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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1606~1669)

작성일 작성자 溪巖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20) :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1606~1669)

영적(靈的) 세계를 표출(表出)

천사 앞에서 뒷걸음질치는 당나귀

THE ASS BALAAM BALKING BEFORE THE ANGEL
1626년 板 油彩 65×47Cm
파리 코냑 제이 미술관 소장

라이덴 시대의 렘브란트의 가장 초기에 속하는 작품의 하나이다. 1624년,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의 고전주의적 역사화가(歷史畵家) 라스트만에게 6개월 동안 사사 (師事)했으며 그곳에서의 수업에서 기초적인 회화기법, 즉 정통적인 화면 구성, 입체적 인체 표현, 정밀한 세부묘사, 무리없는 채색법(彩色法) 등을 익혔다. 이 작품에서는 그와 같은 영향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나, 이미 수업기(修業期)를 지난 렘브란트의 독특한 면모가 약동하고 있다. 즉, 그는 주어진 주제를 하나의 회화작품(繪畵作品)으로 구성할 때, 이야기의 설화적(說話的)인 도식(圖式)을 피하고, 화가 자신이 그 장면의 목격자인 것처럼 리얼하고 직접적인 표현 방법을 추구한 것이다. 천사에게 길을 가로 막혀 주저앉은 당나귀를 채찍질하는 발람에게서 어쩌면 화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자화상

SELF FORTRAIT
1628년경 板 油彩 23.4×17.2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63년이라는 길지도 않은 생애에 약 60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겨 놓고 있다. 이 방대한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서양 회화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굳이 비길 만한 예를 찾자면, 짧고도 비극적인 생애를 산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호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자기 응시의 화가,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치는, 내향적이자 인간의 정신적 갈등에 남달리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렘브란트에게 있어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편력(遍歷)을 더듬는 이정표(里程標)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연대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자화상과 비교하여 1628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렘브란트의 가장 젊은 날의 초상화이다.

자화상

SELF FORTRAIT
1629년경 板 油彩 37.9×28.9Cm
헤이그 마우리리치하이스 왕립 미술관 소장

토론하는 두 철학자

TWO SCHOLARS DISPUTING
1628년 板 油彩 71×58.5Cm
멜버른 국립 갤러리 빅토리아 소장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그 주제가 어떠한 것이었든, 이 그림은 라이덴 시대에 있어서의 명암의 대비가 강조된 카라바지오풍(風)이 농후한 작품의 하나이다. 네덜란드에 있어서의 카라바지오의 영향은 매우 강력한 것이 었으며, 그것이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은 대조적인 두 인물을 매우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으로 그린다는 모티브, 두 번째로는 인물의 표현이 규범적인 미(美)의 표현이라는 고전주의적 전통에서 완전히 이탈되어 여기에서의 노후의 모습 그 자체가 강조되어 있다는 것, 세 번째로는 명암의 대비로서 대립되는 화면의 인물과 기타의 사물들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렘브란트는 주제의 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다가선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한탄하는 예언자 예레미야

THE PROPHET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TION OF JERUSAEM
1630년 板 油彩 58×46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1630년을 전후해서 노인의 단독상(單獨尙)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며, 모델은 그의 부친으로 생각되고 있다. 렘브란트의 라이덴 시대는 유채 기술의 훈련기이며, 앞의 작품과 함께 이 작품 또한 그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암굴에서 부각되는 인물, 금속 용기의 반짝임, 묵직한 포목(布木)의 질감(質感)등, 이 모두가 20년대의 생경(生硬)한 광택 (光澤)과는 달리, 은근히 가라앉은 색채 속에 오히려 광채를 빛내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물론 성서에서 취한 것이나 이 그림과 일치되는 기술(記述)은 없다. 렘브란트가 그 주제를 자유롭게 해석한 것으로 보이며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의 불운(不運)을 알고 있던 예레미야는 아직도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행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여자 예언자 한나(렘브란트의 모친)

THE PROPHETESS HANNAH(REMBRANDT'S MOTHER)
1631년 板 油彩 60×48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모친은 라이덴의 빵 제조업자의 딸로서, 1589년에 같은 시(市)의 밀가루업자 하르멘, 즉 렘브란트의 부친과 결혼했다. 그녀의 집안은 라이덴에서도 이름난 가톨릭 신자 가족이었으며, 렘브란트도 모친을 통해 종교적 관심을 깊이 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또 이 작품에 그려진 여인이 모친이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으나, 그것이 여자 예언자 한나 인가에 대해서는 확증이 없다. 어쨌든 이 작품은 라이덴 시대에 렘브란트가 도달한 고도의 유채(油菜) 기술의 숙달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골똘히 책을 읽고 있는 노부(老婦)의 얼굴이며, 책장을 누르고 있는 주름살진 손등의 가식(假飾)없는 사실적 묘사를 통해 노모의 진정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책장에 비쳐진 광선(光線)효과는 아직도 카라바지오풍의 것이다.

