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시 간 의 흔 적 들 ~

아련한 그리움의 길 따라, 주왕산 추계 길

작성일 작성자 북을


*주왕산 입구 추계 풍광.



아련한 그리움의 은빛 쪽배를 타고 아득히 멀고 깊은 그리움의 길을 나선다.

 

솔바람 담박하게 숨 쉬는 영남 제1의 명산이요, 산 높고 물 맑아 달빛 밝은 산고수정명월山高水淸한 땅으로 새벽을 내달린다내 나이 여섯 살 무렵이던가. 엄마 손에 이끌러 갔던 낯선 곳. 돌로 쌓은 둥근 곳에 맑은 물이 수로 가득 흐르며 물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여기저기 둘러 앉아 함께 무엇을 먹던 곳. “엄마, 여기가 어디야~” “달기 약수터~.” 엄마의 포근한 한 마디가 한평생 날 떠나지 않고 아련한 기억의 언저리에 봄볕 가득한 꿈처럼 머무는 곳이다. 바람 불고 비 내리고 눈 내린 세월의 고2 , 청춘의 벗들과 푸른 웃음 뿌리며 흔들리는 저녁 열차에 들뜬 마음 가득 싣고 찾아들었던 주왕산周王山, 산문 초입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엄청난 바위의 위용에 간담이 서늘했던 산, 계곡 따라 오를 때 흐르는 맑은 계류에 몸을 맡긴 여인들의 하얀 알몸(裸身)을 난생 처음 우연히 목도했던 산. 열일곱 청춘의 육감을 뜨겁게 흔들던 여인들의 가려졌던 하얀 속살이 백옥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난생 처음 느끼게 해준 산. 그 맑은 계류 굽이굽이 돌아가는 까마득히 치솟은 억겁億劫의 기암奇巖마다 숱한 전설이 서려, 칠보의 빛나는 보석을 품고, 먹 갈아 시대를 담아내던 조선 선비의 그 묵직하고도 깊고 맑은 기품을 품어내는 산. 삶의 산을 넘고 넘어, 그 미로(迷路)를 더듬어 온 이순耳順의 내게 어찌 두고 온 그 산천이 그립지 않으랴. 아득히 빛바랜 내 유년시절과 청춘시절이 그리운 나는 그 멀고 깊은 땅을 향해 회귀하는 연어처럼 홀연히 새벽어둠을 가르며 길을 간다.

 

 


 * 주왕산 대전사 보광전에서(1976.7월). 좌로부터 필자, 최규태, (고)한영환, 지경복, 최원기, 강석봉. 6명_ 

고2 때 여름방학 다음 날, 신녕역에서 저녁 열차를 타고 안동역사 내 나무벤취에서 한룻 밤 잔 뒤, 첫 시외버스를 타고 주왕산에 들었던 흑백사진.



평택제천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의 어슴푸레한 어둠을 걷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단숨에 내달리니 숨이 가팔랐다. 의성휴게소에서 차를 멈췄다. 차 문을 밀고 발을 딛자 사방에서 핥아오는 새벽 냉기에 몸이 오싹하게 움츠려들었다. 저멀리 깜빡이는 불빛들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그곳을 뒤로할 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내 고향 신녕新寧인데. 하는 아늑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행려의 차는 청송 나들목으로 흘러든다. 그곳엔 아침안개가 자욱했다. 주산지注山池로 향하는 길섶의 빈 들판엔 하얀 서리가 뒤덮여 시리게 와 닿는다. 사막 같은 메마른 도시의 빌딩 숲이 삶의 텃밭이 되면서 그간 내가 잃어버렸던 풍경이 목가적으로 펼쳐진다. 온 들판에 하얀 융단처럼 폁처진 그 서정적 풍광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와 닿는다. 문득, 저 들길을 뽀얀 입김 내뿜으며 숨이 차오르도록 뛰고 또 뛰고 싶었다.


 


 


*조선 경종 원년(1720) 8월 착공해 이듬해에 준공한, 명승지 제105호의 주산지 풍경



이윽고 주산지注山池와 난생 첫 대면이다.

