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시 간 의 흔 적 들 ~

풍경의 유토피아 찾아, 미인봉, 학봉 암릉 산행길

작성일 작성자 북을


* 제천 청풍면 도화리 취적대(우측 두 개의 선 바위),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 정인지는 이곳을 이르기를 "복사꽃 촌길은 신성의 경지다"라 했다"*


제천 미인봉美人峰 산문 초입이다.

 

이리저리 둘러 봐도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산문 초입에 산객의 주차공간이 없는 곳은 거의 흔치 않은 일이다. 부득이 산문 맞은 편 금수산 식당에 빈 터가 눈에 들어 그곳에 주차 양해를 얻었다. 식당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켠에 얌전히 주차를 한 뒤 차문을 밀고 나오는데, 그곳 텃밭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눈부시게 서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살구나무는 탐스럽게 익은 살구를 주렁주렁 달고 아침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살구를 보니, 문득 저녁별 지듯 아득히 먼 길 떠난 형이 떠올랐다. 코를 흘리던 내 어린 시절 이맘 때면 나보다 다섯살 위인 형은 새총을 만들었다. 윤기가 흐르던 새총으로 형이 허공을 겨냥하면 살구는 우박처럼 쏟아졌다. 발발거리던 나는 담장 넘어 장독대 밑을 뒤져 두 주머니 가득 살구를 넣은 채  형의 그늘 아래서 기쁨과 희열을 노래했다산문 초입에 앉아, 40여 년 전의 형을 그리니, 산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데운다. 그랬었다. 6월이면 살구가 익어가는 계절인데, 살구가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길을 나섰다가형 생각에 목이 메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산문에 든다.

 

숲 속엔 알싸한 듯 묵직한 꽃향기가 비등한다. 밤꽃이었다. 그 짙은 향기가 푸른 숲 속 가득 배어 고개를 드니 나무 가지마다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듯 실타래를 드리우고 있다. 꽃향기 치고는 독특한 향을 붐비한다. 내 학창시절엔 집에서 포도과수원을 경작했다. 그때 포도나무 사이사이 지주대로 밤나무를 사용한 것을 봤다어머니께서 이르시길 밤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재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수명이 길고 오래 가서 사용한다고 말씀하셨다. 그후 내가 혼례를 치르고 폐백을 올릴 때 어머니께서 밤과 대추를 각각 한 웅쿰씩 쥐어 폐백을 올리는 내 아내의 치맛자락으로 던지는 의식이 있었다. 아내는 밤과 대추를 치마자락을 펼쳐서 다 받아냈다. 그것은 자손이 잘 되어 번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밤꽃향기 알싸한 그곳을 지나 희미한 산길을 더듬어 오르자, 큰 암벽 밑에 굿을 한 의식의 흔적이 있다. 바위의 아래 부문에 흰 천이 끼워진 노끈이 둘러져 있고 붉은 천과 청색 천도 눈에 띈다. 굿은 궁극적으로 산자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신앙 의식의 일종이다. 굿터를 자세히 보니 천신굿이나 도당굿을 한 흔적이 아닐까 짚어졌다. 산속의 기가 센 바위에 그 가족이나 일신 상의 굿이 많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혹시 주변에 돼지머리나 그 제물이 있나 살펴보니 서너 자루의 초가 촛농을 안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이르러 미인봉의 산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암봉의 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단 산의 기가 세구나 싶었는데, 그 느낌 그대로였다. 미인봉은 산기山氣가 센 봉우리였다.


이곳 굿터부터 능선 안부까지의 산길은 자취를 감춘 채 가파른 된비알로 이어졌다.



  


*꼬리진달래꽃*


능선 안부로 오르던 중 된비알에서 만난 꼬리진달래꽃이다.


이곳 미인봉 중턱에서 학봉을 거쳐 하산길 중턱에 이르는 동안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해맑은 얼굴로 살가운 인사를 건넨다. 코를 가까이 하니 깊고 그윽한 향기가 폐부 깊이 스며든다. 이 꼬리진달래는 6,7월에 꽃이 피는 진달대로 제천 영월 단양 등 석회암지대에 분포하여 자라는 상록관목으로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식물 지정된 우리나라 특산 식종에 속한다.    






*우측 단애에 둥지를 튼 노송과 저멀리 우뚝 솟은 월악산 영봉과 중봉 하봉이 조망되고 그 사이를 청풍호의 물줄기가 휘돌아나간다.*


미인봉美人峰 능선에 서니 풍경의 진수를 보는 듯, 산천은 유토피아의 세상을 펼치며 인간과는 달리 느긋하고 여유롭게 생의 속도를 조절하는 듯하다. 


