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시 간 의 흔 적 들 ~

설악산 공룡능선, 그 찬란한 시간을 걸으며

작성일 작성자 북을

* 설악산 토왕성폭포. 2017.07.29일 촬영*

 

천 길 석벽 사이로 떨어지는 토왕성 폭포의 옥수가 지축을 흔들며 비룡폭포를 일깨운다

 

한낮의 하늘이 느닷없이 음산해지고, 천둥과 번개와 먹구름이 환란처럼 일며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 비바람을 뚫고 불을 토하는 무시무시한 용이 승천한 서기瑞氣의 땅! 이 나라 안, 산과 산줄기 중 최고의 비경을 품은 설악의 공룡능선恐龍稜線을 향하여 나는 지금 바람과 구름을 타고 간다. 인간사 억겁의 속진을 씻고, 그 한을 씻고, 그 번뇌를 씻어, 초연히 하늘을 우러르며 웅혼한 기상을 펼치는 신성한 그곳은 만상의 기봉들이 비로毘盧의 몸짓으로 치솟아 화려한 불꽃처럼 타오르는 성스러운 대은大隱의 땅이려니. 누구나 가고 싶되, 아무나 갈 수 없는 그곳은 오늘도 백학이 원무를 그리며 무극無極으로 흐르고 있으리라.

 




* *마소신선이 와선대(臥仙臺)에 누워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다가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비선대(飛仙臺). 그 위로 치솟은 미륵봉(장군봉)과 형제봉과 선녀봉이 행려의 산객을 맞는다.* 

 

설악동 소공원 입구에 선다. 우측 자귀나무 꽃에 호랑나비가 사뿐사뿐 나른다. 그 맞은편 저멀리 하늘을 찌를 듯 정연亭然히 솟아올라 동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존귀한 석가세존의 세존봉이 지존처럼 돌올하다. 그곳 소공원을 지나 천불동 계곡의 비선대飛仙臺에 선다. 그 시각이 오전 11시를 넘고 있었다. 삼복더위에 비선대로 쏟아지는 햇살은 신선하고 강렬했다. 이미 온 몸은 땀으로 축축하였다. 그때 눈앞에 두 아가씨가 큰 배낭을 짊어진 채 복사꽃처럼 웃으며 강열한 햇살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는 아가씨들은 산오디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풍성한 햇살 아래 한껏 무르익은 관능적 아름다움에서 솔향기가 묻어오는 듯했다. 나는 궁금했다. “이 폭염에 어느 코스로 가실 건가요.” “저희들은 마등령을 올라 공룡능선을 넘어 중청에서 1박할 예정이에.” 했다. 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폭염에 건장한 남자들도 나가떨어질 코스를. 과연 젊음의 몸짓은 눈부셨다. 산바람처럼 스쳐가는 눈빛 맑은 아가씨들이 건네던 하얀 웃음과 복사꽃잎 같은 미소는 망고주스처럼 달콤한 듯, 레몬 맛처럼 상큼한 듯했다. 그들과 반대 방향인 나는 천불동계곡으로 들면서, 내가 환상을 봤나 싶어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새 아가씨들은 마등령 쪽으로 오르고 거기에 없었다.





*천불동 계곡 허리에 우뚝 선 귀면암(鬼面岩)이다. 귀신의 얼굴을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금강산에도 귀면암이 있어, 그 형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암봉 밑에선 사진 각도가 나오질 않아서 계곡 깊숙한 곳에 들어서 영상을 담았다.*

   

천불동 계곡에 발을 딛는다.

