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시 간 의 흔 적 들 ~

아들과 함께한, 한라산 겨울 산행기

작성일 작성자 북을


*한라산 백록담 모습 (2007.02월)._ 이후 두 번 더 종주를 시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강풍 경보에 발이 묶였다. 


겨울산은 자신의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비워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가식과 허울을 벗어버린 채 혹독한 눈보라 속,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뼈대를 오롯이 세우고 있다. 텅 빈 것 같은 겨울 산, 살을 에는 그 깊은 침묵 속에는 길고 모진 세월을 삼키는, 인고忍苦가 있어, 인간이 본 받아야 할 삶의 성스러운 위대한 본성을 품고 있다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부디 저 겨울 산의 인내忍耐와 서기瑞氣를 닮아야 하느니라.” 국가 공직자의 첫발을 딛는 아들에게._

 

겨울 한라산을 향하는 비행기는 하얀 설원의 환각 같은 꿈을 안고 굉음을 뿌리며 고도를 높인다.




*아들 녀석*

 

내 옆 자리엔 사내 녀석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언제 봐도 늠름하고 듬직하다. “아들 녀석이다.” 평소 아내는 아들이라면 끔뻑 죽는다.” 내 어머님도 그랬듯이. 녀석이 한 달 전부터 국가 공직자(농진청 6)로서 첫 명을 받고, 그 출근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숨 막히는 취업이란 암울한 현실의 절벽 앞에서 밤낮 마음고생이 그 얼마나 깊었으랴. 이제 그 무겁고 갑갑한 짐을 훌훌 벗어버린 생의 시간들 또한 빛나고 찬란할 터. 그 현요한 시간의 틈을 비집어 내가 한라산 겨울 등반을 제안했다. 녀석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느 날 녀석은 홀로 지리산 둘레길 295km의 장거리 도보 길을 도전한데 이어, 설악산을 홀연히 넘더니, 이태 전, 한여름 어느 날엔 홀연 단신 제주도로 날아가 한라산을 종주한 뒤, 한 달 간 섬의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그 여정을 이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내 음영이 짙게 서린 젊은 나를 보는 듯했다. 기내에서 녀석이 말을 건넨다. “아버지랑 23일 간의 산행여정은 처음이에요.”한다. 녀석의 표정이 해사했다. 내 자식이래서가 아니라 녀석은 언제 봐도 미간眉間이 맑고 밝다. 고백하거니와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아내 역시 그랬지만) 두 자녀에게 매 한 번 든 적 없었으며.”공부하라. 말한 적 없었건만,” 참으로 장한 결실을 맺었다. 그 얼마나 대견하고 보람되고 기쁘랴. 하여, 이번 산행은 바다 건너 하얀 설원에 부자지간 추억의 발자국을 오롯이 새겨 두자는 의미와, 이지러진 추상화와도 같은 이 세상이 녀석의 장래를 어떻게 덮칠지라도, 그 삶의 굽이길 마다에 저 겨울 산을 닮아야 한다.” 라는, 내 요원한 마음이 담겨 있으리라. 아내에게 이번 동행을 권유하였으나 8,9시간을 견뎌야 하는 겨울 산길의 중압감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단념 어린 아쉬움을 표한다.



 

*제주공항 활주로와 겨울 바다의 풍광*

 

김포공항을 이륙한 KAL기는 제주 상공에서 큰 원을 그리며 착륙 채비를 한다.

 

푸른 생명들로 넘실대는 바다는 하얀 포말을 꿈의 나래처럼 실어와 나르고, 해는 싸늘하게 식어 넘실거리는 남쪽 바다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항대합실은 엄청난 행려의 객들로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거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저 숱한 사람들은 이 제주도까지 날아와서 삶에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떠날까 싶었다. 대합실을 나오자 늘씬한 야자나무가 어느 남국에라도 온 듯 이국적 정취로 반긴다. 날씨는 음산하였다. 사나운 바람은 환란처럼 일어 야자나무가 강풍을 타며 휘청거렸고 그 이파리들은 까무러칠 듯 속살을 보이며 뒤집어진다. 문득 이태 전처럼, 강풍 경보로 백록담 드는 길이 통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친다. 택시를 이용하여 녀석이 추천한 식당에서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밥상머리에 앉아, 모처럼 마음 놓고 먹는다. 일상에선 늘 음식을 자제하는 편인 나로서는 그날은 예외였다. 저녁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정리한 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보니 차가운 불빛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제주의 밤이 깊어간다

 

 


*성판악 휴게소의 이른 아침 풍경, 한라산 산문 초입 지*


이른 새벽, 바깥세상은 아직 미명未明이었다.