사스키아

SASKIA
1633-4년경 板 油彩 99.5×78.8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이 그려질 무렵,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따라서 주문도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한 주문 초상화 제작 틈틈이 그는 아내 사스키아의 초상화를 적어도 10 여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상화 모두가 화사한 의상과 모자,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초상화에서 렘브란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창출한 가장 이상적인 여자의 프로필상(像)인 폴라이우올로의 <婦人像>에 필적할 만한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어두운 바탕 위에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옆얼굴, 정교한 착색(着色)에 의한 의상과 장신구의 리얼한 질감(質感)의 표현 등, 여기에서는 렘브란트가 이제까지 습득한 기법적인 완숙함이 구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사스키아를 통해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시키려고한 것이다.

베일을 걸친 사스키아

SASKIWITH A VEIL
1633년 板 油彩 66.5×49.7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라이덴에서 다시 암스테르담에 나타난 렘브란트는 그 곳 명문의 딸 사스키아와 1633년에 약혼, 이듬해 결혼한다. 이 사스키아상(像)은 약혼 시절의 작품이다. 양가집의 딸 답게 사스키아는 머리로부터 어깨까지 베일을 걸치고 있고, 또 머리, 귀, 목에는 진주가 걸려 있다. 그 밖에도 금빛 레이스가 달린 화사한 의상과 호화로운 장신구,그러나 이와 같은 치장은 오히려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사스키아의 대담한 눈매와 믿음에 찬 표정이 오히려 이 모든 장신구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바야흐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떨쳐 가는 렘브란트가 다시 뜻하지 않게 명문과 미를 겸비한 여성을 얻게 된 기쁨이, 사스키아의 모습을 통해 넘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로부터의 降下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33년경 板 89.4×65.2Cm
뭔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은 그리스도 수난전(受難傳) 연작 다섯 작품 중의 두 번째의 것이다. 이 연작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降下>, <승천>, <매장>, <부활>의 5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연작의 완성에 7년이 필요했다. 이 7년에 걸친 그리스도 수난(受難) 연작을 통해서 렘브란트가 추구한 것, 그것은 바로 생동하는 인간의 내면적 감동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감동의 표현을 그는 일단은 극적인 명암의 대비로 포착했고, 인물의 자태와 배치에 있어서의 동세(動勢), 그리고 테마 자체가 지니는 비극성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단출한 화면 구도 속에 압축시키고 있다. 이그림은 아마도 동시대의 바로크 회화(繪畵)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을 의식해서 그려진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승천

THE ASCENSION OF CHRIST
1636년 캔버스 油彩 92.7×68.3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른바 <昇天圖>는 <성모 승천>이 관례적인 것이다. 렘브란트는 이 <승천도>도 그발상(發想)의 원천은 멀리는 티지아노의 <성모 승천>, 가깝게는 루벤스의 같은 주제의 작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이들 그림에서의 성모 마리아를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모 승천>이라는 테마는 바로크 화가들이 즐겨 다루어 온 테마이다. 구름을 끼고 신비로운 햇살이 번지는 하늘, 그것을 떠받치는 천사들, 그것들에 휩싸여 찬란한 빛에 싸여 승천하는 마리아, 이는 장려함과 사실적인 면에서도 유동성을 잃지 않는 바로크 회화의 안성 마춤인 화제(畵題)인 것이다. 1630년대의 렘브란트는 그의 화력(畵歷)에 있어서도 가장 바로크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때이며 그 바로크적 경향이 성모 승천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1639년경 布 板 油彩 91.9×67Cm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이 작품에 대해서 렘브란트 자신이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고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표현에 대한 해석이 또한 엇갈린다. 즉, 문자 그대로의 화면에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뜻한다는 해석과, 반대로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내면적인 감정의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 그림의 장면은 떠들썩한 혼란의 상태로 그려져 있다. 무장한 경비인 들은 놀란 나머지 갈피를 잃고 있고, 반면에 부활하는 그리스도는 화면 한 모퉁이에서 서서히 신성한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화면 중앙 전체를 밝히는 천사의 부름에 오히려 슬픔에 잠긴 듯한 그리스도와 부활에 놀라 허둥지둥 하는, 이 고요와 떠들썩함의 대비, 이 드라마는 바로 화가 자신의 종교적 심성(心性)의 표현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가니메데스(미소년)의 납치

