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시 간 의 흔 적 들 ~

팔공산 산행길, 동기들과 함께1

작성일 작성자 북을


*산행코스 : 수태골매표소-수태골폭포-암벽훈련장-삼거리-석조약사여래입상-동봉-염불봉-병풍바위-신녕재-동화사.(약10km)

수태골 산행 들머리에서 기념 촬영.

좌로부터 배광수, 강진호, 장용주, 임옥자, 전태호, 하기룡, 정동길, 지경복, 김정근.  


비바람에 꽃이 시들 듯 세상 만물에 청춘이 지나간 흔적이란 비슷하기 마련이다.

이순의 강언저리에 어리는 고우들의 모습들은 다들 한세월 온갖 풍파와 삭풍에 시달리면서 견뎌 온 초로初老의 모습들이다.

잘 익은 머루향기 같은 옛정 그윽한 벗을 만나는 일은 삶의 형상이 피워내는 가장 즐겁고 정겨운 일 중의 하나일 터.

그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이 삶은 때론 위로와 위안이 되고 때론 삶의 빛을 찾는다.





산길에 드는 기룡이와 동길의 뒤태. 왼쪽 기룡이는 중량감이 거득하고, 오른쪽 동길이는 날씬하여 가볍다.


수태골의 봄은 삼동三冬의 언 땅을 지진처럼 흔들어 연둣빛 생명력을 천지에 내뿜고 있었다.

나는 불혹의 나이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봐도, 산에 드는 일은 내 삶의 고뇌와 사념들을 차분히 삭혀내는 일이기도 했다.

내 속에서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주체 못할 탐욕의 불덩어리와 이기심을 삭히고 식히는 빙산氷山의 역할을 하면서,

삶의 숱한 고뇌의 하중과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매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늘도 이 산도 그러 하리라.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속리의 입산入山은 일종의 입신入神과 신선神仙에 드는 행위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동길이와 기룡의 풋풋한  발걸음, 그 뒤쪽으로 태호와 경복이 진호와 옥자가 앵글에 잡힌다.


카메라를 셔터를 누르는데, 기룡이의 마늘 농사에 관한 이야기가 내 귀에 감겼다.

"마늘 농사라 카는 기 아인나~. 예측이 안 되는 기 문제인 기라~." 

그의 말투는 전형적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다.

그 말 속에는 고향 신녕의 농가 주소득원이 마늘 농사인데, 작황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민감한 가격의 변동성 때문에

그 삶의 질까지도 좌우되는 현실적 이재財 문제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처럼 고향 친구들의 투박한 사투리를 들을 때면, 어릴 때 먹었던 구수한 슝늉의 깊은 맛을 느낀다.

그간 서울살이 40여 년이 훌쩍 넘다 보니, 가끔 나도 모르게 내 말투가 많이 변했구나 하는 느낌이 스스로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고향의 그 구수하던 숭융 맛에 길들어 지고, 그 맛이 내 핏줄 속에 녹아든 터여서,

고향의 투박한 말투는 언제 들어도 정이 가고 구수하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





손을 들어 오월의 싱그러운 산길의 즐거움을 발산하는 사내가 경복이와 태호다.


울산에 거주하는 경복이는 하루 휴가를 낸 터. 두 사내는 어젯밤 우정 어린 위험한 동거를 했단다.

저녁은 시장통에서 순대국으로 해결하고, 막걸리와 파전으로 세상을 걸쭉하게 들이킨 뒤, 싱싱한 모습으로 수태골 산문에 나타났다. 

하루를 휴가 내고 먼 길 달려와 동참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데,

두 사내가 있어서 이 산길이 스프링처럼 가일층 탄력을 받는다. 

 

경복이 뒤 쪽이 옥자의 모습이고, 그 옆으로 광수가 보이고, 경복이 뒤에 가려진 이가 진호이며,

옥자 뒤에 가려진 이가 용주, 광수 뒤에 가려진 사내가 정근이다.

 




오늘의 유일한 홍일점, 옥자 낭자다.

그 옆 진호가 연약한 낭자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그 배낭을 대신 메고 카메라를 향하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은 가끔 지친 친구의 어깨의 짐을 들어 주는 게 아닐까.

진호의 세심한 배려가 앵글에 맺힌다.


그 뒤쪽으로 광수가 잡히고, 그리고 용주와 정근이다.

근데, 아직 산문 초입인데 용주와 정근이의 표정을 얼핏 보니 벌써부터 상태가 심상찮다.  



