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시 간 의 흔 적 들 ~

가을이 혼자 되어 길을 떠난다, 북한산 숨은벽 단풍 산행

작성일 작성자 북을



가을이 혼자가 되어 길을 떠난다.


그 가을을 따라 한 사내도 가을을 배웅하러 행려의 길을 나선다.

이른 아침을 나선 그 사내는 억겁의 은둔과 신비를 품고 있는 북한산 숨은벽 능선을 들기 위해 고양시 효자동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길 초입의 빼곡한 밤나무가 산기숡을 메우는 밤골터를 지나

자갈이 지천인 퉁퉁불퉁한 산길을 조심조심 딛어 차문을 밀고 내린다.

가을기운 차분히 내려앉은 한산한 이른 시각의 밤골터는 쌉쌀한 기온이 피부에 감긴다.


지금 이 산길 계곡 어딘가에는 생명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향하여 화려하게 물드는 가을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나는 지금 형형색색 곱게 단장하고 먼 길 떠나는 계절의 아쉬움을 배웅하러 가는 것이다.



 

*죄축 능선봉우리가 인수봉, 우측 능선봉우리가 벡운대, 그 가운데 숨은듯 움츠린 암봉능선이 숨은벽* 



이 북한산(北漢山)은 한강북쪽에 자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민족의 정기와 자존이 굽이굽이 흐르는 장대한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수려한 봉우리들이 저마다 명산의 서열에 올라 자웅을 자부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실고 억겁으로 달려온 북한강 남한강의 두 물줄기를 수굿이 받아들여

천년학千年鶴이 화려하게 비상하는 눈부신 서울을 태동시킨 탯자리가 바로 이 북한산이기에 

나는 이 북한산을 명산 중의 으뜸 명산으로 치는 것이다.

 

일찍이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이곳 부아악(인수봉,仁壽峰)에 올라 백성들의 살만한 곳을 살폈고,

조선 태조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에 올라 그 지세의 맥을 찾았으며,

우리나라 풍수지리와 도참술의 비조鼻祖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천년 전, 이 삼각산(三角山,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의 산세를 둘러본 뒤,  

오늘날 눈부시게 웅비하는 서울’의 꿈 같은 태동을 선각의 예지로 꽃을 피웠던 곳이다


지금 이 길은 한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이 사직(社稷)의 명운을 지고 이 산에 올라 그 지세를 두루 살핀 것을 보면,

이 산은 명산 중의 으뜸 명산이요, 이 산길은 참으로 귀한 길일 터.

 

나는 지금 이 귀한 산길을 조심조심 밟고 간다.



 


밤골터에 둥지를 튼 국사당이 눈에 든다. 국사당은 당집(堂家)이다.


그곳 서낭당목엔 서죽筮竹이 꽂혀 있고 길게 널어뜨린 청....흑색의 오색 천이 산바람에 나부낀다.

무속巫俗의 세계에서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을 상징하는 오색천을 길게 늘어뜨리면 범사의 사악한 악귀를 내쫓는 것으로 믿는다.


세월은 굽이굽이 흐르고 흘러, 아득히 흘러와 첨단을 달리는 휘황한 불빛들이 밤낮없이 명멸하는데

아직도 신을 부르는 저 접신무의 징소리가 어둠의 파장을 뚫고 울려퍼지는 것은 

이 삶의 미궁성과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곳을 지나 터박터박 호젓한 산길을 밟고 간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는 이 산길을 걷다보면, 무겁던 마음의 짐도 하나 둘 내려 놓아지면서 내 안의 순수함이 차분히 살아난다.

조용한 산길이 이래서 좋은 것인가. 그런지도 모른다.

 

호젓한 산길에 둥그런 돌들이 가지런히 놓여 숨을 쉬고 있다.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차분히 놓여있는 저 돌계단이 사색적으로 와닿는다. 

돌의 무게를 살펴보니 건장한 장정이 맞들어도 꿈쩍하지 않을 이 엄청난 무게의 바닥돌을 어떻게 이 가파른 산길까지 날랐으며

어떻게 자리를 잡았을까 싶다.