 

우람한 봉우리들이 병암屛巖처럼 치솟았다. 이곳 천불동계곡은 천의 불상佛像이 존재하는 깎아지른 협곡으로 바위와 암봉과 봉우리가 저 마다 불상의 근엄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내가 이 코스를 택한 것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한뒤,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이 나라 안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서기를 품은 땅, 공룡능선의 비경을 경건하게 맞이하고자 함이다. 그것이 산에 대한 예()로 여겨졌으며, 자욱한 운무가 피어나는 황홀한 비경을 내 기억과 영상에 오래오래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좌측 단애 아래로 옥수를 품고 흐르는 계곡은 그 속내가 융숭 깊었다. 계곡 깊이 발을 들이니 천길 절애의 협곡 사이로 빚어내는 신비한 기암기봉들이 인생을 웬만큼 산 이순耳順의 한 존재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그 심산계곡에 물방울처럼 맑게 떨어지는 새소리가 천국의 소리처럼 귀에 감기며, 푸른빛 도는 계류의 물빛은 어찌 저토록 맑을까 싶게 작은 담과 소를 이루며 여울을 탄다. 산에 들면 바위며, 나무며, 흙이며, 계곡물이며 이 모두가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의 이해타산이 따르지 않는 지순의 언어들이다. 그 지순함이 산바람처럼 산정기처럼 내 탁한 영혼을 씻어주는 것일까. 먹구름처럼 떠다니던 일상의 온갖 상념들이 어느덧 소연히 사라진다. 비로소 도심 속에서 잃어버렸던 정신적 위격과 여유가 오롯이 살아난다. 이곳 귀면암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동자봉을 만나고 그 위쪽 좌측 벼랑에 음폭의 골이 깊게 패인 다섯 개 물줄기가 손에 손을 잡은 듯 다섯 개의 소를 이루며 미끄러져 내리는 오련폭포를 만난다





*오련폭포를 지나 협곡의 허리를 돌아가고 있다. 앞뒤 좌우 암봉들이 중중첩첩 다가선다. 황금햇살은 골짜기 마다 쏟아지고, 발길마다 칠월의 햇살이 치렁치렁 감긴다. 녹색의 입성을 차려 입은 신록은 스스로 햇빛을 끌어당기며 향유를 바른 듯 눈시리게 너풀거린다.*





 <! **양폭대피소에서 바라본 만경대의 꼬갈봉이다. 우람한 위용이 몇 해 전 만났던 유럽의 알프스를 상기 시킨다

 

이윽고 양폭대피소에 이른다.

 

비선대로부터 2.5km에 위치에 있다. 이마에 땀을 걷으며 바라보는 풍광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밖의 또 다른 세상인 듯 별유천지別有天地 같았다. 풍성한 햇살에 늑골을 드러낸 수려한 만경대, 고깔봉의 우람한 위용이 몇 해 전 만났던 유럽의 알프스를 상기 시킨다. 그 위쪽 음폭의 골로 옥구슬처럼 흘러내리는 양폭포와 천당폭포의 옥류를 보노라니, 과히 하늘의 선녀도 반할 청수 같은 물빛이었다. 양폭대피소에서 사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병암屛巖의 깎아지른 협곡의 장결한 산세와 기암기봉에 매료되니, 수려한 풍광의 힘인지, 계곡마다 빚어낸 불상佛像 힘인지 모르겠으되, 그곳이 피안彼岸의 세상 같았다. 이렇듯 산의 품에 들면, 지리멸렬하게 들끓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사라진다. 천년 세월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天塔이 인간이 만든 미륵불의 힘으로 세상을 개벽할 혁명을 꿈꾸었다면, 이곳의 천불千佛과 공룡능선의 수려한 침봉들은 무량한 세월 숱한 비바람과 운무와 해와 달이 빚어낸 고아高雅한 천불상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미래의 유토피아 세상이나 미륵정토彌勒淨土의 세상이 이곳에서 열릴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스친다.

 



*천불동의 계곡의 마지막 폭포인 천당폭포. 가끔 산바람에 폭포는 안개꽃으로 피어난다. 이 계곡을 따라 무너미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계곡을 계속 들면 "죽음의 계곡"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양폭포를 거쳐 천당폭포에 선다.