THE ABDUCTION OF GANYMEDE
1635년 캔버스 油彩 171×130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니메데스는 미소년(美少年) 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제우스는 그를 독수리를 시켜 납치케 하여 올림퍼스 산에 데려오게 한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미소년으로 그려져 온 가니메데스를 렘브란트는 왜 그처럼 공포에 떠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이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신화(神 話)에서 테마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한낱 신화적인 세계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현실의 한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독수리에 채여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애의 스케치를 남겨놓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이 그림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신화의 단순한 서술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의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특히 163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폭풍을 머금은 풍경

STORMY LANDSCAPE
1638년경 板 油彩 52×72Cm
브리운쉬바이크 안톤 울리히侯(후)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풍경화는 1630년대 후반에서부터 50년대 전반에 걸친 약 20년 사이에 그려지고 있다. 소묘가 약 250점, 에칭 24점 그리고 유화 17점에 달하는 풍경화는 그다지 많은 작품 수는 아니나 렘브란트의 예술적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 그 이유는 자연의 묘사가 그로 하여금 회화 표현상 및 심리 표현상에 있어 새로운 경험을 얻게 하고, 또한 넓이 있는 공간과 아울러 외광의 문제에까지도 눈뜨게 했기 때문이다. 이 <폭풍을 머금은 광경>은 일종의 상상풍경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한 순간의 반짝이는 양광(陽光)으로 언덕 위의 마을이 환하게 물들여져 있다. 그러나 그 양광은 명멸하며 먹구름과 양광 하늘과 대지의 화면에 넘치는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이 그림에 신비감마저 부여하고 있다.

선술집의 방탕아

THE PRODIGAL SON IN THE TAVERN
1636년경 캔버스 油彩 161×131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해석이 내려지고 있다. 그 해석을 대별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 렘브란트의 신혼 생활의 행복한 모습을 그린 것. 둘째, 성서(聖書)에 나오는 방탕아의 역할을 스스로 연기하고 있는 렘브란트와 사스키아 부부. 셋째, 자만심에 대한 경종의 우의(愚意)가 담긴 것. 그러나 그와 같은 해석은 어찌 됐든 이 작품은 렘브란트 자신과 사스키아를 모델로 한 다분히 우의적인 2인 초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그림에서는 의기 양양한 렘브란트가 사스키아를 무릎 위에 앉히고 이쪽을 향해 술잔을 높이 들고 있다. 그리고 왼쪽 탁자 위에는 공작이 놓여 있다. 네덜란드의 도덕적 우의(寓意)에 의하면 술잔은 호의호식을, 공작은 오만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렘브란트가 차고 있는 칼도 그 때의 신분으로서는 허용되지 않은 것이었다.

삼손의 혼례식

SAMSON POSING THE RIDDLE TO THE WEDDING GUESTS
1638년 캔버스 油彩 126×175Cm
드레스덴 국립 회화관 소장

혼례식 축하연에 초대된 신부 데릴라의 친지들에게 삼손이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 대해 당대의 한 문필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주제에 담겨진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대인들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의자에 앉지 않고 대신 자그마한 침대를 사용했다. 한번도 깎아 본 적이 없는 장발의 삼손은 그 손짓 등으로 미루어 열심히 수수께끼를 묻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 그림이 삼손의 혼례식 축하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삼손이 아니라 신부이다. 그림의 거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부는 강한 광선을 온 몸에 받으며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그녀는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전체 화면에서 고립되어 있는 듯하며 동시에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王의 편지를 든 밧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
1654년경 캔버스 油彩 142×14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구약성서에서 주제를 따온 작품으로서 다윗의 아내가 되라는 사자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으나, 동시에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두려워하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종단에는 다윗을 배반해야 하는 운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누드화이기는 하나 렘브란트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밧세 바의 마음의 갈등을 그려내는데 있었다. 작품의 구도 자체는 고대의 부조(浮彫) 작품을 묘사한 동 판화에서 빌어 온 것이기는 하나 그 구도 이상으로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이 밧세바의 얼굴 표정이었다. 요컨대 렘브란트는 고대의 구도 원리에 따르면서 그것을 그의 고유한 비극적 드라마로 묘출(描出)한 것이다.

