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시 간 의 흔 적 들 ~

한 해가 소멸로 사라지는 길 위에서, 월악산 영봉 산행

작성일 작성자 북을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 매큼하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따라 행려의 길을 나선다. 

 

어느 해 겨울,

청풍 호반의 눈 덮힌 언 물길을 휘돌아갈 때, 하얀 눈을 이고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설산의 월악산 영봉靈峰은 눈이 부셨다. 

하오의 겨울 햇살에 빛나는 영봉은 찬란한 백설의 왕관을 쓴 듯 그 화려함에 눈이 시렸다.

차문을 밀고 매운바람 속에서 아득하게 빛나는 영봉을 우러러 보니, 아련한 슬픔이 지그시 밀려왔다.

 

그 때가 내 불혹의 나이였다.

 가을볕 야윈 그림자 쓸쓸히 안고 허허로운 벌판을 흔들리며 건너갈 때, 

그 쓸쓸하고 허한 가슴 달랠 길 없던 나는 주말이면 이 산, 저 산, 떠도는 바람처럼 떠돌아 다녔던 것이다.  

 

나는 지금 아련한 슬픔이 밀려왔던, 그 영봉의 품에 들기 위하여 한 해가 소멸로 사라지는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월악산 후청골에 발을 딛는다. 

 

밤새 하얀 눈발로 뒤덮힌 산자락의 겨울 한기가 온 몸에 바늘처럼 파고든다.

배낭을 둘러메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허리가 굽고 주름이 깊이 폐인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 드렸더니,

"혼자서 산에 가면 안 돼, 하신다. 산짐승이 사나워 마을분이 다리를 다쳐서 119에 실려 갔어, 위험 해, 가지마!“ 하셨다. 

한세상 저문 촌로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너진다.

 

" 걱정마세요, 할머니, 괜찮을 거예요"  손을 잠시 잡아 드린 뒤, 길을 재촉한다.

저만치서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노심초사 자식 배웅하듯 지팡이를 집고 내내 보고 계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어머니"란 그 낱말이, 이 겨울 산길에서 한없이 아늑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매큼한 겨울 한기를 뚫고 비좁은 된비알 길을 자박자박 걸어 간다.

 

저만치 산자락에 둥지를 튼 보덕암寶德庵이 눈에 든다. 

이 암자는 신라시대 왕리조사가 보덕굴에서 수행한 연유에서, 1918년에 축조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하는 참선도량이다.

 

비탈진 경내에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다.

겨울 암자는 죽음처럼 깊은 정적에 내몰린 채, 고샅을 훑어온 차가운 바람만 훑어지나 간다.

누런 황구 한 마리가 행려의 객을 수상하게 여겼는가. 컹컹 짖는다. 개 짖는 소리에 갑자기 한쪽 산모퉁이가 쩌렁쩌렁 흔들린다.

 

 대웅전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늙은 중이 폐를 앓는 듯 쿨럭이고 있었다.

댓돌 위엔 털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쿨럭이는 그 소리는 곧 숨이 넘어갈 듯 목구멍을 쥐어짜고 있었다.

오늘도 병이 깊어 방황하는 늙은 구도자는 열반의 영지에 향불 피워, 한평생 부처를 가슴에 안고, 손에 쥔 염주를 닳도록 굴리는데,

대웅전의 본존불과 약사여래불은 지그시 눈을 감고 세사를 달관한 듯 굽어보고만 있지 않은가. 

 

대체 말없는 저 부처는 무엇이며, 

앓는 폐를 움켜쥐고, 한 목숨 다 하도록 염주를 굴리는 늙은 수행자는 또 무엇이며, 

그 모습 가만히 지켜 보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모호한 안개 속 같아, 허전한 바람 한줄기 가슴을 스친다. 

  

 

 


보덕암을 뒤로 할 때, 저 덕(德)자가 눈에 든다.

 

“덕(德)”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교리의 근본이며, 종교의 본질을 지향하는 행위의 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저 덕(德)자는 인류를 구하는 마지막 구원의 용어 중의 하나로 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천 년 전 왕리조사가 수행했다는 보덕굴로 걸음을 옮긴다.  

 

  

 


암자 뒤편에 자리한 보덕굴은 암벽으로 둥그렇게 형성된 천연 동굴이었다.

 

동굴 안쪽엔 약사여래상이 봉안돼 있고, 바위 틈새를 흐르는 석간수는 천 년 전 그대로가 아닐까 싶었다.

동굴을 둘러보니 범속凡俗을 벗어나 산짐승 우글거리는 먹을 것이 궁벽했을 이 깊은 동굴에서

어떻게 수행의 길을 걸었을까 싶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하나 “목숨” 걸어놓고 고행의 길을 걸었을 고승이, 얄팍한 이 속인의 할 말을 모두 삼켜버린다.

 

  

 

 

*시루떡 바위*

 

 

 

 


암자 좌측 옆 산문을 따라 하봉으로 향한다. 

 

하얀 눈이 두터운 떡가루처럼 쌓여있다.

 하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된비알은 숨 막히게 이어지면서, 월악산이 중원의 맹주란 카랑한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은 채, 하늘로 치솟는 사다리 길은 몸을 숨겼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허연 콧김 뿜으며 밭갈이 하는 황소처럼 우직하게 오르니, 영하의 날씨에도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드디어 시루떡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눈 쌓인 길이 점점 미끄럽고 위험해, 아이젠 착용을 위해 잠시 배낭을 내리자,

온 몸에서 가마솥처럼 하얀 김이 무럭무럭 난다. 다운을 벗으면서 그 냄새를 맡아보니, 은은히 구수한 내음이 베어난다.