 

아침 안개 나직이 피어나는 아담한 연못은 천년의 고요를 담고 있는 듯했다. 저 고요한 선경仙境의 풍광은 선계仙界였다. 수면에 피어나는 아침 안개엔 침향沈香이 스며나오는 듯 행려의 마음을 한없이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 물속에 뿌리를 내린 잎을 떨군 왕버들나무가 고요히 잠기어 대칭을 이루고, 가을빛으로 물든 산 능선이 좌선坐禪하듯 수면에 내린 모습은 그윽한 한 폭의 동양화를 만난 듯 진경산수 그 자체였다. 과연 나라 안의 이만한 아름다운 선경을 품은 선계의 저수지가 있을까 싶었다.

 

기실, 나는 이곳에 도착 전까지 주산지와 짝사랑에 빠졌다. 이른 시간인 만큼 느긋하고 여유로운 풍광 속으로 녹아들어 태고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영상을 건져 올리는 혼몽한 짝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침 710분경에 도착하였으나, 현실의 벽 앞에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미 홍수처럼 넘쳐나는 차량과 그 엄청난 인파에 치이고 밟히면서 마음은 구겨진 종이짝처럼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비좁아 옹색해지는 내 마음에 애써 온기를 불어넣으며 미문美文의 글을 쓰고 있나니.

 

주산지를 돌아 주왕산에 둥지를 튼 대전사大典寺로 차를 몰았다. 산으로 에워싸인 청송은 철길 하나 없는 골골이 깊은 산간벽지이나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다. 특히 국립공원을 품에 안은 청송은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배출한 청송 심씨沈氏와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 집안의 진성 이씨眞城李氏가 본관을 쓰는 유서 깊은 곳으로, 조선의 만석꾼 송소(松韶) 심호택이 지은 99칸의 솟을대문 높은 어리어리한 대저택이 이곳 덕천동에 자리한다. 나라 안 현존하는 99칸의 한옥 고유의 건축물 3곳 가운데 하나가 이곳 청송에 있다. 대전사로 가는 양 길가에 단단한 육질의 꿀사과로 명명한 사과나무가 하얀 서리를 이고 줄줄이 도열해 이방인을 환대하는 모습에서 옹색해졌던 마음이 다시 풀어진다. 산지의 사과는 거의 다 수확을 한 듯 간혹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밭이 눈에 든다.

 

저 사과향기 바람결에 묻어오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가을 길을 언제 걸었던가. 생각하는 사이, 주왕산 삼거리엔 철갑 행렬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출발 전 나는 이곳이 이처럼 입추의 여지가 없는 줄 전혀 몰랐다. 정말이지 예사 문제가 아닌 듯했다. 삼거리 그 어디쯤 주차안내원에 따라 차를 세우고 유랑자처럼 휘적휘적 걷는다. 그곳 상의 주차장을 지나 대전사입구까지는 숨 막히게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이었고, 울긋불긋 즐비하게 내걸린 간판들로 어지러웠다. 숫제 천만 인구인 서울의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이나 북한산으로 밀물처럼 밀려드는 인파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대전사 보광전과 우측 우람한 기봉旗峰의 모습.



어느새 대전사大典寺 입구에 당도한다.

 

보광전普光殿 용마루 너머로 솟구친 웅장한 암봉巖峰의 범상치 않은 형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래서 산천은 유구悠久하다 했던가. 그 옛날 용트림하듯 솟구쳐 오른 저 거대한 암봉이 내 간담을 얼마나 서늘하게 했던가. 저 비범한 풍광은 변함없이 반백이 되어 다시 찾은 행려를 또 다시 매료시킨다. 저 암봉을 일컫는 이름이 기암旗巖이었다. 아득히 흐른 천년 세월에 하얀 혼백이 되었을 신라의 왕족이었던 대전도군大典道君 벼슬의 김주원金周元 그의 군사를 물리친 신라 조정의 마장군이 저 암봉에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에서 기암으로 유래한다. 경내에 서니 기암의 푸른 천공에 금방이라도 백학白鶴이 훨훨 날아오르고 노정의 흰 구름도 쉬어갈 듯 상상속 도원경桃源境의 풍광이 펼쳐지는 듯하다. 행려의 객은 산문 초입부터 혼을 뽑는 이 수려한 운치에 매료된 채 경내를 잠시 둘러본다. 보광전普光殿 현판은 옛 것 그대로 인데, 예전의 석탑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화강암으로 빚은 삼층 석탑이 말쑥한 단장을 하고 있다. 대전사 빗돌 기단에 음각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일 마음먹기 달렸다)”란 화엄경 문구가 먼 길 달려온 속인의 마음을 비춘다.