목욕하는 수잔나

SUSANNA SURPPISED BY THE ELDERS
1637년경 板 油彩 47.5×39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목욕하는 수잔나>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이래 즐겨 다루어진 테마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나체의 수잔나와 그것을 숨어서 바라보는 두 장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는 두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 희미하게 한 장로의 얼굴이 보일뿐이다. 정원에서 막 목욕하려는 수잔나는 인기척에 놀라, 놀라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풍만하고 싱싱한 육체가 햇볕을 온 몸에 받고 하나의 광선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작품이 그려지기 일년 전 렘브란트는 역시 여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제작한 '다나메'를 그리기도 했거니와, 이 작품 역시 나부(裸婦)에 대한 관심에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성가족(聖家族)

THE HOLY FAMILY(WITH ANGELS)
1645년 캔버스 油彩 117×91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聖家族>의 주제를 소묘, 에칭, 유화에서 줄곧 되풀이해 그렸다. 1630년 초기에는 다분히 루벤스풍의 성화(聖畵)를 연상시키는 것이었으나, 40년대 후반기의 이 작품은 종교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밀한 일상적 가족의 정경을 그린 것처럼 느끼게 한다. 1642 년, 사스키아의 사후(死後) 헨드리키에가 렘브란트가(家)에 들어와 자리잡는 40년대 말까지, 렘브란트는 가정적으로 매우 불우했다. 그 까닭에 그는 한층 더 가정적인 행복이라는 테마에 이끌렸던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모친은 자애로운 눈길을 갓난아기에게 돌리고, 뒤켠에서는 요셉이 목수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왼쪽 위로부터 천사가 날아 내려오고 있음으로 해서 이 일가가 성가족(聖家 族)임을 나타내고 있다. 어린 그리스도의 오른팔, 성모의 책과 얼굴, 내려오는 천사들에게 비쳐진 광선 효과의 연결은 괄목할 만하다.

창가에 앉은 소녀

YOUNG GIRL LEANING on A WINDOWSILL
1645년 캔버스 油彩 77.5×62.5Cm
런던 덜리치 대학 미술관 소장

한 마디로 렘브란트의 작품치고는 예외적으로 청순 담백한 그림이다. 두 팔 굽을 창가에 기댄 채 약간 경계하는 듯 수줍어하는 눈매로 이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 이 그림의 테마로 보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비상하게 성행한 풍속화(風俗畵), 즉 일상적인 생활 정경을 화폭 속에 담는 풍속화의 카테고리에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정경 설정의 일상성보다는 모델(모델을 헨드리키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성립되지 않는다)을 바라보는 화가의 날카롭고도 정감어린 눈이며,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하나의 초상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그림은 기묘하게도 18세기의 화사한 로코코풍의 화가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었으며, 이 또한 렘브란트의 작품 가운데서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에마오의 그리스도

THE RISEN CHRIST AT EMMAUS
1648년 판(板) 유채(油彩) 68×65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같은 주제의 작품으로서, 1630년경의 라이덴 시대의 작품과 이 작품 2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의 차이가 바로 그간의 렘브란트 예술의 변화를 일목 요연하게 보여준다. 라이덴 시대의 극적인 구도(構圖)와 자세 및 명암법은 사라지고 차분히 가라 앉은 색채와 안정된 구도로 변했는데, 은밀하면서도 위엄에 찬 이 작품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화면 약간 왼쪽에 정면으로 앉아 바야흐로 빵을 쪼개려 하고 있다. 그 그리스도의 모습은 탁자 위의 흰 식탁보, 자신의 후광(後光), 그리고 뒤의 벽면의 어두움으로 한층 부각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보여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라이덴 시대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숭고하고 자애에 찬 그리스도이다. 렘브란트의 종교화(宗敎畵)의 일대 전환을 가져온 한 작품이 아닐는지...