내 몸이 건강하다는 푸른 시그날이 아닐까 싶다.

 

 

 

 

*능선의 꼭지점, 하봉의 모습*

 

 

 

 

 


 


 


이윽고 전망대를 거쳐 하봉에 도착한다. 충주호가 한 눈에 든다.

 

어느 해, 가을 이곳에 발을 딛었을 때, 충주호의 물줄기가 내륙의 푸른 보석처럼 가슴으로 밀려와 물이 들었는데,

달을 적시고, 별을 적시며 은하처럼 흐르던 그 푸른 담수호의 정경은 어디로 가고,

 탁한 대기에 우울한 구름까지 몰려와 울먹울먹 한다.

 

그 풍경을 보노라니, 

단 하루도 양명한 날이 없는 이 나라의 뼈아픈 현실을 보는 듯, 안타깝다.

 

망국 조선의 몹쓸 사색당파의 신神  내림을 보듯, 파당의 패거리를 지어 오늘도 오로지 권력욕에만 눈이 멀어,

말끝마다 얄팍한 꿀을 발라, 사사건건 초를 치고, 세상의 축을 뒤흔드는 능멸할 자들,

 

참으로 가슴을 치는 구려,

참으로 가슴을 뚫는 구려.

 

짐승처럼 으르렁 거리며 독한 살기의 이빨을 뽑아대는 저런 자들을 모조리 이리로 끌고 와야 한다. 

 

포승줄에 묶어서, 이 숨 막히는 겨울 산 능선으로 끌고 와서, 발길질 하며, 맨발로 설산을 오르게 해야 하리.

목이 타고, 피가 타고, 그 뼈가 타도록 오르게 해야 하리.

그리고 입을 벌리고, 소금을 퍼 넣어야 하리.

그리곤 염장鹽藏을 해야 하리.

 

그래야 유토피아의 세상이 열리리라.

 

하봉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말뚝처럼 박혀 있으니,

어느 새 볼이 얼어터질 듯, 온 몸엔 묵직한 통증이 온다. 중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 하봉에서 중붕으로 이어지는 날선은 두 발바닥 딛는 곳마다 천길 단애斷崖다.

 

한 발자욱만 삐끗하면 외마디만 남긴 채, 산천의 떠도는 고독한 별이 될 법하다.

저 천길 단애를 보니, 문득 사람 목숨도 순간瞬間일 것 같다는, 아슬아슬한 생각이 벼랑 끝에 스친다.

생이란, 어쩌면 윤회의 바퀴에 실려, 이 산 능선을 무시로 넘나드는 바람처럼 왔다가는 것, 가면 오고, 오면 가는, 바람같은 것이,

우리네 삶이고, 이 목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이 가파른 산길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생은 풀잎 위의 이슬방울, 햇살 한줄기 비쳤는가 하면, 어느덧 황혼이 깃든다.”

뛰어난 서정성으로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하며, 미학의 극치를 완벽하게 이루었다는 그가

우리의 긴 인생 역정을 풀잎 위의 반짝이는 이슬방울로 함축하였다.

삶을 영롱한 이슬방울로 간결하게 함축한 그도 끝내 풀리지 않는 이 삶, 이 생의 길목에서, 못다한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한 목숨 뒤에,

세상의 숨겨진 모든 참과 거짓과 진실이 오롯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 

 

 

*중원의 맹주, 월악산 영봉靈峰*

 

 

 

 


이윽고 중봉에 선다.

 

골골이 훑어온 모진 삭풍이 칼날을 휘두르는 듯 휘몰아친다.

산정 저멀리,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자태의 늠름한 월악의 영봉靈峰이 백두대간을 이으며, 굽이굽이 흐르는 남한강을 품은 채,

해탈解脫한 성자처럼 우뚝 솟아 있다.

 

해탈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아마 저 모습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넋을 뽑아 한참을 우러러 보니, 운무가 천리향처럼 신비롭게 나타나 영봉의 용안을 휘감아 가린다.  

사방을 둘러보니, 설한이 뻗친 겹겹 설산의 능선들이 숨 막히게 이어진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매운 날씨 탓일까.

 

그냥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 이제 돌아가자.

영봉을 알현하였으니, 하산 길에 들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원점으로 회귀한다.

 

 

 

 

 

 

 

 

 

  

 

 

 

 

 

 


뒤돌아보는 겨울산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알몸으로 서 있다.

 

모진 인고忍苦의 세월을 맨몸으로 견디며, 담담하고 맑은 정신의 뼈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저 겨울산은 진솔하다. 어쩌면 生(생)의 가장 솔직한 모습도 저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점점 멀어지는 거대한 설산의 영봉은, 영원永遠을 지긋이 물고,  바람처럼 이슬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행려의 객을 굽어보고 있다.

 

내 언젠가 이승을 떠나는 날,

이 한 줌 육신을 저 산기슭, 生(생)의 가장 진솔한 곳에 뿌리고, 영면에 들리라. 그렇게 하리라…….

생각하며, 복잡다단한 세상 속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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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는 丁酉年, 볏 붉은 닭띠의 해입니다.

어둠을 걷어내고 새벽을 부르는 닭은, 희망과 광명을 상징합니다.

수탉의 붉은 볏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고, 암탉의 알은 자손 번창을 의미하므로,

올 한 해도 우리 모두의 가정에 어둠을 걷어내는 저 붉은 닭의 기운이 넘쳐서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염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천 월악산 영봉 길에서, 2016.12.31._ 북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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