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처녀작: 수선화. 수해 전 서산 개심사 뒤뜰에서 만났던 꽃으로, 그때 븜볕 가득 머금은 소담한 자태가 참 청초했던 꽃을 떠올리며 그린다.

   


오늘도 나는 서툰 붓질로 그림을 그린다.

 

이슥이 깊은 겨울밤, 붓질을 잠시 멈추고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창가로 다가가 아이보리 톤의 블라인드를 젖힌다. 어둠이 물든 남한산성 산자락에 희끗한 눈발이 날리고, 까맣 산자락에 쌓인 잔설이 시리도록 애잔하게 와 닿는다. 저 흰 잔설은 내 마음을 늘 애잔하고, 세상을 애잔하게 만든다어둠 속으로 창문을 민다. 고샅을 훑어오는 차고 시린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날아드는 흰 눈송이들이 손등에 살포시 앉는다. 그 눈송이들은 금방 차갑게 울먹이더니 금세 울어버린다. 낙엽이 흩날리는 스산한 가을이 자신에게 외로운 계절이라면, 오늘처럼 천지가 검은 무덤처럼 웅크린 겨울밤은 자신에게 더 고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 헤벨(Fredrich Hebbel)산다는 것은 깊은 고독 속에 있다고 했던가. 이슥한 겨울밤은 검은 산처럼 적막하고 고독하다. 저 검은 허공 속으로 날아드는 눈송이들도 적막하고 고독해서 글썽글썽 울먹이다 못해 금세 울어 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 사랑초에 밑그림 스케치를 하고 덧칠를 입힌다. 수채화는 붓의 흔적이 생명일진데, 아직 서툰 내겐 그 붓질이 난하기만 하다.

  


얼마 전 나는 회사 근처에 작업실 겸 숙소를 하나를 얻었다.

 

그간 30여 년간 살어온 아파트 살이에 염증이 돌고 신물이 나기 시작하면서이 도시란 공간에 가끔 환멸이 찾아 들었다. 그런 날이면 사는 일까지 지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아파트가 현대인들의 삶의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주거 공간이라고 서슴없이 예찬하더라만, 내게 있어 그 예찬론자의 예찬론은 예찬일 뿐이어서 내 한쪽 모퉁이는 늘 그늘이 진듯 영 마뜩치 않았다. 따라서 비좁고 탁한 도시는 튀고 지르는 소음과 삶의 온갖 찌꺼기들이 누런 가채침과 뒤섞여 나오는 하수구와 다를 바 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론 그 하수구가 역류하는 회색빛 우울한 도시는 폐를 앓는 환자처럼 쿨럭인다. 그 속에서 하늘을 찌를 듯 어지럽게 치솟은 철근콘크리트는 그 얼마나 차갑고 비정한가. 그 시멘트 통 속에서 문을 걸고 천편일률적으로 허공에 몸을 누이고, 안락한 산송장처럼 살아가는 이 도시의 그 어디에도 내 마음 한 자락 편히 내려놓을 만한 구석이 내겐 없는 듯했다. 그래서 인지 이태 전 난생 처음 스위스를 갔을 때, 그 푸른 초지에 도경圖景처럼 펼쳐지던 그들 삶의 풍광들은 꿈만 같았다. 밤하늘 별들이 꽃잎처럼 지상으로 떨어지고, 야생의 꽃들을 앞마당까지 불러들이는 그곳에선 라일락 향기가 비등하였고, 그 맑은 옥빛 호수마다 눈동자와 머리색이 다른 사람들로 넘쳐나던 노천카페의 여유로운 삶의 풍광에서 지상의 파라다이스를 보는 듯했다집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여유로운 공존의 숨을 쉬는 정서 어린 삶의 미경들은 메마른 도시에 정신 없이 살아 온 나를 단박에 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동경하면 할 수록 그들처럼 살 수 없는 나로서는 스스로 옥죄어 오는 갑갑한 의식의 터널을 벗어나고파, 주말이면 카메라를 메고 한 점 구름이 되고, 때론 한줄기 바람이 되어, 이 산 저 산 계곡을 떠돌며 그 가슴을 씻어 내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탈逸脫하여 내가 살고 싶었던 6,70년대 흑백시절로 돌아가 산다.