폐허가 있는 강 풍경

RIVER LANDSCAPE WITH RUINS
1650년경 판(板) 유채(油彩) 67×87.5Cm
카셀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풍경화 중에서도 후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의 풍경화가 상상적 풍경화이자 바로크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면 보다 실경(實景)에 접한 보다 현실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 후기의 풍경화이다. 렘브란트는 40년대 초기부터 소묘, 에칭을 통해 자연 실사(實寫)를 매우 활발하게 시도하였다. 따라서 후기의 유채 풍경화는 그와 같은 실경사생(實景寫生)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에서도 아직까지 상상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풍경 구석구석에서 자연에 밀착(密着)된 보다 높은 현실감이 감지된다. 이 그림은 초기의 극적이고 바로크적인 풍경화에서 차츰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조(觀照)하고, 나아가서 인간 생활을 포함한 보다 보편적인 자연 표현의 전환을 보여주는 풍경화이다.

목욕하는 여인

A YOUNG WOMAN BATHING

1655년 板 油彩 61.8×47Cm

런던 국립 미술관 소장

헨드리키에 스토펠스

HENDRICKJE STOFFELS
1654년경 캔버스 油彩 72×60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는 아들 티투스를 낳은 후 1642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그 후 두 여성이 티투스의 보모이자 가정부로 렘브란트의 생활에 등장하며 헨드리키에는 그 두 번째의 여성이다. 그녀가 언제부터 렘브란트 가정에 들어섰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654년 그녀는 렘브란트와의 사이에 생긴 딸 코르넬리아를 낳는다. 그 후 그녀는 티투스를 키우고 경제적인 곤경에 빠진 렘브란트를 도우며 때로는 모델이 되기도 하면서 50년대 이후의 렘브란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여성이 되었다. 헨드리키에의 초상화로 확인된 작품은 한 점도 없으나 50년대의 작품 중 적어도 10여 점이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초상화는 사스키아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

THE ANATOMY LESSON OF DOCTOR JOAN DEYMAN
1656년 캔버스 油彩 100×134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출세작이랄 수도 있는 <툴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이후 거의 25년만에 그는 다시 같은 주제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25년이라면 4반세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아마도 그 동안의 렘브란트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안성 마춤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작품 역시 원화의 3분의 1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화를 입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한 여러 가지 소묘로 미루어 보건대,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좌우대칭 구도이고 또, 특히 해부되는 시체의 대담한 단축법(短縮法) 처리이다. <툴프 박사> 의 경우, 시체는 대각선으로 다시 말해서 모로 누워 있는데 반해 이 그림에서는 시체의 머리와 발이 한 시각(視覺) 속에 단축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투시법 기법의 의식적 도입이라고 할까.

도살된 소

THE SLAUGHTERED OX
1655년 板 油彩 94×67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어쨌든 이 작품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그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들라크로아가 이 그림을 모사(模寫)했고, 도미에는 이에 자극받아 <푸줏간> 연작을 제작했다. 그들은 이 작품을 낭만주의적 사실주의의 핵(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수틴도 이 작례(作例)에 자극받아 <도살 된 소>의 연작을 제작했으며, 그에게 있어 그것은 표현주의적 작품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그 추한 테마에도 불구하고 그 힘찬 필촉에 의한 색채와 리얼한 표현이 후대의 몇몇 화가를 사로잡은 것이다. 한 마디로 이그림은 렘브란트의 리얼리티의 탐구와 회화적 및 색채적 표현에 있어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화상

SELF PORTRAIT
1640년 캔버스 油彩 102×80Cm
런던 국립 갤러리 소장

렘브란트 34세 때의 초상화이다. 이탈리아 풍의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베레모를 쓰고 의연히 앉아 있는 모습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화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화풍으로 보아 이 작품의 중요성은 그것이 렘브란트의 이탈리아 회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있다.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이탈리아 땅을 밟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네덜란드에서도 이탈리아 회화에 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리고 이 자화상이 바로 네덜란드에서 본 이탈리아의 두 거장, 라파엘로와 티지아노의 작품에서 촉발되어 그려진 작품이다. 사실 렘브란트는 4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로크에서 탈피하여 고전적 세계의 전환의 징후를 보이며 그 경향이 이작품에서도 눈에 뜨인다. 그러나 그는 고전을 본뜨면서도 자기 자신의 표현에 귀착하고 있다.