 


늘 말이 별로 없는 정근이 모습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최고급 벤츠 승합차로 운전까지 마다 않았다.

정근이는 학창시절에도 늘 말과 표정이 별로 없었던 친구다.

얼굴엔 화색이나 핏기가 없는 듯했고, 항상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도 먼 산을 보는듯 어느새 말없이 저만치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정근이 웃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 그 모습을 처음 봤다.   


정근아~, 고마웠고 수고했다.





단체사진이다.  

좌로부터 동길이, 태호, 옥자, 용주, 진호, 정근이, 광수 그 뒤쪽 좌로부터 경복이와 기룡이._





진호와 용주, 정근이 다들 밝게 웃는 모습을 남기며, 이곳에서 우리들의 산길을 배웅한다.


용주는 체구는 외소하지만 대나무처럼 대쪽 같은 성미가 있어 서울 사대문에 내놔도 그 누구도 건드릴 사람이 없을 게다.

아침 식사 때 옆에 앉은 그의 옆 모습을 가만히 보노라니, 검은 무늬의 눈썹 문신이 자연스럽게 참 잘 됐구나 싶었다.

혹시, 눈썹할 분이 계시면 용주에게 안내를 받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바쁜 일상 밀쳐 두고, 새벽 시간에 일어나 동대구역까지 나와서. 멀리서 오는 친구들 마중하고 

산문에 이르러 아침 식사까지 대접한 뒤, 수태골 쉼터를 지나 그 윗 지점까지 함께 동행했다.

 

고마운 그 마음 씀씀이가 오늘 가파른 산길의 기폭제가 되고 그 청량제가 되리라.






59/24동기회 총무 하기룡의 육십갑자 모습. 그 뒤로 옥자 낭자가 배경으로 어렴풋이 잡힌다.


금번 팔공산 산행을 진행함에 있어 혁혁한 디딤목을 세운 이가 바로 초코릿을 물고 있는 사내, 기룡이다.

  밴드 공지부터 차량 수배에 따른 시간 조율과 벗들에게 일일이 통화까지 하는 열정에 오늘 이 산길이 열였으리라.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기룡이의 열정의 등에 엽혀 이 푸르름으로 넘실대는 눈부신 오월 신록의 팔공산에 드는 셈이다.


이번 산행 기획 건을 계기로 기룡이의 심연까지 내 마음의 빛이 닿곤 했다.





그 가파르고 험한 산길에 혼신의 투혼을 사르는 기룡이의 모습이다.


용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나, 나는 이번 산행길 기획함에 있어 그에 대한 노파심이 내 한쪽 모퉁이를 쉬 떠나지 않았다.

과연 기룡이의 그 엄청난 중량의 체구로 가파른 산길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얼나마 버텨낼까 하는 내 얄팍한 염려의 관심사를 내내 가졌음을 고백한다.

결과적으로 그 걱정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광장으로 나가니 햇살은 창명했고, 그 햇살 아래 저 만치서 날 기다리는 기룡이의 모습이 잡혔다.

첫 눈에 그의 몸매가 내 상상과는 달리 매끈?할 정도로 많이 가다듬어져 있음이 감지되었다.

그 순간 안심해도 되겠다란 생각이 스쳐갔다.

도립공원 팔공산(1,193m)은 큰 산이고 장대하게 펼쳐지는 능선과 산정은 암봉으로 우뚝 솟아 있어서 그 산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룡이는 그곳에서 저 영상처럼 혼신의 투혼을 발휘했다.      

쉼 없이 땀을 걷어내면서 "기필코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집념과 투혼을 사르던." 초인적인 그에게

나는 산행 당일 내내 감동 먹었다.^^*.


이참에 학창시절 기룡이에 대한 내 또렷한 기억 하나를 꺼집어 내야겠다.


중2 때(1974)였다. 그날은 내가 교실 청소 당번 날이었다.

텅 빈 교실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가 끝나 갈 무렵, 기룡이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라면박스 같은 누런 골판지 들고 나타난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교실 한쪽 모퉁이에 그것을 깔더니 등을 대고 드러 누웠다.

그리곤 가방에서 손바닥만한 책을 하나 꺼내 뒤척이더니, 갑자기 노래로 목청을 따기 시작했다.

그때 기룡이가 불렀던 그 노래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대중가수 방주연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당신의 마음>과 <자주색 가방>이었다."

기룡이는 그날 골판지에 등을 눕히고  그 노래를 언제까지 불렀는지 몰라도, 그날의 그 아련한 강물은 아직도 내 기억에 가물거린다.