*급수대, 이곳으로 숨어든 신라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대궐을 짓고 암봉으로 계곡 물을 퍼 올려 우물물을 대신한 전설이 내려오는 거대한 수직 단애의 모습.


 

경내 좌측 돌탑에 눈길 거두며 주방천 계곡 길을 따라 걷는다.

 

계곡엔 가을 잎이 우수憂愁에 젖어 흩날린다. 왁자하게 말려드는 행려의 발걸음은 우수에 젖은 분위기와 상관없이 산길을 후끈하게 달군다. 맑디맑은 계류가 휘돌아가는 그 깊은 계곡엔 숨겨진 비경祕境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저마다 독특한 전설을 품은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병풍바위 연화봉 연화굴 무장굴 주왕굴 관음봉 망월대 촛대봉 등 깎아지른 절애絕崖의 주상절리가 칠보의 보석처럼 줄줄이 쏟아지며 경탄敬歎을 자아낸다. 급수대는 이곳으로 숨어든 신라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대궐을 짓고 암봉으로 계곡 물을 퍼 올려 우물물을 대신한 전설이 내려오는 거대한 수직 단애이며,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우뚝 솟은 안벽의 학소대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풍바위며, 연꽃처럼 핀 연화바위와, 그 모양새가 떡시루 형상을 한 시루바위 등등 숱한 전설들이 바람과 안개 속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 땅 빼어난 산수미의 정수精髓를 절애의 풍광으로 펼쳐낸다. 이래서 조선시대 문인 홍여방이 '찬경루기讚慶樓記'에서 이 주왕산을 "산세山勢는 기복이 있어서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웅크린 것도 같으며, 냇물은 서리고 돌아 마치 가려 하다가 다시 오는 것 같다", 그토록 감탄하였던가 싶다.



* 급수대 측면 영상. 저 까마득한 봉우리까지 우물물을 퍼올렸다는 바람과 안개 속의 전설봉.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우뚝 솟은 안벽의 학소대.




*떡시루를 닮았다는 거대핸 둥근 석벽의 시루봉.




<!--[if !supportEmptyParas]-->* 철옹성 같은 웅장한 기암奇岩의 용추협곡.



그곳을 지나 웅장한 기암奇岩 용추협곡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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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불이 토해낸 듯 행려의 발길을 가로 막는다. 검은 빛 도는 거칠고 범상치 않은 금강석 같은 엄청난 암석의 산세를 맞닥뜨리는 순간 세상의 철옹성인들 저만하겠는가 싶은 생각이 스친다.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通天門 인양 높이 솟구친 거대한 암봉과 암봉 사이로 들어설 땐 그 경이로움은 숨이 막힐 듯 경탄을 자아낸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이래서 조선 최고의 인문리지의 효시로 평가받는 <택리지>에서도 골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가 절경이라고 극찬했던 것일까. 이 주왕산은 조선시대엔 조선팔경에 꼽힐 만큼 그 유명세를 팔도에 떨쳤던 것이다.

 

 

 


*주왕산 제1폭포(용추폭포),  맑은 계류에 몸을 맡긴 여인들의 하얀 알몸(裸身)이 열일곱 청춘의 육감을 뜨겁게 흔들었던, 그 여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윽고 용추폭포(1폭포) 

 

그 옛날 푸른 청춘의 가슴을 쿵!! 뛰게 했던 그 꽃잎 같은 연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아니, 보는 이의 삭신을 녹일 듯 하얀 알몸으로 육감을 흔들며 환각처럼 나타나 혼을 뽑던 그 백옥 같던 여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황망함 속에 꽃가루 같은 웃음 뿌리며 그 작은 두 손으로 온 몸을 가리던 그 여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긴 세월,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 정수리에 하얀 서리 인 채, 먼 새벽길 마다 않고 내달려 왔건만 둘러보아도 그 꽃잎 간데없고 흐르는 계류엔 우수의 추색秋色만 완연하나니. 이제 사람은 바람처럼 가고, 오늘도 그 풍경만 남아 아련한 흑백 추억들을 싣은 계류만 은빛 뒤척이는 강물처럼 가물가물 흘러간다. 흐르고 또 흐르는 물줄기를 잡을 수 없듯 나는 어제의 나와 작별을 하고 오늘의 나와 또 다시 작별을 고해야 하는,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 한 점 눈송이처럼,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져야 하는 우리네 인생, 이것이 우리네 삶이고 인생 길인가. 이처럼 이 삶이란 게 때론 저물녘 텅 빈 들판처럼 허망한 듯 허허로운 것인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허름한 행려의 객은 그렇게 한참을 흐르는 추계秋溪에 눈을 떨궜다. 계류처럼 흘러가는 이 삶과 아련한 회억回憶 속에서.