 

콜택시를 타고 한라산 산문인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한다. 그 시각이 아침 6시 30분. 그곳은 검은 속살을 드러낸 채 사나운 바람소리만  천지를 할퀴고 있었다. 열두 해 전, 이곳에 첫 걸음 하였을 때, 그때의 적설량은 무릎을 삼켰고, 진달래 대피소에선 허리를 삼켰더랬다. 그래서 인가. 하얀 설원이 가없이 펼쳐지고 있으리란 내 상상의 영역은 여지없이 비켜간다. 그곳 휴게소 식당에 발을 들이자 전국 도처에서 몰려든 산행 인파들로 북새통이었다. 아침 식사를 주문한 녀석이 잠시 문 밖에 나갔다 오더니 아버지, 강풍경보가 발령되어 진달래 대피소까지만 산행이 가능하다는 방송이에요.” 한다. 문득 어제 공항에서 스쳤던 생각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태 전엔 발이 묶여 못내 아쉬웠으나, 오늘 그 아쉬움은 쉬 잦아든다. 아마도 듬직한 아들 녀석과 함께하기 때문일 터.

 



*푸른 조릿대와 굴거리나무(검은 점처럼 찍혀 있는 나무잎새가 굴거리나무임)*


어슴푸레한 산문에 든다.

 

그 시각이 7시를 지나고 있었다. 산문 초입의 돌하르방과 눈이 마주치자 해탈승처럼 무욕하게 웃는다. 모르긴 몰라도 해탈解脫의 경지란 것이 바로 저 천의무봉 天衣無縫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도 빙그레 웃는다. 산문에 들자, 푸른 힘과 패기가 철철 넘치는 녀석이 이순耳順인 나를 부축이라도 할 듯, 바싹 뒤따른다. 산길 좌우론 푸른 조릿대의 세상이 펼쳐지고 굴거리나무가 검푸른 잎을 단 채 우산대처럼 오므려 바람결에 술렁인다. 은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간 듯 경박한 감각과 이기의 집착으로 들끓는 세상의 낯빛과는 또 다른 거대한 묵음의 덩어리로 숨 쉬고 있다. 강풍 경보가 발령된 탓에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겨울바람 소리엔 거대한 해조음海潮音이 쉼 없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제주도를 삼다三多라 했듯이 그 본체 중의 하나는 바로 저 바람일 터. 태평양의 광활한 푸른 해수를 쉼 없이 훑어오는 싱싱한 미역줄기 같은 바람 속에 제주의 말과 그 표정과 그 감정과 그들의 삶과 생이 다 함께 녹아 있으리라. 바람(). 그것은 허. 零. 로 이어지는 무상無常의 세계요. 그 어떤 것에도 속박과 구속이 없는 자유로움일 터. 어쩌면 그 바람은 생명을 넘어선 혼의 흔적일 수도, 사멸의 흔적일 수도 있으리라. 이렇듯 저 바람은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간 개연성 밖에 머무는 또 다른 미궁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1,000m 고도의 삼나무(cypress) 숲 군락지다.

 

쭉쭉 뻗은 아름드리 삼나무가 하늘을 메운다.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성판악과 이 일대를 포함한 속밭대피소까지는 조랑말을 사육하던 목초지였다고 한다. 산길엔 하얀 싸락눈이 제법 깔려 있다. 살포시 깔린 눈 위에 겹눈이 내려 산길은 꽝꽝 얼어 있다. 길이 미끄러워 온몸의 신경이 발끝에 집중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넘어 가라는.” 속담처럼 겨울 산길이 우리 삶에 던지는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아이젠을 착용하니 발걸음마다 한결 안정감이 들어 편하다. 이곳부터 아들 녀석이 나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저만치 앞서 가다가 뒤돌아보면서, 뒤쳐진 나를 보며 기다렸다가, 가까워지면, 다시 앞지르기를 반복한다. 그 연속된 반복이 오늘의 회귀점인 진달래 대피소까지 이어진다. 내 산 걸음이 뒷굽에 연기가 나도록 우직하게 걷는 우보牛步의 걸음이라면, 녀석은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는 역마의 힘과 패기의 마주馬走의 걸음이 아닐는지……‘ 

 

 


이윽고 속밭대피소다.

 

대피소 안은 산골의 냉기를 피한 산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이곳 속밭이란 내전內田이라는 뜻이다. 천 미터가 넘는 깊은 산속에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곳에 태우리(목동의 제주 방언)가 조랑말을 사육하며 살았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 보온병의 따뜻한 물로 목만 축이고 길을 이어간다. 속밭대피소 이후의 산길은 하얀 설원의 세상이 정백淨白하게 펼쳐진다. 나뭇가지마다 눈부신 상고대와 하얀 눈꽃이 개화하여 보는 이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겨울산은 언제 봐도 순결하고 순백하며 넉넉한 품새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산이 지닌 초연한 품성과 넉넉함은 인간이 본받고 의지할 최고의 성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

 



문득 저 순백하고 넉넉한 품성의 산을 닮은 제주의 한 여인이 떠오른다.