군데군데 로프가 드리워진 직벽을 타고 그 봉우리에 올랐으나, 날 현혹했던 절세가인의 미인은 없었으며, 오석烏石에 흔적처럼 그 이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예전엔 이 미인봉을 저승봉猪昇峰라 했다. 이 골짜기에 멧돼지가 많이 살아서 멧돼지 저()자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한자음의 뜻을 살피지 않고서는 저승봉 일반적인 의미는 죽음의 봉우리가 된다. 멀쩡한 사람이 두 발로 산에 들어가서 시신이 되어 들것에 실려 나오는 끔찍한 봉우리가 저승봉인 것이다그래서 봉우리명이 개칭된 듯하다. 또한 이곳 저승봉에서 학봉으로 이르는 암릉미는 주변의 수려한 풍광과 조화를 이루며 돌올한 풍광미를 자랑한다. 수직 단애에 발을 딛고 조망되는 중중첩첩의 산들과 푸른 청풍호의 물길, 천길 단애에 둥지를 튼 노송의 의연한 자태는 풍광의 백미다. 그래서 이곳 산세의 아름다움을 살려 현재의 미인봉美人峰으로 개칭되었으리라 유추되며, 이 마을 학현리 냇가에 와상의 음바위(음근석)와 이 미인봉의 개칭 역시 무관치 않은 듯하다.






산길 없는 산비알을 한참 더듬어 능선 안부에 든다. 조망이 일망으로 트인다.


산등성이의 양협곡을 따라 둥지를 튼 마을의 형상을 보니 그 옛날 이곳 학현리는 밭뙈기 조차 변변잖은 궁벽한 오지의 산골이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평택 제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청풍명월 답게 청풍호반을 물길 따라 펼쳐지는 수려한 풍광을 쉬 접할 수 있게 세상은 탈바꿈 되었지만 그 옛날 이 첩첩의 산골엔 끼니조차 자유롭지 않았을 첩첩의 오지 였다. 저기 마을로 들어오는 포장 도로 좌측 봉우리가 조가리봉이고 우측이 동산이다. 그리고 청풍호 물길의 폭이 넓어지는 좌측 산이 봉황이 날으는 형상의 비봉산이고 우측이 대덕산이며, 대덕산 뒷쪽에 솟은 산이 천등산이며, 그 뒤쪽이 백운산이고, 우측 가장 뒷쪽에 흐르는 능선이 이 치악산이다. 그리고 비봉산 뒤쪽이 부산이며, 그 좌측이 인등산과 계명산까지 조망된다. 또한 가운데 가장 뒤쪽으로 희미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충주 신니면의 가섭산이다. 오늘처럼 조망이 일망으로 터이는 날은 삼백예순날 중 과연 며칠이나 될까 싶다.


 


 

 

*소나무의 운치*





*미인봉 봉우리*


북서쪽면은 천길 절애다.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그날은 뵈질 않았다. 






수직으로 치솟은 직벽을 로프에 매달려 벼랑을 더듬어 올랐다.

 

직벽에 쳐진 로프도 많이 낡아 이었다. 하얀 보푸라기가 일어 상당히 위험한 느낌이 들었는데, 올라와서 그 상태를 살펴보니 더욱 아찔했다썩은 나무등걸에 로프가 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어느 날 낡은 저 로프가 제 명이 다하거나, 썩은 나무등걸이 로프의 하중으로 벌떡 일어나면, 이곳을 찾은 선량한 산객은 외마디만 남긴 채 선천을 떠도는 별이 될 것이 아닌가.

 

혹시 제천시 산림 관계자가 이 영상을 보신다면, 하루 속히 미인봉으로 드는 직벽의 로프를 교체, 정비하여 주시기 바라는 바이다.


  



*말나리꽃*





*미인봉 정상석과 미인의 가슴*





* 좌측 저멀리 상학리 마을과 우측 뽀족한 봉우리가 학봉임*





*동산과 그 뒤가 작은동산*





*암릉과 우측 학봉의 모습*





*학봉으로 든 길에 만난 선바위*





*손바닥 바위-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 오른손 우측 엄지손락이 손바닥 안으로 붙어 있는 모습*






*코뿔소 바위*



 

 

 

* 미인봉 암릉의 고사목, 고사목 뒤 우뚝한 푸른 봉우리가 금수산의 망덕봉 임.*


천길 단애에 둥지를 튼 채 천명을 다한 고사목의 수경과 기품이 범상치 않았다. 비록 그 명은 다 했지만 나무가 저만한 풍모과 수관일 때, 살아생전 나무는 깊은 덕과 강직한 지조를 지녔음이 틀림 없었으리라. 나는 풍장의 혼백으로 우뚝 선 고사목의 기품에 반했다. 내 삶 역시 저 고사목의 수관을 닮아야 할 터인데 싶은 생각이 스친 것이다. 