세월의 흔적을 탁본拓本한 것처럼 아날로그로 시대로 돌아가 살고 있는 것이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면 공간 가득한 베인 내 체취가 먼저 느껴진다. 일상에서 화장품이나 샴퓨류 등의 화학제품을 일체 쓰지 않는 내 체취에 물감의 안료 내음이 뒤섞인 나직한 실내풍경은 토속적인 정물화 같다. 이렇듯 주 중의 퇴근길이면 그리운 이가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셀레는 그런 삶이 아닌 조촐하게 정제된 풍경이 홀연히 나를 기다린다. 방 한 켠에 자리한 이젤이며 그 위에 펼쳐진 하얀 수채화지엔 물감이 덧칠되는 그림과 가지런히 숨 쉬는 팔레트며 붓과 물통과 미술도구들이 그렇다. 그리고 주파수를 손으로 돌려 맞추는 FM 라디오가 있으며, 차 끓이는 도구와 대여섯 권의 책이 차분히 놓여 있다. 외투를 걸고 퍼스널 체어에 몸을 기대앉으면 그 공간은 참 고즈넉하여, 잠시 인생마저 내려놓은 듯한 아늑함이 있다. 요즘 그 공간 속에서 그리고 싶었던 어설픈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혼자 차를 끓여 마시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는다. 그러다 보면 밤은 이슥히 깊어간다. 어찌 보면 지금의 이 공간은 하루가 멀다 하고 화려하게 명멸하는 시류時流의 흐름에서 유폐된 공간일지 모르나, 아파트 살이에 염증이 난 나로서는 조촐하고 가벼운 이런 삶의 방식이 이외로 괜찮게 느껴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의 이 공간이 회색빛 도회지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일 터펄펄 뛰는 푸른 생명들로 일렁이는 동해의 바닷가나, 집채 만한 둥근달이 떠오르는 호숫가였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풍광명미한 공간은 지상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가는 길목의 유토피아 세상으로 그리고 있음이다


곰곰히 뒤돌아 보면, 유일하게 선택 받은 몸으로 이 세상에 홀연히 와서, "생生"이란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굽이지는 삶의 길목마다 그 얼마나 뜨거운 몸부림을 쳤던가. 이제 머지 않은 어느 날 그 빚이 청산되면 뜨거웠던 육신은 싸늘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터. 이 피할 수 없는 운명運命 앞에 나는 이제 좀더 초연해 지고 싶고, 여유로워 지고 싶은 것이다.   


 

 

▶ 아네모네 꽃이다. 빼어난 용모의 아도니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꽃이다. 아도니스가 죽을 때 흘린 피에서 아네모네가 피었고, 아프로디테의 흘린 눈물에서 장미꽃이 피었다는 전설의 꽃.


오늘도 조촐한 이 공간엔 한 자루의 촛불이 타오른다.

 

이슥한 밤이면, 가끔 나는 그간 머슴살이 하듯 청춘을 다 바쳐 살아 온 내 삶의 지난 궤적들이 켜켜이 살아난다. 돌아 보건데, 나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법인 기업체의 자금資金 줄을 다루며 살아 왔다. 그것이 한평생 내 업()이었다. 자금이란 생명줄하나 목숨처럼 거머쥐고, 그늘에 말린 가죽처럼 질기게 살아 온 업이었다. 뿌리 하나 없는 그 척박한 땅에 목마른 생명의 뿌리를 뻗으며 기라성 같았던 그 숱한 선배들 하나 둘 떠나는 뒷모습 배웅하면서 흔들리던 외줄에 위태롭게 매달려 왔다. 그러던 불혹의 어느 날 회사의 경영 상태가 백척간두에 내몰려 가파른 숨을 뽑으며 사경을 헤맬 때, 늦은 밤 텅 빈 사무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아 막막히 있으니, 목이 메이면서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 나이 언 이순耳順. 주어진 내 업에 한 목숨 걸다시피 달려온 이 길도 어느덧 저만치 종착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내 스물여덟에 한 떨기 꽃 같았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바람 부나 비가 오나 눈발이 날리거나 두 자식 건사하며 별 모자람 없는 삶의 텃밭이 되었고, 때론 그 꽃밭이 되었던 참으로 고마운 터전이었다. 한세상 지상에 부려진 내 삶의 소임을 무던히 할 수 있게 자리를 펴준 이만한 생의 터전이 그 어디메 있으리오. 하여, 때가 되어 한 잎 낙엽처럼 진다한들, 그 무엇이 아쉬움이겠으며, 회환과회오가 들겠는가생명체는 죽음을 위해 늙어 가고, 강물은 제 몸 누일 곳을 찾아 바다로 흘러간다 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머물지 않고 사라지는데 그 아름다움이 있을 터.