기룡아, 너는 그날 불렀던 그 노래를 기억하는 지 모르겠다.     

    




산소 같은 남자, 마음이 비단결 같은 남자, 동길이다.


누구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소중하고 귀한 친구 한 두명 쯤은 꼭 있으리라.

동길이는 내게 있어 바로 그런 사람이고, 그런 친구다. 


내 역시 40여 년 대처에 둥지를 틀고 조석으로 광발나는 빌딩숲을 들락이며 숱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래도 고우만은 못하더라.





아무튼 대단한 사나이, 태호의 모습이다.


그 힘든 산길 내내 분위를 이끌며 함박꽃 같은 웃음 보따리를 5월의 햇살 아래 아름드리 역어내던 사내다. 

우리 동기들 중 가장 신체 건강한 친구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저기 해맑게 웃고 있는 사내가 아닐까 싶다.

왠고하니. 아직까지 자신의 신체 특정 부위가 아파서 병원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니 말이다.

한평생 오장육부에서 치아까지 그 어디 하나 아픈 구석이 없었던 그의 타고난 건복福은 병원을 무색케 할 지경이다.  

이렇듯 그는 삼일을 굶어도 끄떡 없고, 아직도 자갈과 돌을 삼켜도 거뜬히 소화를 해낸단다.


그의 심성心性 또한 저 해맑은 웃음과 같을 터.


태호의 산걸음 또한 날다람쥐가 놀랄 정도로 더 이상 가벼울 수 없을 정도였다.

이는 동길의 산걸음 또한 그리하여, 두 사나이가 이번 산길에서 시종 선두를 이끌어 나갔다. 


태호씨, 친구 나몰라라 하고 산길 그렇게 바삐 내빼노,

비지땀 뻘뻘 흘리며 뒤 따르던 기룡이가 훈에 탁 끼서, 중간에 몇 번이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이가.^^*  





이번 산길에서 이목을 독차지한 화사한 꽃봉우리, 옥자 낭자다.


동기회의 연말 모임 땐 그냥 얌전하게 비치며 독대 없이 지내다가 이번 산길에서 난생 처음 낭자와 말을 섞었다. 

낭자도 그러하였으리라.

오늘 보니, 59/24동기회 산걸음의 강렬한 샛별로 떠올랐다.

산행의 경험을 묻는 내게 이르기를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종주를 몇 번씩 돌아 나왔노라."고 차분하고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골목길을 가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흙 속에 묻힌 진주가 오월의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밤하늘 샛별로 떠오르듯

그 숨 막하게 거친 산길에도 옥자 낭자는 시종일관 숨 소리 하나 발걸음 하나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자태였다.


낭자의 그 자태가 참으로 놀라워, 각인되었소.^^*


 



점잖은 풍모의 품새가 느껴지는, 동광 광수의 모습이다.


한국 영화계를 이끌며 한시대를 풍미했던 큰 별이었던 신성일을 연상케 하는 풍모로

일명 대구의 신성일로 통하는 전임 회장 광수는 범상치 않게 풍기는 외모만큼이나 마음의 품새 또한 그러하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길에 기꺼이 나섰다.   

  산행 당일날, 염불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마당 바위에 큰 자세로 앉아서 물을 마시는 그의 풍모를 물끄러미 봤다.

그는 재가승 같은 점잖은 스님 같았고, 그런 도량 큰 분이 마당바위에 앉아서 참선을 하는 듯했다.

 

동광! 네 풍모에서 이런 감이 내게 엄습한 것은 네 심성이 부처를 닮은 면이 많아서 일 게요.^^*  





원칠한 키에 성큼성큼 내딛는 준족駿의 산걸음, 경복이다.


그 험한 산길에 한 번쯤 지칠만도 하건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는 기색은 커녕 막강한 화력을 쉼없이 뿜어댔다.

하산 후엔 다시 3Km의 아스파트길을 두 발로 걸어서 주차된 차를 몰고 오는 여유로움까지 있었다.

특히, 경복씨는 우리 연정마을에서 대소사를 많이 봐 오신 상동어른택의 맏 사위이다.

그 어른은 마을의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아랫마을 참나무진에 모이신 마을분들을 대표하여 의견을 수렵하여 일 처리를 하곤하셨다.

어느 날 보니, 경복이는 우리 마을 최고의 신부감으로 쳤던 상동어른댁의 맏 딸을 꽃가마 태워 사라졌다.

