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대륙을 탐사한 22명의 조사단 가운데 여성은 딱 두 명. 극지연구소의 김지희 박사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문난경 박사다. 케이프 벅스에서 5박 6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두 명의 여성과학자에게 격려와 칭찬이 쏟아졌다.
 
문 박사는 이번이 남극 ‘첫 나들이’지만, 김 박사는 지난 10년간 세종기지와 대륙을 넘나든 베테랑 탐험가다. 그들은 남극 탐험을 위한 최고 준비물은 ‘물티슈’라고 말하면서 “물티슈 3장이면 머리도 감을 수 있다”고 말했다.
 
Q. 
무사히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남극 대륙에서 체류해 본 몇 안되는 한국 여성이 되셨는데, 우선 이번 출장을 오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문난경 박사 / 대기과학 전공,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 PHOTO BY 김철호 기자 ]

 
<문난경>
연구원에서 남극대륙기지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프로젝트로 맡았습니다. 우리팀이 5명인데 처음에는 기간도 너무 길고 제가 배멀미 같은 걸로 다른 동료들에게 짐이 될까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5명이 한팀으로 움직이는데 저 혼자 빠지기도 그렇고 고민을 하던 차에 어머니가 힘이 되어주셨죠. 어머니께서(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신다) “좋은 기회가 왔는데 왜 안 가느냐, 한 달은 금방 간다. 집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복잡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걷히면서 결심을 했습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이 착착 진행됐습니다. 내 인생에 남극갈 일이 있겠느냐 싶었는데 어느새 제가 여기 와 있네요.
 

김지희 박사 / 생물학 전공.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 PHOTO BY 김철호 기자 ]

 
<김지희>
저는 2001년부터 세종기지의 환경 모니터링을 해 왔습니다. 원래는 해양연구원에서 해조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하등식물쪽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제가 가게 된 거죠.

처음에 세종기지에 갈 때는 저도 남극에 대한 걱정도 많고 각오도 단단히 하고 갔었지요. 의외로 남극에서 지낼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더 가고, 또 가고 한 것이 어느 순간 남극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 케이프 벅스도 지난해 러시아 쇄빙선을 타고 한 번 돌아보긴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일정에 쫓겨 두 시간 정도 밖에 못 있었는데 이번에선 며칠동안 자면서 실컷 둘러봐서 기분이 좋습니다.
 
Q.
그래도 여성의 몸으로 남극대륙에서 며칠씩 잔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하루 일과를 좀 설명해주시죠.
 
<문난경>
아침에는 일어나면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것으로 세수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주로 햇반이나 3분 미역국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요. 그리고 ‘행동식’이라고 해서 점심을 챙겨 필드로 나갑니다. 행동식은 일반 도시락이 아니라 칼로리바, 초코파이, 양갱 같은 것입니다. 남극 대륙에서는 쓰레기를 남기면 안되기 때문에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견과류 위주로 들고 나가요.
 
저는 지형지질팀과 함께 주요 지점에 대한 GPS 정보를 확인하고, 그 지점의 온도, 습도, 바람 등의 기상요소를 측정했습니다. 저녁 때까지 맡은 업무를 다하고 나면 6시까지 다시 루스카야 기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침과 비슷한 메뉴의 저녁을 먹죠. 케이프 벅스에서는 돌아오면 꼭 맥주 반캔 정도를 마셨어요. 정말 시원했습니다.

대륙 탐사는 오히려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라온 호에 타고 있으면서 배멀미를 하느라 좀 힘들었는데 대륙에 내려서는 오히려 밥도 잘 먹고 건강도 좋아졌어요. 저를 걱정하던 다른 동료들이 “대륙 체질이다”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사실 공기도 좋고 조금 추운 것만 빼면 할 만했습니다.
 