저 돌계단 하나하나엔 이 험한 산길 굽어살피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 행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그 마음이 산길 내내 열다섯번 씩이나 몸을 숨겼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행려의 객을 마중한다.



 


인적 없는 가을 속으로 타박타박 걷는다.

낮익은 풀벌레들의 저물어 가는 소리가 가늘게 와닿고 티 없이 맑고 풍성한 가을 햇살이 단풍 잎으로 떨어진다.


느긋한 내 걸음 탓인가.

빨간 바람막이를 걸친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길을 앞질러 간다.

그때, 눈앞을 스쳐가는 어마어마하게 큰 엉덩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맵시 있게 흐르던 청춘의 허리선은 간데 없이 사라지고, 보릿자루 같은 몸매를 실룩이며 앞질러 간 것이다.

 

얼굴선이 무너지고 몸 구석구석이 무너지는 중년이란 세월의 나이테가 그만큼 이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반증일까.

 

아무른 맵시나 모양새도 없이 자신을 포기한 듯 달고가는 저 숨막히는 엉덩이 일지라도,

자식과 가족을 금쪽같이 건사하며 이 고달프고 험한 삶을 치열하게 견뎌 낸 위대한 산물이 저 숨 막히는 엉덩이가 아닐까란 생각이 스친다. 



 


해골바위 못미친 발취에서 억센 바위 틈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한 생명을 만난다.

문득, 생명의 경이에 감동이 인다.


언제가 충남의 홍성의 용봉산을 산행할 때 바위틈에서 옆으로 커는 수백년 된 소나무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았는데,

저 한 그루의 소나무가 목마른 바위틈을 뚫고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生命.

그것은 하늘이 살라고 내려준 命令이 아니던가.

하늘이 내려준 하나뿐인 생의 그 명령을 수굿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운명을 다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이윽고 해골바위다.

움푹 패인 두 눈엔 빗물이 가득 고여 있는 바위가 해골을 닮았다 해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가만히 보니 사람 사후의 그것과 참 많이도 닮았다.


저 해골바위는 원래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용왕대신(龍王大神)에게 기우제를 올리던 용알(龍卵)바위’였다 한다.

두 개의 큰 구멍엔 늘 물이 차 있어 용이 그곳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생각한  이곳 마을 주민들은

가뭄이 들면 이곳에 올라와 용알바위속 물을 휘져어 그 용이 하늘로 승천하도록 하여 강우(降雨)를 기원했다고 전한다


이 북한산은 신라시대부터 중악(中嶽)으로 숭배되던 산이었고 서울의 진산이었다.

울창한 수목(樹木)과 우림하게 치솟은 바위의 기운이 왕성한 산으로 유명해서 북한산 곳곳에선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많이 발견된다.




저곳이 해골바위 바로 위쪽 전망바위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수직으로 치솟은 암반이 자리하여 그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가파른 숨을 뽑으며 올라온 산객들이 저곳에서 한 박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산아래 망망히 펼쳐지는 풍광에 빠져드는 곳이다.


 



 

그 전망바위를 향하여 산모퉁이를 휘돌아 간다,


상장능선(上長陵線)이 수려한 푸른 비단 자락을 펼쳐 놓은듯 굽이굽이 흐르고, 그 넘어 도봉산의 오봉五峯이 눈에 든다. 

 오봉엔 오형제의 전설이 내려온다.

오형제가 고을 원님의 아릿다운 외동 딸을 서로 얻기 위해 바위 던지기 시합을 하여 만들었다는 오봉의 설화가 이어져오는 곳이다.

수천 톤에 달하는 다섯 바위를 어떻게 저 산정 높이까지 던져 올렸을까 싶다.

아마도 설화 탄생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한 상상의 세계와 그 영역이  모태가 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도봉산 주봉(主峰)들인 선인봉, 만장대, 자운봉, 신선대가 하늘을 경견히 받들며,

세상을 초연히 굽어보고 있다.



 


드디어 전망바위에 발을 닫는다.

산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목축 축이며 다시 호훕을 가다듬으며, 신발끈을 조인 뒤, 가파르게 흘러 내리는 숨은벽 주 능선에 붙는다.  