산행기점부터 3시간이 흘렀건만 인적이라곤 없는 산길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무숲 가지를 포롱포롱 나는 새소리와 유월의 햇살만 쏟아져 내리는 혼자 걷는 산길은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큰 산 앞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편하듯, 그 산의 품 속에 안겨 걷다보면 이승에서 어지러운 마음들과 비좁고 옹색해진 내 마음의 결들이 절로 부드러워 지는 것을 느낀다. 이래서 나는 외롭고 고독한 산길을 걷고 또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봉으로 드는 암릉과 단애*






*좌측 학봉과 우측 망덕봉 및 금수산*


좌축 우뚝한 봉우리가 학봉이며, 우측이 2주 전에 다녀온 망덕봉과 금수산이다.

이 미인봉과 학봉 그리고 신성봉은 금수산의 줄기에서 뻗어내렸으므로, 모두 봉우리명으로 통한다.  


 


 


                                               *천길 단애와 소나무*


 


 


*좌측이 학봉이고, 우측이 금수산*

 

 

 

 

 

*학봉으로 드는 철계단*


 


 


*학봉의 오름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암릉*



 


 


이곳이 학봉 정상이다.

 

정상엔 어느 초라한 무덤 한 기가 눈에 든다. 후손들의 보살핌이 끊긴 듯 봉분 양 옆으로 산길이 나 있고 잡풀만 무성한 채 백골만 외롭게 누워 있다. 필시 저 터를 썼을 땐 자손 대대로 집안의 만복을 기리며 부귀영화를 꿈꾸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한 발 한 발 내딛기 조차 힘겨운 이 가파른 산정에 터를 썼을 리 있겠는가. 그렇게 기원대로 만복을 누리는 지 모르겠으되, 잡초 우거진 초라한 봉분을 보노라니, 그 바람은 먼 전설의 얘기가 된 듯하다. 산을 많이 접하는 나는 이 나라 안의 명산 곳곳에 미명의 산자락 곳곳에 무덤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봐 온다. 저 무덤은 산자의 관념상 죽음의 세계로 가는 안식처다. 그러나 그 관념에 풍수의 사상이 더해져서 이 비좁은 땅덩어리가 온통 무덤으로 넘쳐난다. 저 무덤을 볼 때마다 홀몸으로 올라도 버거운 이 산비알을 그 무거운 운구를 메고 쩔쩔매며 올랐을 상여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마다 굳이 이 가파른 험로까지 올라 그 터를 잡고 봉분을 지어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여, 봉분에 대한 내 시각은 언제나 낙관적이질 못하다.  

 

()은 죽음()으로서 그 명()을 다하여 끝나는 것이다. 한 톨의 말알이 그 싹을 띄우고 썩는 이치와 같아서, 이 삶 역시 때가 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것이고, 그런 과정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썩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그 무슨 거창한 무덤과 봉분이 필요하겠는가잠시 왔다가 그 목숨()이 다하면 한줄기 연기처럼 표연히 사라질 뿐이므로, 실존의 삶과 그리고 죽음과 사후의 본질적 바탕은 한 톨의 밀알처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저 강물이 흘러 바다에 몸을 누이듯 이 삶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리에 따라 제자리()로 돌아가는 숙명적 과정의 길이다. 그러므로 풍수와 지리는 물론 더 나아가 인간의 종교를 포함한 그 어떤 신앙과 믿음도 사바세계의 운명과 그 길흉화복을 좌우할 리 없으리라. 결국 사람들이 풍수사상에 따라 길지를 골라 묘를 쓰는 문제나 종교적 절대자나 그 종교에 귀의歸依 하여 구원이나 부활이나 천당이나 극락 등의 사후세계를 희구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의 문제이며, 그것은 개인의 자각에 따라 좌우된다 할 것이다. 하지만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생과 명은 때가되면 자연이란 제자리()로 돌아갈뿐이다. .이것이 내가 보는 삶과 종교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일관된 시각이며 그 관념이다.


이곳 학봉(774m) 양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학의 형상을 닮았다 해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마을명인 학현리도 학봉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곳 학현리는 예로부터 워낙 경계가 아름다워 학현취적吹笛에는 청풍팔경의 한 승지로 기록돼 있다. 이곳 학봉에서 하산길로 든다그 시각이 오후 3시가 까가웠다. 하산길에 미인봉의 개칭과 무관치 않았을 이 마을 냇가에 와상으로 누워 있는 음바위(여근석)를 감상한 뒤, 황홀히 물드는 석양의 목계나루 터에서 모처럼 나룻배를 띄워 노를 저어 강길을 건너야겠다.


 

 

제천 미인봉, 학봉 산행길에서._ 2019. 06._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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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냇가의 음바위(여근석). 이 음바위 윗쪽에 사시사철 펄펄 끓는 남근석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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