 

두 폭포의 수량은 적었다. 양폭陽瀑의 계류는 가파르게 미끄러져 소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계곡의 마지막 폭포인 천당폭포天堂瀑布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직폭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며 절구통을 파놓았다. 가끔 산바람에 폭포는 안개꽃으로 피어난다. 그곳 단애의 허리에 걸린 철계단을 돌아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이곳 “무너미”이란 지명에는 산을 뜻하는 고어인 무레너미가 합쳐진 말로, 산등성이를 넘는 고개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의 끝없이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계단과 공룡의 험한 등살에 지친 산객들이 나가떨어지듯, 이곳 역시 무너미 고개 분기점까지 이어지는 깎아지른 돌계단에 치어, 삼복의 땀이 비처럼 쏟아진다. 불을 토하던 코에선 단내가 나고, 가뭄에 논밭이 타들어오듯 목구멍이 타들어 온다. 문득, 이토록 생살을 태우며 고통스러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바람과 구름을 타고 길을 나섰지만 이럴 땐 내 자신이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넓쩍한 돌팍에 엉덩이를 붙인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이 귀신에 홀린 듯 녹아든다. 인내의 물맛은 달디 달았다. 그랬었다. 가파른 숨을 진정시키며 땀을 걷을 때, 비선에서 환각처럼 스쳐갔던 산오디 같은 눈동자의 아기씨들은 하늘사다리 같은 마등령을 어떻게 올라가고 있을까 싶었다. 이곳 무너미 고개로 드는 우측 산비탈엔 꿩의다리꽃이 여기저기 하얗게 피었다. 고산의 이슬과 바람과 달빛만 먹고 자란 꽃의 자태는 설화처럼 희고 곱다. 잠시 호흡이 안정되니 희운각 대피소가 어서 오라고 하얀 손짓을 한다. 일어선 자리를 보니 엉덩이의 땀이 배어나온 자리가 하트 모양으로 축축히 젖어 방긋 웃는다.

 

 



*무너미 고대 분기점 이정표다. 이곳 전망대에 서면 머리 위로 신선봉과 중청, 대청봉이 황홀한 자모로 피어 오른다.*


이윽고 무너미 고개 분기점(1,020m)에 선다.

 

비선대를 출발한지 2.5리터의 물통을 다 비운 뒤였다. 그곳 전망에 서니 좌측으론 신선봉이 자모로 피는 황홀한 모습이다. 그 산줄기를 따라 삼라에 잠긴 듯 공룡능선이 아련하고, 맞은편엔 화채능선과 대청과 중청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초록빛 꿈으로 다가선다. 이렇듯 생살 태우던 고통의 시간들이 황홀한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이 황홀한 환각 같은 맛에 녹아 그 고통을 인내하였으리라. 이곳 무너미 분기점에서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을 구분 짓는다. 우측은 공룡능선 길이며, 좌측으로 희운각 대피소를 거쳐 소청과 중청을 거쳐 대청봉으로 이어진다.




 

* 신선봉과 그 뒤로 공룡능선의 아련한 모습과 우측 화채능의 마루금이 선연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룡능선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었던 풍광은 이 영상이 내겐 마지막이었다. 이튿날은 두터운 운무에 휩싸여 더 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만치 희운각 대피소가 하얀 손을 흔들며 부른다.

 

그 입구엔 함박꽃이 달덩이처럼 꽃등을 달고 지친 나를 환하게 맞는다. 어깨의 짐을 풀고 얼굴부터 씻으려 했더니 대피소에선 세수와 양치질 등은 금지되어 있었다.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을 닦고 준비해 간 물티슈를 사용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낯선 산객들이 땀으로 범벅된 채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 중 초로初老의 부부가 모습을 드러낸다나란히 길 위를 나설 수 있음은 아름다운 일이다. 첫 눈에 단아한 인품이 엿보여 참 인상 깊었다. 인사를 건네니, 그분들은 한계령에서 출발해서 중청과 대청봉을 거쳐 왔노라했으며 내일은 공룡능선을 탄 뒤, 백담사까지 가노라했다. 그분의 연세는 일흔 셋이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석양을 건너가는 저 연세에 부부가 함께 이 험준한 산길을 종주한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일 터. 내가 저 나이에 이르러 이 험한 산길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그 부부를 보니, 문득 아침에 밑반찬을 챙겨주던 아내가 떠올랐다. 기실 내 아내도 어떤 산길이든 간에 다소곳한 조선 여인처럼 따라 나섰다. 쉰 중반을 넘기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큰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함께한다. 외람되고 객쩍은 소리가 될지 모르나, 그런 내 아내는 말 수가 적고 잔소리가 없다. 30여 년 간 아이 둘 건사해 오면서 속이 비좁고 옹색한 내게 잔소리를 퍼부어 대거나, 나의 허물과 결함을 놓고 선공을 하거나 타박한 적이 없었다. 그런 아내의 소신공양에 덕분에 나는 현관문 밀고 들어가면 식탁에 차려진 밥숟가락 들었다 놓곤, 소파에 앉은 채, 눈만 껌뻑거리는 돌부처가 돼버렸다. 숫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나를 두고, 세상은 겁나게 변했는데 정말이지 간 큰 남자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그러나 부처에게 간 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으리라.