 


전망바위의 풍광은 일망무제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저멀리 나직히 펼펴지는 도시가 일산 신도시다.

산이 베푸는 풍경의 만찬에 취하며 버겁던 삶의 끈들을 자신도 모르게 놓을 즈음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달려와

이미에 땀을 걷어가며 청수처럼 가슴을 씻어준다.


산이 이래서 좋은가.

  

 


슴은벽 능선을 항해 드는 우측은 천길 절벽이다.


저 까마득한 절벽에 서서 아래를 보니, 불현듯 인간의 목숨도 어쩌면 미물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아무리 생명의 존엄과 존재의 가치에 대해 온갖 거창한 언어들로 무장을 해도 그것은 한낱 인간 기준의 잣대일 터.

삶의 나래를 접고 저 천길 벼랑에 몸을 날린듯 이 자연은 눈썹 하나 꿈쩍하겠는가.


그저 아무 일 없는 듯 무념무상(無念無想)하리라.


무상한 저 자연이 보는 인간은 한 시절 잠시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바람이나 팔랑거는 나무이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불꽃 같은 이 목숨도, 피가 끓듯 뜨겁게 살아온 이 삶도, 세상을 호령하며 황금으로 두른 재왕도, 삼라만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사멸의 삶, 그것이 바로 이승의 삶이며 목숨 이려니.


  축은한 마음으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전망바위를 지나자, 이윽고 돼지바위가 눈에 든다.

저 위태로운 돼지바위에 걸터앉은 산객들이 사진을 촬영하며 풍경과 기암에 취해 즐거워한다. 



 


돼지바위를 지나자, 바로 앞에 거대하고 기세 등등한 숨은벽 주능선이 눈에 차오른다

4,5명의 산객들이 서성이는 저 중턱지점에서 우측 계곡으로 내러서서 숨은벽을 좌측에 끼고 계곡을 거슬러 능선상부까지 가야한다.

저곳이 대슬랩 구간으로 장비의 도움없신 더 이상 사람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는 암벽등반의 시작점이 된다.



 


암벽에 온 몸으로 부대끼며 밧줄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암벽을 타고 있다. 

어디서 온 단체이냐 말을 건네니, 대한산앋학교에서 나왔다 한다.

강습생들과 강사들이 그간의 이론을 바탕으로 숨은벽 대슬램 구간을 직접 체험하는 날이라 한다.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고통스러운 고뇌의 하중 또한 얼마나 크며 그 고달픔은 또 어떠하겠는가.

살다 보면, 때론 피가 마르고, 때론 살이 문드러지고, 때론 뼈가 삭아내리지 않던가.

저분들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그런 고통과 고뇌의 하중을 저 외줄 하나로 녹여버릴 수 있다면, 저 위태로운 외줄을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에 매달려 삶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들을 허공으로 날리며 

삶을 재충전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값진 일일 터.   

   


 


암벽등반의 시작점과 계곡으로 발길이 떨어지는 교차점에서 어느 산객이

슴은벽의 기세 등등한 형상과 그 옆 유려하게 흐르는 파랑새 능선을 담으라 한참을 저러고 있었다.  

 


 


계곡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발 딛는 곳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암벽이어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 아찔하다.

한 발만 삐끗하면 이승이 저승으로 바뀌는 건 순간의 문제일진데, 산객들은 기묘한 암봉들의 풍모와 풍광을 즐기느라 여유롭다.   


어쩌면 산이 인간에 주는 한없이 넉넉한 품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숨은벽 정상을 들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서는데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애가 절경이었다.


 


계곡에 추색이 한창이다.


8,9부능선에서 시작된 저 붉고 노오란 형형한 색의 물결이 계곡을 타고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추색의 아름다움에 취한 산객들은 저마다 탄성을 뽑는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을 잊고, 그져 목을 젖혀 멍하니 눈을 허공에 꽂고, 입을 벌린 채 조각상이 된 이들도 있었다.  


  

가을의 저 추색은 삶의 빛깔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바람이 불면 천지에 낙엽이 흩날려 나뒹굴며 저 색은 무너져 내린다.

절정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것만큼 무너짐은 쓸쓸함을 넘어 허무하고 처절하게 와닿는다.