<김지희>
사실 가장 추운 시간은 필드활동을 하고 돌아와서 슬리핑 백에 들어가는 그 중간 시간이지요. 이때 밥 먹고, 자는 준비를 할 때까지는 우모복(극지에서 입는 방한복)도 벗고 슬리핑백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는 러시아 ‘루스카야’기지는 열악했습니다. 러시아가 이 기지를 폐쇄하고 무인 관측기지로 운영하기 때문에 난방도, 전기도 없었고 또 창문도 없었어요. 밤에 문을 닫으면 깜깜해서 복도도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었지요. 첫 이틀은 공간이 없어 남자 동료들과 같은 방에서 각자 슬리핑 백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또 남극은 모든 시간선이 모이는 곳이라 따로 시각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각자 본국 시간에 따라 일을 하는데 우리가 밤 시간일 때 러시아는 낮 시간이라 저희가 잘 때 계속 지붕을 수리하고 일을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기지가 땅에 떠 있는 형태로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복도를 걸어가면 발소리도 울려서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문난경 박사의 남극대륙 활동 모습.

 

김지희 박사의 남극 대륙 활동 모습.

 
Q.
김박사님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 상대적으로 남자 동료들이 별로 걱정을 안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지희>
네, 문난경 박사님은 주변에서 거의 ‘공주’ 대접이었는데, 저는 연구소 동료들이 내팽겨쳐 놓는 분위기였죠(웃음). 세종기지 주변에서 필드 연구를 많이 해 봤기 때문에 사실 혼자서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륙에서 현장 조사를 한다는 느낌은 새롭더군요.

케이프 벅스 해안 가의 펭귄 군서지를 돌아봤는데 우리팀(KEI 생태조사팀)이 군서지를 두 군데 발견했습니다. 서식지 기준으로 1500마리 정도의 아델리 펭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러시아 연구에서는 서식지가 한 군데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잘 하면 우리팀이 새로운 서식지를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남극의 이끼와 지의류 등 표본 채집을 많이 해 와서 요즘 밤마다 표본을 분류하고 특징을 기록해 놓느라 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앞으로 여성 후배들이 남극에 가고 싶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권유하실 계획입니까?
 
<문난경>
네.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고 가 보라고 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배타고 여행하는 기간동안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또 남극에서 먹고 자고 하는 일이 쉽기야 하겠습니까만, 마음에 맞는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만약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저했다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평생 언제 남극에 오겠냐 하는 생각에 모든 일을 신선하고 즐겁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김지희>
남극은 정말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 문명과 단절된 환경 때문에 자연과 우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고 철학적으로 됩니다. 문 박사님이 ‘언제 남극에 또 오겠냐’고 하시는데 ‘앞으로 반드시 오게 된다’에 내기를 걸겠습니다.

극지 연구의 경우 전문가 풀이 적습니다. 그래서 한 번 다녀간 사람은 바로 극지 전문가로 인식되어 다음 프로젝트에 꼭 불려 다니게 됩니다. 여성들의 경우 활약할 기회가 다른 분야보다 많고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극지 연구를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 테라노바 베이에서도 탐사를 하실 계획이죠? 극지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난경>
테라노바 베이도 같은 방식으로 탐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숙소가 없고 또 아라온 호가 가까이 정박할 수 있기 때문에 헬기로 출퇴근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한 연구를 바탕으로 앞으로 대륙기지가 세워질 것을 상상하면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걱정도 됩니다.

우리나라 과학 풍토가 성과 위주로 진행되면서 1년만 하면 결과를 내 놓으라는 식이 많은데 남극 연구에 그런 잣대를 대면 안될 것 같아요.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들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희>
극지 연구는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1950년 대부터 기지를 지어놓고 수십 년씩 기상이나 기후를 관측합니다. 이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만 갖고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논문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가치있는 일이죠. 또 요즘은 남극이나 북극이 지구 온난화를 연구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심도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뛰어들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활발하게 연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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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 벅스를 떠났다.    [ PHOTO BY 김철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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