 

대피소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야외 탁자에 앉는다. 청정한 가야동 계곡을 골골이 훑어오는 서늘한 산바람이 환각처럼 감겨오고 산그늘이 내리자 자욱한 산안개가 환상처럼 밀려온다. 고단한 몸을 서늘한 푸른 바람의 손에 맡기니 부드러운 손은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땀을 걷어간다. 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며, 이 얼마나 찬란한 시간인가.***

 

 

 

 

*희운각 대피소다. 정원 30명의 내실은 칸막이 없는 3층 형식의 잠자리가 마련돼 있다. 산객을 위하여 생수(1,500원/500ml)와 햇반, 초코파이를 취급했다* 


대피소의 하룻밤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9시에 소등된 뒤, 그 비좁은 공간에 몸을 누였으나, 옆 산객의 숨소리가 뜨겁게 느껴지고, 구석구석 코고는 소리가 우레 같아서 가뜩이나 고단한 몸이 더 고단하게 느껴졌다. 이럴 땐 독주를 연거푸 들이 붓고나가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쌍머리 잡고 뒤로 자빠지는 나는 바늘끝에 신경이 흐른다. 사전에 익히 알았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예사문제가 아니었다. 아래쪽 초로의 부부를 보니, 그들은 이미 깊은 잠에 든듯 나란히 누운 모습이 송장 같았다. 몸을 일으켜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그 시각이 밤 11시였다. 밤하늘 꽃잎처럼 반짝이는 별을 찾았으나 자욱한 운무가 내린 밤은 천지가 칠흑이었다. 피부에 달라붙는 고산의 밤공기는 생각보단 차가웠다. 다시 입실하여 한참을 뒤척이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선잠마저 깼다. 그 시각이 새벽 3시였다. 대청봉 일출을 맞이할 일진들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 공룡능선 촬영 포인터인 신선대에 도착하였으나, 자욱한 운무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이질 안았다. 나는 망연茫然했다.*


아침 산공기는 청신했다.

 

간밤은 선잠으로 설쳤지만 다행이 기분은 맑았다. 머리 위 신선봉과 대청봉은 자욱한 운무에 뒤덮여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간다. 아침식사는 준비해 간 누룽지를 끓여 든든히 먹는다. 장거리 산길에 허기지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낭을 둘러매고 신선대를 향하는 그 시각이 아침 6. 설악산은 거대한 제천의식을 치르는 듯 사위는 운무에 가려 앞이 분간되질 않았으며 바람마저 잠들어 있었다. 무너미 분기점을 다시 지나 신선대의 급경사 암봉을 자일에 의지해 오르고 오른다. 금세 온 몸이 땀으로 젖어든다. 50분가량 올라 공룡능선 최고 비경을 자랑하는 신선대의 전망대에 선다예감대로 짙은 운무에 가로 막혀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안내판만 빼꼼이 얼굴을 내민 채 무안의 인사를 건넨다. 나는 망연茫然했다. 몇 해 전부터 황홀한 운무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곳을 상상해 왔었다. 머리 위로 대청봉과 중청봉이 푸른 꿈처럼 떠오르고, 군계일학의 주봉인 범봉을 중심으로 20여개의 기봉들이 비로毘盧의 몸짓으로 초연히 솟아 무상으로 흐르는 장엄한 비경을 상상했던 것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불꽃처럼 현란하게 타오르는 천화대天花臺 침봉들의 그 신비로운 절경을 만날 기대와 설렘으로 들뜬 채 그 얼마나 긴 시간을 벼루어 왔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마저 낮게 드리워져 울먹울먹했다.