 

이곳 제1폭포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폭포 옆 계곡 길 따라 무성하던 수림은 베어지고 현대식 데크가 설치된 것이 그러하였으며, 폭포수가 떨어져 돌아나가던 계곡도 잔석들로 가득 메꾸어져 있어 길의 높이도 두세 자 가량 낮아진 듯했다. 그곳을 터벅터벅 지나 절구통 속으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제2폭포를 돌아, 물줄기가 담수를 이루며 3단으로 미끄러지 듯 흘러내리는 제3폭포인 용연폭포에 눈길을 거둔다.

 

 

 

 

 

*2단으로 떨어지는 절구폭포(제2폭포).





*3단으로 미끄러지 듯 흘러내리는 제3폭포(용현폭포).





*후리메기 입구, 많은 산객들이 주봉 길 산행과 대전사 환원을 놓고 갈등하는 모습. 



이윽고 산행 들머리 격인 후리메기 입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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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 걸음은 이곳 후리메기 입구에서 후리메기 삼거리를 거쳐 주봉主峯(721m)에 든 뒤, 청련등을 거쳐 대전사로 회귀하는 코스다. 이곳의 후리메기란 주왕周王(김주원)의 군사가 훈련하였던 장소가 훈련목으로 불리다 후리메기로 바뀐 것이라 한다. 시간이 허락되면 장군봉을 거쳐 금은광삼거리와 내원마을 터를 둘러본 뒤, 가메봉 거쳐 칼등고개 넘어 주봉을 돌아 대전사로 회귀하련만, 집으로 돌아갈 먼 노정路程이 하마나 기다리고 있음에 후자의 산길은 아쉬움으로 남겨 둬야겠다. 그래야 후일 다시 걸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주봉으로 드는 계곡 길은 추계의 음영이 짙고 고즈넉했다.


  

후리메기 능선 계곡 길엔 만추의 음영이 짙다. 추색으로 물든 길을 아늑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홀연이 걷고 또 걷는다.


가을 바람이 노랗고 붉은 비단옷 한 겹 두 겹 벗어버린 이파리들을 흔든다. 고즈넉이 저무는 아름다운 추계의 풍경이 내 딛는 발끝마다 펼쳐진다. 이 주왕산의 옛 이름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졌다 해서 석병산石竝山이라 불리다가 옛 선인들이 난을 피해 숨어들어 은거한 산이라 해서 대둔산大屯山이라 불렸으며, 급수대의 전설이 서린 김주원(주왕周王)이 이곳에서 대궐을 짓고 살았다 해서 주방산 이라는 이름을 거치며 주왕산으로 자리메김 되었다. 이 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나라 안의 3대 기악(奇嶽)으로 꼽힐 만큼 그 산세가 사뭇 범상치 않다. 설악과 월출의 수려하고 장엄한 산세가 빼어난 외장 미美에 있다면, 이 주왕산은 속으로 빚은 칠보의 보석을 줄줄이 품은 빼어난 내면 미美에 있지 않을까 싶다. 까마득한 수직 석벽의 웅장한 바위 기운마다 수많은 물굽이를 이루며. 석벽의 소나무를 휘돌아나가는 산수는 그윽한 수묵화의 진경을 펼친다.

 

 

 

 

*좌측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 우측부터 급수대, 병풍바위, 연화봉._ 파노라마 영상._ 



이윽고 후리메기 삼거리를 거쳐 9부 능선에 선다. 