조선시대 제주가 낳은 걸출한 여성 거상이자, 조선 최고의 여성 사업가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의인義人 김만덕金萬德(1739~1812)이다. 내가 그녀에게 놀라고 감동 받은 것은 조실부모한 홀몸으로 그 어둡고 깜깜한 시대에 엄청난 부를 쌓은 점도 있지만, 그 태산 같은 부를 허기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제주의 전 도민을 위하여 모두 쓰고 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초선의원 손혜원이란 여자 하나에 의해 촉발된 사태가 세상을 어지럽게 뒤흔든다. 이 여자는 권력을 등에 업은 매우 독살스러운 여자다. 그리곤 돈이 되는 일엔 발톱을 드러내며 세속의 명리를 좇는 교활한 수법의 모리배에 다름 아니다. 그 추잡한 짓들이 수면 위로 줄줄이 떠오르자, 사사건건 세상을 맞받아치는 기고만장한 짓을 서슴치 않는 삿된 여자다. 인간이 죽고 모럴이 죽은 여자가 돌연 문제의 부동산(적산가옥)들을 국가에 기부하겠노라고대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국가에 기부할 것을 대출까지 받아서 취득했단 말인가. 참으로 요망한 짓이로다. 이 사태는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들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지르는 일일지니. 자고로 의인 김만덕은 불세출의 숭고한 여인이었다. 그 어진 김만덕이 제야의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처럼 감동을 안고 타오른다

 

 


저만치 진달래 대피소(1,500m)가 희뿌연 모습을 드러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처럼 온 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환상의 세상이다. 세찬 눈발이 흩날릴 때마다 하얀 눈발은 환각처럼 날리며, 설백雪白의 세상이 장결하게 펼쳐진다. 겨울 그리고 눈부신 하얀 눈의 세상. 세상의 비루함과 추함과 독선과 이기와 짐착과 탐욕이 없는, 참으로 소려昭麗한 세상이다. 이 매혹적인 하얀 설국의 세상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진달래 대피소 안은 검은 콩나물시루처럼 발 딛을 틈이 없다. 그곳엔 뜨끈한 컵라면 냄새가 언속의 미각을 유혹한다. 대피소 처마 끝에 서서 한라산 정상부인 화구벽의 동릉을 올려보니 백록담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거대한 신들의 의식을 치르는 듯 구름 속에 초연히 잠겨 있다. 정상가는 길은 기상 악화로 탐방 할 수 없습니다.”란 노란 표지판에 붉고 검은 글씨체가 연둣빛 형광 플라스틱 사슬에 걸려 길을 가로막고 있다. 예부터 한라산 백록담에는 하얀 사슴(白鹿)이 살았다 한다. 그 흰 사슴을 신선이 타고 유희하였다는 설화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이곳 진딜래대피소에서 준비해 온 따뜻한 물과 귤과 사과와 곶감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하산 길에 위치한 사라오름(명승제 83)으로 향한다. 한라산을 중주한 녀석도 사라오름은 처음이라 한다.

 



*사라오름의 사라호 모습. 가뭄으로 물이 말라 속살이 드러나 있다.*


싸락눈발이 날리는 하산 길은 적연寂然하다.

 

그 적연한 길을 뚫고 숱한 산객들이 줄 지어 오른다. 이윽고 사라오름(1,324m)에 이른다. 사라호는 하얀 눈꽃들이 만개한 설화의 세상이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사라호의 속살을 훑어온다. 전망대에 서서 백록담을 올려보니 그 초연한 신들의 의식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차가운 강풍에 노출된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고 안면은 언 듯, 말을 하되,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보온병의 뜨끈한 물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 언속이 스르르 녹는다. 이것 또한 겨울 산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눈길 가는 곳마다 눈부신 세상이다. 나뭇가지마다 설녹雪鹿의 뿔처럼 하얀 설화가 매달인 겨울나무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세상의 어느 무대가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하지만 저 나무의 겨울나기는 그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다. 자고로 겨울나무의 인내는 모질다. 모든 생명은 모진 인내와 역경 속에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그 생명력은 빛을 발하며 인간을 감동시키고, 감동은 인간을 탄복시킨다. 하지만 나처럼 속이 비좁고 매사에 모질지 못한 사람이 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을 그런대로 잘 버티어 내는 것을 보면, 그 모든 게 인복人福의 덕이 아닐까 싶다. 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감사함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게 내 삶의 또 다른 결 고운 일이 아닐까 싶다.

 



사라오름 전망대를 돌아 다시 성판악으로 향한다.

 

그 시각이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녀석과 함께 나란히 걷는다. 바람도 잠시 쉬어 가는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 희원希願의 속마음을 녀석에게 전한다. “아들삶은 저 겨울 산을 닮아야 한다.”라고, 운을 뗐다. 녀석은 ~.”라고, 숙연한 단음으로 대답한다. 후일 내 떠난 어느 날, 녀석 또한 인생의 석양을 건네는 나이 때 쯤, 오늘처럼 자신의 분신인 아들딸과 함께 이 산길 걸으며, 이 길은 네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길이야! 라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한 번쯤 돌아보고, 살아갈 날들을 바라보는, 그런 생의 시간을 빗어 낸다면, 이 역시 오늘 이 산길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저만치 앞서가는 녀석의 늠름한 뒷모습에 푸른빛의 꿈들이 별처럼 빛난다. 아들! 사랑한다.


 

 

아들과 함께한 겨울 한라산 산행 길에서, 2019.1월._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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