 

*하늘이 열리기를 바라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쥔 이순의耳順의 머리 허연 한 사내는 자욱한 운무 속으로 사라진다.*


원래 고봉高峯은 신의 영역이라고 했던가.

 

이 거대한 신전神殿 앞에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땐 그저 하늘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 하나와 그것이 불가능할 땐 마음을 비우는 일 밖엔 없다. 허나, 그간 내 산행 경험상 산은 시시각각 변화무상하였다. 언제 그 무시무시한 공룡이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지르며 지축을 흔들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마등령馬登嶺(1,320m) 삼거리까지의 거리는 약 4.1km, 그곳에서 비선대까지는 다시 3.5km 남았다. 그동안 하늘이 열리기를 바라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쥔 이순의耳順의 머리 허연 한 사내는 자욱한 운무 속으로 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무는 더 두텁게 밀려와 시야를 점점 더 가로막는다. 그래도 하늘이 열리길 바라며 카메라 조리개를 조이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공룡의 등은 거칠었고 창창하게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무는 더 두텁게 밀려와 시야를 점점 더 가로막는다. 그래도 하늘이 열리길 바라며 카메라 조리개를 조이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쉼 없이 돌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할 쯤 공룡능선의 최고봉인 1,275m봉에 도착한다. 이 봉은 공룡능선의 주봉 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이 없는 봉우리다. 정상은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인데 운무만 자욱하여 촬영이 불가능하였다공룡능선의 구간은 무너미고개 분기점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마등령 삼거리까지를 일컫는다. 이곳은 설악산의 심장이라 할 수 있으며, 백두대간 상에서 기암의 침봉들이 현란한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장 화려한 구간이다. 이 능선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이다. 내설악은 가야동 수렴동 백담 백운동 등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하며, 외설악은 천불동계곡을 끼고 양쪽으로 우람하게 솟아오른 천불상의 형태를 띤 기묘한 암봉들의 세상이 펼쳐지고, 수려한 품새의 범봉을 중심으로 한 천화대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현란한 침봉들의 세상이라면 울산바위는 설악산을 지키는 웅장한 성벽에 비견될 수 있을 터. 하지만 화려하게 펼쳐진 장대한 외설악산의 침봉들이 자욱한 운무에 쌓여 있다. 지금쯤 숨 막히는 비경들이 줄줄이 스쳐가며 가슴에 보석처럼 박힐 터인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공룡능선 길은 공룡의 거친 등뼈를 숱한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돌고돌아 나간다.*


 

 


 


* 약 7년 전엔 산객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수관이 예사롭지 않았던 노송이었다. 오늘 보니 수많은 생각과 번뇌를 기억의 저편에 잠재운 채, 천운을 다하여  길 위의 풍장으로 누워 있었다.*





*이름 모를 암봉은 무량한 세월의 비바람과 눈보라에 억겁의 몸을 씻고 그 한恨을 씻,고 그기 그렇게 열반涅槃에 들어 있었다*  




 

*노송이 암봉 아래 담박한 숨을 쉬고 있다. 문만 열면 회색빛 아파트가 시야를 가로막는 두고 온 도시는 죽은 풍경처럼 쓰러진다. 세상의 어느 핍진한 길 위에 환상의 오색무지개를 띄워놓고 꿈결인 듯 걸어보고 싶은 풍광이다.*

 

 



도회지 살이에 지치고, 자욱한 회색빛 도심에 숨이 막힐 때, 나는 또 다시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는 황홀한 꿈을 꾼다. 걷고 또 걸으며 하염없이 걷다가 황소빛 노을이 물들고, 몸이 지치면 그곳 어디에서 세상 근심 끊는 하룻밤을 지내보는 것이다.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 길에서 우연히 체코에서 온 미스타 필립(Filip)을 만났다. 골격이 훤출한 그는 단독 산행 중이었다* 


그곳 마등령을 약 2km를 남겨둔 지점에서 한 외국인을 만났다.