이렇듯 저 가을은 그 때를 알고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고 혼자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영원의 오솔길 드는 일.

어쩌면 저 색색 화려한 단풍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제 몸을 태우며 고뇌의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비단 저 자연만 그러하겠는가.

이 자연의 순리와 무상함 앞에 때론 산다는 것의 헛헛한 허허로움이 밀려오는 것은 계절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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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능선 계곡을 지날 쯤 장년의 어느 부부의 모습이 잡혔다.


동행한 아내의 다리에 쥐가 내려 더 이상 움직이 질 못하고 있었다.

9부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지,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부부란, 한 때는 사랑한다고 주체할 수 없이 볼을 비비벼 수도 없이 사랑의 찬가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살다 보면 날 궂어, 바람 불고 비가 내리고 때론 비바람 몰아쳐 천둥과 번개가 앞마당을 때리지 않던가.

부부가 한평생 그 끈을 이어가는 것은 뜨거운 불덩어리와 얼음덩어리 속을 무시로 들락이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픈 상처와 상채기를 내며 살아가는 그런 관계의 존재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숱한 아픈 생채기의 쓰린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영롱한 진주처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롱히 빛나는 보석같은 존재 역시 부부가 아닐는지.

 

 


이윽고 숨은벽 능선 산정으로 드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다.



 


드디어 숨은벽 산정에 서서 뒤돌아본다. 

밤골터에서 시작하여 한 발 한 발 딛고온 능선이 굽이굽이 흐른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땀을 걷어가면서 가파른 된비알에 지친 몸이 하늘로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하다.  



 


저기 좌측으론 인수봉이 하늘을 받들며 우똑 솟아있다.


어쩌면 저 봉우리는 삶의 한숨과 눈물과 아픔과 기쁨과 그 슬픔에 달관한 듯 초연하다.

저 초연한 기상,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도 꿈쩍 않을 저 침묵의 덩어리, 무상의 진리로 하늘을 받들며

세상을 영원히 벗어난 듯 영원으로 흐르고 있다.



 


우측으론 백운대다.

영원의 침묵이 적광寂光으로 빛나는 백운대,

일체의 번뇌를 끊고 정갈하고 고요한 표정으로 상주불멸(常住不滅)의 찬란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있다.



 


저멀리 천년의 학처럼 눈부시게 비상하는 서울의 화려한 모습이 눈에 든다.  


나는 '서울'의 탯자리격인 억겁의 세월을 달려온 백운대와 인수봉을 협시(夾侍)한 채, 몸을 누인다.

천년이 한결같은 듬직한 바위가 구들장 같고, 저 푸른 하늘에 뜨 있는 조각구름이 솜털 이불 같다.

이렇게 몸 하나 누이니 세상이 더 없이 안온하다.

한세상 다하여, 조용히 눈을 감고 제자리고 돌아가는 길도 이런 것일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곳 천년 바위에 편안히 등을 붙이고 깜빡 눈을 붙였데, 산바람이 몸을 흔든다. 

부시시 눈을 뜨니, 해가 중천을 한참 건너고 있었다.      


 



하산길은 저기 저  파랑새 능선을 타고 내려가야겠다.

혹시, 그 누가 알겠는가.

신조(神鳥)로 불리는 그 파랭새가 날아와 잠시나마 허름한 행려의 객에게 살가운 친구가 되어 줄지.

아니, 비좁고 옹색한 내 마음에 깃들어 그만큼 더 상큼한 행복과 그런 여유를 줄는지....,

  


 


나른한 발길로 밤골터에 도착하니, 하루해가 설핏하다.


주차장의 차량은 설물처럼 빠져나가 텅 비었다. 오후의 가을 햇살이 비스듬이 내리고, 마른나무잎이 바람에 나뒹군다.

국사당의 오색천도 세속을 악귀를 내쫓듯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다.


저멀리 멀어지는 인수봉과 백운대 봉우리에 하루 해가 걸린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이 산길, 저 봉우리, 저 산자락엔 오늘처럼 아름다운 단풍이 내리고

새들은 노래하고 꽃이 이울고 하얀 눈은 꿈처럼 내리리라.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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