안슬로 부처(夫妻)

THE MENNONITE MINISTER CORNELIS CLAESZ ANSLO IN CONVERSATION WITH HIS WIFE
1641년 캔버스 油彩 176×210Cm
西베를린 국립 미술관 회화관 소장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그 후 연이어 수많은 초상화의 주문이 뒤따른다. 그 주문자 중에는 학자, 성직자, 의사, 거상(巨商) 등이 끼어 있었다. 성직자 안슬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도 비록 집단(集團)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부부를 같이 다룬 2 인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2인상은 이미 <토론하는 두 철학자>, <철학자와 그의 아내>(1633) 등에 서도 다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화풍과 양식(樣式)에 있어서의 커다란 차이가 보여진다. 여기에서는 극적인 제스처는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당당한 품격의 안슬로와 고즈넉한 아내의 자태는 오히려 렘브란트의 시대, 즉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성하고 아늑한 부르조아적 실내화(室內畵)를 연상케 한다.

유태인의 신부

THE JEWISH BRIDE
1655년경 캔버스 油彩 121.5×166.5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애초에 이그림의 제목이 <유태인의 신부>였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이 일반화된 제목의 유래는 '유태인의 신부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라는 해석에 의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성서(聖書)의 이야기가 깔려 있을 수는 있으나, 언제나 처럼 그 이야기가 서술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여러모로 보아 이작품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야 어떻든 화면 전체에 풍기는 엄숙함, 즉 인간 본연의 사랑의 엄숙함이 배어 있으며, 이를테면 성서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실제의 인물과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이 작품은 어떻게 생각하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十戒의 석판을 깨는 모세

MOSES WITH THE TABLE OF THE LAW

1659년 캔버스 油彩 168.5×136.5Cm

西베를린 국립 미술관 소장

어느 가족

A FAMILY GROUP
1688-9년경 캔버스 油彩 126×167Cm
브라운 쉬바이크 안톤 울리히侯 미술관 소장

여기에 그려진 가족이 어느 가족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렘브란트의 최만년 (最晩年)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면모에도 해석이 구구할 수밖에 없다. 굳이 인물을 식별하자면 오른쪽의 모친은 티투스의 미망인과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 왼쪽의 꽃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는 코르넬리아, 기타 인물들은 렘브란트 일가(一 家)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그 테마보다도 여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색채가로서의 렘브란트의 진면목(眞面目)이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큼직한 터치로 겹쳐지는 색조의 층은 그 층을 겹할수록 광휘를 발하며 그것이 엮어내는 미묘한 음영의 대비는 렘브란트가 명암의 대비에서, 그것이 주는 정신적 또는 회화적 드라마를 거쳐 이제 색채의 조화라는 완숙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호메로스

HOMER DICTATING TO A SCORIBE
1663년 캔버스 油彩 108×82.4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1650년대와 60년대 초에 걸쳐 고대의 인물을 다룬 3점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호메로스, 알렉산더 대왕,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인물을 다룬 것이다. 그 중의하나인 이 작품은 원래 <두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호메로스>를 테마로 한 것이나 화재로 인한 작품의 파손으로 나머지 부분이 잘라져 나가 오늘의 단 신상(單身像)으로 남았다. 여기에 그려진 호메로스는 장님의 호메로스이다. 렘브란트는 이 장님의 테마를 즐겨 다룬 화가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외적 세계보다도 내면적 세계의 광휘를 바라보는, 보다 깊이 있는 정신세계의 눈뜸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로 볼 때 이 호메로스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바꾼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화상

SELF PORTRAIT
1657년경 板 油彩 49.2×41Cm
비인 미술사 발물관 소장

작품에는 제작 연도가 적혀 있지 않으나, 1657년 작 이라는 연대 추정이 확실하다면 이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나이 51세의 것이다. 이미 여기에서는 젊은 날의 패기는 없으나 대신 당당한 원숙기의 한 화가의 모습이 유감없이 묘출(描出)되고 있다. 얼굴이며 어깨 부분이며 다같이 불굴의 의지에 넘쳐 있고 인간적인 시련을 겪은 한 인간의 의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사실 1656년은 렘브란트가 파산 선고를 받은 해이다. 그러한 경제적인 역경과 이에 따르는 갖가지 어려움을 렘브란트는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이 초상화는 극복의 의지가 정력적으로 보이는 마지막 초상화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후의 초상화에서는 노경(老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어느 전문가에 의하면 이 초상화가 그려진 이후의 렘브란트는 급속하게 늙어갔다.

