 흘러 딸이 대학을 졸업한지도 몇년이 지났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고 번갯불처럼 또 십년이 지났다.

삶은 노년으로 가면서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건강의 굴곡을 만나는데

아버지의 지난 몇년도 그리 평탄치는 못하셨다. 그러다..

몇개월전 청천벽력같은 진단과 함께 평균 4개월 남으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두어달,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계시다가

극심한 통증이 시작 되면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을 하시며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마지막 외출을 하셨다.

환자분들 평균 잔여수명이 한달 이라는 설명처럼 인생의 마지막 휴양지에선

모든분들이 천사처럼 친절하고 환자를 세심히 배려 해주신다.


입원 전에는 TV 도 잘 보시던 분이

입원후에는 일체 TV도 보시지 않는다.

심심하지 않으냐는 물음에

심심할 겨를이 없으시다는 말씀을 하신다.


강한 진통제 탓 이기도 하겠지만

생각을 많이 하시는게 보인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느라 심심할 겨를도 없으신듯 보인다.








국민학교 1학년 가을 운동회날 아버지와 함께









1980년 대둔산


현재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없을때 대둔산 사진이다.

저때 구름다리는 무척 출렁거려 다들 많이 무서워 했다는 글을 읽은적 있다.


몇달전 옛날 앨범을 같이 돌아보다 저 사진을 보면서

이날 동행했던 사진속 일행들은 이미 다 고인이 되셨다며 말씀을 흐리신다.

그래서 늙어 갈수록 외롭고, 친구가 소중한것 같다.









1980년 대둔산

삼선계단을 만들기 전에 삼선봉을 오르는 모습이 색다르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하셨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진 일하시는것 외에는 어울려서 놀러 다니시는것도 별로 없으셨다.

술한잔 마시지 못하셔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천생 선비 같으셨던 분

그러다 보니 사진도 많지가 않다.


그동안 나는 산에 가더라도 주로 풍경만 담고, 인증사진 조차도 잘 찍지 않았는데

아버지 앨범을 보면서 산에 한번 갈때 한 두장씩은 사진을 남기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는게 사진뿐이다 라는 말이 그냥 헛말이 아니라는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초단위로 세어도 아까운 시간 이다.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

지켜보는 가족들도, 아버지도 모두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한가지는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한가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라고


이 세상 백년을 꽉채워 산다해도 인생은 너무 짧은것 같다.

산에서 커다란 소나무를 보거나, 무심한 바위를 보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생멸은 커다란 의미의 하루살이와 같다고









얼마전 마지막 생신 날

기쁨이 슬픔과 뒤 섞이어 다들 웃는 얼굴 뒤로 안타까움과 눈물이 묻어날때

당신 혼자 조용히 미소를 짓고 계셨다...괜찮다. 괜찮아.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곁에 계셔서 너무도 든든하고 행복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열흘이 지난

2019년 8월10일 (음력 7월10일)

당신의 이름자처럼, 꽃향기 나는 고운 삶으로 

일생을 순하고 선하게만 살아오셨던 아버지께서

결국 영면에 드셨습니다.


멀리서 빈소를 찾아주신 분들과

댓글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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