 

이쯤해서 배낭을 내리고 함 숨 돌린다. 노란 귤을 한 쪽 두 쪽 떼서 입에 넣는다. 톡톡 터지는 맛이 천상의 맛이다. 눈 들어 높은 천공 아래 펼쳐지는 추색의 세상은 초연하기 이럴 데 없다. 저 초연한 침묵沈默. 저 거대한 묵음默音의 세계. 이 어지럽고 뒤틀린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상이 허물어진들 어찌 눈 하나 꿈적하겠는가. 행려의 객은 잠시 숨을 죽인다. 그때 한 사내의 목소리와 여자들 목소리가 공명을 탄 듯 귀에 꽂힌다. 사내의 말투가 늘어지는 것을 보니 충청도 이였다. “이 산은 산도 아니여~. 그냥 둘레길여~. 설악 대청봉이나 지리산 천왕봉 쯤 돼야 산이여~.” “그리고 말이여~ 일본 후지산은 갈 필요 없디야~. 그곳은 폴 한 포기 없디야~. 차라리 거시기 히말라야를 가야 혀~” 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사람 잡을 소리를 너끈히 해대는 그 사내가 궁금했다. 고개를 쓸몃 돌리니 립스틱 짙게 바른 중년 여인 서너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아니, 대체 한 명도 아니고 서너명씩을. 세상을 허세와 위선으로 포장하여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겉 멋도 아닌 가당찮게 거들먹대는  그 사내의 허세虛勢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9부 능선으로 드는 계단, 산길 정비가 가지런하다.


 

 


*주욍산 주봉周峰 정상석.



이곳 9부 능선부터 산정의 주봉周峰까지는 육산 길이었다.

 

이윽고 주봉(721m)에 선다. 숱한 사람들이 정상석 주위를 줄지어 에워싸고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카메라를 들이밀 기회조차 오지 않아 산정을 둘러보니 푸른 솔바람 담박하게 묻어온다. 시나브로 산정의 나무들은 잎을 다 떨궜다. 저마다 한 시절 화려하고 고단했던 한 생을 접은 저 나무들도 다시 꽃 피울 내세來世를 위해 지금쯤 뿌리에 온 힘을 집중하며 삭풍 몰아칠 춥고 긴 겨울의 적막과 고독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주봉을 뒤로 하고 하산할 때 청송靑松이 도열하여 하얀 손을 흔든다. 또 다시 걸음 하라는 듯.

 

 



*하산길 제1전망대에서 본, 대전사 용마루 뒤 기암 모습.


이윽고 대전사로 회귀한다.


경내는 쿵짝쿵짝거리는 산사음악회가 열려 태산이 흔들렸다. 그 맨 앞줄엔 온 몸에 기름기가 흐르는 중들이 차지해 있었다. 구원의 촛불이 소리 없이 타오르고 고요한 향불이 몸을 사르는 이곳에 구태여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씁쓸한 생각이 스친다. 쿵쿵거리는 그 소리는 속까지 울렁거리게 한다. 그곳을 빠져나와 달기약수터로 다시 차를 몰았다. 내 유년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왔던 낯은 곳, 엄마의 그 포근한 음성이 한평생 날 떠나지 않고 봄볕처럼 머무는 곳이다. 2차선 굽이 길을 돌고 돌아가니 상탕 중탕 하탕 신탕 천탕 등등 줄줄이 닭백숙 간판이 내걸려 있고, 대형버스외 승용차와 웃긋불긋한 간판들로 그곳은 어지러웠다. 그 옛날 그 장소를 더듬었으나 천지가 탈바꿈되어 그 가늠이 불가능하였으나, 아마도 현 중탕이 위치한 그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어림되었다 

 

소멸하는 시간 속에 하얗게 빛바랜 세월은 남은 자의 몫인가.


그 남은 자의 몫은 늘 이토록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가. 은빛 뒤척이는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 빛바랜 추억과 인연들이 그리워 찾아온 멀고 깊은 길, 이제 그 산천의 풍광과 작별을 고하고 돌아설 시간이다. 사시사철 푸른 솔바람 불고 숲 짙고, 골 깊어, 물 맑아, 달빛 밝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땅을 뒤로 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허연 백발 휘날리는 희수稀壽에 이 산길을 내 다시 걸음 할 수 있을까. 그땐 어떤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으며 행복한 여정을 이어갈까. 어쩌면 이 역시 내 과욕過慾의 꿈일까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떠나는 길에 만추의 기우는 가을 잔광殘光이 눈 시리게 부서진다.



청송 주왕산 산길에서._ 2018.11월._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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