플로라 모습의 헨드리키에

HENDRICKJE AS FLORA
1656-7년경 캔버스 油彩 104×9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를 모델로 한 플로라상(像)을 3점 남기고 있다.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플로라상은 이들 전작(前作)과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비교가 되며 때로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대조는 한 마디로 <사스키아像>은 화려하게 치장된 이상화된 아내의 모습이요, 오히려 화려해야 할 이 그림의 플로라상은 검소하다는 데 있다. 이 대조는 비단 이 두 여성의 개성과 취향의 차이에서 왔다기보다는 그 동안에 보다 심화된 렘브란트 자신의 여성에 대한 비전의 변화에서 결과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양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두운 바탕에서 선명하게 부각되는 정밀 묘사의 효과 대신 여기에서는 인물의 그늘이 배경에 희미하게 투영(投影) 되고, 또 의상의 처리 역시 덤덤한 터치로 다루어지고 있다.

책상에 앉은 티투스

TITUS AT HIS DESK
1655년 캔버스 油彩 77×63Cm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뷰닝겐 미술관 소장

14세 때의 티투스의 모습. 사스키아와의 사이에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먼저의 세 자녀는 모두 어려서 사망), 그 역시 렘브란트가 죽기 바로 1년 전인 1668 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이 작품은 아들 티투스의 첫 초상화이다. 큼직한 검은 눈의 이 소년의 모습은 자주 렘브란트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어린 티투스는 책상 위에 종이를 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펜을 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볼에 짚고 무엇을 그려야 할까 하고 궁리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티투스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공부를 해 왔다. 그림 공부에 한창인 아들의 모습을 렘브란트는 애정어린 눈으로 포착한 것이리라. 어린 소년의 생생한 표정의 묘출(描出)과 함께 대담한 구도와 역시 덤덤한 터치에 의한 정확한 질감(質 感) 처리는 유니크하다.

환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CHRIST WITH THE SICK AROUND HIM
1642-5년 에칭 드라이포인트 뷰랑 27.8×38.9Cm
런던 대영 박물관 소장

렘브란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소묘와 동판화이다. 소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의 초벌 그림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렘브란트의 그것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못 되었으나 그 독특한 필치는 일단 인정하더라도 그의 동판화는 고금을 통해서 알브렉트 뒤러, 고야와 함께 동판화의 3대 거장의 한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동판화가 필요로 하는 정교한 기법적 훈련이 렘브란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그 흑백의 대비의 미묘한 효과는 렘브란트의 독특한 명암법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동판화 기법을 단순한 복사(複寫)의 방법으로서 만이 아니라 그것을 독자적인 한 예술 형태로 정립시킨 판화영역에 있어서의 한 혁신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두 흑인

TWO NEGROES
1661년 캔버스 油彩 77.8×64.4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흑인이 렘브란트의 회화 속에 독립된 테마로서 다루어 졌다는 사실은 일단 기이하게 보이기도 하겠으나 흑인, 특히 북아프리카의 무어 족(族)의 모습은 이미 르네상스 회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해외 무역의 중심지였고 보니 그 중심지인 암스테르 담은 가히 인종의 견본시장(見本市場) 같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렘브란트가 이에 무관심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흑인을 단순한 호기심의 눈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고 있으며 이들 인종 특유의 의지적인 용모와 눈동자를 똑같은 인간이라는 공감에서 포착하고 있다. 또 그 때문에 이 작품은 인간 관찰자로서의 초상화가 렘브란트를 과시해주는 작품이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차분히 가라앉은 그러면서도 정묘한 색조 변화에 의한 화면 통일은 렘브란트의 회화적 표현의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로 분장한 렘브란트(자화상)

SELF PORTRAIT AS THE APOSTLE PAUL
1661년 캔버스 油彩 91×77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이 자화상이 그려진 1661년은 노년에 들어선 렘브란트 로서는 매우 풍성한 다작의 해이다. 이 해에 그는 다시 성서 시리즈를 그렸으며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작품의 제목은 제쳐 놓고 이 그림의 주인공이 렘브란트 자신임은 틀림이 없다. 그는 한손에는 책을 들고 있고, 망토 깃 밑으로 단검의 손잡이가 비쳐지고 있다. 그는 무엇인가를 묻는 듯 또는 물으면서도 그 대답을 넘겨짚은 듯한 눈초리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초리는 노경에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나에게 예언하는 힘이 있고 산을 움직일 수 있는 신앙심이 있더라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있은 것만 못하다.' 라고한 성 베드로의 말씀을 스스로 터득한 것인지... 그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은 그의 죽음의 해인 1669년의 것이다.

겨울 풍경

WINTER LANDSCAPE

1646년 板 油彩 17×23Cm

카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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