 

▶ 언젠가 북한산의 재천의식을 접했을 때, 두 아가씨 한복의 자태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 그림으로 옮긴다. 나 혼자 익혀 가는 붓질이어서 어떻게 붓의 흔적을 남겨야 할지 서툴기만 한 내 자신을 본다.     



나는 내 업()상 한평생 돈()을 다루며 살아왔다.

 

무릇 그 돈()은 칼날의 양면성을 품고 있었다. 그 중 한 측면은 인간을 속물로 만드는 본질적 속성 그것 이었다. 그 속성엔 탐욕과 이기와 집착이 응축되어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 원초성이 녹아 있는 듯했다. 그런 돈을 다루면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일들은 거의 다 체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돈 앞에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비참해 지고, 얼마나 처참해 질 수 있으며, 돈이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그 파란란만장波瀾萬丈한 속된 풍경들을 보아 왔던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세상 쓸쓸한 풍경들이었다. 돈 앞에 인간이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숱한 비애悲哀들을 목도하면서, 어쩌면 광발 내고 윤기 나게 사는 것이 진흙탕 속에 사는 일일지도 모르는 일 같았고, 인간을 죽음의 수렁으로 내모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무릇 돈 좀 있다고 스스로 광발을 낼 땐 최소한의 돈의 철학삶의 철학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의 안목과 지혜가 필요다는 것을 무시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의 덕목이요, 삶의 진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노래가 되고 그 꽃이 되고, 더 없는 온기와 빛깔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 도시의 빠쁜 일상이 여유롭기를 바라며, 피사체의 구도물을 생략하여 그려 본다.


그간 적지 않은 돈을 만지고 다루어 오면서 내가 돈에 대하여 한 가지 면징히 해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돈과 늘 여백을 두는 것"이었다. 그 여백을 두기 전까지 나도 한 때는 청춘의 푸른 혈기에 녹아 돈에 덤벼든 적이 있었다. 분별없이 덤볐던 그 때마다 뼈가 삭아내리는 후회와 회환이 거듭되면서 스스로 자각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나무가 한곳에서 평생을 보내지만, 시시각각 살아 움직이며 생명률의 균형과 조화의 미를 목리문木理紋으로 아로새겨 놓듯, 한 걸음 물러서서 여백을 두고 한 줄 두 줄 목리문을 아로새기면서 돈에 대한 평장심平章心을 잃지 않으려 나는 무던히 애썼다.자각의 신념 하나가 30여년의 긴 세월 나를 지탱해준 큰 버팀목이었고, 큰 산이었다.” 라고, 한평생 내 업業의 종착지 이르러 술회하는 내 담백한 고백을 여기 글로 남긴다.

 

언젠가 이 진솔한 고백을 진국 같은 내 아들, 딸에게 건네리라.

 

가끔 나는 주 중의 밤이 이슥하면 창가로 다가가 적막한 어둠을 바라본다. 그 적막감은 검은 산처럼 다가올 때도 있고, 그 검은 산은 깊은 고독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은 웬만큼 살아버린 내 삶의 연륜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언제 이렇게 적막한 어둠속에서 한 자루의 촛불을 켜고 내 자신을 밝혀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그런 나는 오늘도 수채화지에 어설픈 스케치를 한다. 그러다가 어둠 짙게 물들면 창가로 다가간다. 창 밖엔 내 청춘의 추억과 회오를 싣은 기차가 희미한 눈발 속으로 멀어진다. 뒤뚱거리는 그 기차가 눈발 속으로 사라지면, 나는 다시 남은 삶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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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무술년 한 해를 감사하게 보내며, 2018.12.26일.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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