 

길 위의 행려의 객이 동행을 만나면 기꺼운 일이다. 눈이 파랗고 콧날이 오똑한 피부색이 다른 그는 유럽의 체고에서 온 필립(Filip)이란 사내였다. 39세의 미혼으로 가슴은 각이 잡혀 윤각이 드러났으며, 엉덩이는 위쪽으로 착 달라붙고 쭉 뻗은 두 다리에, 그 골격이 훤칠한 미남형이었다. 내 나이를 물었던 그는 유 뤀 라잌 얼리 피프티스 이어스 올드라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오십대 초반 봤다니, 어찌됐던 듣는 나는 기분이 좋았다. 더불어 내가 놀란 것은 그는 아시아의 몇 개 국을 거쳐서 설악산 신흥사에서 템플스테이를 7일 간 체험한 뒤, 안내자 없이 단독으로 중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공룡능선에 들었다고 한다. 일반 운동화를 걸치고 짧은 반바지에 긴티셔츠 차림, 어깨에 걸린 자그만한 쌕엔 참치 3통과 물 2리터와 손에 쥔 스틱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산행복장은 히말라야 설산의 고봉을 등반하는 수준급일 터. 남은 하산길 그와 함께하며 신흥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마등령 하산길에 들어섰는데도, 아직도 하늘은 열리지 않고 자욱한 운무만 시야를 막아선다.*


이윽고 마등령(1,327m) 삼거리다.

 

이곳이 공룡능선 시작점인 동시에 끝 지점이다. 아직도 하늘은 열리지 않고 자욱한 운무만 시야를 막아선다. 이곳 마등령은 미시령을 지난 백두대간이 황철봉과 저항령을 거쳐 대청봉으로 이어가는 중간에 자리 잡은 말등처럼 생긴 고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마등령 삼거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오세암으로 내려가고 동쪽으로는 비선대로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출입통제 구간인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마등령의 전망대에 서면 맞은편에 천화대의 만상의 기봉들이 비로毘盧의 몸짓으로 치솟아 화려한 불꽃처럼 타오르며, 그 너머에는 화채능선의 빼어난 기봉들이 쏟아져 내릴 듯 조망된다. 동편 산자락에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솟은 봉우리 하나가 존귀한 석가세존의 세존봉이 떠오른다. 이 세존봉은 설악동 소공원 입구에 서면 그 맞은편 저멀리 조망된다. 어디서 보든 풍광의 극치요, 미의 극치다. 하지만 어쩌라. 하늘이 열리지 않는 것을…….

 



*좌측 암봉이 미륵봉(장군봉)이다. 그 중턱에 신라의 원효대사가 수도한 금강굴이 자리한다.*


자욱한 운무를 걷어내며 꿈길을 걷듯 비선대를 향하여 걷고 또 걷는다.

 

눈앞에 금강굴 이정표가 나타난다. 금강굴은 신라의 대승 원효가 참선을 수도한 동굴로 유명하다. 산행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쩌랴. 밀물처럼 밀려오던 오늘의 아쉬움을 아름다운 아쉬움으로 오래오래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었다. 산을 찾는 일 중의 하나는 나를 돌아보기 위함일 게다. 내 나이 언 머리 허연 예순 하나다. 그간 이순(耳順)의 세월을 물신숭배의 이데올로기를 좇아 자본이란 휘황한 광채 속에서 탐욕과 욕망의 덫에 걸려 살아왔다. 아직도 그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저 산이 무욕無慾이듯, 내 역시 동양화의 그윽한 여백의 미를 마음 한 켠에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한 목숨 땅에 지고 가는 길은 어쩌면 "비움(空)"에 그 본질이 있는지도 모른다.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치요. 그 이유가 아닐까. 화려하게 핀 한 송이 꽃이 벌과 나비를 그토록 유혹하여 씨방을 맺으면 처연한 모습으로 지듯, 어쩌면 그 처연한 모습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삶의 순리를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윽고 비선대 아치교에 들어서니 숱한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마소신선이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비선대와 미륵봉은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보더니, 다시 오라는 듯 지친 내 등을 토닥이고, 지친 내 어깨를 스다듬는다.*


 


그 찬란한 시간을 걸으며, 설악산 공룡능선 길, 2019.07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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