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주의 석굴암미학연구소

KBS 석굴암 다큐 2부작 중 오늘 1부 대륙의 길 방영.(9/6)

작성일 작성자 성낙주

 

 

kbs-1tv에서 준비해온 석굴암 다큐 2부작(윤찬규 연출)이

오늘 9월 6일(금)과 다음주 9월 13일(금) 20시 'KbS파노라마' 시간에 잇달아 방영됩니다.

미력이나마 자문 형식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2013년 09월 06일 : 1부 대륙의 길 

2013년 09월 13일 : 2부 구도의 집

 

 

 

석 굴 암

 

1부: 대륙의 길 - 그리스 로마에서 경주까지
2013년 9월 6일 (금)

2부: 구도의 집 -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가니
2013년 9월 13일 (금)

◈ 연 출 : 윤찬규 PD
◈ 글·구성 : 임미랑 작가
◈ 프리젠터: 이상협 아나운서

 


총길이 1만 2천km의 실크로드,
2천 5백년의 불교역사
그 긴 여정의 종착점은 석굴암이었다.

멀리 그리스 로마에서 경주까지,
실크로드를 지나온 서양의 미학과 동양의 사상은
어떻게 석굴암 이 작은 방안에 하나로 모이게 됐을까?
석굴암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잠아함경, 13권 335.

 

 


■ 석굴암 앞에 길을 묻다


경주 토함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석굴암. 국보 제24호인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편의 예술사로 평가받는 석굴암은 불교 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그 아름다운 본존불 앞에 작은 질문들을 품어 본다. 본존불은 왜 소라껍데기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을까? 추운 나라에서 왜 저리도 얇은 옷을 입고 있을까? 땅을 향해있는 손가락은 무슨 의미일까?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석굴 사원과 돔형 천장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석굴암의 뿌리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 석가의 열반과 깨달음, 그 현장을 가다


BC 500년, 스승이 죽었다. 많은 사람이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며 스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곳이 바로 석가의 열반지 쿠시나가르다. 또한, 석가는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의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 바로 연기법이다. 석가의 이 가르침은 이후 불교역사가 확장되고 계승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석가의 열반지 쿠시나가르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 알렉산더, 불상의 시대를 열다

 

석가의 열반 직후, 인도에서는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이미 육신을 벗고 열반에 들어 부처가 된 존재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불상 시대를 깬 것은 의외의 서양 인물 알렉산더였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동방 원정에 나선다. 그의 동방원정은 어떻게 중앙아시아에 그리스인 도시를 건설했으며, 또한 어떻게 헬레니즘 문화를 이식시켰는가. 아프가니스탄의 대표적인 그리스인 도시 아이하눔. 이곳에서 발굴된 그리스인을 닮은 불상들을 통해, 불상의 역사 그 기원을 추적한다.

 

 

 

 

▲아이하눔 유적지 발굴단장 폴 베르나르

▲인도 간다라 불상과 그리스 조각상

 


■ 인류는 왜 석굴사원을 지었을까?


인도 아잔타 지역의 기후는 극단적이다. 3개월 넘게 지속되는 우기와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자 수행자들에게는 새로운 예불과 수행공간이 필요했다. 안거라는 독특한 수행방식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암벽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어진 인도의 대표적인 석굴사원, 아잔타 석굴. 이곳의 반구형 천장은 하늘을 상징했고 하늘은 곧 신을 의미했다. 인도의 사상과 서양의 미술 양식이 만들어낸 돔형 석굴사원은 과연 어떤 길을 거쳐 석굴암까지 오게 됐을까?

 

 

 

 

 ▲아잔타 석굴  

 ▲아잔타 19번 석굴의 반구형 천장

   

■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호위무사가 되었을까?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제마리아라이 타르즈 교수는 아프가니스탄 하다(Hadda) 유적지를 발굴한 고고학자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사진을 제시했다. 부처를 호위하는 호위무사. 그것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부처의 곁을 지키게 되었을까. 그는 어떻게 호위무사가 되었고, 석굴암의 금강역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헤라클레스가 금강역사로 변천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했을까. 

 

 

 

 

 ▲ 하다유적지에서 발굴된 불상 

 ▲ 본존불을 지키고 있는 헤라클레스상


 

■ 법수(法水)는 동쪽으로 흐르고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는 서양의 미학을 수용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땅에 도착한다. 그러나 중국은 거대한 장벽이었다. 공자의 유교 그리고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견고한 중화사상이 뿌리내린 나라였기 때문이다. 불교는 그 장벽을 넘어 어떻게 중국에 안착했을까? 또한, 유교나 도교와 같은 서로 다른 종교를 어떻게 수용하며 새로운 사상으로 꽃피웠을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가르침은 중국불교의 발전, 확장과정에서도 확인된다. 

 

 

 

 

 ▲ 룽먼석굴을 대표하는 봉선사석굴 

 ▲ 윈강석굴 제20굴 노천대불

 


■ 석가의 깨달음. 절정의 미학으로 완성되다.


실크로드의 가장 동쪽 끝은 경주의 석굴암이었다. 실크로드의 긴 여정을 지나온 모든 미의 요소들이 이 작은 방안에 꽃을 피웠다. 로마 판테온의 돔형 천장은 석굴암의 하늘이 되었다. 태양신의 소유였던 불꽃 광배는, 석굴암의 연꽃 광배가 되었다. 더욱이 그 위치를 본존불과 뚝 떼어 뒤쪽 돔형 천정에 배치하는 독창성을 발휘했다. 그리스인을 닮았던 초기 불상은 실크로드 1만 2천km를 지나 마침내 석굴암에서 가장 한국적인 얼굴로 탄생한다.

경계를 만나고 국경을 만나고 장벽을 만날 때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불교를 확장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가르침은 석굴암에 이르러 완성되기에 이른다. 석가의 깨달음. 그 가르침이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구현된 곳. 그곳이 바로 경주 석굴암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광배 

 ▲석굴암의 돔형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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