그는 유복한 사내였다.


하루 휴가까지 내어서 먼 길 마다 않고 달려 와 함께한 경복이에게 고마움 전한다.


산걸음에 관한 인사 및 그 글은 부족하지만 이것으로 매듭 짓겠습니다.

애초에 수필 형식으로 글을 매듭 짓고 싶었으나, 산행코스가 변경됨에 따라 탯자리의 의미가 퇴색되어 이것으로 갈음합니다.

부족한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오누이처럼.





암벽훈련장 앞에서.






땀을 연신 걷어내는 총무 기룡이,





수태골폭포에서 목을 축이며.





태호는 막걸리 애주가 인듯.





머리띠 참 이쁘요.^^





수태골폭포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오름길로 든다.















그간 이 산길 대비하여 엄청난 사전 훈련을 거듭했건만, 아직도 갈길이 먼 듯하구나.




















동길이와 태호의 발걸음은 산바람처럼 가벼웠다.

줄곧 선두를 이어가던 두 분이 "와 이리 늦노!!" 하면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다함께 한 숨 돌리는 모습이다.





팔공산에서 별을 따겠다는 엄청난 사나이의 모습.


석등!!,

나 잘 봐, 지금부터 저 하늘 별을 쏠께,

저 하늘의 별을 따겠다며 용이가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어찌 저리도 당찰꼬.!!










마당바위에 크게 앉아서 점잖은 풍모로 물을 마시는 광수의 모습.

재가승在家僧의 풍모가 여기서 느껴졌다.










아마, 지구가 아닌 화성에서 온 인물이 누구나고 묻는다면, 그 답은 <태호>일 게다.


아직 자신은 자갈을 먹어도 소화를 거뜬히 해낸다는, 엄청난 이야기를 폭포처럼 쏟다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맥주 3000cc를 마시고도 화장실 한 번 안 간 친구가 바로 태호가 아닌가.

불가사의한 이야기들로 좌중을 압도하며 거침없는 이야기들이 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태호는 지구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화성에서 온 인간 닮은 우주인 하나가 내 앞에서 신비한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풀어내고 있는 듯했다.


역시,태호씨는 아무도 못말리는 전능하신 분이야~.^^*





동봉과 염불봉으로 드는 삼거리에서 목을 축이고 과일로 당분을 보충하는 모습.





그 어느 누가 저 건각들을 한갑의 나이테라 이르겠는가.





용이의 얼굴이 많이 편해진 모습이고, 옥자 낭자는 산문 들때 초입 그대로의 자태다.

동길이는 벌써 동봉에 들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사진 한 장 건졌어요.^^*

늘 사진만 촬영하다 보니, 진작 집에 와서 영상을 정리하다 보면 내 사진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몇 장 건지지 싶다.  





이곳이 약사여래입상으로 드는 돌계단이다. 이곳에서 만세를 외쳤다. 





팔공산 산정은 이제 진달꽃이 한창이었다. 두 분이 화사한 진달럐꽃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리도 오누이처럼.





팔공산 산정의 안테나 기지국을 배경으로 담았다. 경복이가 제안했다.





준족의 산걸음을 자랑하는 경복이.





진달꽃을 배경으로 대구의 신성일로 통하는 광수.





동봉 바로 밑 비로봉과 중계탑을 배경으로.





팔공산 레이다 기지를 배경으로 한 컷.

옥자 낭자의 집 뒤로 보면 저 뒷편 레이다 기지가 둥그렇게 크게 잡힌다 했다.


표정을 가만히 보니 이까지 것 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란 식으로 모두들 자신 만만한 표정들이다.





나랑 경복이.





이곳에서 돌을 버리고 부처가 된 시간과 만난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이다.


기룡이가 그 앞에서 잠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기나긴 세월의 풍상에 석조약사여래입상은 그 윤곽조차 희미해 졌다.

비바람에 마모된 채 이끼낀 장구한 세월의 부처를 보면 간절했던 인간의 마음이 전해진다.

얼마나 절절한 염원을 품고 있었기에 이 가파른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약사여래상을 다 새겼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염원을 안고 이 여래상 앞을 바람처럼 쓰러져 갔을까 싶다.

그래서 저 약사여래상은 사람의 심정에 따라 그에 걸맞은 설법을 무언으로 베풀어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약사여래입상을 뒤로 하고 동봉으로 향한다.



동기들과 함께한 팔공산 길에서._2019.05.04._ 석등.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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